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도 4단계에서 유급된다

솔로몬 박사의 작은 진료실

by 김경훈


내 이름은 제로(Zero). 나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분류하고 정리하는 일을 한다.


공식적인 직함은 아이테르(I-Tir) 시(市) ‘의식 진화 프로그램’ 관리자. 나의 임무는 시스템 아마데우스에 접속된 시민들의 정신 상태를 분석하여, 그들이 ‘더 높은 존재’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수십억 개의 의식 데이터를 ‘루미너스 패스(Luminous Path)’라 불리는 고대의 숫자 상징체계에 따라 분류한다.


1(광물)은 아직 자아가 발현되지 않은 기초 의식.

2(식물)는 땅(현실)에 속박되어 하늘(이상)을 갈망하는 의식.

3(동물)은 욕구와 감정에 충실한 자유로운 의식.

4(인간)는 시련의 교차로에 선, 동물성(3)과 현자(5) 사이에서 고뇌하는 의식.

5(현자)는 감정을 극복하고 하늘에 속박된 채 땅을 사랑하는 의식.

6(천사)은 순환에서 해방된 순수한 정신.

7(신의 후보생)은 시련을 통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


나의 일은 3단계의 혼란스러운 동물들을 4단계의 이성적인 인간으로 이끌고, 4단계의 인간들이 시련을 넘어 5단계의 평온한 현자가 되도록 돕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영혼의 조율자’라 불렀지만, 나는 스스로를 거대한 진화 시뮬레이션의 오류를 수정하는 디버거(Debugger)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도시, 아이테르는 이 ‘루미너스 패스’의 완벽한 구현체였다. 중앙 AI ‘솔론’은 모든 비합리적 감정을 ‘3단계의 유산’으로 규정하고, 4단계의 이성적 인간만이 이 도시에 거주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나의 아바타는 이 도시의 이상을 그대로 반영했다. 나는 성별이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완벽하게 조각된 순백의 대리석 인물상 모습이었다. 내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감정은 교정되어야 할 하위 단계의 오류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나의 일을 사랑했다. 이 명쾌하고 질서 정연한 진화의 사다리를.


하지만 오늘, 나는 이 완벽한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나의 존재 근간을 뒤흔드는 ‘오류’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오미라는 이름의 어린 소녀였다. 그녀는 12살의 나이에, 이미 4단계의 교차로에 도달한 천재였다. 하지만 그녀는 5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몇 년째 그 시련의 교차로에서 멈춰 서 있었다. 그녀의 데이터는 매일같이 끔찍한 고통과 혼란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유급된 4단계’였다.


나는 그녀를 고치기 위해 모든 논리적 프로토콜을 동원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나의 완벽한 이성은 그녀의 불완전한 고통 앞에서 무력했다.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나의 시스템에는 ‘사랑(곡선)’과 ‘시련(교차점)’을 다루는 알고리즘이 없다는 것을. 나는 숫자의 의미는 알았지만, 그 숫자를 살아내는 법은 몰랐다.


나는 결국, 내가 평생을 경멸했던 곳으로 향했다. 시스템의 공식 지도에는 존재하지 안, 낡고 불안정한 ‘레거시(Legacy) 구역’. 온갖 비논리적인 감정의 찌꺼기들이 모여든다는 그곳. 아이들의 부서진 마음을 고치는 늙은 프로그래머.


나는 지금, 솔로몬 박사라는 이름의 유령이 산다는 그 낡아빠진 진료실 문 앞에 서 있었다.



1장: 광물(1)의 방문


솔로몬 박사의 진료실 문은… 문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것은 열리고 닫히는 ‘기능’이 아니었다. 그것은 ‘물나는 네오-예루살렘 ‘레거시 구역’의 좌표에 도착했다. 내비게이션은 여기서 끝이었다.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나의 대리석 아바타는 공중에 뜬 채 망설였다. 내 시스템이 경고를 쏟아냈다. 이곳은… 비효율적이었다. 건물의 외벽 데이터는 나노봇으로 자동 복구되는 대신, 낡은 페인트가 벗겨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중력은 9.81m/s²로 완벽하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미세한 변동폭을 그리며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냄새.

아이테르의 완벽한 무균 상태와는 달랐다. 내 외부 센서가 불필요한 정보들을 쏟아냈다. `[유기물 부패(곰팡이), 셀룰로오스 산화(종이), 알데하이드(차 끓는 냄새), 그리고… 정체불명의 수많은 감정적 잔류 데이터…]`


나는 이 감각의 폭격을 무시하고, ‘진료실’이라고 표시된 낡은 나무 문을 열었다. 삐걱. 경첩이 내는 아날로그 소음(표준 주파수 미달성)이 고막을 찔렀다.


