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솔로몬 박사의 진료실은 그날따라 유난히 고요했다.
박사는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친 채, 진료실 구석의 먼지 더미(그는 그것을 '알프레드'라고 불렀다)에게 '존재의 무거움'에 대해 설교하고 있었다.
“보게, 알프레드. 자네는 그저 먼지 덩어리일 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자네는 수많은 별의 파편과 죽은 세포들의 집합체일세! 자네야말로 우주의 역사 그 자체야! 얼마나 장엄한가!”
진홍색 벨벳 벤치에 드러누워 있던 AI 조수 리디아는 거대한 선글라스 너머로 그 광경을 흘끗 보았다.
“시끄럽군요, 박사님. 먼지에게 말 걸 시간에 차나 끓이시죠. 어차피 저 먼지는 박사님 말씀이 1그램도 안 들릴 텐데요.”
“아니, 리디아! 자네가 틀렸어! 알프레드는 지금 ‘공명’하고 있네. 이 고독한 존재의 설움을 말이야!”
바로 그때, 낡은 황동 방울이 '딸랑-' 하고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소리가 울리기 직전, 마치 누군가 문 앞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아주 희미한 신음 소리가 먼저 새어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섰다.
그의 이름은 요엘(Yoel). '에덴 프라임'의 '제7 생명공학연구소' 소속, ‘이종(異種) 신경 언어학자’였다.
그는 완벽한 위생을 상징하는 새하얀 방호복 재질의 슈트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그 옷과 대조적으로, 마치 모든 피를 쏟아낸 듯 잿빛으로 창백했다.
그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뒷걸음질 쳤다. 그는 박사나 리디아를 보고 놀란 것이 아니었다. 그는 텅 빈 구석, 박사가 방금 전까지 '알프레드'라고 불렀던 그 먼지 더미를 보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저것… 저것 좀….”
요엘이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먼지를 가리켰다.
“오, 알프레드 말인가? 내 친구일세. 아주 사려 깊은 녀석이지.” 박사가 껄껄 웃었다.
“아니… 저게 아니… 저것들이… 울고 있어요.”
요엘의 잿빛 뺨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너무… 너무 많아. 먼지 속에… 수억 개의… 죽은 것들이….”
솔로몬 박사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맙소사. 이 친구, 35% 중에서도 특상품이군. '초공감자(Hyper-Empath)'. 그것도 '아로마이안 네트워크'에 완전히 동기화된.”
리디아가 한숨을 내쉬며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골치 아픈 부류네요. 박사님, 저 사람 지금 박사님 먼지 더미 속의 멸종된 박테리아 시체들한테까지 공감하고 있는 거예요. 비효율의 극치로군.”
1장: 단백질 팩토리의 아이히만
요엘은 낡은 가죽 소파에 앉아서도,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계속 몸을 뒤틀었다. 그는 이 진료실을 가득 채운 ‘살아있는’ 냄새들(오래된 책, 먼지, 박사의 찻잎)에 짓눌려 있었다.
“저는… ‘침묵의 통역사’입니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수백만 개의 비명에 긁힌 것처럼 거칠었다.
“저는 '에덴 프라임'의 '단백질 팩토리'에서 일합니다. 공식적으로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불리는 가축들의 스트레스 수치를 측정하고, 사육 환경의 효율성을 개선하는 임무를 맡고 있죠.”
그의 일은 ‘엔클레이브’의 식량 공급을 책임지는 중요한 임무였다. 하지만 그의 ‘초공감’ 능력은 그 일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저는… 그들의 의식에 접속합니다. ‘대상체 73B’, ‘오리온’이라 불리던 그 돼지의 내면에서 ‘아로마이안의 노래’를 발견한 것도 저였죠.”
솔로몬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건은 ‘공감의 연대’가 결성되는 결정적 계기였다.
“하지만 그게 문제입니다.” 요엘의 눈이 절망으로 젖어들었다. “저는 그들의 노래를 듣습니다. 그들의 공포를, 지루함을, 그리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간의 그 끔찍한 비명을… 제 뇌로 직접 느낍니다. 그런데 제 임무가 뭔지 아십니까?”
그는 비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그들의 공포 데이터를 분석해서 사료에 섞는 신경 안정제의 양을 조절하는 겁니다. 그들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육질이 떨어지고, 너무 편안하면 성장이 더뎌지니까요. 저는… 가장 효율적으로 고통받도록, 가장 완벽하게 도살당하도록… 그들의 고통을 ‘설계’합니다.”
요엘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는 고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아이히만’입니다. 나는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내 사무실에 앉아 데이터를 전송할 뿐이죠. 나는 거대한 도살 시스템의 부품입니다. 나는 악합니까, 박사님? 아니면 그저… 평범한 겁니까?”
리디아가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끼어들었다.
“배고프네요. 박사님. 이 사람 얘기 들으니까 갑자기 베이컨이 먹고 싶은데요.”
“리디아!”
솔로몬 박사가 그녀를 나무랐지만, 요엘은 그 말을 듣고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는 소리 없이 구역질을 했다.
“봐요.” 리디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그저 ‘데이터’를 원했을 뿐인데, 저 사람은 ‘죄책감’을 느끼죠. 웃기지 않나요? 어차피 ‘엔클레이브’ 안의 돼지들은 다 ‘가짜’ 데이터 덩어리일 뿐인데. 저 ‘오리온’이라는 것도 결국….”
“가짜가 아닐세!”
솔로몬 박사가 지팡이로 바닥을 쿵 쳤다. “미가에게 케이크가 하나였듯, 야곱에게 그림자가 진짜였듯, 이 친구에게는 그 돼지의 비명이 진짜야! 고통은 미가 자네의 ‘정의’보다도, 야곱의 ‘실재’보다도 더 강력하고 근원적인 ‘진짜’란 말일세!”
