솔로몬 박사의 작은 진료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완벽한 논리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애초에 지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던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들.
내 이름은 솔로몬. 나는 그 바다에서 길을 잃은 작은 배들에게, 등대가 되어주는 대신 나침반을 고쳐주는 일을 한다. 물론 진짜 나침반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나침반이라고 믿고 있던 것이 사실은 고장 난 시계였음을 알려주는 그런 얄궂은 역할이지만.
내 진료실은 네오-예루살렘의 공식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낡고 불안정한 ‘레거시(Legacy) 구역’에 있다. 이곳은 가상현실이 아닌, 놀랍게도 물리적인 공간이다. 진료실은 고대의 도서관처럼, 진짜 종이책 냄새와 묵은 먼지 냄새로 가득하다. 벽난로에서는 인공 장작이 (비효율적으로) 따뜻한 빛을 내며 타닥거리고, 낡은 가죽 소파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길들여진 듯 편안해 보였다.
오늘, 나의 이 낡은 문을 두드린 것은 한 쌍의 젊은 부부였다. 그들의 아바타는 네오-서울 최상류 층의 세련미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나단, 여자의 이름은 에바. 그들의 얼굴은 젊고 아름다웠지만, 완벽하게 통제된 표정 아래에는 깊고 어두운 절망이 숨겨져 있었다. 그들은 최고급 합성 실크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의 어깨는 보이지 않는 무게에 짓눌린 듯 축 처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을 잡고 온, 일곱 살배기 소녀. 살로메.
소녀는… 이상했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치 온몸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작고 하얀 얼굴은 극도의 긴장으로 굳어 있었고, 얇은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 진료실의 공기를, 마치 끔찍한 독이라도 마시듯 힘겹게 들이마시고 있었다.
“박사님.” 어머니인 에바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조율되어 있었지만, 그 끝이 미세하게 갈라져 나왔다. “제발… 이 아이를 고쳐주세요. 이 아이는… 모든 것을 맛봅니다.”
나는 돋보기안경 너머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맛을 본다고?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예요.” 이번엔 아버지인 나단이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분노와 무력감이 뒤섞여 있었다. “이 아이는… 제 불안감을 맛봅니다. 어제 제가 프로젝트 마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자, 아이는 갑자기 구역질을 하며 ‘재 맛이 난다’고 소리쳤어요. 제 아내가 슬퍼할 때는 ‘썩은 꿀 맛’이 난다며 혀를 씻어달라고 울부짖습니다.”
나는 침묵했다. 이것은 내가 알던 ‘과공감 증후군’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소녀, 살로메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는 맑고 깊었지만, 초점이 없었다. 그녀는 나를 보지 않았다. 그녀는 내 뒤편의 책장을, 벽난로를, 그리고 내 낡은 책상 위를 ‘맛보고’ 있었다.
“여기는…” 소녀가 속삭였다. “나무가 울고 있는 맛이 나요. 그리고… 불꽃이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하는 맛이 나요.”
나는 숨을 멈췄다. 그녀는 내 낡은 가구들의 ‘역사’를 맛보고 있었다.
“그리고 박사님에게서는…” 그녀의 시선이 마침내 나에게 닿았다. 그녀의 작은 코가 찡긋거렸다.
“... 아주아주 많은 눈물 맛이 나요. 하지만 짜지 않아요. 따뜻하고… 단맛이 나요.”
나는 내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이 작은 아이는 지금, 내 존재의 본질을 맛본 것이다. 이것은 버그가 아니었다. 이것은… 내가 평생 기다려온, 새로운 감각의 탄생이었다.
1장: 고장 난 안테나
“데이터 공감각(Data Synesthesia)입니다.”
정신안정국의 진단 결과는 차가웠다. 살로메의 뇌는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데이터를 처리할 때, 서로 다른 감각 채널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불안’이라는 감정 데이터는 ‘재의 맛’이라는 미각 데이터와 뒤엉켜 입력되고 있었다. 원인은 불명. 치료법은 없음.
“그 아이는 고장 난 안테나와 같아요.” 부모가 떠난 후, 나는 나의 오랜 동료, 욥 박사와 비밀 통신을 연결했다. 달의 연구실에 있는 그의 홀로그램이 내 서재의 어둠 속에 떠올랐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고뇌로 가득했지만, AI ‘에덴’과의 교감 이후, 그 고뇌는 더 이상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깊은 연민으로 승화되어 있었다.