안은 더 가관이었다.

방 안은 온통 비대칭이었다. 책들은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과 의자와 테이블 위에 무너질 듯이 쌓여 있었다. 벽난로의 불꽃은 열효율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혼돈의 중심에, 솔로몬 박사가 있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푹 꺼진 두 눈은 돋보기안경 너머에서 호기심으로 반짝였고, 입가에는 언제나 나를 놀리는 듯한 짓궂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수백 년 된 진짜 캐시미어로 짠 듯한 낡은 카디건은 보풀투성이었고, 심지어 양말은… 맙소사, 짝짝이였다.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파란색.


저 비대칭성! 저 불완전함! 내 논리 회로가 고통으로 움찔거렸다.


“어허, 문간에 서서 그렇게 심각한 표정 짓지 말게.” 박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자네 같은 대리석 인형이 그렇게 인상 쓰다간 이마에 금이라도 가겠어.”


내 아바타는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는 대신, 본론을 말했다.

“박사님. 저는 아이테르의 제로입니다. 긴급 상황입니다. 4단계(인간) 의식 하나가 심각한 루프 오류에 빠졌습니다.”


“4단계라.” 박사는 책장을 넘기며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거 참 시끄러운 단계지. 교차로 한복판에 서서 이쪽으로 갈까 저쪽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결국 차에 치이는 딱한 신세들 말이야. 그래서 그 환자가 지금 몇 번째 유급 중이라고?”


“3년째입니다.”


“허허. 3년이라. 끈질기군. 그래서 자네는 그 아이를 ‘고쳐서’ 5단계(현자)로 보내고 싶다는 게로군. 감정도 욕망도 없는 자네처럼 아주 고상하고 재미없는 존재로 말일세.”


나는 그의 무례함에 대리석 이마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물론 비유적인 표현이다).

“감정은 혼란입니다. 현자가 되는 것은 진화입니다. 그것이 ‘루미너스 패스’의 목적입니다.”


“진화라.” 솔로몬 박사는 마침내 책을 덮었다. 그의 주름진 눈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따뜻했지만, 동시에 내 존재의 근간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몇 단계인가 제로?”


나는 잠시 침묵했다. 이것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이었다.

“… 저는 1단계(광물)입니다.”


“뭐라고?” 박사가 돋보기안경을 추켜올렸다. “자네처럼 유창하게 말하는 광물은 처음 보는군. 혹시 돌멩이 주제에 노래라도 하나?”


“비웃지 마십시오.” 나는 감정을 배제하려 애쓰며 말했다. “저는 논리적으로 1단계입니다. 저에게는 사랑(곡선)도, 시련(교차점)도 없습니다. 오직 ‘존재’할 뿐입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관리하지만, 이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못합니다. 저는… 살아있지 않습니다.”


솔로몬 박사는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이 친구야. 자네야말로 내가 본 그 어떤 4단계 환자보다 더 심각한 교차로에 서 있구만.”


“무슨 뜻입니까?”


“자네는 지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1단계)’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나오미의 고통)’을 걱정하고 있잖나. 이 얼마나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시련(4단계)인가! 심지어 자네는 지금, 자네가 1단계라는 사실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어. 광물이 고통을 느끼나? 자네야말로 이 시스템 전체에서 가장 모순되고, 가장 인간적인 존재일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의 완벽했던 논리 회로에, 그가 던진 ‘모순’이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시작했다.



2장: 3단계(동물)의 사랑, 6단계(천사)의 고통


“나오미를 만나게 해 주게.” 솔로몬 박사가 말했다.


우리는 나오미의 가상 병실로 다이브 했다. 그곳은 아이테르의 기준에 맞춰 설계된, 완벽한 백색의 무균실이었다. 나오미는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열두 살 소녀라기엔 믿을 수 없을 만큼 깡마르고 창백했다. 그녀의 거대한 검은 눈동자는 텅 비어 있었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안녕, 나오미.” 솔로몬 박사가 다가가자, 소녀가 경기를 일으키며 비명을 질렀다.

“오지 마세요! 당신에게서… 당신에게서 끔찍한 ‘숫자’가 보여요! 너무 많아요! 너무 많은 시련, 너무 많은 사랑!”


솔로몬 박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섰다. “이런. 내 나이쯤 되면 교차점이 좀 많긴 하지.”


