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영원한 황금 관과 미식가들

by 김경훈


1. 하늘에서 떨어진 신의 선물


왕국력 532년, ‘용의 달’ 15일. 그날은 평범한 아침이었다. 시장통의 생선 장수는 썩어가는 고등어에 소금을 뿌리고 있었고, 대장장이는 붉게 달궈진 쇠를 망치로 두들기고 있었다.


콰아아앙!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도시를 덮쳤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다.


쿵! 쿵! 쿵!


지축을 뒤흔드는 진동과 함께 하늘에서 수십 개의 ‘관’이 떨어졌다. 그것은 일반적인 나무 관이 아니었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색 금속 관이었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관으로 다가갔다. 높이는 성인 남성 두 명이 들어갈 정도로 컸고,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앞면은 투명한 크리스털로 되어 있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게 뭐지? 신께서 보내신 선물인가?”


한 농부가 떨리는 손으로 크리스털 문을 만져보았다. 차가웠다. 마치 한겨울의 얼음장처럼.


그때, 문이 ‘스르르’ 소리 없이 열렸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기묘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시장통에서 그 관 안에서만은 갓 피어난 백합 같은 청량한 공기가 맴돌고 있었다.



2. 영원을 파는 상인


처음에는 아무도 그 용도를 몰랐다. 어떤 이는 곡식 창고로 썼고, 어떤 이는 비를 피하는 용도로 썼다. 비밀이 밝혀진 건 우연이었다.


동부의 한 사냥꾼이 잡은 사슴 고기를 관 안에 넣어두고 깜빡 잊어버렸다. 한 달 뒤에 문을 열었을 때, 사슴 고기는 방금 잡은 것처럼 붉은 핏기를 머금고 있었다. 심지어 사슴의 눈동자마저 촉촉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문은 산불처럼 번져나갔다.


[시간이 멈추는 관! 늙지 않는 영생의 방!]


왕립 마법사들이 달려들어 연구한 결과,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이 관 내부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완전히 정지합니다. 육체의 노화도, 부패도, 배고픔도 없습니다. 이론상 영원히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왕국은 발칵 뒤집혔다. 영원한 삶. 그것은 모든 인간의 꿈이자 욕망이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헤맸듯, 이 대륙의 모든 권력자가 황금 관을 탐내기 시작했다.



3. 가진 자들의 요새


처음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니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힘의 논리는 냉혹했다.


“이 관은 내 영지에 떨어졌으니 내 소유다!”


탐욕스러운 바르만 백작은 자신의 영지에 떨어진 관 5개를 독차지하고, 근처에 접근하는 농노들을 사냥개로 물어뜯게 했다.


“국가 안보를 위해 왕실이 징발한다!”


국왕은 친위대를 풀어 전국의 관을 수거해 갔다. 상인들은 용병을 고용해 관을 훔쳤고, 암시장에서는 관 하나가 성 10채 값에 거래되었다.


결국, 1년도 지나지 않아 대륙에 떨어진 1,000여 개의 황금 관은 모두 왕족, 고위 귀족, 대상인, 그리고 대마법사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들은 미쳐 돌아갔다.


바르만 백작은 침실을 없애고 황금 관을 들여놓았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관 안에서 보냈다.


“밥 먹을 때만 잠깐 나오면 돼. 잠은 관 안에서 자면 늙지 않아. 업무? 관 안에서 서류를 보면 되지!”


백작의 피부는 60대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청년처럼 팽팽해졌다. 하지만 눈빛만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심지어 배변 활동조차 아까워하며, 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마법 장치를 설치했다.


왕국의 재상 카시우스는 아예 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관 안에 최고급 비단 이불을 깔고, 마법 통신구로만 국정을 운영했다.


“시간은 금이다. 아니, 시간은 생명이다. 밖에서 낭비하는 1초가 내 수명을 갉아먹는다!”



4. 썩어가는 바깥세상


가진 자들이 영생을 누리는 동안, 관을 차지하지 못한 서민들의 삶은 지옥이 되었다.


관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징세가 늘어났고, 영주들이 영지에 신경을 쓰지 않아 도적 떼가 들끓었다.


“저 빌어먹을 귀족 놈들! 지들은 천년만년 살겠다고 틀어박혀 있고, 우리는 굶어 죽으라는 거냐!”


술집에서 만난 나무꾼 토마스가 탁자를 내리쳤다.


“그러게 말이야. 바르만 백작 놈은 이제 아예 얼굴도 안 보여. 세금 걷을 때만 집사 놈을 보내지.”


옆에 있던 대장장이 한스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추하다, 추해. 인간이 늙어서 죽는 게 순리인데, 저 좁은 관짝에 갇혀서 뭐 하는 짓인지.”


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공허한 메아리였다. 가진 자들은 관 안에서 안전했다. 어떤 독도, 암살자의 칼날도, 심지어 세월조차 그들을 해칠 수 없었다. 그들은 완벽한 요새 안에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체념했다.


“그래, 니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우린 그냥 흙으로 돌아갈란다.”


세상은 두 개로 나뉘었다. 썩지 않는 황금 관 속의 세상과, 빠르게 썩어 문드러지는 바깥세상.



5. 닫힌 문


그러던 어느 날. 왕국력 535년, ‘수확의 달’ 1일.


