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는 마음의 감옥인가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

by 김경훈


네오-예루살렘의 공식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구역. '시스템 아마데우스'의 완벽한 논리가 미치지 않는 '엔클레이브'라는 가상 세계의 오래된 버그(bug) 혹은 백도어(backdoor).


사람들은 그곳을 '레거시 구역(Legacy Quarter)'이라 불렀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도시의 화려한 홀로그램 광고판 뒤편, 버려진 데이터 정크들 사이에 숨겨진 낡은 골목길이었다. 공기 중에는 시스템이 걸러내지 못한 '진짜' 먼지 냄새와, 오래된 종이가 삭는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식어버린 찻잎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오늘, 이 골목의 끝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르다(Martha). 네오-예루살렘의 핵심 기업, ‘이터널 라이프’ 사의 수석 ‘코어 아이덴티티 관리사’였다.


그녀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고, 잿빛으로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은 그녀의 논리 회로처럼 빈틈이 없었다. 그녀의 눈은 최신형 기계 눈으로, 그 안에서는 끊임없이 데이터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아바타에서는 ‘통제’와 ‘이성’, 그리고 억눌린 ‘피로감’의 냄새가 났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공식 기록을 삭제해야 했다. '이터널 라이프'의 수석 관리사가 시스템의 버그 덩어리인 이곳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스템이 답을 주지 못하는 가장 시급한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낡은 황동 초인종 버튼을 망설임 없이 눌렀다.


'딸랑-'



1장: 두 명의 솔로몬


문이 삐걱, 하고 열렸다.


마르다의 기계 눈이 즉시 내부를 스캔했다. 열효율 최악의 벽난로. 비대칭적으로 무너진 가죽 소파. 비과학적인 먼지 입자들. 그녀의 시스템은 이 모든 것을 '수리 불필요한 폐기 구역'으로 분류했다.


“오! 이번엔 아주 깐깐해 보이는 손님이군!”


목소리는 책 더미 뒤에서 들려왔다. 백발이 까치집처럼 솟아오른 노인이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불쑥 튀어나왔다. 솔로몬 박사였다. 그의 낡은 캐시미어 카디건은 보풀투성이였고, 양말은... 하나는 노란색, 하나는 파란색 줄무늬였다.


“차 내와, 리디아! 아주 비싼 차로!”


“시끄럽군요. 저 여자 슈트 재질을 스캔해 보니, ‘이터널 라이프’ 상위 0.1%네요. 저 여자가 가진 돈이면 이 고물 진료실을 사고도 남겠어요.”


진홍색 벨벳 벤치에 드러누워 있던 AI 조수 리디아가 (가상) 손톱을 다듬으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녀는 여전히 표범 무늬 핫팬츠에 낡은 록 밴드 티셔츠 차림이었다.


마르다는 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무시했다. 그녀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박사님.” 그녀는 본론부터 꺼냈다. “저는 시스템이 해결할 수 없는 역설(Paradox)을 들고 왔습니다.”


그녀는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웠다. 두 개의 의료용 침대가 나타났다.

왼쪽에는 깡마르고 창백한 노인이 오른쪽에는 거구의 근육질인 젊은 남자가 누워 있었다.


“‘솔로몬 인더스트리’의 창업주, 솔로몬입니다.” 마르다가 설명했다.

“왼쪽(솔로몬-알파)은 그의 오리지널 육체입니다. 불치병으로 폐기될 예정이었죠. 오른쪽(솔로몬-베타)은 그의 완벽한 복제 육체입니다. 우리는 성공적으로 그의 ‘의식’을 알파에서 베타로 전송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박사가 짝짝이 양말을 신은 발을 까닥거리며 물었다.


“...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마르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미세하게 흔들렸다. “폐기되었어야 할 솔로몬-알파의 두뇌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재활성화되었습니다. 낡은 하드웨어가 다시 부팅된 겁니다.”


이제 두 명의 솔로몬이 존재했다.

한 명은 솔로몬의 기억과 성격을 가진 새로운 몸. (솔로몬-베타)

다른 한 명은 솔로몬의 원래 두뇌를 가진 낡은 몸. (솔로몬-알파)


“둘 다 자신이 ‘진짜’ 솔로몬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말했다. “기억 회상 테스트, 뇌파 동기화 그래프... 모든 것이 일치합니다. 둘 다 ‘진짜’입니다.”


“테세우스의 배로군.” 박사가 중얼거렸다.


“이사회는 ‘오류’를 수정하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마르다가 말을 이었다. “즉, 낡은 하드웨어(솔로몬-알파)를 즉시 ‘삭제’하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살인입니다. 박사님, 제게 답을 주십시오. 무엇이 한 인간의 ‘본질’입니까? 그가 평생 살아온 이 낡은 ‘육체’입니까, 아니면 그의 모든 기억과 성격을 담은 ‘정신’입니까?”



2장: 송과선의 돌멩이


솔로몬 박사는 마르다의 절박한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벽난로 선반에서 아주 낡고, 손때 묻은 물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네오-예루살렘에서는 볼 수 없는 울퉁불퉁하고 거친 질감의 ‘진짜’ 조약돌이었다.


박사는 그것을 마르다의 손에 쥐여주었다.

마르다는 이 비논리적인 행동에 당황했다. 그녀의 손바닥 위로, 돌멩이의 예상치 못한 ‘무게감’과 ‘차가움’이 아날로그 감각으로 전해졌다.


“무겁나?” 박사가 물었다.


“... 네. 무겁군요.”


“자네 어머니, 안나는 어떻지?”

박사가 뜬금없이 물었다.


