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료 나눔] 살림 잘하는 메이드 인형

by 김경훈


1. 잡동사니 수집가의 아침


수도 외곽, 쓰레기장과 빈민가 경계에 위치한 ‘까마귀 만물상’.

이곳의 주인 사일러스는 지독한 구두쇠이자, 세상의 모든 공짜를 사랑하는 수집광이었다.


가게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천장까지 쌓인 고물들—이가 빠진 접시, 녹슨 갑옷, 한 짝만 남은 부츠, 곰팡이 핀 양탄자—이 뿜어내는 냄새는 지독했다. 오래된 먼지 냄새, 썩은 나무 냄새, 그리고 쥐 오줌 냄새가 뒤섞인, ‘세월의 악취’였다.


“킁킁… 어디 보자, 오늘은 어떤 호구가 물건을 버렸나?”


사일러스는 아침마다 마을 광장에 있는 ‘초록 잎사귀 게시판’으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이곳은 왕국 사람들이 안 쓰는 물건을 사고파는 직거래 장터였다. 사일러스의 눈은 오직 한 곳, [무료 나눔] 코너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눈은 매의 눈보다 날카로웠다. ‘부서진 의자(수리하면 돈 됨)’, ‘유통기한 지난 포션(물 타서 팔면 됨)’ 같은 것들을 스캔하던 중, 그의 시선이 한 양피지 전단지에 멈췄다.


[무료 나눔] 구체관절 메이드 인형 (급처분)

상태: 사용감 있음. 관절 조금 뻑뻑함.

기능: 간단한 청소 및 요리 가능 (마력 코어 내장).

가격: 0원 (무료)

특이사항: 예민하신 분 사절. 밤에 가끔 혼자 움직임. 반품 절대 불가. 가져가시면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거래 장소: 안개 골목 3번지.


사일러스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메이드 인형? 그것도 마력 코어가 내장된 오토마톤(Automaton)?’


이건 대박이었다. 마력 코어만 빼서 팔아도 금화 100닢은 받는다. 멀쩡하게 작동한다면 귀족들에게 1,000닢에 팔 수도 있다. 그런데 무료라니? 주인이 미쳤거나, 인형이 고장 났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사일러스는 자신의 수리 실력을 믿었다.


“이건 내 거야! 내가 찜했다!”


사일러스는 전단지를 벅벅 찢어 주머니에 넣고, 거래 장소로 달렸다. 찢어진 양피지의 거친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2. 공포에 질린 판매자


거래 장소인 ‘안개 골목’은 대낮에도 어두침침했다. 바닥에 깔린 이끼가 미끌거렸고, 어디선가 물 떨어지는 소리가 똑… 똑… 하고 들려왔다.


약속 장소에는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커다란 마대 자루를 발치에 두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불안에 떨고 있었다.


“저… 물건 보러 왔습니다.”


사일러스가 말을 걸자,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아! 오셨군요! 여기, 여기 있어요! 당장 가져가세요!”


여자는 마대 자루를 발로 밀었다.


“상태 확인 좀 해도 될까요?”


사일러스가 자루를 열려 하자,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아니요! 열지 마세요! 그냥 가져가세요! 제발! 지금 당장!”


여자의 목소리는 히스테릭했다. 그녀는 사일러스의 손에 억지로 자루 끈을 쥐여주더니, 도망치듯 골목을 빠져나갔다.


“다시는!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그 인형은 이제 당신 겁니다!”


여자는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사일러스는 멍하니 서 있었다. 뭔가 찜찜했다. 보통 무료 나눔을 하면 “잘 쓰세요”라거나 “무거우니까 조심하세요”라고 하지 않나? 저 여자는 마치 폭탄을 넘긴 사람처럼 굴었다.


하지만 묵직한 자루의 무게감이 사일러스의 의심을 눌렀다.


“흐흐흐. 횡재했다.”


사일러스는 자루를 짊어지고 가게로 돌아왔다. 자루 안에서는 딱딱한 고체들이 서로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가 났다.



3. 아름답고 기괴한 살림꾼


가게 문을 걸어 잠그고, 사일러스는 작업대 위에 자루를 쏟았다.


우르르 쾅.


먼지 구름 속에서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일러스는 숨을 멈췄다. 생각보다 훨씬 고퀄리티였다.


키는 160cm 정도. 피부는 최고급 백자(White Porcelain)로 되어 있어 매끄럽고 차가웠다. 눈동자는 푸른색 사파이어였고, 머리카락은 진짜 사람의 금발을 심어놓은 듯 부드러웠다. 입고 있는 메이드복은 낡았지만 레이스 장식이 정교했다.


단 하나, 흠이 있다면 관절 부분이었다.

목, 어깨, 팔꿈치, 무릎… 모든 관절이 구체(Ball Joint)로 되어 있었는데, 그 틈새에 검붉은 찌꺼기 같은 것이 끼어 있었다. 녹슨 기름때 같기도 하고, 말라붙은 핏자국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얼굴.

인형은 웃고 있었다.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질 듯 올라간, 아주 작위적이고 고정된 미소였다.


“음… 좀 으스스하긴 한데, 닦으면 쓸 만하겠어.”


사일러스는 걸레를 가져와 인형의 얼굴을 닦으려 했다.


그때였다.


끼기긱… 탁.


인형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사파이어 눈동자가 사일러스와 정확히 눈을 맞췄다.


“주인님?”


인형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가슴속에 내장된 오르골에서 울려 나오는 듯 기계적이고 맑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김경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안내견 탱고의 눈으로 길을 보고, 시각장애인 연구자의 눈으로 세상을 봅니다.

1,04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7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별점 1점의 무게, 그리고 목숨 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