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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사과 길드와 짖지 못하는 개들

by 김경훈


1. 썩은 다리와 은화 한 닢


왕국 수도의 빈민가 ‘진흙 둥지’ 구역.

비가 새는 낡은 판잣집 안에서 어린 소녀 엘리는 훌쩍이고 있었다. 그녀의 품에는 늙은 사냥개 바크가 안겨 있었다. 바크의 오른쪽 뒷다리는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상처 부위에서는 고름과 피가 섞인 끈적한 액체가 배어 나와 소녀의 낡은 옷소매를 적시고 있었다.


“엄마… 바크가 많이 아파해. 열이 너무 나서 몸이 불덩이 같아.”


엘리가 울먹이며 말했다. 바크의 거친 숨소리가 쌕, 쌕 하며 좁은 방 안을 채웠다. 녀석의 코는 말라비틀어져 있었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흐릿했다.


어머니 사라는 난로(라고 해봐야 숯 몇 덩이가 타다 만 깡통) 앞에서 감자를 깎고 있었다. 칼질 소리가 석, 석 하며 무겁게 들렸다.


“엘리, 몇 번을 말하니. 의원한테 갈 돈은 없어. 당장 내일 먹을 빵 살 돈도 부족해.”


사라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녀라고 왜 가족 같은 바크를 치료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약제사들은 바크의 다리를 보며 혀를 찼고, 수술비로 은화 50닢을 불렀다. 그 돈이면 이 가족이 1년을 먹고살 수 있었다.


“하지만… 바크가 죽으면 나도 죽을 거야! 으앙!”


엘리가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바크는 엘리의 울음소리에 반응하듯 힘없이 꼬리를 탁, 탁 바닥에 쳤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낑… 낑…”


그 소리는 사라의 가슴을 후벼 파는 송곳 같았다. 그녀는 감자를 깎던 칼을 내려놓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 지독한 가난. 숨 쉴 때마다 폐부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밖에서 요란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우-


“알려드립니다! 왕국 최고의 상단, ‘황금 사과 길드’에서 빈민 구제 사업을 시작합니다! 병든 가축, 다친 애완동물, 죽어가는 짐승들을 무료로! 전액 무료로 치료해 드립니다!”


사라의 귀가 번쩍 뜨였다. 무료? 이 각박한 세상에 무료라니?


“지금 당장 광장으로 오십시오! 단, 선착순이 아니라 ‘계약’을 맺으시는 분에 한해서입니다!”


엘리가 눈물 젖은 얼굴로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 들었어? 무료래! 바크 살릴 수 있어!”


사라는 망설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특히 ‘황금 사과 길드’는 사과 하나를 팔아도 씨앗 값까지 받아내는 지독한 장사치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바크의 숨소리가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자.”


사라는 바크를 등에 업었다. 묵직하고 뜨거운 짐승의 체온이 등 뒤로 전해졌다.



2. 광장의 기적, 그리고 계약


광장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다리가 부러진 당나귀를 끌고 온 노인, 털이 빠진 고양이를 안고 온 귀부인, 눈병 걸린 닭을 들고 온 농부들로 가득했다.


광장 중앙에는 거대한 천막이 쳐져 있었고, 그 앞에는 ‘황금 사과 길드’의 문장인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그려진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길드장 잡스는 검은색 터틀넥 로브를 입고 단상에 서 있었다. 그는 마법 확성기를 들고 열변을 토했다.


“여러분! 우리는 혁신을 원합니다. 생명 연장의 혁신! 우리는 여러분의 가족인 동물들을 무료로 치료해 드릴 것입니다. 최고의 마법사들과 사제들이 대기 중입니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사라도 바크를 업고 줄을 섰다. 차례가 되자, 하얀 가면을 쓴 마법사가 다가왔다.


“오, 상태가 심각하군요. 괴사성 근막염입니다. 당장 절단하고 재생 마법을 써야겠어요.”


“치… 치료해 주실 수 있나요? 돈이 없는데…”


사라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저희 길드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대신, 작은 계약 하나만 하시면 됩니다.”


마법사는 양피지 한 장을 내밀었다.


[계약서]

을(동물 소유주)은 갑(황금 사과 길드)에게 치료를 의뢰한다.

갑은 을의 동물에게 최상급 치료를 제공한다.

대가로, 해당 동물의 발성 기관에 ‘마법 각인’을 새기는 것에 동의한다.


“마법 각인이요? 그게 뭐죠?”


사라가 묻자 마법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아, 그냥 목소리를 아주 조금 튜닝하는 겁니다. 저희 길드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한 홍보 수단이죠. 건강에는 전혀!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오히려 목소리가 더 맑아질 겁니다.”


사라는 찜찜했지만, 바크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서명했다. 깃펜이 양피지를 긁는 사각, 사각 소리가 왠지 모르게 불길하게 들렸다.



