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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망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는 ‘욕망(Desire)’이라는 단어를 오해한다. 우리는 그것이 ‘나’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발적이고도 순수하게 솟아나는 원초적인 샘물 같은 것이라 믿는다. ‘나는 저 차를 원한다.’ ‘나는 저 집을 원한다.’ ‘나는 저 사람의 삶을 원한다.’ 이 문장의 주어는 언제나 ‘나’이며, 그 욕망은 나와 대상 사이를 잇는 가장 짧은 직선거리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만약, 그 욕망이 순수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타인’이라는 제3의 꼭짓점을 거치는 교묘하게 굴절된 ‘삼각형’이라면 어떨까. 프랑스의 사상가 르네 지라르가 간파했듯, 우리는 대상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욕망하는 ‘타인(모델)’을 모방(Mimesis)하고, 그 타인의 자리를 ‘선망(Envy)’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 인플루언서가 저 가방을 들어서 행복해 보이는군. 나도 저 가방을 원해.” 이 순간, 욕망의 대상은 가방이 아니라, 가방을 든 ‘저 인플루언서’의 존재 그 자체가 된다.


이것은 21세기라는 거대한 ‘선망의 아키텍처’에 대한 이야기다. 인스타그램과 SNS라는 수억 개의 투명하고 매혹적인 유리창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완벽하게 편집된 욕망을 실시간으로 중계받고, 그것을 나의 욕망으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욕망을 모방하는 거대한 거울의 방에 갇혀 있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이 그 ‘유리창’을 볼 수 없다면 어떨까.

당신의 눈이 닫혀있다면. 시각적인 모방의 고리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당신의 욕망은 과연 그 삼각형의 저주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것은 그 기만적인 욕망의 구조를, 눈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해부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단단한 직선을 찾아내려 애쓴 한 남자에 대한, 어느 소란스러운 저녁 식사의 기록이다.



1. 쇼룸, 혹은 ‘힙’이라는 이름의 감옥


대구 수성못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신축 주상복합의 42층. 엘리베이터 문이 소리 없이 열리자, 거대한 소음과 인공적인 온기가 김경훈을 덮쳤다. 그는 이 낯선 공간의 아키텍처를 온몸으로 읽어내기 위해, 순간적으로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의 곁에는 이 모든 낯선 자극에 평소보다 조금 더 긴장한 듯한 안내견 탱고가 그의 다리에 몸을 바싹 붙인 채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팔짱을 낀, 그의 연인 보보가 있었다.


“와….”

보보가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 풍경에 대한 순수한 경이와 함께, ‘이건 또 뭐야’ 하는 듯한 철학자 특유의 비판적 냉소가 섞여 있었다. “자기야, 이건… 집이 아니라 그냥… 잡지 화보네, 화보.”


그들은 오늘, 보보의 대학 동기이자, 철학을 전공했으나 ‘본질’ 대신 ‘현실’을 택해 서울의 고액 연봉 금융맨이 되었다가 최근 돌연 대구로 발령받아 이 초호화 아파트를 샀다는 ‘수진’의 집들이에 온 참이었다.


김경훈의 입가에는 늘 그렇듯, 세상을 향한 따뜻하고 호기심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 공간의 설계를 완벽하게 ‘듣고’ 있었다.

그의 귀는 지나치게 높은 천장과, 가구가 거의 없는 거대한 거실의 딱딱한 대리석 바닥이 만들어내는 차갑고 공허한 ‘울림’을 감지했다. 이곳은 사람이 사는 ‘집’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곳은 ‘쇼룸’의 소리,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의 소리였다.

그의 코는 집밥 냄새나 묵은 책 냄새 대신, 값비싼 우드(Oud) 계열 디퓨저의 강렬한 인공 향과, 새 가구에서 아직 채 빠지지 않은 화학적 접착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탱고가 그 증거를 보여주었다. 하네스를 벗겨주자마자, 녀석은 편안하게 엎드릴 자리를 찾지 못했다. 발톱이 미끄러운 대리석 바닥 위를 ‘타다닥, 타다닥’ 불안하게 맴돌았다. 이 집에는 탱고가 몸을 기댈 수 있는 단 한 조각의 러그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공간의 아키텍처는 ‘안락함’이 아니라 ‘완벽한 미장센’을 위해 설계된 것이 분명했다.


