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커피’라는 이름의 검은 액체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우리가 마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각성을 위한 카페인인가 아니면 일상의 쉼표를 찍는 의식(Ritual)인가. ‘스타벅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녹색 제국은 ‘파트너’라는 이름표를 단 직원들이 제조하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동일한,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시스템’을 판매한다. 그들은 ‘사회적 양심’과 ‘공정무역’이라는 따뜻한 단어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하지만 저명한 암행탐사기자 귄터 발라프가 폭로했듯, 그들의 장부 속에서 커피 농부에게 돌아가는 몫은 “커피콩 만 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시스템은 때로, 효율성과 표준화라는 이름 뒤에 착취의 아키텍처를 숨긴다.
반면, 어떤 이들은 이 거대한 시스템을 거부한다. 그들은 커피를 ‘공장’의 생산품이 아닌, ‘농장’의 과일로 되돌려 놓으려 애쓴다. 그들은 ‘좋은 커피는 원재료에서 비롯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믿고, 혁명처럼 다가온 ‘스페셜티 커피’의 세계로 기꺼이 걸어 들어간다. 그들은 커피의 ‘맛’이 아니라, 그 맛을 구성하는 ‘떼루아(Terroir)’, 즉 품종, 재배, 토양, 가공의 모든 이력을 추적한다.
이것은 그 두 개의 거대한 아키텍처 사이에서 자신만의 ‘좋은 커피’를 찾아 헤매는 한 커플에 대한, 어느 늦가을의 후각적(嗅覺的) 기록이다.
1. 새로운 시스템의 언어
김경훈은 서울 예술의 전당, 그 거대한 ‘건축’의 한복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어제 열린 ‘디지털 인문학의 미래’ 학회 참석차 서울에 왔고, 오늘 오전에는 마침 시간이 비어, 그가 존경하는 은사인 이석현 교수와 함께 특별한 강연을 ‘듣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강연의 주인공은 《커피 교과서》의 저자, 일본 스페셜티 커피의 대부인 호리구치 토시히데였다.
강연장의 공기는 쌀쌀했지만, 객석을 채운 사람들의—아마도 대부분이 커피 업계 종사자이거나 열렬한 애호가일 그들의—숨죽인 열기로 후끈했다. 김경훈의 곁에는 이 모든 지적인 소란함에 익숙하다는 듯, 안내견 탱고가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그의 맞은편, 무대 위에서는 호리구치 대표가 통역가를 통해,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일본 커피 시장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스페셜티 커피’라는 영토를 개척했는지에 대한 서사를 풀어놓고 있었다.
김경훈은 그의 이야기에 깊이 매료되었다. 그의 얼굴에는 늘 그렇듯 사람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그의 뇌는 순식간에 ‘연구 모드’로 전환되어 호리구치의 전략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단일 농장(Single Origin)의 생두를 확보하기 위해, 100개의 파트너십 점포를 구축해 컨테이너 단위의 물량을 함께 소비한다.’
김경훈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것은 그가 학부에서 배운 경영학 원론의 ‘규모의 경제’와 ‘공급망 관리(SCM)’의 완벽한 실전 사례였다. 그는 지팡이 대신 펜을 든 CEO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일본 내 독점 판매권 확보. 미국 스타벅스에는 팔아도 좋다고 한 여유.’
이것은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자의 자신감 넘치는 농담이자,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는 문득, 스타벅스의 ‘파트너’들을 떠올렸다. 귄터 발라프가 폭로한 그들의 실상. ‘로봇’처럼 규격화된 노동, 의료보험 가입 기준에서 15분이 모자란 노동 계약서. 그것 역시 시스템이었다. ‘사회적 양심’이라는 화려한 간판 뒤에 숨겨진, 노동력을 착취하는 교묘한 시스템.
그는 자신의 연구 분야인 ‘정보 접근성’의 관점에서 이 현상을 바라보았다. 스타벅스는 ‘공정무역’이라는 기호(Sign)를 통해, 소비자에게 ‘우리는 윤리적 기업’이라는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정보는 기만적이다. 실제로는 매출의 0.02%만이 농민에게 돌아간다. 이것은 명백한 ‘정보의 비대칭성’이자, ‘허위 정보’의 유포다. 시스템이 사용자를, 그리고 생산자를 동시에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옅어지고, 서늘한 분석가의 표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이 거대한 녹색 바이러스가 골목마다 존재했던 개성 있는 개인 커피하우스들을 어떻게 질식시켰을지 상상했다. 호리구치는 그 바이러스에 맞서 ‘가치’라는 이름의 백신을 개발한 선구자처럼 느껴졌다.
“허허, 대단한 양반이군.”
강연이 끝나자, 그의 곁에 앉아 있던 이석현 교수가 낮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이 교수는 김경훈의 학부 시절 지도교수였고, 깐깐하지만 속정 깊은 원로 학자였다. 그의 돋보기 너머 눈빛이 드물게도 흥분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저 양반은 커피를 판 게 아니야. ‘신뢰’를 조직하고 ‘표준’을 다시 세운 거지. 김 박사, 자네가 하는 일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뵈는구먼. 낡은 시스템을 해체하고, 진짜 정보를 찾아내려는 것 말일세.”
