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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우리는 ‘치유(Healing)’라는 단어를 오해한다. 우리는 그것을 ‘수리(Fixing)’와 동일시한다. 의사는 고장 난 기계(몸)를 진단하고, 낡은 부품(병증)을 도려내며, 올바른 약(처방)을 주입한다. 이 견고한 ‘의료적 모델(Medical Model)’의 아키텍처 안에서 환자는 완벽한 ‘객체(Object)’다. 의사는 ‘전문가’고, 환자는 ‘문제’다. 우리는 이 냉철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숭배한다.


그러나 만약, 마음의 병이 ‘고장’이 아니라, 그저 ‘다름’이라면 어떨까. 만약 치유가 ‘수리’가 아니라, ‘성장(Growth)’이라면.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이 견고한 아키텍처에 정면으로 딴지를 걸었다. 그는 ‘인간 중심 상담’을 통해 선언했다. 인간은 ‘실현 경향성(Actualizing Tendency)’, 즉 스스로 성장하고 치유하려는 내재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상담가가 할 일은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 세조가 말한 ‘약의(藥醫)’나 ‘광의(狂醫)’의 방식이다. 진정한 ‘심의(心醫)’는 그저, 식물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환경’—따뜻한 햇빛, 적절한 수분, 안전한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 ‘환경’의 아키텍처는 세 개의 기둥으로 지어진다.

첫째,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절대적인 수용.

둘째, 공감적 이해(Empathic Understanding). ‘나는 당신의 세상을, 당신의 신발을 신고 바라본다’는 깊은 동조.

셋째, 진실성(Congruence). ‘나 역시 가면을 쓰지 않고, 당신 앞에서 진실한 존재로 서 있겠다’는 솔직함.

3

이것은 ‘심의(心醫)’, 즉 마음의 의사를 꿈꿨던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가 15살에 자신의 세계가 붕괴한 후, 3년간의 병원 생활 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그러나 결코 만나지 못했던 그 ‘수용의 아키텍처’를, 가장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는 어느 늦가을 오후의 기록이다.



1. 경계 너머의 도시, 그리고 ‘여전사’의 등장


동대구역.

이 거대한 교통의 ‘허브(Hub)’는 주말을 앞둔 인간들의 들뜬 에너지와, 방금 도착한 KTX 열차가 내뿜는 차가운 금속성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김경훈은 이 소음과 냄새의 교향곡(혹은 불협화음) 한가운데에, 마치 폭풍의 눈처럼 고요하게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이 모든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동요도 없는 훈련된 전문가의 풍모를 풍기는 안내견 탱고가 듬직하게 서 있었다.


그는 ‘연구 모드’로 이 공간의 아키텍처를 온몸으로 ‘읽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늘 그렇듯, 세상을 향한 따뜻하고 호기심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의 귀는 높은 천장에 부딪혀 돌아오는 수천 개의 발소리와 캐리어 바퀴 구르는 소리의 ‘반향(Echolocation)’을 분석하여, 이 거대한 홀의 규모와 밀도를 3D로 렌더링 하고 있었다. 그의 코는 역사의 낡은 먼지 냄새와, 1층 빵집에서 올라오는 달콤한 버터 냄새, 그리고 수많은 타인들이 스쳐 지나가며 남기는 각기 다른 삶의 냄새들을 감지했다.


탱고가 그의 손에 쥔 하네스를 통해, ‘왼쪽 11시 방향, 장애물(벤치) 접근 중’이라는 미세한 신호를 보냈다. 그는 15살에 시력을 잃었지만, 이 40kg짜리 ‘생체 내비게이션’ 덕분에, 그 어떤 비장애인보다도 이 혼돈스러운 공간을 자신 있게 항해할 수 있었다.


“엘리야(Elijah)!”


그때, 그 모든 소음을 뚫고, 맑고도 힘찬, 그가 아주 오래전부터 기억하던 목소리가 날아왔다.

김경훈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엘리야’. 그의 미국 유학 시절 이름.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몇 없었다.


“한울!”

그가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쿵’ 하는 묵직한 충격과 함께, 그가 기억하는 것과 똑같은 상쾌하고 값비싼 시트러스 향수 냄새가 그의 코를 감쌌다. 한울이었다. 그녀는 10년 차 특수교사라기엔 지나치게 멋진, 롱부츠에 딱 떨어지는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그는 그녀의 당당한 발소리와 옷감이 스치는 소리, 그리고 향수의 가격대로 그렇게 짐작했다), 그의 어깨에 팔을 휘감으며 격하게 그를 끌어안았다.


“야! 너 진짜 오랜만이다! 탱고! 이 자식, 너도 잘 지냈어? 누나 까먹은 거 아니지!”