바르만 백작은 관 안에서 최고급 포도주를 마시며 회계 장부를 검토하고 있었다. 크리스털 문밖으로 늙은 집사가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이 집사. 올해 포도 수확량이 왜 이 모양이야? 세금을 더 걷으라고 했잖아!”


백작이 소리쳤지만, 문은 닫혀 있어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마법 통신구를 켜려 했다.


그때였다.


철컥.


관의 내부에서 작지만 명확한 기계음이 들렸다.


“응?”


백작은 무심코 문을 밀어보았다. 열리지 않았다.


“뭐야? 고장 났나?”


그는 문을 발로 찼다.


쿵!


꿈쩍도 하지 않았다. 크리스털 문은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했다.


“이봐! 집사! 문 좀 열어봐! 밖에서 잠긴 거야?”


백작이 문을 두드렸다. 집사는 멍하니 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백작의 목소리는 방음 마법 때문에 밖으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집사는 백작의 겁에 질린 표정과, 입 모양을 보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살려줘! 문 열어!’


같은 시각, 왕궁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국왕, 왕비, 재상… 황금 관에 들어가 있던 모든 권력자가 갇혀버렸다.


그리고.


우우우웅-


대륙 전체에 낮은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금 관들이 천여 개의 관들이 동시에 땅에서 붕 떠올랐다.


“어? 어어? 날아간다!”


토마스가 손가락질했다.


관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밧줄에 끌려가듯,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관 안에는 탐욕스러운 귀족들이 유리에 얼굴을 붙이고 절규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일그러진 얼굴은 마치 기괴한 초상화처럼 크리스털에 박제되어 있었다.


“살려줘! 내 전 재산을 줄게! 꺼내 줘!”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관들은 점점 더 높이 구름을 뚫고, 대기권 밖으로 사라져 갔다.


지상의 사람들은 멍하니 그 장관을 지켜보았다. 하늘에는 반짝이는 별처럼 수많은 점이 멀어지고 있었다.


“다… 가버렸네?”


한스가 얼떨떨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나쁜 놈들이 싹 다 사라졌어.”


누군가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곧 그 웃음은 전염병처럼 번져나가 도시 전체가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만세! 썩은 놈들이 꺼졌다!”


사람들은 축제를 벌였다. 가진 자들이 사라진 세상은 혼란스러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활기찼다.



6. 우주 미식가들의 식탁


한편, 대기권 밖 머나먼 우주 공간.


거대한 유선형의 우주선 내부. 그곳은 지구의 어떤 궁전보다 화려했지만, 동시에 비릿한 점액질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었다.


촉수가 턱수염처럼 달린 외계인, ‘조르바’가 홀로그램 화면을 띄워놓고 있었다. 화면에는 지구에서 수거된 1,000여 개의 황금 관들이 줄지어 우주선 화물칸으로 적재되는 모습이 보였다.


조르바의 맞은편에는 머리가 세 개 달린 거대한 거인, ‘케르’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침을 뚝뚝 흘렸다.


“오, 조르바. 이번 수확물은 상태가 아주 좋다면서?”


“물론입니다, 케르 님. 이번 시즌 한정판, [지구산 프리미엄 귀족 통조림]입니다.”


조르바가 킬킬거리며 관 하나를 확대해서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공포에 질려 눈을 희번덕거리는 바르만 백작이 들어 있었다.


“보십시오. 이 마블링을. 평생 일은 안 하고 기름진 음식만 먹어서 지방질이 아주 풍부합니다. 게다가 이 관, 아니 ‘신선도 유지 장치’ 덕분에 갓 잡은 상태 그대로의 육질을 영원히 즐기실 수 있죠.”


“흐음. 훌륭하군. 저번에 먹은 ‘전사 통조림’은 너무 질겨서 이빨이 아팠는데 말이야.”


케르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이 상품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아십니까?”


조르바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이것들은 스스로 제 발로 통조림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는 겁니다. 스트레스 없이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숙성되었죠. ‘자발적 숙성육’이라고나 할까요? 쓴맛이 전혀 없습니다.”


“크하하하! 멍청한 식재료들이로군! 스스로 포장지 안으로 들어가다니!”


케르가 호탕하게 웃었다.


“자, 그럼 시식을 해볼까?”


조르바는 버튼을 눌렀다. 화물칸에 있던 관 하나가 식탁 위로 전송되었다.


피슈우우-


압력이 빠지는 소리와 함께 크리스털 문이 열렸다.


안에 있던 바르만 백작은 낯선 환경과 거대한 괴물들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너희들은 뭐야! 난 백작이야! 이 나라의…”


덥석.


케르의 거대한 손이 백작을 낚아챘다.


“음, 역시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군.”


케르는 백작을 한입에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음! 고소해! 입안에서 살살 녹는구만! 역시 귀족이야!”


조르바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장부를 펼쳤다.


“다음 행성은 어디로 할까요? 요즘 ‘독재자’들이 많이 자라는 행성이 있다던데. 거기도 통조림 기계를 좀 뿌려놓을까요?”


“좋아, 좋아. 아주 배 터지게 먹어보자고!”


우주선의 창밖으로, 푸르게 빛나는 지구, 아니 거대한 ‘양식장’이 멀어져 가고 있었다.


<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황금 슬라임의 비명과 개미들의 장송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