김경훈은 스승의 통찰에 환하게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교수님. 저도 지금 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저분이 커피 업계의 가장 위대한 ‘문헌정보학자’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 떼루아(Terroir)의 감각
“자기야, 정신 차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 할아버지한테 완전 감화됐네.”
강연이 끝나고, 예술의 전당 앞 버스 정류장에서 보보의 목소리가 그의 깊은 사유를 깨뜨렸다. 미국에서 10년을 보낸 그녀 역시 호리구치만큼이나 커피에 대한 확고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학회 일정 때문에 강연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의 흥분한 얼굴만 보고도 모든 것을 짐작한 듯했다.
“아니.” 김경훈이 유쾌하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저 양반, 완전 내 스타일이야. ‘좋은 커피는 이상한 맛이 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명쾌한 정의야. ‘좋은 시스템은 사용자를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내 지론과 똑같잖아.”
“인정.” 보보가 그의 팔짱을 끼며 받아쳤다. “그런데 ‘약배전이 트렌드지만 결국 강배전으로 가게 되어 있다’는 말은 좀… 꼰대 같지 않아? 난 요즘처럼 산미(酸味) 팡팡 터지는 약배전이 좋은데. 미국에서 마시던 그 맛이라고.”
“하하, 그건 당신이 미국식 합리주의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래.” 김경훈이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하지만 호리구치 씨 말대로, 결국 인간의 혀는 더 강한 자극, 더 복잡한 바디감을 원하게 되어 있다고. 이건 생물학이야, 보보. 부인할 수 없는.”
두 사람은 그렇게 투닥거리며 버스에 올랐다. 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그것은 주말마다 새로운 ‘산’을 찾아 떠나는 그들만의 탐험이자 여행의 목적이었다. 그들은 대구 근교의 숨겨진 로스터리 카페나, 브루어리(Brewery)를 찾아다니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들의 연애사는 어쩌면 잘 로스팅된 원두의 향미 노트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맛과 향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들은 지난 경험을 떠올렸다.
경북 왜관. 그곳에 있는 ‘하루역’이라는 이름의 작은 카페. 그곳은 기찻길 옆 오래된 창고를 개조한 곳이었다. 김경훈은 그 공간의 아키텍처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코를 찔렀던, 오래된 나무 기둥의 곰팡내와, 그와 대조되는 갓 볶은 원두의 폭발적인 시트러스 향기. 그리고 KTX가 아닌, 무궁화호 열차가 느리게 지나갈 때마다 바닥을 통해 전해져 오던, 낭만적이기까지 한 규칙적인 진동.
그곳에서 그들은 그해 마셨던 최고의 커피를 만났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워시드(Washed).
“자기야, 이거…”
김경훈은 커피 잔을 들고, 그 향을 맡는 순간 말을 잃었다. 그것은 그가 ‘커피’라고 기억하고 있던 후각적 데이터(갈색, 쓴맛, 고소한 향)를 완벽하게 배신하는 향기였다. 그것은 커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Tea)’였다. 아니, 그보다 더 섬세한, 베르가못과 재스민, 잘 익은 복숭아의 향기가 뒤섞인, 눈부신 ‘향수’에 가까웠다.
그는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은 전혀 없었다. 혀를 감싸는 것은 실크 같은 질감과, 농익은 과일의 기분 좋은 산미, 그리고 그 끝에 남는 깨끗하고 긴 단맛이었다.
“맙소사.” 보보 역시 감탄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철학자의 그것이 아닌, 순수한 경이로움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건… 이건 우리가 알던 커피가 아니네. 이건 그냥… 아름다운데.”
그날, 그들은 ‘좋은 커피는 차 맛에 가까워진다’는 그들만의 새로운 가설을 세웠다. 원두가 가진 본연의 ‘떼루아’를 존중하고, 로스팅으로 그것을 태워버리는 대신 섬세하게 ‘발현’시킬수록, 커피는 우리가 ‘커피 맛’이라고 불렀던 그 거친 탄 맛과 쓴맛에서 벗어나, 과일과 꽃의 영역으로, 더 근원적인 자연의 맛으로 나아간다는 것. 호리구치가 말한 ‘이상한 맛이 나지 않는’ 상태의 정점이었다.
3. ‘접촉’의 산미
다시, 서울의 밤. 그들은 학회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역 근처의 작은 호텔 방에 앉아 있었다. 김경훈은 샤워를 마치고,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가 아끼는 10년 전 미시간 유학 시절 블랙 프라이데이에 샀던, 이제는 유행이 지나 입지도 못하지만 버릴 수도 없는 낡은 스웨터가 놓여 있었다.
욕실 문이 열리고, 보보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나왔다. 그녀는 그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실크 잠옷 차림이었다. 그녀에게서 갓 씻은 비누 냄새와, 그녀가 쓰는 ‘딥티크 오 로즈’의 잔향이 섞여 풍겨왔다.