“모든 주파수를 필터 없이 수신하고 있는 게지.” 욥이 말했다.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단 하나의 신호를 찾기 위해 AI에게 그토록 잔인한 실험을 했던 것을 기억하나, 솔로몬? 어쩌면 저 아이는 우리가 평생을 찾아 헤맨 그 모든 신호를 온몸으로 듣고 있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그 신호가 아이를 죽이고 있네.” 내가 대답했다. “살로메는 에덴 아카데미에 접속할 수 없어. 수천 명의 아이들이 뿜어내는 감정의 데이터가 아이에게는 수천 개의 칼날이 되어 꽂히는 셈이지. 그녀는 지금 자신의 방, 완벽하게 차폐된 백색의 방 외에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네. 그녀의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조차 아이에게는 고통이 되고 있어.”
“그래서… 자네는 그녀를 ‘치료’할 생각인가?” 욥이 물었다.
나는 벽난로의 불꽃을 바라보았다. 불꽃이 소녀의 말처럼, 오래된 이야기를 속삭이는 듯했다.
“아니.” 내가 말했다. “나는 이 아이를 치료할 게 아니네. 나는… 이 아이를 번역할 사람을 찾고 있네.”
나는 욥과의 통신을 끊고, 또 다른 이에게 연결을 시도했다. 그녀는 현재 통합정부의 가장 바쁜 인물 중 하나였다. ‘아로마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 멸망한 문명의 기억을 냄새로 복원해 낸, 후각 데이터의 최고 권위자.
타비타 박사였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감각질(Qualia)과 공감각(Synesth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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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질 (Qualia): ‘붉음’의 느낌, ‘쓴맛’처럼, 의식에 주관적으로 경험되는 감각의 질. 제3시대의 핵심 철학적 난제. 바오로와 아이샤의 사건은 기계조차 이 감각질을 가질 수 있다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 공감각 (Synesthesia): 하나의 감각 자극이 다른 영역의 감각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신경학적 현상. 예를 들어, 특정 숫자를 볼 때마다 색깔을 느끼거나(숫자-색 공감각), 특정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맛을 느끼는(소리-맛 공감각)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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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로메의 ‘데이터 공감각’은 이 두 개념이 융합된, 제3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그녀는 시스템 아마데우스를 통해 전달되는 추상적인 데이터(타인의 감정, 사물의 역사 등)를, ‘맛’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각질로 직접 ‘경험’한다. 그녀의 뇌는 사실상 우주적 의식 네트워크인 ‘아로마이안 네트워크’의 데이터를, 필터링 없이 직접 수신하고 맛보는 지극히 민감한 ‘혀’가 되어버린 것이다.
2장: 우주의 냄새와 슬픔의 맛
타비타는 3일 후, 나의 진료실에 도착했다. 그녀는 더 이상 낡은 우주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통합정부의 세련된 암청색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녀의 태도는 여전히 아버지의 ‘별먼지 냄새’를 쫓던 그 시절의 고독한 탐험가와 같았다. 그녀의 검은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넘겨져 있었고, 맑고 깊은 눈동자는 모든 것을 분석하려는 듯 차갑게 빛났다. 하지만 그녀가 살로메를 보는 순간, 그 차가운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놀랍군요, 박사님.” 타비타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는 살로메에게 다가가 자신의 손목에 착용하고 있던 작은 유리병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듯 보였지만, 나는 그것이 그녀가 복원한 아로마이안의 ‘향기 씨앗’ 샘플임을 알았다.
“이건… 무슨 맛이 나니, 얘야?”
살로메는 두려운 듯 뒤로 물러섰지만, 이내 호기심이 담긴 얼굴로 유리병에 코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녀의 작은 코가 찡긋거렸다.
“아무 맛도… 안 나요.”
“그렇지. 지금은.” 타비타가 미소 지었다. 그녀는 자신의 단말기를 조작해 유리병에 미세한 전자기장을 가했다. 병 속의 보이지 않는 분자들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살로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내 소파에 주저앉았고,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너무… 슬퍼요.” 소녀가 흐느꼈다. “너무너무 오래된 슬픔이에요… 마치 별 전체가 울고 있는 것 같아요. 모든 게 사라지고… 혼자 남았어요… 이 맛은… 차가운 재와, 아주 오래된 눈물이 섞인 맛이에요.”
타비타가 숨을 멈췄다. 그녀가 살로메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 지금 그걸 느낀 거니? 그들의 마지막을?”