탱고가 이 거칠지만 반가운 ‘여전사’의 등장에, 훈련 중임도 잊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그녀의 손을 핥았다. 2009년 시애틀. 김경훈이 ‘엘리야’로 불리던 시절, 그들은 어학연수에서 만나 함께 유학 생활을 견뎌낸, 그야말로 전우(戰友)였다.


“너야말로,” 김경훈이 그녀의 어깨동무에 자연스럽게 팔을 두르며 웃었다. “여전히 짱짱하시네. 교사가 아니라 무슨 패션모델 같아. 그 구두 소리, 100미터 밖에서도 들리겠어.”

“시끄러, 임마.” 한울이 그의 등을 세게 쳤다. “가자. 춥다. 내가 오늘 너한테 아주 중요하게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어. 내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2. ‘수리’가 아닌 ‘환경’으로서의 상담


역사 2층, 그나마 조용한 구석의 카페. 그들은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탱고는 하네스를 풀고, 익숙한 친구의 존재에 안심한 듯, 테이블 밑에 편안하게 엎드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김경훈이 물었다. “누나 인생이 걸린 문제라니. 설마… 결혼?”


“아니, 이 멍청아.” 한울이 그의 정강이를 구두굽으로 가볍게 찼다. “그거보다 더 심각한 거야. 나… 대학원 가려고.”

“대학원? 교사 10년 차가? 갑자기 왜?”


“갑자기 아니거든.”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사’의 쾌활함 대신, 10년간 현장에서 구른 전문가의 깊은 고뇌가 서려 있었다.

“나, 상담심리 전공할 거야. 더는 못 해 먹겠어.”

“... 네?”


“내가 특수교사잖아. 일반학교에 있는 특수학급.”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애들이랑 ‘함께’ 살고 싶은 건데, 이놈의 시스템은 나보고 자꾸 애들을 ‘고치래’.”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딱지, 자폐 스펙트럼 딱지, 경계선 지능 딱지… 모든 애들한테는 ‘문제’가 있고, 내 역할은 그 문제를 ‘수리’해서 ‘정상’이라는 시스템에 다시 끼워 넣는 거야. 나는 매일같이… 내가 교사가 아니라, ‘정비공’이 된 것 같아.”


김경훈은 자신에게 하산(下山)을 명했던 노신부와, 세조의 ‘팔의론’을 떠올렸다. 그는 그녀가 지금, ‘약의(藥醫)’와 ‘광의(狂醫)’로 가득 찬 시스템 속에서 ‘심의(心醫)’의 길을 찾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칼 로저스(Carl Rogers)를 공부하고 싶어.” 그녀가 말했다. “그 사람의 ‘인간 중심 상담’. 그게 맞는 것 같아. 문제는… 내가 면접에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면접?”

“응. ‘왜 상담심리를 하려 하는가?’,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가?’ 이런 거 물어볼 거 아냐. 그때 내가 ‘지금 시스템이 엿 같아서요’라고 할 순 없잖아.” 그녀가 익살스럽게 덧붙였다. “그래서 이 분야의 ‘선배 환자’이신 우리 경훈이한테, 아주 고급진 ‘면접용 아키텍처’를 좀 컨설팅받으러 왔지.”


김경훈은 그녀의 말에, ‘선배 환자’라는 표현에, 환하게 웃었다.

“와, 그건 내가 아니라, 네가 이미 답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방금 그 말이야. ‘시스템이 엿 같아서’.” 김경훈이 ‘연구 모드’로 전환되어, 그녀의 말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이 듣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야. 물론, ‘시스템이 엿 같다’는 말 대신, 좀 더 고상한 말로 포장해야겠지만. 비유를 좀 섞어서 말이야.”


그는 커피 잔을 들었다.

“로저스의 핵심이 뭐지? ‘실현 경향성(Actualizing Tendency)’. 인간은 스스로 성장할 힘이 있다는 거잖아. 상담사는 ‘수리공’이 아니라, ‘정원사’가 되어야 한다는 거지.”


“맞아, 맞아!” 한울이 무릎을 쳤다.


“그럼, 면접에서 이렇게 말하는 거야.” 김경훈이 그녀의 면접관이라도 된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지난 10년간 특수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이라는 씨앗이 아니라, 그 씨앗이 자라나야 할 ‘토양’(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은 고장 난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본질’에 맞지 않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었을 뿐입니다. 저의 연구 목적은 그 아이들을 ‘고치는(Fixing)’ 것이 아닙니다. 저는 칼 로저스의 ‘세 가지 조건’—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공감적 이해, 진실성—을 바탕으로, 학교라는 시스템 자체를, 그 어떤 씨앗이라도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안전하고 따뜻한 토양’으로 재설계(Re-design)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한울은 입을 떡 벌린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야, 김경훈.”

“왜, 별로야?”

