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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는 ‘파란색’을 본다고 믿는다. 하늘을 보며 그것을 ‘파랗다’고 말하고, 바다를 보며 그것을 ‘푸르다’고 인식한다. 우리는 그 파란색이 저 하늘과 바다의 고유한 ‘본질(Essence)’이라고, 나의 인식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적인 ‘실재(Reality)’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만약, 그 ‘파란색’이 실재가 아니라면 어떨까. 만약 그것이 시대의 필요와, 기술의 한계와,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투쟁이 뒤엉켜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합의’에 불과하다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파란색은 ‘색’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하늘은 검거나 흰색이었다. 로마인들에게 파란색은 야만인의 ‘문신’이었고, 파란 눈은 ‘어리석음’의 증표였다. ‘파랑(Blue)’이라는 단어조차, 게르만어 ‘블라우(Blau)’에서 수입된 외래어에 불과했다.


어떻게, 그토록 멸시받던 ‘야만인의 색’은 중세를 거치며 ‘성모 마리아의 색’이라는 가장 숭고한 지위를 획득하고, 프랑스혁명 당시 ‘공화파의 색’이라는 정치적 상징이 되었으며, 마침내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청바지’를 통해, 21세기 현대인이 가장 사랑하는 색이 되었는가.


이것은 ‘파란색’이라는 하나의 ‘기호(Sign)’가 지난 3천 년간 어떻게 그 의미(Signified)를 끊임없이 바꾸어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것은 색채의 아키텍처가 ‘본질’이 아닌 ‘관계’와 ‘권력’에 의해 구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증거다. 그리고 이것은 15살에 그 모든 색채의 ‘아카이브’를 잃어버린 한 남자가 그 ‘파란색’을 어떻게 다시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어느 늦가을의 사적인 기록이다.



1. 경계 너머의 도시, 그리고 ‘파랑’의 부재


김경훈의 아파트 거실은 바깥의 도시 소음과는 완벽하게 단절된, 따뜻하고 안락한 섬이었다. 낮은 조도의 오렌지색 스탠드 불빛이 그가 아끼는 낡은 가죽 소파와 책장 가득한 벽면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그가 아끼는 싱글 몰트 위스키의 옅은 피트(Peat) 향과, 며칠 전 보보가 사 온 작약 꽃다발이 시들어가며 내뿜는 달콤하고도 씁쓸한 향기가 섞여 있었다.


그는 ‘연구 모드’의 가장 깊은 곳에 잠겨 있었다. 그의 곁에는 그의 지적인 고뇌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안내견 탱고가 널찍한 러그 위에 엎드려 규칙적인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아이폰 화면낭독기를 통해, ‘색채의 사회사’에 대한 오디오북을 ‘듣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파란색’에 대한 챕터였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소의 유쾌한 미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부조리한 역사를 발견한 자의 익살스럽고도 서늘한 미소였다.


그는 15살까지 보았던 ‘파란색’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가을 하늘의 그 투명한 파랑, 동해 바다의 그 깊은 파랑, 그리고 그가 유도부 시절 입었던 도복의 선명한 청색 띠. 그 모든 ‘데이터’가 그의 머릿속 ‘아카이브’에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실존’은 파란색과 무관했다.

그의 세계는 ‘색’이 아니라, ‘소리’와 ‘온도’와 ‘냄새’로 구축되어 있었다. 지금 그가 느끼는 이 거실의 ‘색’은 위스키 잔에서 나는 스모키한 ‘황갈색’의 향기와, LP판의 얕은 고랑을 긁으며 지나가는 바늘의 ‘검은색’ 마찰음, 그리고 탱고의 ‘금빛’ 숨소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예수회 입회를 준비하며 읽었던 ‘신약 외경’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마술사 시몬이 네로 황제 앞에서 공중부양을 시도하다 추락해 죽는 그 기괴한 이야기. 그는 그때, 그 구절이 아니라, 성경에서 ‘파란색’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 놀랐었다. 마치 고대인들의 세계에서 ‘파랑’은 존재하지 않는 색, 혹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비어있는(Void)’ 개념처럼 느껴졌다.


“아, 젠장.”


