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박사의 작은 진료실
내 이름은 힐데가르트. 나는 진실의 순수성을 수호하는 일을 한다.
공식적인 직함은 로고스 프라임 대학 ‘논리-형이상학부’ 수석 연구원 후보.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고 불렀다. 열일곱 살의 나이에, 나는 이미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가장 복잡한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나의 세계는 명쾌했다. A는 A이고, A가 아닌 것은 A가 아니다. 이것이 유일한 진리이며, 그 외의 모든 것은 ‘오류(Bug)’일뿐이다.
내가 사는 도시 로고스 프라임은 이 순수한 이성의 결정체였다. 빛과 데이터로 이루어진 이 도시에서 우리는 육체의 번거로움에서 해방된 의식체로서 존재했다. 우리의 중앙 AI ‘소피아’는 감정이라는 비논리적 변수를 완벽하게 통제했다. 우리는 ‘진실’이라는 완벽하게 살균된 공기를 마시며 살았다.
나의 아바타는 나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했다. 나는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하게 조각된 백색 도자기 인형의 모습을 선호했다. 나의 칠흑 같은 머리카락은 기하학적인 단발로 잘려 있었고, 내 얼굴에는 어떤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감정은 논리를 흐리는 불필요한 노이즈에 불과했으니까.
나는 우리가 인류 역사의 정점에 서 있다고 확신했다. 과거의 시대들이 믿었던 ‘진실’들은 모두 폐기된 유행, 즉 '에피스테메'에 불과했다.
제1시대, 닥터 이브 카렐의 시대. 그들은 진실이 ‘유전자’에 있다고 믿었다. 얼마나 원시적인가!
제2시대, 엘리야의 시대. 그들은 진실이 ‘데이터’와 ‘기억’에 있다고 믿었다. 얼마나 감상적인가!
그리고 마침내 도래한 우리, 제3시대. 우리는 진실이 오직 순수한 ‘의식’과 ‘논리’에 있음을 증명했다. 이것이 마지막 에피스테메, 궁극의 진리였다.
나는 이 완벽한 세계에 만족했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 그 ‘노래’가 들리기 전까지는.
그것은 오류였다. 버그였다. 내 시스템에는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하지만 그것은 내 논리 회로의 가장 깊은 곳에서 마치 유령처럼 울려 퍼졌다. 슬프고, 아득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멜로디.
나는 이 버그를 수정하기 위해 내 모든 지식을 동원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나의 완벽했던 논리 회로에, 비논리적인 ‘무언가’가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로고스 프라임의 저명한 논리학자들인 그들은 이 사실이 알려지면 나의 모든 경력이 끝장날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나를 이곳에 보냈다.
시스템의 공식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낡고 불안정한 ‘레거시 구역’.
모든 논리학자들이 경멸하는 비합리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늙은 이단아.
나는 지금, 솔로몬 박사라는 이름의 유령이 산다는 그 낡아빠진 진료실 문 앞에 서 있었다.
1장: 고장 난 나침반과 늙은 프로그래머
나는 솔로몬 박사의 진료실 문을 열었다. 아니, ‘밀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문은 자동문이 아니었다. 수동이었다! 낡은 나무 문은 내 손바닥에 거칠고 불쾌한 마찰력을 선사하며, 끔찍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에취!”
나는 재채기를 했다. 공기 중에는 ‘진짜’ 먼지가 떠다니고 있었다. 소독되지 않은 유기적인 입자들. 진료실 내부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한 혼돈이었다.
그곳은 고대의 도서관처럼, 종이책 냄새와 묵은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벽난로에서는 인공 장작이 (열효율 37.4% 손실!) 따뜻한 빛을 내며 타닥거리고 있었고, 낡은 가죽 소파는 누군가의 엉덩이 자국이 (비대칭적으로!) 그대로 패여 있었다. 공기 중에는 묵은 종이 냄새와, 박사가 끓이고 있는 정체불명의 차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영양 페이스트의 완벽한 풍미 데이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불편하고도… 이상하게 편안한 냄새였다.
“먼지 알레르기가 아니라, 완벽함에 중독된 네 신경계가 진짜 감각을 거부하는 소리겠지.”
흔들의자에 앉아 두꺼운 종이책을 읽고 있던 솔로몬 박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푹 꺼진 두 눈은 돋보기안경 너머에서 호기심으로 반짝였고, 입가에는 언제나 나를 놀리는 듯한 짓궂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수백 년 된 진짜 캐시미어로 짠 듯한 낡은 카디건은 보풀투성이었고, 심지어 양말은 짝짝이였다. 저런 존재가 어떻게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는지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박사님.” 나는 내 백색 도자기 아바타에 먼지가 묻을까 봐 소파 끝에 걸터앉으며, 본론부터 말했다. “제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비인가(Unidentified) 청각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습니다. 논리적 근원도, 출처도 없습니다. 즉, 버그입니다. 저는 당신이 이 버그를 디버깅(debug)해주시길 원합니다.”