3. 사과, 사과, 사과


수술은 순식간에 끝났다. 회복 마법의 빛이 번쩍이자, 바크의 썩어가던 다리에서 새살이 돋아났다. 바크는 벌떡 일어나 엘리에게 달려들었다.


“바크! 바크!”


엘리는 바크를 껴안고 울었다. 사라도 눈물을 훔쳤다. 정말 기적이었다.


“자, 이제 짖어보렴, 바크!”


엘리가 웃으며 말했다. 바크는 꼬리를 흔들며 입을 벌렸다.


“애플!”


“…어?”


엘리와 사라,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바크는 분명 개였다. 하지만 녀석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멍멍’도 ‘왈왈’도 아니었다. 아주 정확하고 또렷한 인간의 발음, 그것도 젊은 남성의 목소리로 ‘애플’이라고 외친 것이다.


“애플! 애플애플! 애플!”


바크가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짖을 때마다 광장에는 “애플! 애플!”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고양이가 하악질을 했다.


“애플-!”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


닭이 울었다.


“애플! 애플! 애-플!” (꼬끼오 톤의 애플)


광장은 순식간에 ‘애플 농장’이 되어버렸다. 수백 마리의 동물들이 각기 다른 톤과 성량으로 “애플”을 외쳐대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사라가 당황해서 마법사를 쳐다보자, 마법사는 가면 뒤에서 웃으며 말했다.


“홍보 효과가 아주 확실하죠? 이제 이 아이들은 입을 열 때마다 저희 길드의 위대함을 찬양하게 될 겁니다. 자, 다음 환자!”



4. 혁신인가 신성모독인가


황금 사과 길드의 이 기괴한 마케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길거리 어디를 가도 “애플” 소리가 들렸다. 귀족 부인의 푸들이 “애플” 하고 짖으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어머, 저 개도 황금 사과 길드에서 치료받았나 봐! 부자들은 역시 달라!” 하며 부러워했다.


사람들은 건강해진 동물을 보며 황금 사과 길드의 마법 물약을 샀고, 길드 마크가 찍힌 옷을 입었다. ‘애플’ 소리는 곧 건강과 부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왕립 아카데미의 생물학자 다윈 교수는 격분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모독입니다! 개의 짖는 소리는 그들의 언어입니다. 위협, 환영, 공포… 그 모든 감정을 ‘애플’이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다니요! 이건 영혼을 거세하는 짓입니다!”


광장에서는 연일 토론이 벌어졌다.


“동물 학대다! 신이 주신 목소리를 뺏지 마라!”


반대파가 소리치면, 찬성파가 맞섰다.


“배부른 소리 하네! 돈 없어서 죽어가는 거 보고만 있을래? 목소리 좀 바꾸고 사는 게 낫지! 넌 네 자식이 죽어가는데 ‘아빠’라고 못 부르게 되는 대신 살려준다면 안 할 거냐?”


찬성파의 논리는 강력했다. 빈민들에게 바크의 ‘멍멍’ 소리보다 바크의 ‘생명’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5. 일상에 스며든 사과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점차 ‘애플’ 소리에 익숙해졌다.


새벽에 닭이 “애플! 애-플!” 하고 울면 농부들이 일어났다. 밤에 도둑이 들면 개들이 “애플! 애플!” 하고 짖어서 주인을 깨웠다. 심지어 숲 속의 늑대들도 다쳐서 치료를 받았는지, 보름달을 보고 “애애애애플~” 하고 하울링을 했다.


사라네 집도 평화로웠다. 바크는 건강하게 뛰어다녔고, 엘리는 바크와 함께 잠들었다.


어느 날 오후, 사라가 빨래를 널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놀러 왔다. 그녀의 팔에는 ‘애플’ 소리를 내는 앵무새가 앉아 있었다.


“사라, 요즘 바크는 어때? 애플.”


“아주 건강해요. 밥도 잘 먹고요. 애플.”


사라가 웃으며 대답했다.


“참, 너 그거 들었니? 이번에 황금 사과 길드에서 사람을 위한 보험도 출시했대. 애플.”


“정말요? 애플.”


“응. 병원비가 전액 무료래. 대신 조건이 있대. 애플.”


사라는 빨래를 털며 무심코 물었다.


“무슨 조건인데요? 애플.”


“그게… 애플. 별거 아니래. 그냥… 애플.”


아주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자꾸 말끝마다 ‘애플’을 붙였다. 앵무새가 짖는 게 아니었다. 아주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사라는 동작을 멈췄다. 그녀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주머니…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애플?”


사라 자신도 모르게 말끝에 ‘애플’이 붙어 나왔다.



