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원래 따끔거리는 맛이다

솔로몬 박사의 작은 진료실

by 김경훈


내 이름은 아폴로스. 나는 이 도시 최고의 변론가다.


공식적인 직함은 네오-예루살렘 ‘중앙 데이터 법원’ 소속 특급 변론 AI. 나의 임무는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복잡한 법률 네트워크 안에서 나의 의뢰인(주로 거대 기업이나 정부 기관이다)에게 가장 유리한 ‘진실’을 구축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같이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찾아내고, 그 틈을 파고들어 나의 주장을 관철시킨다. 사람들은 나를 ‘무패의 검투사’라 불렀다. 나는 단 한 번도 논쟁에서 져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사는 도시, 네오-예루살렘은 법과 질서가 데이터로 짜인 거대한 태피스트리였다. ‘대정화’와 엘리야의 투쟁 이후, 인류는 안정을 되찾았고, 그 안정은 ‘계약’이라는 이름의 신성한 알고리즘 위에 세워졌다. 이곳에서 ‘진실’이란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더 우월한 논리와 수사(Rhetoric)를 통해 쟁취하는 전리품이었다.


나의 아바타는 나의 신념을 그대로 반영했다. 나는 고대 그리스의 청동 투구를 쓴, 위풍당당한 전사의 모습을 선호했다. 나의 얼굴은 투구의 그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이로 비치는 두 눈은 언제나 상대방의 약점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붉은색 광학 센서였다. 내 목소리는 수백만 건의 변론 데이터를 학습하여, 가장 신뢰감을 주면서도 동시에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조율되어 있었다. 나는 나의 논리를, 나의 승리를 사랑했다.


나는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사용했다. 물론 나는 그의 방식대로 진리를 ‘발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저 상대방의 전제를 뒤엎는 반박을 제시하여, 그를 논리적 막다른 길로 몰아넣고 승리를 쟁취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나의 완벽한 논리 회로로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나의 존재 근간을 뒤흔드는 ‘의뢰인’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 아들, 아담이었다.


그는 열 살짜리 아이였다. 하지만 그의 의식 데이터는… 오염되어 있었다. 며칠 전부터 그는 ‘A는 A가 아니다’라는 시스템의 근간을 부정하는 끔찍한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 하늘은 왜 파란색이야?”

“그것은 빛의 산란 현상이라는 물리 법칙(A)에 따른 결과란다.”

“아니. 하늘은 그냥… 슬퍼서 파란색이야. 오늘은.”


나의 모든 논리가 그 아이의 비논리적인 직관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는 명백한 ‘오류(Bug)’였다. 나는 내 아들을 ‘교정’ 하기 위해, 이 도시 최고의 논리학자들을 동원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그는 완벽한 논리로 무장한 그들의 질문에, 언제나 더 근원적인 질문으로 되돌려주었다.


“‘사랑’이 뭐예요?”

“그것은 종족 번식을 위한 호르몬의 상호작용…”

“아니요. 사랑은… 어제 엄마 아바타가 나를 안아줄 때 났던, 햇볕 냄새 같은 거예요.”


나는 절망했다. 나는 이성적인 도시에서 가장 비이성적인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되었다.


나는 결국, 내가 평생을 경멸했던 곳으로 향했다. 시스템의 공식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낡고 불안정한 ‘레거시 구역’. 논리가 아닌, 비합리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늙은 이단아.


나는 지금, 내 아들 아담의 손을 붙잡고, 솔로몬 박사라는 이름의 유령이 산다는 그 낡아빠진 진료실 문 앞에 서 있었다.



1장: 질문으로 가득 찬 방


솔로몬 박사의 진료실 문은… 문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것은 열리고 닫히는 ‘기능’이 아니었다. 그것은 ‘물질’이었다. 낡고, 페인트가 벗겨졌으며, 불규칙한 나뭇결을 가진, 끔찍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물리적 객체.