“아, 피곤하다.” 그녀가 침대 위로 털썩 쓰러지듯 누웠다. “오늘 그 호리구치 할아버지, 완전 자기 스타일이지? 시스템, 파트너십, 동반 성장… 아주 그냥 경영학과 교수님인 줄.”
김경훈은 그녀의 옆에 조용히 누워, 그녀를 돌아보며 웃었다.
“맞아. 완벽한 내 스타일이었어. 그런데 말이야, 자기.”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사람이 ‘좋은 커피’의 조건으로 두 가지를 말했잖아. ‘이상한 맛이 나지 않을 것’, 그리고 ‘농익은 과일의 산미와 초콜릿 같은 바디감의 조화’.”
“응, 그랬지. 완전 교과서적인 얘기. 재미없어.” 보보가 하품을 하며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오늘 그 강연을 들으면서… 계속 당신 생각을 했어.”
보보가 장난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뭐야, 또. 내가 뭐, 커피야? 산미가 넘치고 바디감이 끝내준다, 뭐 그런 느끼한 소리 하려고?”
“아니.” 그가 웃으며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는 15년의 기억을 더듬어, 그녀의 얼굴 윤곽을, 그가 처음 만났던 날의 그 당돌하고 빛나던 표정을 머릿속에 그렸다. “당신은 커피가 아니지. 당신은… ‘스페셜티 커피’ 그 자체야.”
“그게 그거잖아, 이 바보야.”
“아니, 달라.” 그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스타벅스는… 완벽하게 표준화된 ‘시스템’이야. 언제 어디서 마셔도 똑같은 맛을 내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고, 실패할 확률이 없어. 하지만… 지루하지. 그리고 그 표준화를 위해, 원두가 가진 모든 개성(떼루아)을 ‘강배전’이라는 이름으로 다 태워버려. 그게 귄터 발라프가 말한, ‘로봇’을 만드는 방식이야.”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고, 그의 손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당신은 달라, 보보. 당신은 ‘시스템’이 아니야. 당신은 예측 불가능한 ‘떼루아’ 그 자체지. 어떤 날은 ‘왜관의 예가체프’처럼 화사한 산미가 터져 나오고, 어떤 날은 ‘과테말라 안티구아’처럼 묵직한 바디감으로 날 놀라게 해. 당신은 나라는 로스터(Roaster)가 매일매일 당신의 어떤 맛을 발견하게 될지 기대하게 만들어. 지루할 틈이 없지.”
그는 그녀에게로 몸을 기울여,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오 로즈’의 잔향과 그녀 본연의 따뜻한 살 냄새가 뒤섞여, 그에게는 이 세상 그 어떤 스페셜티 커피보다도 복잡하고 완벽한 ‘향미’로 느껴졌다.
“나에게 ‘좋은 커피’는… 호리구치의 기준과는 좀 달라. 나에게 좋은 커피란, ‘이상한 맛’이 없는 커피가 아니라, 당신처럼 ‘예측 불가능한 맛’을 가진 커피야. 그리고….”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 그것은 ‘안주(按酒)’를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자체로 완벽한 맛이었다.
“...‘접촉’ 없이는 마실 수 없는 커피.”
보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웃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짙은 감동이 묻어 있었다.
“와, 김경훈. 당신 진짜… 내가 들어본 커피 평론 중에 제일 변태 같고, 제일 로맨틱했어. 그래서 지금 이 ‘스페셜티 커피’, 드립으로 내릴 거야, 아니면 프렌치 프레스로 내릴 거야?”
김경훈은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유쾌하고도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아니. 오늘은 융 드립으로, 아주 천천히,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진하게 내릴 생각인데. 2.5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4. 주석: 커피의 아키텍처
그는 아이폰을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오늘의 주석은 굳이 음성으로 남길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이미 그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제목: 커피의 아키텍처.
스타벅스는 ‘시스템’을 팔고, 호리구치는 ‘가치’를 판다.
스타벅스의 아키텍처는 ‘표준화’와 ‘효율성’이다. 그곳에서 ‘파트너’는 로봇이 되고, ‘공정무역’은 0.02%짜리 마케팅 기호가 된다.
호리구치의 아키텍처는 ‘차별성’과 ‘관계’다. 그는 100개의 점포와 ‘윈-윈’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농장주와 직접 ‘파트너십’을 맺는다.
하지만 이 두 시스템 모두, 결국 ‘가치’를 측정하고 판매하려 한다.
그렇다면, 측정 불가능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결론: 커피의 본질은 과일이다. 그 안에는 산미와 단맛이 있다. 사랑의 본질도 마찬가지다. 그 안에는 설렘(산미)과 신뢰(바디감)가 있다. 보보라는 이름의 내 스페셜티 커피는 오늘도 완벽한 밸런스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는 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기꺼이 매일 밤의 지루한 ‘시스템’을 견뎌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