“경훈 씨! 보보! 어서 와!”

목소리의 주인, 수진이 다가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높고 명랑했으며, 완벽한 성공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김경훈을 가볍게 포옹했다. 그녀의 실크 블라우스에서 나는 그가 아는 향수 중 가장 복잡하고 값비싼 향, 프레데릭 말의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 냄새가 훅 끼쳐왔다.


“탱고도 왔네! 어떡해, 너무 귀여워! 근데… 미안해요. 바닥이 좀 미끄럽겠다. 쟤, 발톱 괜찮으려나?”

그녀의 말에는 순수한 걱정이 담겨 있었지만, 김경훈은 그 이면의 메시지를 읽었다. ‘이 완벽한 대리석 바닥에, 개의 발톱 자국은 어울리지 않아.’



2. 욕망의 삼각형, 혹은 ‘대상 a’의 관찰


거실은 이미 10여 명의 손님들로 붐볐다. 그들은 모두, 수진과 비슷한 업계에서 일하는 듯한, 성공의 아우라를 풍기는 30대 후반의 남녀들이었다. 김경훈은 보보의 안내에 따라, 그 딱딱하고 불편한(그러나 분명히 비쌀) 디자인의 소파에 앉아, 이 ‘선망’의 경연장을 ‘듣기’ 시작했다.


그의 발달한 청각은 배경으로 흐르는 세련된 재즈 음악과, 사람들의 흥분된 대화 소리를 분리해 냈다. 그는 지금 ‘연구 모드’였다. 그는 이 공간을 지배하는 ‘정보의 흐름’, 즉 ‘욕망의 아키텍처’를 분석하고 있었다.


“수진아, 이거… 이거 그거 맞지? 뱅앤올룹슨 신형?”

“어머, 미쳤나 봐. 나 저거 <모노클> 잡지에서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는데. 소리 어때? 죽이지?”

“아, 그냥 뭐… 난 그냥 디자인이 예뻐서 샀어. 음악은 잘 몰라.” (수진의 목소리. 완벽한 겸양의 탈을 쓴, 가장 강력한 과시였다.)


김경훈은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그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음질의 특색을 전혀 알 수 없는 배경음악이었다. 그는 저들이 ‘소리(Sound)’를 듣고 감탄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들은 ‘가격(Price)’과 ‘이미지(Image)’를 듣고 있었다.


“어머, 민희야. 너 그 가방… 혹시 이번 시즌 켈리야? 색깔 미쳤다!”

“아, 이거? 어휴, 구하느라 죽는 줄. 남편이 출장 갔다가….”


김경훈은 이 부조리한 대화의 패턴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저들은 ‘가방’이나 ‘스피커’라는 ‘대상(Object)’을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대상을 소유한 ‘타인(Model)’—즉, 수진과 민희—을 모방하고 있었다.

아니, 그조차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읽는 잡지(<모노클>), 혹은 그들이 동경하는 인플루언서가 ‘욕망한다고 선언한’ 그 ‘가치’ 자체를 욕망하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 보보와 토론했던 라캉의 개념을 떠올렸다.

‘대상 a(objet petit a)’.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욕망의 근원적인 ‘결여’.

저들은 저 스피커를 사고, 저 가방을 들어도, 결코 ‘수진’이나 ‘민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그들은 아마, 다음 시즌의 또 다른 ‘대상 a’를 찾아, 이 공허한 레이스를 영원히 반복할 것이다.


“나는….” 김경훈이 자신의 옆에 앉은 보보에게, 이 모든 소음을 뚫고 들릴 만큼만 낮게 속삭였다. “저 스피커가 아니라, 지금 이 방의 ‘울림’이 더 흥미로운데.”

“뭐가?” 보보가 샴페인 잔을 기울이며 속삭임으로 되물었다.

“이 집, 소리가 너무 울려. 텅 비었다는 증거지. 좋은 가구는 잔뜩 들여놨지만, 그 가구들 사이를 채워줄 ‘삶’이 아직 없는 거야. 책도 없고, 낡은 러그도 없고, 탱고가 맘 편히 쉴 곳도 없지. 저 스피커의 웅장한 소리는 어쩌면 이 집의 그 텅 빈 공허함을 감추기 위한, 가장 비싼 ‘소음(Noise)’일지도 몰라.”