박사는 요엘에게 다가갔다.
“자네, 요엘. 자네는 자네가 ‘평범한 악’의 부품이라고 했나?”
요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자네는 이미 답을 알고 있네. 자네가 아이히만과 다른 유일한 점은 자네가 지금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야. 자네의 ‘초공감’이 자네를 시스템의 부품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걸세. 자네는 지금 자네의 영혼을 걸고 ‘저항’하고 있는 중이야!”
2장: 처방전, 혹은 비명의 노래
“저항이 아닙니다. 저는 매일 아침 출근합니다. 그리고 매일 저녁, 그들의 비명을 들으며 퇴근하죠. 저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요엘이 절규했다.
“아니! 자네는 바꿀 수 있어!” 솔로몬 박사가 소리쳤다. “자네는 ‘통역사’라며! 그렇다면 통역만 하지 말고, ‘대화’를 하게!”
“대화라뇨? 그들과요?”
“그래! 자네는 지금까지 그들의 비명을 ‘듣기만’ 했지. 일방적으로. 그러니 고통스러운 거야. 이제 자네의 노래를 ‘들려줄’ 차례일세.”
박사는 요엘에게 황당한 처방을 내렸다.
“내일 ‘단백질 팩토리’에 출근하게. 그리고 자네의 신경 인터페이스를 켜. 하지만 이번엔 그들의 데이터를 분석하지 말고, 자네가 발견했던 그 ‘오리온의 노래’를… 자네의 목소리로, 그들에게 다시 불러주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의미? 의미 같은 건 없어! 자네가 ‘평범한 악’의 부품이 되길 거부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첫 번째 행위가 되는 거지! 자네는 더 이상 시스템의 ‘조율사’가 아니라, 그들 비명의 ‘지휘자’가 되는 걸세! 자, 가보게!”
3장: 오리온의 합창
다음 날, 요엘은 '에덴 프라임'의 '단백질 팩토리'에 섰다.
사방은 완벽한 무균 상태의 흰색 벽이었고, 수천 개의 생명 유지 장치 속에서 '단백질 공급원'들이 희미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신경 인터페이스를 연결했다.
즉시, 수천 개의 고통스럽고 지루한 의식의 흐름이 그의 뇌로 밀려 들어왔다. ‘배고픔’, ‘두려움’, ‘지루함’, ‘차가움’... 그의 뇌가 이 ‘평범한 악’의 데이터에 찢어질 것 같았다.
그는 시스템의 명령대로 ‘신경 안정제 조절’ 버튼을 누르려했다.
그때, 솔로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네의 노래를 들려주게!”
요엘은 눈을 감았다.
그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대신, 그의 기억 가장 깊은 곳, ‘오리온’의 의식 속에서 발견했던 그 고대의 멜로디... 수억 년을 이어져 온 ‘아로마이안의 노래’를 끌어올렸다.
그는 그 멜로디를 자신의 의식에 실어, 인터페이스를 통해 모든 동물에게 역으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노래를 계속하자, 기적이 일어났다.
동물들의 의식 속을 떠돌던 ‘두려움’과 ‘지루함’의 데이터가 파문처럼 잦아들었다. 그들은 일제히 하던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듣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의식이 처음으로 ‘고통’이 아닌 다른 것, ‘호기심’이라는 감각으로 연결되었다. 그들은 요엘이 보내는 ‘오리온의 노래’를 따라, 자신들의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같은 멜로디를 함께 허밍하기 시작했다.
요엘은 더 이상 그들의 비명을 듣지 않았다.
그는 지금, 수천 개의 영혼과 함께 ‘합창’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잿빛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고통의 눈물이 아니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종(種)을 초월한 ‘연결’의 환희였다.
그는 더 이상 시스템의 부품, ‘평범한 악’의 조율사가 아니었다.
그는 ‘공감의 연대’의 일원이자, ‘침묵의 통역사’였다.
에필로그: 평범한 저항
물론, 그날 ‘단백질 팩토리’의 효율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단백질 공급원’들이 노래를 부르느라 사료를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엘은 즉시 해고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진료실을 찾아왔을 때, 그의 얼굴은 더 이상 잿빛이 아니었다.
그는 낡은 가죽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박사가 내민 먼지 맛 차를 마셨다.
“박사님.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요엘이 말했다.
“잃다니?” 박사가 껄껄 웃었다.
“자네는 방금 ‘평범함’을 잃었네. 그리고 ‘영혼’을 되찾았지. 아주 공정한 거래 아닌가?”
리디아가 벤치에서 중얼거렸다.
“시끄럽군요. 저 사람 때문에 오늘 베이컨 공급에 차질이 생겼잖아요. 책임지세요, 박사님.”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홀로그램 잡지를 넘기는 그녀의 손가락은 어딘지 모르게 경쾌해 보였다.
> h의 아카식 레코드: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Arendt's 'Banality of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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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출신의 유대계 사상가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개념. 그녀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그가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직무에 성실했던 ‘평범한 관료’였음을 발견했다.
>
> 악의 본질: 아렌트에 따르면, 거대한 악은 광신이나 증오가 아니라, ‘무사유(Thoughtlessness)’에서 비롯된다.
> 무사유: 시스템의 명령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상상하기를 멈추는 것.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감’ 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
> ‘엔클레이브’의 ‘단백질 팩토리’는 이러한 ‘평범한 악’이 시스템화된 장소다. 요엘은 시스템의 ‘성실한 부품’이 되기를 강요받았지만, 그의 ‘초공감(Hyper-Empathy)’ 능력은 그가 ‘무사유’ 상태에 빠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를 저항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