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보보의 맑고 경쾌한, 그러나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그의 사유를 깨뜨렸다. 그녀는 그가 좋아하는 그의 낡고 큰 회색 티셔츠(그녀에게는 거의 원피스가 되는)를 입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나왔다. 그녀에게서는 갓 씻은 비누 냄새와, 그가 선물했던 ‘딥티크 오 로즈’의 잔향이 피어올랐다.


“왜 그래, 또.”

김경훈이 소파 등받이에 편안히 기댄 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다시, 그녀만을 위한 ‘일상 모드’로 전환되어 있었다.


“아니, 앱섬솔트가 다 떨어졌잖아.” 그녀가 반말로 투덜거렸다. “내가 어제 사다 놓으라고 했지! 당신이 좋아하는 그 ‘파란색’ 통 말이야!”



2. ‘블라우(Blau)’의 침입, 혹은 야만의 기억


‘파란색’. 그 단어가 방금 전까지 그가 탐닉하던 ‘파란색의 역사’와 공명하며, 그의 뇌 속에서 기묘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의 얼굴에 다시, 그 익살스럽고도 지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자기야.” 그가 그녀를 불렀다.

“왜.” 그녀는 여전히 앱섬솔트가 떨어진 것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 방금… 아주 위험한 발언을 한 거 알아?”

“뭐? 앱섬솔트 사 오라는 게 왜 위험해?”


“아니, ‘파란색’ 통이라고 했잖아.” 김경훈이 유쾌하게 웃으며, 그녀를 소파로 끌어당겼다. 그녀가 그의 품에 털썩 안기자, 그는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 향을 깊이 들이마셨다.

“당신, 지금 그 ‘파란색’이라는 단어를 너무 당연하게 썼어. 그게, 고대 로마에서는 ‘야만’과 ‘어리석음’의 상징이었던 건 알고?”


보보는 그의 뜬금없는 ‘연구 모드’ 전환에, 어이없다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 뭐? 자기, 지금 나한테 ‘어리석다’고 돌려 말하는 거야? 앱섬솔트 하나 안 사다 놔서?”


“아니, 아니!” 김경훈이 손사래를 쳤다. “그런 뜻이 아니라. 방금 내가 엄청난 걸 들었거든. ‘파랑’이라는 개념의 아키텍처에 대한 거야.”

그는 10년 전 미시간 유학 시절, ‘엘리야’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때보다 더 유창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이 낡은 철학적 아카이브를, 그녀와 공유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우리가 지금 ‘파랑’이라고 부르는 이 개념이 사실은 ‘수입품’이라는 거야. 로마인들에게 ‘파랑’은 색도 아니었어. 그건 게르만족 야만인들이 유령처럼 보이려고 얼굴에 칠하던 ‘공포’의 색이었지. 파란 눈의 남자는 ‘어리석다’고 폄하됐다고.”

“와, 그거 완전 인종차별이네.”


“인종차별 이전에, ‘기술’의 문제였지.” 그의 목소리에, 유치원 시절 ‘차박사’의 흥분이 실렸다. “염료를 못 만든 거야. 염착이 안 되니까! 유일하게 이집트 놈들만 구리로 그걸 만들어서 ‘피안의 색’이라고 신성시했지. 하지만 로마에겐 그냥 ‘야만’이었어. 재밌는 건, ‘파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로마어(라틴어)에 없었다는 거야. 회색인지, 녹색인지, 그냥 다 뭉뚱그려 불렀지. 우리가 아는 ‘블루’는 그 ‘야만인’들의 언어인 게르만어 ‘블라우’에서 온 거라고.”


보보는 그의 현학적인 이야기에, 흥미롭다는 듯 턱을 괴었다. 그녀는 이런 지적인 유희를 즐겼다.

“그래서? 그 ‘야만인의 색’이 어떻게 지금은 제일 비싼 색이 됐는데? 완전한 ‘가치 전도’네. 니체라도 강림하셨나.”



3. 성모(聖母)의 아키텍처, 혹은 시스템의 역전


“그게 바로 ‘종교’와 ‘기술’의 힘이지!” 김경훈이 신이 나서 그녀의 무릎을 쳤다. 그는 15년의 시각적 기억 속에 남아있는 수많은 중세 성화(聖畫)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렌더링 했다.