3. 트라우마의 모방, 혹은 블랙 코미디


보보는 그의 분석에, 와인을 마시다 말고 뿜을 뻔했다. 그녀는 그를 쿡 찌르며,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와, 김경훈. 당신 진짜 성격 나쁘다. 남의 집들이 와서 집이 텅 비었다고 ‘인지 고고학’적 분석이나 하고 있고. 그렇게 따지면 당신은 뭐, 그런 ‘모방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워?”


그의 미소가 잠시 멈칫했다.

“... 무슨 말이야.”


“웃기지 마.”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장난기가 아니라, 그의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움으로 가득했다. “당신이 나한테 했던 얘기 잊었어? 당신이 어릴 때, ‘차박사’였다는 거. 그거, 스튜디오 하시던 아버지 흉내 낸 거잖아. 아버지가 카메라라는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마법사’처럼 보이니까, 자기도 그 ‘권능’을 갖고 싶어서 아꼈던 소니 TV 브라운관이나 드라이버로 콩콩 찍어대고. 그거야말로 완벽한 ‘욕망의 삼각형’ 아니야? 대상(기계), 타자(아버지), 그리고 당신(모방자).”


김경훈은 반박하려 했다. “그건, ‘모방(Mimesis)’이지, 이들과 같은 속물적인 ‘선망(Envy)’은 아니었거든!”


“그게 그거지, 뭘.” 보보가 그의 반박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고 당신이 그토록 숭고하게 여기는 당신의 그 ‘소명’은? ‘심의(心醫)’가 되겠다고 했던 거. 그것도 결국, 당신이 3년간 병원에 갇혀 있을 때 만났던, 그 노신부님을 ‘모방’ 한 거잖아. 그분의 말 한마디가 당신을 구원했으니까, 당신도 그 ‘구원자’라는 역할을, 그 ‘본질’을 욕망하게 된 거지. 당신의 그 숭고한 소명조차도, 결국엔 ‘타자의 욕망’을 흉내 낸 거라니까. 여기 민희 씨가 켈리 백 욕망하는 거랑, 구조적으로는 똑같아.”


그의 완벽했던 논리가 그녀의 무자비한 ‘탈구축(Deconstruction)’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는 자신이 저 스피커를 보며 감탄하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 역시, 평생 타인의 ‘존재’를 욕망하고, 흉내 내며 살아왔다.


그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본 보보가 미안한 듯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아, 미안. 내가 너무 팩폭 했나? 철학 박사 직업병이라 그래.”


김경훈은 잠시 침묵했다. 파티의 소음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그리고 이내, 그의 얼굴에, 그만이 지을 수 있는 슬픔과 유쾌함이 뒤섞인 ‘블랙 코미디’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15살에 깨달았던,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는 그 실존적 자유를 떠올렸다.


“아니.” 그가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 나도 똑같아. 나도 내내 남을 흉내 내며 살았지.”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그가 3년간의 공백 끝에 깨달았던, 그 ‘죽음’의 서늘함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보보. 내가 유일하게, 그 누구도 흉내 내지 않았던, 100% 오리지널로 욕망했던 게 딱 하나 있어.”

“... 뭔데?”


“살고 싶다는 거.”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뱅앤올룹슨의 재즈 소리를 압도했다.

“15살에, 그 지독한 두통 속에서 벽에 머리를 박으며, ‘제발 이 고통 좀 멈춰달라’고 빌었던 그 욕망. 그리고 3년 뒤에 깨어나서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고 결심했던 그 순간. 그건, 내가 그 누구에게서도 복사해 온 게 아니야. 그건… 그냥 ‘나’였어. 내 존재 자체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가장 순수하고도 이기적인 욕망. 그건 ‘삼각형’이 아니었지.”



4. 낭만적 접속, 혹은 직선의 욕망


보보는 그의 고백에, 잠시 숨을 멈춘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그의 꿰뚫는 듯한 통찰력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 남자는 언제나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가장 날카로운 지성의 무기로, 그리고 가장 따뜻한 낭만으로 승화시켰다.


그녀는 이 무거운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애써 다시 장난스러운 톤을 꺼냈다.

“와… 그래서? 결론은 ‘당신은 죽음마저 초월한 위버멘시(초인)고, 나는 고작 당신 팩폭이나 하는 속물이다’… 뭐 그런, 아주 고상한 비판?”