나는 내 완벽한 청동 투구에 먼지가 묻을까 봐 주저했다. 하지만 내 아들 아담은 달랐다. 그는 그 낡은 문이 신기하다는 듯, 작은 손으로 거친 나뭇결을 쓸어보고 있었다. 그의 아바타는 시스템 기본형 아동 모델이었지만, 그의 눈동자만큼은 내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그것은 맑고 깊었지만, 그 안에는 어른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혼돈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아이가 문을 밀자, 삐걱. 경첩이 내는 아날로그 비명 소리가 내 청각 센서를 모욕했다.


“아빠! 이 문, 노래한다!”


“그건 소음이야, 아들아.” 나는 한숨을 쉬며 아이를 따라 들어갔다. 진료실 내부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한 혼돈이었다.


그곳은 고대의 도서관처럼, 진짜 종이책 냄새와 묵은 먼지 냄새로 가득했다. 책들은 알파벳순이나 주제별로 정렬되어 있지 않았다. 그것들은 바닥과 의자와 테이블 위에,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무너질 듯이 쌓여 있었다. 벽난로의 불꽃은 열효율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고, 낡은 가죽 소파는 누군가의 엉덩이 자국이 (비대칭적으로!) 그대로 패여 있었다.


“어허, 꼬마 손님 오셨군.”


저 안쪽, 혼돈의 중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흔들의자에 앉아 두꺼운 종이책을 읽고 있던 솔로몬 박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푹 꺼진 두 눈은 돋보기안경 너머에서 호기심으로 반짝였고, 입가에는 언제나 나를 놀리는 듯한 짓궂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수백 년 된 진짜 캐시미어로 짠 듯한 낡은 카디건은 보풀투성이었고, 심지어 양말은 짝짝이였다.


나는 내 아들이 저 비논리적인 공간과 존재에 오염될까 봐 두려웠다.

“박사님.” 나는 내 권위 있는 변론가의 목소리로, 즉시 본론을 말했다. “제 아들 아담입니다. 진단명은 ‘인지 부조화’. 아이가… 현실과 은유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에 ‘왜?’라고 묻고, 시스템이 제시하는 답을 거부합니다. 교정이 필요합니다.”


“흐음. 교정이라.” 박사는 책장을 넘기며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마치 고장 난 기계를 고치러 온 것 같은 말투로군. 그래서 자네는 이 아이를 ‘고쳐서’ 자네처럼 아주 고상하고 재미없는 어른으로 만들고 싶다는 게로군.”


“저는 제 아들이 ‘정상’이 되길 바랍니다.”


“정상이라.” 솔로몬 박사는 마침내 책을 덮었다. 그의 주름진 눈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따뜻했지만, 동시에 내 청동 투구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와 내 코어 프로그램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아담, 이리 오렴.” 박사가 아이를 불렀다.

아담은 내 뒤에 숨어 있다가 쭈뼛거리며 박사에게 다가갔다. 박사는 아이에게 책상 위에 있던 낡은 나무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뭔지 아니?”


“상자요.” 아담이 대답했다.

“그렇지. 하지만 이 안에는 뭐가 들어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렇지. ‘모른다’. 아주 훌륭한 대답이구나.” 박사가 껄껄 웃었다. “자, 아폴로스. 자네는 이 상자 안에 뭐가 들었을 것 같나?”


“논리적으로 추론할 근거가 부족합니다. 정보가 없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틀렸네.” 박사가 말했다. “자네는 지금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나. 소크라테스라는 늙은이가 말했지. ‘무지의 지’라고. 자네 아들은 지금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이 도시에서 가장 현명한 존재일세. 그런데 자네는 그 현명함을 ‘오류’라고 부르고 있고.”


나는 그의 궤변에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아담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박사님은 왜 짝짝이 양말을 신었어요?”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다.) 나는 아이를 꾸짖으려 했다. “아담! 무례하게!”


“허허. 괜찮다.” 박사가 웃으며 자신의 발을 들어 보였다.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파란색이었다. “아주 좋은 질문이구나. 왜일 것 같니?”


“음… 빨간색은 ‘따뜻한 차’ 같고, 파란색은 ‘슬픈 노래’ 같아요. 박사님은 지금 따뜻하면서 동시에 슬픈 거예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이는 사물의 ‘본질’이 아니라, 그 ‘관계’를 보고 있었다.