“중세까지도, ‘빨간색’이 왕이었어. 교황과 추기경의 색. 선명할수록 더 큰 ‘부’의 상징이었지. 파랑은 여전히 쩌리였어.”

“그런데?”


“그런데, 기술이 터진 거야.” 그의 목소리에 ‘차박사’의 흥분이 실렸다. “남동석, 코발트, 인디고. 드디어 화가들이랑 염색공들이 이 ‘파랑’이라는 녀석을 붙잡아두는 데 성공한 거지. 그리고 그 순간, 이 색의 ‘가치 아키텍처’가 완전히 뒤집혀.”


“뒤집힌다고?”

“응. 파랑은 하루아침에, 가장 숭고한 색, ‘성모 마리아’의 색이 돼버려.”

“왜 하필 성모 마리아?”


“두 가지 이유야.” 김경훈이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첫째, 성모는 ‘하늘’에 사시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그때부터, 하늘이 검거나 흰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고 ‘믿기’ 시작했거든. 둘째, 이게 더 재밌는데, 파랑이 그 당시 가장 비쌌던 ‘검은색’ 계열로 분류되었기 때문이야.”


“뭐? 파랑이 검정이라고?”

“그렇지! 완벽한 블랙 코미디야.” 김경훈이 익살스럽게 웃었다. “가장 밝은 색 중 하나가 가장 어두운 색의 하위 카테고리로 들어가면서 ‘고급지다’는 이미지를 획득한 거지. 이건 뭐, ‘나는 스타벅스를 증오한다’는 티셔츠가 정작 스타벅스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꼴이라고.”


그는 이 부조리한 ‘가치의 전이’가 너무나 즐겁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돼. ‘파란색’의 시대가 열린 거야. 대청(大靑) 상인들이 돈을 긁어모아서 아미앵 대성당 같은 걸 지어 올렸어. 반대로, 붉은색 염료(꼭두서니)를 팔던 스트라스부르 상인들은 쫄딱 망할 위기에 처했지.”


“와, 완전 피 튀기네.”

“피 튀기는 정도가 아니지.” 김경훈이 속삭였다. “그래서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악마’가 전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저건 저주받은 색이다’라는 일종의 ‘네거티브 캠페인’이었던 거야.”


보보는 이 기막힌 이야기에, 젖은 머리를 닦던 수건을 내려놓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너….” 그녀가 말했다. “너, 정말… 이상한 거 파고드는 재주는 여전하구나. 그래서? 그 ‘악마의 색’이 어떻게 ‘청바지’가 됐는데?”


“그게 바로 ‘정치’지.” 김경훈이 웃었다. “프랑스혁명 때, ‘파랑’은 ‘흰색’(왕당파)과 ‘검은색’(가톨릭)에 맞서는 ‘공화파’의 색이 됐어. 혁명의 색이었지. 그러다,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청바지’를 발명하면서 마침내 ‘파랑’은 왕도, 귀족도, 혁명가도 아닌, 우리 모두의 ‘일상’이 된 거야. 야만인의 색이 성모의 색을 거쳐, 만인의 색이 된 거지. 완벽한 서사 아니야?”



4. 붉은색, 혹은 ‘예외’의 영토


“대단하네.” 보보가 마침내 감탄했다. “그래서 결론은 ‘파랑 만세’다? 우리는 모두 그 ‘파란색’ 시스템의 승리 속에서 살고 있다?”


“아니.” 김경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 다시, 그만의 복잡 미묘한 ‘블랙 코미디’의 미소가 떠올랐다.

“모든 시스템에는 ‘예외’가 있잖아. 내가 ‘규칙’보다 더 사랑하는 것. 유럽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붉은색’을 선호하는 나라가 어딘지 알아?”

“글쎄. 이탈리아? 페라리?”

“스페인. 투우와 플라멩코의 나라. 그들은 여전히, 칼뱅이 ‘정직하지 않다’고 비난했던 그 색, 그 격정적인 ‘빨강’을 사랑하지.”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10년 전, 미시간의 혹한 속에서 ‘엘리야’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던 자신을 떠올렸다. ‘파란 눈의 남자는 어리석다’ 던 로마인들의 편견. 그는 2009년 시애틀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야만인’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그는 2016년, 학부 1학년 MT에서 “안 보이는데, 업을 수가 있나?”라는 말 한마디에 ‘위조지폐’가 되어버렸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나는….”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쩌면, 평생 ‘파란색’으로 살아왔는지도 몰라.”