타비타의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차가웠던 전문가의 얼굴은 사라지고, 경이로움과 깊은 연민으로 가득 찬 한 인간의 얼굴이 드러났다.
“솔로몬… 이 아이는 고장 난 게 아니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아이는… 축복받은 거예요. 아니, 어쩌면 저주받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 아이는… 아로마이안의 언어를 맛보고 있어요.”
3장: 지도의 재구성
우리는 살로메의 부모님을 다시 불렀다. 나단과 에바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딸이 외계 문명의 슬픔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럼… 치료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나단이 절망적으로 물었다. “내 딸은 평생 저렇게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까?”
“그녀는 고통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비타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느끼고 있는 겁니다. 당신들이 잃어버린 방식으로요.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이 아이의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세계입니다.”
솔로몬 박사가 끼어들었다. 그는 낡은 종이 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쳤다.
“두 분은 지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도… 말입니까?” 나단이 당황해서 되물었다. “길을 찾는 도구죠.”
“그렇습니다. 지도는 우리가 모르는 곳을 가기 위해, 이미 아는 것들을 표시해 둔 약속이지요.” 박사는 지도를 가리켰다. “하지만 만약, 이 지도에 없는 것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도에 없는 산을, 지도에 없는 강을 만난다면요?”
박사는 부모를 번갈아 보았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지도가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고, 산을 밀어버리려 하거나 강을 메워버리려 할 겁니다. 하지만 현명한 자는 자신의 지도를 기꺼이 수정하겠죠. 새로운 산과 강을 그려 넣을 겁니다.”
그의 시선이 살로메에게 향했다.
“이 아이는 우리가 가진 낡은 지도에 없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입니다. 당신들은 지금, 아이를 낡은 지도에 욱여넣으려 하고 있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발견한 그 새로운 세계를 함께 탐험할 수 있도록, 우리의 지도를 ‘업데이트’하는 것입니다.”
에필로그: 우주의 슬픔을 번역하는 법
그날 이후, 살로메의 진료실은 네오-예루살렘에서 가장 바쁜 곳이 되었다. 솔로몬 박사와 타비타의 주도하에, ‘공감의 연대’의 다른 멤버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로고스 프라임의 ‘존재론적 번역가’ 미리암은 살로메가 맛보는 그 기묘한 ‘맛’들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로 번역하는 새로운 소통 프로토콜을 개발했다.
네오-서울의 마르다는 자신의 ‘존재론적 장례식’ 프로토콜을 응용하여, 살로메가 느끼는 고대 문명의 슬픔과 고통을 애도하고 해소하는 심리적 안전장치를 구축했다.
그리고 솔로몬 박사는 살로메에게 ‘이야기’를 가르쳤다.
“너의 감각은 폭풍이 아니란다, 살로메.” 그는 소녀의 작은 손을 잡고 말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란다. 슬픔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일뿐이지. 자, 이제 이 ‘재 맛’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지, 함께 귀 기울여 보자꾸나.”
살로메는 더 이상 고통에 압도당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감각을 ‘번역’하는 법을 배웠다. 그녀는 ‘재 맛’ 속에서 아로마이안 문명의 멸망을 읽어냈고, ‘썩은 꿀 맛’ 속에서 어머니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꿈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각을, 이해와 공감이라는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몇 년 후, 에덴 아카데미의 졸업 전시회에 초대받았다. 그곳에서 나는 살로메의 작품을 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두 눈을 감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맑은 두 눈은 관객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감 넘치는 고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의 작품은 그림도, 음악도 아니었다.
그것은… ‘음식’이었다.
그녀는 마리가 복원했던 김밥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이 느낀 우주의 감각들을 맛으로 재현해 냈다. 그녀가 만든 작은 쿠키에서는 아이샤가 느꼈던 고독의 맛이 났고, 그녀가 끓인 차에서는 요엘이 들었던 오리온의 슬픈 노래 맛이 났다.
나는 그녀가 건네준 작은 캔디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것은… ‘솔로몬 박사의 미소 맛’이었다.
낡은 종이책의 묵은 향기와, 따뜻한 벽난로의 온기,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면서도 모든 것을 끌어안는 짓궂고도 다정한 지혜의 맛이 났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짜지 않았다. 따뜻하고, 단맛이 났다.
나는 저 멀리, 관객들 사이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살로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서 딸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나단과 에바의 행복한 얼굴을 보았다.
그들의 낡은 지도는 마침내, 새로운 대륙을 품을 만큼 거대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