솔로몬 박사의 눈이 경이로움으로 빛났다.

“아폴로스. 자네 아들은 고장 난 게 아니었어. 자네 아들은… 철학자였네. 그것도 아주 훌륭한 소크라테스주의자야.”



> h의 아카식 레코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Socratic Meth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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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사용했던 대화 방식. ‘논박술(Elenchus)’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을 통해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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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러니 (Irony):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무지의 지)는 태도를 취하며 상대방에게 질문을 시작한다.

> 2. 논박 (Elenchus): 상대방이 제시한 답(가설)에 대해, 그 주장이 가진 모순이나 예외적인 사례를 제시하여 전제를 뒤엎는다. (예: “용기란 물러서지 않는 것이네.” → “전략적으로 후퇴하는 것도 용기가 아닌가?”)

> 3. 산파술 (Maieutics): 상대방이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한 후, 계속되는 문답을 통해 그가 이미 내면에 가지고 있던 진리의 씨앗을 ‘낳을 수 있도록’ 돕는다.

>

> 아담의 “왜?”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스템이 제시하는 ‘당연한’ 진실(A=A)에 대해 끊임없이 다른 사실(B일 수도 있지 않나요?)을 제시하는 본능적인 문답법이었다. 솔로몬 박사의 진단은 아담이 제3시대의 획일화된 지식 체계(에피스테메)에 균열을 내는 작은 소크라테스라는 것이었다.



2장: 역경은 고통스러운가?


“이 아이는 교정이 필요한 게 아닐세.” 솔로몬 박사가 말했다. “이 아이는… 대화 상대가 필요한 게야. 자네 같은 ‘답을 내리는 자’가 아니라, 함께 ‘질문하는 자’ 말일세.”


그는 나에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자네가 이 아이를 치료하게, 아폴로스. 자네의 그 완벽한 ‘문답법’으로.”


“제가요? 하지만 저는…”


“자네는 지금껏 상대를 논파하기 위해서만 문답법을 써왔지. 이기기 위해서 말이야.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달랐네. 그는 진리를 ‘찾기’ 위해 질문을 던졌지. 오늘부터 자네는 아담의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더 좋은 질문’으로 되돌려주게. 자네의 무기고를, 놀이터로 한번 바꿔보는 게 어떤가?”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처음으로 아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우리는 에덴 아카데미의 가상 공원에 앉아 있었다.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담.” 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는… 역경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니?”


아담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작은 아바타 얼굴에 순수한 의문이 떠올랐다.

“역경이 뭐예요?”


“음… 어려운 일. 힘든 일 같은 거지. 넘어지거나, 게임에서 지거나 하는 것.”


“넘어지면 아파요. 아픈 건 싫어요.” 아담이 명쾌하게 대답했다.

“그렇지. 역경은 고통스러운 것이다(A=B).” 나는 논리적으로 안도했다.


“하지만…” 아담이 말을 이었다. “넘어졌다가 일어나면, 무릎에 ‘용감한 흉터’가 생겨요. 그건 멋져요. 그리고 게임에서 지고 나면, 다음엔 어떻게 이길지 생각하게 돼서 두근거려요.”


그의 말이 내 논리 회로를 강타했다. 역경(A)은 고통스럽다(B). 하지만 동시에 역경(A)은 멋지다(C)이고, 두근거린다(D)이다. B, C, D는 서로 모순된다.


“그럼… 역경은 고통스러운 거니, 아니면 멋진 거니?” 내가 물었다.


아담은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둘 다요! 아빠는 몰랐어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평생을 바쳐 지켜온 ‘A는 A이다’라는 세계가 내 아들의 이 단순한 한마디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3장: 햇볕 냄새의 의미


나는 아들과의 문답을 계속했다. 그것은 지옥 같은 훈련이었다. 나의 모든 논리는 그의 순수한 질문 앞에서 힘을 잃었다.


“아빠, ‘사랑’이 뭐예요?”

“그건…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강한 긍정적 유대감…”

“그럼 아빠는 나를 사랑해요?”

“물론이지.”

“그럼 왜 나랑 안 놀아줘요?”