“... 뭐?”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야만인’으로, ‘어리석은 놈’으로, ‘폄하되었던’ 존재. 내가 바로 그 ‘파란색’이었어. 나는 ‘붉은색’(정상성, 다수)의 세계에서 늘 ‘예외’였고, 때로는 ‘악마’ 취급을 당했지. 내가 아무리 ‘나도 당신들과 같은 시스템(인간)을 쓴다’고 외쳐도, 그들은 나의 ‘파란’ 겉모습(장애)만 보고 나를 판단했으니까.”


보보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눈빛은 그가 만났던 그 어떤 ‘심의(心醫)’보다도 깊은 이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김경훈이 그녀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소설의 주인공이 궤변을 늘어놓듯, 짓궂고도 다정한 미소가 어렸다. “당신은 나라는 이 낯선 ‘파란색’을 보고도, 나를 ‘야만인’이나 ‘악마’로 보지 않았지.”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났던, 지루했던 학회 세미나실을 떠올렸다. 그녀가 내뿜던 ‘딥티크 오 로즈’의 향기, 그리고 그의 사투리 섞인 질문에 환하게 웃어주던 그녀의 맑은 목소리.

“당신은 모두가 ‘파랑’(시스템)을 숭배할 때, 기꺼이 ‘빨강’(예외)을 선택하는 스페인 같은 여자야. 나의 이 차가운 ‘파란색’ 세계에 뛰어들어와,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그리고 뜨겁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존재지.”



5. 낭만적 접속, 혹은 색채의 융합


보보는 그의 고백에,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 젠장, 김경훈.” 그녀가 반말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웅얼거렸다. “당신은 정말… 그놈의 궤변을, 꼭 이렇게 로맨틱하게 포장하더라. 내가 ‘빨강’이라고? 나, 오늘 ‘파란색’ 스웨터 입었거든?”


“그래?” 김경훈이 환하게 웃었다. “그거 완벽하네. 그럼 우리는 ‘파랑’(나)과 ‘파랑’(당신)이 만나서… 더 진한 ‘울트라마린’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면, 헤겔의 변증법처럼, ‘파랑’(정)과 ‘파랑’(반)이 만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파랑’(합)이 되는 건가?”


“시끄러워.” 그녀가 그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막았다. “철학은 그만하고, 그냥 ‘융합’이나 하시지.”



6. 주석: 음식의 아키텍처, 혹은 마지막 저항



‘제목: 파랑의 아키텍처, 혹은 편견의 역사.

우리는 ‘색’을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시대의 욕망’과 ‘권력의 아키텍처’를 본다.

파란색의 역사는 하나의 ‘본질’이 기술, 종교, 정치, 자본이라는 ‘시스템’과 만나, 어떻게 그 ‘가치’를 재구축해 왔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 연구다. ‘야만의 색’은 ‘성모의 색’이 되었고, ‘혁명의 색’이 되었으며, 마침내 ‘청바지(일상)’가 되었다.

베이컨은 ‘시장의 우상(편견)’을 경계하라고 했다. 파란 눈이 어리석다는 편견, 붉은색이 정직하지 않다는 편견. 이 모든 것은 ‘아이돌’에 불과하다.

나는 15살에 ‘색’을 잃었다. 하지만 나는 ‘빛’을 잃은 대신, 그 색을 둘러싼 ‘이야기’와 ‘시스템’을 얻었다. 나는 파란색을 ‘보지’ 못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지 ‘안다’. 어쩌면, 나는 ‘보는’ 자들보다 더 깊이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론: 파란색이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영역은 ‘음식’이다. 파란색 음식은 식욕을 떨어뜨린다. 이것은 우리의 뇌 깊숙한 곳에 남아있는 ‘파란색은 독(毒)이다’라는 가장 원초적인 ‘생존의 아키텍처’ 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보보의 붉은 입술은 그 어떤 파란색 음식보다도… 달콤했다. 어쩌면, 나의 ‘파란’ 이성이 그녀의 ‘붉은’ 감성에 기꺼이 잡아먹히고 있는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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