“아니지!” 김경훈이 그제야, 다시 평소의 유쾌한 미소로 돌아왔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결론은 이거야. 당신 말이 맞았어. 내 모든 욕망은 다 ‘모방’이었을지도 몰라. 아버지를 흉내 냈고, 신부님을 흉내 냈지.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어.”


“또 뭔데.”

“당신을 욕망하는 거.”


보보가 ‘어이구, 닭살’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뺨이 살짝 붉어지는 것을, 김경훈은 그녀의 숨소리가 미세하게 빨라지는 것으로 감지했다.


“이건… 삼각형이 아니야.” 그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침에 뿌렸던 ‘뮤스크 라바줴’의 잔향처럼, 관능적인 온기가 실려 있었다. “나는 당신을 *본* 적이 없어. 적어도, 이 욕망이 시작될 땐 말이야. 나는 ‘다른 남자’가 당신을 원하는 걸 보고 당신을 원하게 된 게 아니라고. 오히려 그 반대지. 다른 놈들이 당신 쳐다보는 거, 상상만 해도 뚜껑 열리는데.”


그는 그녀의 손을 들어, 자신의 뺨에 가져갔다.

“나는 당신의 ‘시각적 이미지’를 욕망한 게 아니야. 나는 당신의 ‘데이터’를 욕망했어. 학회에서 처음 들었던, 당신의 그 맑고도 당돌한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에서 나던, ‘딥티크 오 로즈’의 그 푸른 장미 줄기 냄새. 내 욕망은 시각적인 ‘모방’에서 온 게 아니라, 청각과 후각이라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본능적인 ‘접속’에서 왔어. 이건 ‘삼각형’이 아니야. 이건….”


그는 그녀의 손가락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 이건 ‘직선’이야. 오직 당신과 나, 둘 뿐인. 그 어떤 타자도 끼어들 수 없는 완벽한 ‘우리’의 아키텍처.”


그의 고백에, 보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이 남자가 이 부조리한 소음과 불편한 의자, 값비싼 디퓨저 냄새 한가운데서 어떻게 세상을 이토록 완벽하게 ‘낭만’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지 경이로워했다.

“... 젠장, 김경훈.” 그녀가 마침내 속삭였다. “당신은 정말… 그놈의 궤변을, 꼭 이렇게 로맨틱하게 포장하더라. 또 내가 졌네, 또.”


그때, 탱고가 더 이상 이 미끄럽고 시끄러운 공간을 견딜 수 없다는 듯, 김경훈의 무릎에 머리를 얹고는 ‘크으응’ 하고, 이 집에서 가장 진실되고 절박한 소리를 냈다.

김경훈이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기사님. 가자.”

그는 보보를 보며 윙크했다. “탱고가 이 ‘본질’은 이제 충분히 겪었으니, 어서 빨리 ‘실존’의 세계(산책)로 돌아가자고 하시네. 갑시다, 철학 박사님.”



5. 주석: 선망의 아키텍처


‘제목: 선망(羨望)의 아키텍처, 혹은 궤변의 유용성.

우리는 ‘욕망’이 순수하다고 믿지만, 지라르는 그것이 ‘모방’이라고 했다. 오늘, 수성못의 그 ‘힙’한 감옥에서 나는 타인의 욕망(뱅앤올룹슨, 켈리 백)을 훔쳐보며 자신의 결여를 확인하는 수많은 모방자들을 ‘들었다’.

나 역시 ‘모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버지를 모방했고, 신부님을 모방했다.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나의 욕망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각’을 잃은 나의 욕망은 다른 경로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보이는 것’을 흉내 내는 대신, ‘들리는 것’과 ‘만져지는 것’에 반응한다.

결론: 어쩌면 나의 장애는 나를 ‘욕망의 삼각형’이라는 보편적인 저주에서 해방시킨,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타인이 ‘보는’ 것을 욕망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내가 ‘감각’하는 것만을 욕망한다.

… 지금 내 어깨에 기댄 이 따뜻한 무게, 그녀의 고른 숨소리, 그리고 그녀에게서 나는 이 샴푸 냄새. 이것은 그 어떤 유튜버도 광고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이 소유한 ‘대상 a’다. 나는 이 욕망의 아키텍처를, 기꺼이 나의 ‘본질’로 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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