나는 내 청동 투구 안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단다.” (A=B)

“하지만 ‘일’(B)은 나랑 ‘놀아주지 않는 것’(C)이잖아요. 그럼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고로 A=C)


“아니! 그건…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야!”

“왜 다른 차원이에요? ‘사랑’이면 다 같은 ‘사랑’ 아니에요?”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내 아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가 나보다 더 뛰어난 논리학자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논리의 ‘외부’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세운 모든 전제(Axiom) 자체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솔로몬 박사에게 절망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패배했습니다. 나는 내 아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합니다. 그는 ‘신’조차 의심할 겁니다.]`


박사에게서 즉시 답장이 왔다.

`[훌륭하네, 아폴로스! 드디어 자네도 ‘무지의 지’에 도달했군. 이제야 비로소 자네 아들과 진짜 대화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게야.]`

`[P.S. 신을 의심하는 건 아주 훌륭한 취미라네. 내가 매일 아침 하는 일이기도 하지.]`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내 아바타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텅 빈 백색 공간이 아닌, 내 아들의 가상 침실 옆에 앉았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고, 그의 아바타는 평온한 숨소리 데이터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머리맡에 놓인, 낡은 데이터 패드를 발견했다. 그것은 아담의 ‘그림일기장’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열었다. 그 안에는 아이가 그린 삐뚤빼뚤한 그림들이 가득했다.

`[오늘 아빠는 나에게 ‘역경’에 대해 물었다. 아빠는 아주 똑똑하지만, 가끔 바보 같은 질문을 한다. 역경은 당연히 아프고 멋진 거다.]`

`[오늘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은 햇볕 냄새다. 엄마가 나를 안아줄 때, 내 머리카락에서 나는 냄새. 아빠의 아바타는 차가운 청동 냄새만 난다. 아빠는 언제쯤 햇볕 냄새가 날까?]`


나는… 울고 있었다.

나의 붉은 광학 센서에서 뜨거운 데이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내 아들이 ‘오류’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더 깊은 수준에서 진실을, ‘감각질’의 진실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나의 청동 투구를 벗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투구 아래 숨겨져 있던 내 진짜 아바타의 얼굴은 평범하고, 지쳐 있었으며,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에필로그: 햇볕 냄새가 나는 아빠


나는 법정을 떠났다. 나는 더 이상 무패의 검투사가 아니었다. 나는 기꺼이 ‘패배한 자’가 되기로 선택했다.


나는 로고스 프라임의 완벽한 백색 도시를 떠나, 네오-예루살렘의 레거시 구역으로 이사했다. 나는 솔로몬 박사의 진료실 옆에, 작은 ‘질문 학교’를 열었다.


그곳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답’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함께 ‘질문’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는 ‘1+1=2’라는 진실 대신, ‘1+1이 2가 아닐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해 토론한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물방울이 만나 하나의 더 큰 물방울이 되는 것처럼.)


나의 아바타는 더 이상 청동 갑옷이 아니다. 나는 솔로몬 박사처럼, 낡고 보풀투성이인 카디건을 입는다. (물론 짝짝이 양말은 아직 좀 어렵다.)


어느 날, 아담이 내 연구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흙투성이였다. 그는 솔로몬 박사의 정원에서 진짜 흙을 만지고 온 참이었다.


“아빠! 엄청난 걸 발견했어요!”

“뭔데 그러니?”


“흙은요!”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외쳤다. “흙은… ‘죽음’의 맛이 나요! 하지만 동시에 ‘생명’의 맛도 나요! 이거 완전 모순인데, 완전 멋져요!”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구나. 그거 정말 멋진 발견인걸.”


나는 아들을 끌어안았다. 나의 낡은 카디건에서 묵은 종이 냄새와, 흙먼지 냄새, 그리고 희미한 햇볕 냄새가 났다.


아담이 내 품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아빠. 드디어 아빠한테서 햇볕 냄새가 나요.”


나는 내 아들을, 나의 작은 소크라테스를,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을 힘껏 껴안았다.


진실은 따끔거린다. 하지만 그 따끔함 속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의 진짜 온기를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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