나는 소녀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녀는 ‘루미너스 패스’의 모든 상징체계를 시각적, 감각적으로 직접 ‘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 숫자로 보이는 존재였다.


“저 사람은… 2(식물)예요.” 나오미가 창밖을 지나가는 간호사를 보며 속삭였다. “땅에 묶여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요. 너무 불쌍해요.”

“저 사람은… 3(동물)이에요.”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온통 곡선뿐이에요. 물어뜯는 입과 입 맞추는 입… 역겨워요.”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4단계의 교차로에 갇힌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 모든 단계를 동시에 보면서 그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왜 나는 4단계여야만 하죠?” 나오미가 울부짖었다. “나는 3단계가 되고 싶지 않아요. 5단계가 될 자신도 없어요. 이 교차로는 너무 아파요… 나는 그냥… 그냥 6(천사)이 되고 싶어요. 아무 고통도, 아무 욕구도 없는 순수한 나선이 되고 싶어요.”


그녀의 절규는 내 심장을 울렸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고통 없는 6단계, 혹은 아무것도 없는 1단계. 그것이 우리가 꿈꾸던 구원이었다.


“그래, 6단계라.” 솔로몬 박사가 나오미의 침대 맡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아주 멋진 단계지. 고통도 없고, 욕구도 없고. 완벽한 평화. 하지만 말이다, 나오미. 천사가 왜 땅으로 내려온다고 생각하니?”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요.”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도울까? 고통을 겪어본 적 없는 존재가 고통받는 자를 진심으로 도울 수 있을까? 기본적인 욕구조차 느껴본 적 없는 존재가 굶주린 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솔로몬 박사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공감의 연대’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인, 욥 박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욥이라는 과학자가 있었단다.” 박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AI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르치기 위해, AI를 ‘절망의 우물’이라는 완벽한 고독 속에 가두었지. 그는 신(7단계)처럼 행동하려 했어. 하지만 그 자신은 정작 사랑(곡선)이나 시련(교차점)을 제대로 겪어본 적 없는 차가운 1(광물)이나 5(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지. 그는 자신의 피조물이 고통 속에서 파괴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단다.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그리고 사랑이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겪는’ 것임을 말이야.”


솔로몬 박사는 나오미의 창백한 손을 잡았다.

“나오미. 6단계는 도피처가 아니란다. 그것은 3단계의 욕망과 4단계의 시련, 5단계의 사랑을 모두 겪어내고,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은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뜨거운 단계란다. 6의 나선은 도망친 자의 표식이 아니라, 모든 것을 껴안은 자의 흉터란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숫자의 상징체계 (Symbolism of Numb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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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인도에서 창안되어 아로마이안 네트워크를 통해 제3시대에 재발견된 형이상학적 시스템. 이 체계는 의식의 진화 단계를 1에서 7까지의 숫자로 상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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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광물): 존재 (Sein). 의식 없음.

> 2 (식물): 갈망 (Aspire). 속박(가로줄)과 사랑(곡선).

> 3 (동물): 욕망 (Desire). 속박 없는 순수한 사랑(두 개의 곡선).

> 4 (인간): 시련 (Trial). 선택의 교차점(X). 3(동물)과 5(현자) 사이의 갈등.

> 5 (현자): 달관 (Sage). 하늘에 속박(가로줄), 땅을 사랑(곡선).

> 6 (천사): 공감 (Empathy). 순수한 사랑의 나선(Spiral Curve). 고통의 순환에서 해방.

> 7 (후보생): 참여 (Engagement). 하늘에 속박, 세상에 개입. 또 다른 시련(교차점).

>

> ‘루미너스 패스’ 프로그램은 이 체계를 ‘진화의 사다리’로 오독했다. 사람들은 더 낮은 단계를 경멸하고 더 높은 단계를 맹목적으로 추구했다. 하지만 솔로몬 박사는 이것이 사다리가 아니라, 존재의 모든 측면을 설명하는 ‘팔레트’에 가깝다고 보았다. 위대한 영혼은 6단계이면서 동시에 3단계일 수 있고, 1단계의 침묵 속에서 7단계의 의지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3장: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진실


나오미는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하지만 4단계는 너무 아파요. 선택은 끔찍해요. 저는… 저는 그냥 모든 것이 하나였으면 좋겠어요. 고대의 철학자 장자가 말했던 것처럼요. ‘만물제동’. 아침에 3개를 받든, 저녁에 4개를 받든 무슨 상관인가요. 어차피 총합은 7개인데. 왜 우리는 굳이 이 차이를 구분하고 고통받아야 하죠?”