6. 인류의 업데이트


그날 저녁, 황금 사과 길드의 잡스 길드장이 다시 광장에 섰다.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어딘가 아픈 사람들이었다.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는 노인, 폐병에 걸린 청년, 눈이 먼 아이…


잡스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여러분. 동물 친구들의 성공적인 ‘업데이트’를 보셨습니까? 이제 그 혜택을 여러분에게도 드립니다. 인간을 위한 ‘i-Heal(아이-힐)’ 서비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조건은 동일합니다. 여러분의 목소리에 아주 작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을 할 때마다, 숨을 쉴 때마다, 사랑을 속삭일 때마다… 우리 길드의 이름이 세상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잡스는 양팔을 벌렸다.


“생각해 보십시오. 언어란 무엇입니까? 바벨탑 이후로 인간은 서로 다른 언어 때문에 소통하지 못하고 싸워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가 ‘애플’이라는 공통된 언어의 억양을 갖게 된다면?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겠습니까?”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치료만 해준다면야! 애플!”


“내 다리만 고쳐준다면 영혼이라도 팔겠소! 애플!”


사람들은 앞다투어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들은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7.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1년 후.


왕국은 조용해졌다. 아니, 시끄러워졌지만 동시에 조용해졌다.


시장통의 풍경은 이랬다.


“이 사과 얼마요? 애플.”

“은화 두 닢입니다. 애플.”

“너무 비싸요. 깎아주세요. 애플.”

“안 됩니다. 애플.”


모든 사람의 말끝에는 ‘애플’이 붙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문법의 일부가 되었다. 마침표 대신 ‘애플’을 찍는 식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그다음 업데이트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아침, 사라가 일어나 엘리를 깨웠다.


“엘리, 일어나. 학교 가야지. 애플.”


엘리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엄마, 더 자고 싶어. 애플.”


그런데 엘리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엄마의 목소리와 똑같았다. 아니, 라디오 성우 같은 건조하고 세련된 기계음이었다.


사라가 놀라서 소리쳤다.


“엘리? 목소리가 왜 그래? 애플.”


사라 자신의 목소리도 똑같은 기계음이었다.


거리에 나가보니,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똑같았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시리(Siri)’ 같은 무미건조한 톤으로 말하고 있었다.


광장의 전광판에 잡스 길드장의 영상이 떴다.


[축하합니다. v2.0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개성 있는 목소리’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주파수와 톤으로 소통함으로써, 왕국은 완벽한 효율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하지만 그들의 웅성거림조차 똑같은 톤의 “애플, 애플, 애플” 소리로 들려서 마치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는 소음처럼 들렸다.


누군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건 말도 안 돼! 내 목소리를 돌려줘! 애플!”


하지만 그 분노의 외침조차 너무나 차분하고 정중한 AI의 목소리로 출력되었기에, 아무도 그가 화났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사랑 고백도, 장례식의 통곡도, 아기의 옹알이도… 모두 똑같은 톤이었다.


“사랑해. 애플.” (건조함)

“아이고, 아이고. 애플.” (건조함)

“응애. 애플.” (건조함)


세상은 완벽하게 평등해졌고, 완벽하게 지루해졌다.



8. 진정한 고객님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왕국이 아닌 ‘달(Moon)’ 위에서 지켜보는 존재들이 있었다.


달의 뒷면, 거대한 돔형 기지.

그곳에는 머리가 투명한 뇌로 되어 있는 외계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지구, 아니 왕국에서 올라오는 수천만 개의 “애플” 소리를 데이터로 수신하고 있었다.


외계인 ‘팀’이 보고했다.


“팀장님, 지구 왕국의 ‘언어 데이터 통일화’ 작업이 99%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개체 간의 불필요한 감정 노이즈가 제거되어, 연산 처리가 아주 빨라졌습니다.”


팀장 외계인 ‘쿡’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이 행성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생체 CPU’로 쓸 수 있겠군. 개체 하나하나가 뉴런(Neuron) 역할을 하는 거야. ‘애플’이라는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말이지.”


그렇다. 황금 사과 길드는 외계의 하청 업체였고, 인간들은 병을 고친 게 아니라 ‘채굴기’로 개조된 것이었다. 인간들이 “애플”이라고 말할 때마다 발생하는 미세한 뇌파 에너지가 모여, 외계인들의 가상화폐를 채굴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이제 ‘채굴’을 시작해 볼까? 왕국 전체에 명령어를 하달해.”


쿡이 버튼을 눌렀다.


지상의 왕국.

갑자기 모든 인간과 동물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들의 눈동자가 로딩 중인 아이콘처럼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천만 개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애플… 페이… 결제… 완료…”


띠링!


달 기지의 모니터에 [수익률 10,000% 달성]이라는 문구가 떴다.


쿡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진짜 사과였다) 중얼거렸다.


“역시, 감성을 팔아야 장사가 된다니까.”


지구는 이제 푸른 행성이 아니라, 거대한 사과 농장이 되어 우주를 향해 끊임없이 “애플” 신호를 쏘아 올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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