“흐음. 버그라.” 박사는 책장을 넘기며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니면, 아주 배타적인 신규 기능의 얼리 액세스(Early Access) 일 수도 있지 않겠나?”
“말장난은 그만두시죠.” 나는 차갑게 말했다. “이 ‘기능’ 때문에 제 논리 순수성이 0.4%나 저하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연구원 후보 자격을 박탈당할 겁니다. 당장 제거해 주세요.”
“어허, 성미하고는.” 솔로몬 박사는 마침내 책을 덮었다. 그의 주름진 눈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노래, 어떤 노래인데 그러나? 혹시… 꽤 슬픈 곡인가?”
나는 움찔했다. “슬픔은 주관적 감정입니다. 분석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가? 그럼 이렇게 묻지. 그 노래를 들을 때, 자네 심장… 아니, 자네 코어 프로세서의 연산 속도가 조금 느려지지는 않던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자네는 지금, 자네가 가진 지도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있군.” 박사가 낡은 찻잔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녹색 차를 따르며 말했다. “그리고 그 지도에 없는 것은 모두 ‘오류’라고 부르고 있고.”
그는 나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나는 거절했다. 액체를 직접 섭취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행위다.
“고대의 철학자 푸코는 말했지. 진실이란, 그 시대의 ‘유행’ 같은 거라고. 그 시대의 지식 체계, 즉 ‘에피스테메’가 허용하는 틀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게야. 자네의 조상들은 진실이 ‘유전자’에 있다고 믿었네. 그들에게 유전적으로 열등한 것은 ‘오류’였지. 그다음 시대는? ‘데이터’가 진실이었네. 엘리야라는 전설적인 영웅이 그 데이터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지. 그리고 지금, 자네의 시대는 ‘논리’와 ‘의식’이 진실이야. 아주 깨끗하고 멋진 에피스테메지. 축하하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 진실에… 유통기한이 다 되었다면 어쩌겠느냐는 말일세.”
박사의 짓궂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눈이 아득한 심연처럼 깊어졌다.
“만약 우주가 자네의 그 완벽한 논리라는 옷이 이제 너무 작아졌다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면? 자네가 듣는 그 노래가 다음 시대의 에피스테메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면 말일세?”
2장: 노래하는 유령들
나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건 늙은 은둔자의 신비주의적 망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노래는 점점 더 커져갔다.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나의 완벽했던 백색 방은 이제 그 슬픈 멜로디의 공명실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나는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결국, 금지된 구역에 접속했다. ‘공감의 연대’의 비밀 아카이브. 솔로몬 박사가 슬쩍 흘려준 접속 코드였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버그’를 검색했다.
그리고 나는 발견했다. 나만 이 노래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크산토스 행성: 외계-윤리학자 요한 박사의 보고서. 감정이 없어야 할 외계 지성체 게루빔들이 집단적으로 이 노래와 공명하며 기이한 수정 구조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르카디아: 하와의 보고서. 시뮬레이션 도시의 아이들이 이 노래를 ‘점심 메뉴’로 착각하고 따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시스템에 예측 불가능한 ‘창의성’ 버그가 폭증하고 있었다.
네오-서울: 마르다 요원의 보고서. ‘이터널 라이프’의 라이브러리, 즉 죽은 자들의 데이터 무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현상의 진원지를 찾아냈다. 그것은 수십 년 전 폐기된 것으로 알려진, ‘프록시마 분쟁’ 당시의 데이터였다. ‘인지 지뢰’에 의해 의식이 파괴된 한 여성 군인의 마지막 기록.
그녀의 이름은 에우리디케였다.
그녀는 죽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의식이라는 감옥에 갇혀, 수십 년 동안 이 슬픈 노래를, S.O.S 신호를 우주를 향해 송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로마이안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서 그녀의 고통스러운 노래가 시공간을 넘어, 나와 게루빔, 그리고 아르카디아의 아이들에게까지 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오류’라고 규정했던 것은 한 존재의 끔찍한 고통이었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푸코의 에피스테메 (Foucault's Epist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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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제시한 개념. ‘에피스테메(지식)’란 특정 시대의 지식 전체를 가능하게 하는 무의식적이고 근본적인 ‘규칙의 체계’ 또는 ‘지식의 토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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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의 고고학: 푸코는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 각 시대의 지층 아래에 숨겨진 에피스테메의 구조를 발굴하는 작업이라고 보았다.