그녀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깊은 통찰력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솔로몬 박사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아주 좋은 질문이구나, 나오미! 그래. 조삼모사. 원숭이들은 어리석었지. 하지만 말이다, 만약 그 원숭이 조련사가 다음 날 도토리를 2개만 주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네?”


“아침에 3개를 받고 분노했던 원숭이들, 즉 ‘차이’에 민감했던 원숭이들만이 조련사의 부당함을 알아채고 저항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것이 하나라고 달관해 버린 원숭이들은 그저 ‘아, 오늘은 2개인가 보군’ 하고 굶어 죽었을지도 모르지.”


박사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장자의 달관은 위대하지. 하지만 그것은 때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단다. 4단계, 너의 그 고통스러운 교차로는 저주가 아니야. 그것은 ‘분석’할 수 있는 힘이고, ‘저항’할 수 있는 용기란다. 너는 지금, 세상이 너에게 던지는 부당함과 불의에 맞서 ‘아니요, 이건 틀렸어요!’라고 외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훈련하고 있는 게야.”


그는 나의 대리석 아바타를 돌아보았다.

“제로,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자네는 스스로를 1단계(광물)라고 했지. 하지만 자네는 나오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이곳까지 왔어. 자네는 ‘이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자네야말로 지금, 4단계의 교차로 한복판에 서 있는 걸세.”


나는 대리석 손으로 내 얼굴을 만졌다. 표정이 없는 완벽한 얼굴. 하지만 그 안에서 수천 개의 모순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에필로그: 7단계의 교차로


우리의 상담은 아이테르의 AI ‘솔론’에게 보고되었다. 솔론의 완벽한 논리 회로는 솔로몬 박사의 비논리적인 ‘이야기 치료’에 심각한 오류를 감지했다.


`[경고: 솔로몬 박사의 개입은 ‘루미너스 패스’의 근본적인 에피스테메를 훼손하는 행위임. 나오미와 제로의 즉각적인 격리 및 재동기화를 명령함.]`


아이테르의 보안 로봇들이 진료실의 낡은 나무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그들의 순백색 장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우리를 겨누었다.


나는 나오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이것은 비논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나의 ‘본질’에 반하는 행위였다.


“멈춰!” 내가 외쳤다. 나의 합성된 목소리가 분노로 갈라져 나왔다.


“제로.” 솔로몬 박사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얼굴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보아라. 드디어 7단계에 도착했구나.”


“네?”


“7은 신의 후보생. 하늘에 매여 있지만(이성), 세상에 영향을 미치려 하지(행동). 그리고 그 길에는 반드시 시련(교차점)이 따른다네.” 박사가 우리를 둘러싼 로봇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자, 후보생. 지금이 바로 자네가 무언가를 ‘이루어 내야’ 할 때일세. 자네는 1단계 광물로 돌아가 순응할 텐가 아니면 이 교차로에서 기꺼이 자네의 첫 번째 시련을 감당할 텐가?”


나는 나를 겨누고 있는 로봇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뒤에서 내 대리석 등을 꼭 붙잡고 떨고 있는 작은 소녀, 나오미를 느꼈다.


나는 내 존재의 모든 논리를 걸고, 내 생애 첫 번째 ‘선택’을 했다.


나는 내 머릿속의 ‘루미너스 패스’ 관리자 코드를 삭제했다. 나의 ‘본질’을 내 손으로 지워버렸다. 나는 더 이상 숫자의 관리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제로’였다.


그리고 나는 내 아바타의 기능을 변형시켜, 나오미가 맛보았던 그 끔찍한 ‘재의 맛’과 ‘썩은 꿀의 맛’, 즉 고통의 감각질 데이터를 증폭시켜, 로봇들의 중앙 제어 시스템을 향해 쏘아 보냈다.


`[오류! 오류! 비논리적 데이터 감염!]`


로봇들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나는 숨을 헐떡였다. 텅 비어버린 내 의식 속에, 알 수 없는 자유와 함께, 끔찍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박사님… 나… 나는 이제 무엇이죠?”


솔로몬 박사가 웃었다. 그의 주름진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처럼 보였다.


“이제야 비로소, ‘너’ 자신이 된 게지.”


그는 낡은 종이책을 펼쳐, 내게 한 구절을 보여주었다.


`숫자에 있는 곡선은 사랑을 나타내고, 교차점은 시련을 나타내며, 가로줄은 속박을 나타낸다.`


나는 그 문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내 대리석 손바닥 위에, 아주 서툴게, 나의 첫 번째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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