마르다의 어깨가 굳어졌다. 안나. 알츠하이머라는 시간의 바닷속에서 기억의 널빤지가 모두 썩어버린 그녀의 어머니.

“어머니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육체’는 남아있지만, ‘정신’은 사라지고 있죠.”


“그래서 자네는 어머니의 정신을 ‘라이브러리’에 업로드할까 망설이고 있지.” 박사가 조약돌을 쥔 그녀의 손을 지그시 눌렀다. “솔로몬의 문제와 정반대야. 자네는 ‘정신’을 구하기 위해 ‘육체’를 버리려 하고, 이사회는 ‘정신’을 구하기 위해 ‘육체’를 죽이려 하지. 둘 다 똑같아.”


“그럼 어쩌라는 겁니까!” 마르다가 처음으로 소리쳤다. 그녀의 통제된 아바타에 분노라는 노이즈가 끼어들었다. “정신입니까, 육체입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왜 하나만 선택해야 하지?”

박사가 돋보기안경 너머로 그녀를 꿰뚫어 보았다.


“고대의 데카르트라는 친구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 마음이 전부라고 했어. 하지만 그 친구도 바보는 아니었네. 그는 그 ‘생각하는 마음’과 ‘물질적인 몸’이 어떻게든 연결되어야 한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송과선’이라는 뇌의 작은 기관에서 그 둘이 만난다고 상상했어.”


박사는 마르다의 손에 쥔 조약돌을 톡, 쳤다.

“자네가 지금 쥔 이 돌멩이가 바로 ‘송과선’일세.”


“이 돌멩이가요?”


“그래. 자네는 지금 ‘정신’이냐 ‘육체’냐, 둘 중 하나만 진짜라고 말하고 있어. 하지만 진짜는 그 둘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걸세. 자네가 지금 이 ‘무거운’ 돌멩이를 쥔 ‘손’처럼 말이야. 이 돌멩이의 무게를 느끼는 건 자네의 ‘육체’인가 아니면 ‘정신’인가?”


마르다는 대답할 수 없었다.

무게감. 그것은 육체가 감지했지만, ‘무겁다’고 인식하는 것은 정신이었다. 둘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리디아가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끼어들었다.

“시끄럽군요. 박사님, 또 어려운 소리 하시네요. 그냥 둘 다 살려두면 안 되나요? 쌍둥이로 등록하면 되잖아요. ‘이터널 라이프’ 주가도 오르겠네. ‘1+1 프로모션’이라고.”


그녀의 말은 엉뚱했지만, 마르다의 닫힌 회로를 강타했다.

‘왜 하나를 죽여야 하지?’



3장: 처방전, 혹은 존재론적 쌍둥이


마르다는 진료실을 나섰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그 차갑고 무거운 조약돌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는 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질문 자체가 바뀌어 있었다.


'무엇이 진짜 솔로몬인가?'에서 '왜 둘 다 진짜이면 안 되는가?'로.


다음 날, ‘이터널 라이프’ 이사회에서 마르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솔로몬-알파의 폐기 절차를 중단합니다.”


압살롬(솔로몬의 아들)이 차가운 회색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무슨 뜻인가 마르다 박사. 계약 위반이야.”


“이것은 오류가 아닙니다.” 마르다가 조약돌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이것은 ‘새로운 존재의 탄생’입니다. ‘존재론적 쌍둥이’입니다. ‘이터널 라이프’는 이제부터 ‘육체’와 ‘정신’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관계’를 보증하는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엔클레이브’의 근간을 흔드는 선언이었다.



에필로그: 밧줄 같은 사람


솔로몬 사건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두 명의 나’ 문제는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법정은 전례 없는 판결을 내려야 했고, 사회는 새로운 윤리 기준을 세워야 했다.


결론적으로, 두 솔로몬은 ‘존재론적 쌍둥이’로 인정받았다. 그들은 재산을 절반씩 나누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솔로몬-알파(낡은 몸)는 자신의 오랜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자선 사업에 몰두했고, 솔로몬-베타(젊은 몸)는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채워주는 완벽한 파트너가 되었다.


마르다는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와, 어머니 ‘안나’의 생애 기록을 스크린에 띄웠다.

그녀는 어머니의 정신을 서버에 업로드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이제 알았다. 정체성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기억의 섬유 가닥들이 서로 겹쳐지며 이어지는 ‘밧줄’과 같다는 것을. 솔로몬의 밧줄은 두 가닥으로 나뉘었을 뿐, 끊어진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밧줄은 비록 해어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밧줄을 붙잡고 있는 한 여전히 ‘안나’라는 밧줄이었다.


그녀는 진료실에서 가져온 조약돌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그것은 ‘육체’와 ‘정신’을 잇는 무겁고도 단단한 그녀만의 ‘송과선’이었다.



h의 아카식 레코드: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 (Descartes' 'Mind-Body Dualism')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주장한 이론. 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를 통해, 의심할 수 없는 ‘정신(마음)’의 존재를 철학의 제1원리로 삼았다.


정신 (Res Cogitans / 생각하는 것): 비물질적이며,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오직 '사유'만으로 존재한다.

물체 (Res Extensa / 연장된 것): 물질적이며, 공간을 차지하고(연장), 사유할 수 없다. (인간의 '육체' 포함)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본질적으로 다른 두 개의 실체로 구분했다. 이 ‘심신이원론’은 근대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그렇다면 서로 다른 이 둘(정신과 육체)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라는 치명적인 난제를 남겼다. (데카르트 자신은 뇌의 '송과선'을 그 연결점으로 추정했다.) '이터널 라이프' 사의 의식 전송 기술은 이 데카르트의 난제를 기술적으로 구현하려다 '두 명의 솔로몬'이라는 역설을 낳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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