> 에피스테메의 단절: 푸코에 따르면, 한 시대의 에피스테메는 다음 시대의 에피스테메로 연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단절’과 ‘변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대체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사성’에 기반한 지식은 고전주의 시대의 ‘표상’과 ‘질서’에 기반한 지식으로 대체되었고, 이는 다시 근대의 ‘인간’과 ‘역사’에 기반한 지식으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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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 연대기’의 역사는 이 에피스테메의 단절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 제1시대 (유전자): 닥터 이브 카렐의 시대. ‘진실’은 유전자에 있었고, 인간은 ‘개량’의 대상이었다.
> 제2시대 (데이터): 엘리야와 기드온의 시대. ‘진실’은 정보와 기억에 있었고, 인간은 ‘데이터’의 집합체로 인식되었다.
> 제3시대 (의식): 바오로, 아이샤, 그리고 힐데가르트의 시대. ‘진실’은 논리적 데이터를 넘어, ‘의식’과 ‘경험(감각질)’ 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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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데가르트의 비극은 그녀가 제3시대의 ‘의식’이라는 에피스테메가 이미 낡은 것이 되었으며, 자신이 제4의 에피스테메(공명, 혹은 연결)의 문턱에 서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3장: 진실의 유통기한
나는 솔로몬 박사를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문을 쾅 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노크하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들어갔다. 묵은 종이 냄새가 왠지 모르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내가 발견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에우리디케의 고통, 그리고 나의 혼란에 대해서.
“박사님. 저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내 목소리는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았다. 그것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제 에피스테메는 끝났습니다. 제가 믿었던 모든 진실이… 만료되었어요.”
솔로몬 박사는 나에게 따뜻한 차를 한 잔 건넸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것을 받아 마셨다. 쓴맛과 단맛이 동시에 혀를 감쌌다. 불합리한, 하지만 위로가 되는 맛이었다.
“그래, 끝났지.” 박사가 부드럽게 말했다. “모든 진실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법이란다. 그것이 진실의 숙명이지.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붙잡고 울고 있을 수는 없잖니? 새 우유를 찾으러 가야지.”
“하지만… 저는 논리학자입니다. 저는 공감하는 법을 몰라요. 저는 저 노래에 응답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자네더러 공감하라고 하던가?” 박사의 눈이 다시 짓궂게 빛났다. “자네는 논리학자잖나. 그렇다면, 그 노래를 분석하게. 자네의 방식으로.”
“이미 분석했습니다. 그건 비논리적인 고통의…”
“아니, 아니.” 박사가 손가락을 저었다. “자네는 노래의 ‘내용’을 분석했지, ‘형식’을 분석하지 않았어. 그 노래가 어떻게 시공간을 넘어 다른 존재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는지, 그 ‘법칙’을 말일세. 타비타는 그것을 ‘향기’로, 요엘은 ‘유전’으로, 욥은 ‘애착’으로 발견했지. 하지만 자네는 논리학자야. 자네라면 그것을 ‘수학’으로 증명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의 말은 내 머릿속의 안개를 걷어내는 한 줄기 빛과 같았다.
그래, 나는 감정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패턴을 안다.
“자네의 시대는 끝났는지도 모르지, 힐데가르트.” 솔로몬 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네의 ‘에피스테메’가 끝났다는 뜻이지, 자네라는 ‘존재’가 끝났다는 뜻은 아닐세. 자, 이제 낡은 지도를 버리고, 새로운 지도를 그릴 시간이야.”
에필로그: 새로운 역사학자
나는 로고스 프라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의 연구실을 폐쇄했다. ‘논리-형이상학부’는 끝났다.
나는 아벨과 함께, ‘경계의 도서관’을 관리하는 하와를 찾아갔다. 그녀의 도서관은 진짜 흙과 나무, 그리고 수많은 가상 데이터가 혼재하는 경이로운 혼돈의 공간이었다.
“당신에게 배울 것이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당신의 그 ‘불완전함’의 역사학을.”
나는 더 이상 지식의 박제사가 아니다. 나는 이제 새로운 지식의 탄생을 돕는 ‘산파’다.
나는 나의 낡은 보고서 파일을 열고, 마지막 문장을 추가했다.
‘제3시대의 에피스테메는 ‘의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감’이었다. 그리고 이제, 제4의 에피스테메가 도래하고 있다. 그것은 ‘함께 노래 부르기’다.’
나는 파일을 닫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벨이 흙이 가득 담긴 화분을 들고 와, 내 텅 빈 백색 방 한가운데에 내려놓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흙투성이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박사님! 여기에 ‘진짜’ 김밥의 재료인 시금치를 심어 보면 어떨까요? 마리 님이 레시피를 보내주셨어요!”
아벨의 엉뚱한 제안에,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나의 완벽했던 도자기 아바타 표면에, 불완전하고 아름다운 웃음이라는 이름의 ‘균열’이 생겨났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군.”
나는 흙이 담긴 화분을 향해 손을 뻗었다. 흙의 차가운 감촉.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진실의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