“아니. 너… 진짜 미쳤다. 너 내일부터 내 자기소개서 대신 써라. 너, 10년 전에 시애틀에서 나 졸졸 따라다니던 그 ‘엘리야’ 맞아?”



3. 트라우마의 모방, 혹은 ‘진실성’의 실패


그녀의 칭찬에, 김경훈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이 정도쯤이야.” 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게 바로, 내가 3년간 병원에서 신경과 약 씹어 먹으면서 배운 겁니다. 고통의….”


“그런데 말이야.”

한울이 그의 말을 가차 없이 잘랐다. 그녀의 눈빛이 10년 차 특수교사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번뜩였다.

“너, 방금 네가 한 말 중에, 제일 중요한 걸 빼먹은 거 알아?”

“... 네?”


“로저스의 세 번째 기둥. ‘진실성(Congruence)’. 그거.”

“그게 왜?”

“너, 지금 나한테 진실하지 않았어.”


김경훈의 얼굴에서 유쾌한 미소가 싹 가셨다.

“... 무슨 말이야, 누나.”


“너, 아까 나한테 ‘훌륭한 처방’을 내렸지. ‘시스템을 재설계하라’고. 아주 멋진 말이야. 그런데 정작 너는 네가 만나는 ‘문제’들을 그렇게 대하고 있어?”

그녀는 김경훈이 몇 주 전, 선배를 만나고 와서 자신에게 했던 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너, 그 후배인지 선배인지, 그 사람 만났을 때 말이야.” 한울이 조용히, 그러나 정곡을 찔렀다. “너, 그 사람의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했어? 아니면, 너도 똑같이 ‘진단’하고 ‘처방’하려 했어? 네가 보기에도 그 선배가 ‘불안’이라는 병에 걸린 것 같으니까, 너는 ‘플랜 B’라는 이름의 ‘약’을 처방했잖아. 그게, 네가 방금 비판한 그 ‘정비공’들이랑 뭐가 달라?”


김경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이 정확하게 그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는 ‘심의’가 되겠다고 맹세했지만, 정작 자신이 병원에서 만났던 그 ‘광의(狂醫)’—환자를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극약 처방을 남발하는—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그는 17살, 충주성모학교에서 만났던 수녀를 떠올렸다. 수녀는 그가 분노에 차서 궤변을 늘어놓을 때, 그를 ‘진단’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너는 지금 화가 났구나’라며, 그의 감정을 ‘수용’했을 뿐이다.


“나는….” 김경훈이 낮은 목소리로 고백했다. “... 나는 그 선배를 도우려던 게 아니라, 내 과거 트라우마를 그 선배한테 투사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내가 ‘플랜 B’로 구원받았다고 믿었으니까, 그 선배도 그래야 한다고… 강요한 거지.”

“그래.” 한울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그게 바로 로저스가 말한 ‘진실성’의 실패야. 너는 그 선배 앞에서 ‘상담가’라는 가면을 썼던 거야. ‘진짜’ 너로 서 있지 않았던 거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나, 이딴 맛없는 커피 말고, 진짜 맛있는 거 먹고 싶어 졌어.”

“... 웅?”

“됐고, 따라와. 내가 오늘, 너라는 그 잘난 양반을, 제대로 ‘치유’ 해 줄 테니까. 10년 전, 시애틀에서 네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4. 주석: 수용의 아키텍처



‘제목: 수용의 아키텍처, 혹은 ‘심의(心醫)’의 자격.

세조는 ‘심의’를 으뜸이라 했다. 나는 그 ‘심의’가 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자라고 착각했다. 나는 ‘광의(狂醫)’였다.

칼 로저스는 말했다. 치유는 처방이 아니라, ‘환경’이라고.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공감적 이해’, ‘진실성’.

오늘, 10년 차 특수교사 한울은 나에게 그 세 가지가 모두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나는 선배를 진실하게 대하지 않았고, 그녀의 세상을 공감하지 않았으며, 그녀의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내가 2009년, 시애틀에서 이미 그 모든 것을 실천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나는 잊고 있었다. 15살에 모든 것을 잃고, 3년간의 공백을 거쳐, 충주성모학교에서 수녀님께 배웠던 그 ‘치유의 본질’을.

결론: ‘심의(心醫)’의 아키텍처는 ‘지식’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로 짓는 것이다. 가장 완벽한 치유는 ‘내가 당신을 고쳐주겠다’는 오만이 아니라, ‘나는 당신이 될 수 없지만, 기꺼이 당신 곁에 있겠다’는 가장 겸손한 ‘앙가주망’이다.

… 한울은 아마 최고의 상담사가 될 것이다. 그녀는 이미, 로저스의 세 가지 기둥을 모두 갖춘, 완벽한 ‘심의’니까. 나야말로, 그녀에게 한 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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