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데스크 Ep.37

by 김경훈


요리는 '불'과 '재료'의 싸움이다. 하지만 그 불이 행성을 태울 만큼 거대하다면, 그것은 요리가 아니라 '재해'다.


펄펄 끓는 기름 앞에서는 그 어떤 '방패'도 무용지물이다. 막으려 들면 튀길 뿐이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 그 기름의 흐름을 읽고, 길을 터주어... 더 큰 '그릇'에 담아내는 것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담판(Cooking)'이라 부른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37쪽 (우주적 레시피 편).



## 에피소드 37. 튀김 성단의 왕자와 팔공산의 돌솥



[황 보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

늦은 밤이었지만, 사무실은 붉은색 비상등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유리 케이스 안에 보관되어 있던 핫바 군의 유물, 초고밀도 탄소 섬유 꼬치가 미친 듯이 진동하며 고주파음을 내뿜고 있었다.


윙— 윙— 윙—


"팀장님! 주파수가 폭주해요! 이건 단순한 통신 신호가 아니에요. '좌표 유도 신호'예요!"


조 실장이 에일리언웨어 노트북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녀의 모니터에는 대구 상공으로 진입하는 거대한 물체의 궤적이 붉은 선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좌표? 어디로 오는데?"

야근 중이던 황 소장이 샤넬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팔공산이요! 정확히는... 지난번 '산신령' 님이 강림하셨던 그 '비로봉' 근처예요!"


그 순간, 사무실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꼬치의 고주파음 위로, 훨씬 더 묵직하고 거대한 'B(시)' 톤의 파동이 덮어씌워졌다.


[... 4대 석학.]


사무실 한가운데서 호랑이의 낮은 울음소리와 함께, '팔공산 군왕(산신령)'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경훈의 마크 레빈슨 앰프가 저절로 켜지며 우퍼가 진동했다.


[네놈이 보낸 '우주 전단지'를 보고 '불청객'이 내 앞마당에 불을 질렀다. 내 산에서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당장 와서 치워라.]


"아이고."

김경훈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는 로로 피아나 실내복 위에 급하게 벨루티 가죽 재킷을 걸쳤다.

그의 귀에 꽂힌 JH 오디오 인이어에는 산신령의 분노 섞인 'B' 파동과, 우주에서 낙하하는 미확인 물체의 '기름 끓는 소리(F#)'가 섞여서 들리고 있었다.


"황 보. 출동입니다. 이번엔 'A/S'가 아니라... '화재 진압'이 될 것 같군요."


[팀장님! 냄새가... 냄새가 엄청나요! 지난번 핫바 아저씨보다 백 배는 더 고소해요!]

탱고가 에르메스 하네스를 찬 채 현관으로 달려가며 침을 흘렸다.



테슬라 모델 X '검은 침묵'이 팔공산 순환도로를 질주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 정상 부근은 붉은 불길과 함께 희뿌연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무가 타는 매캐한 냄새가 아니었다.


"이게 무슨 냄새야? 온 산이... 튀김집 같잖아?"

황 소장이 에르메스 스카프로 코를 막으며 인상을 썼다.


비로봉 정상 근처 공터.

그곳에는 거대한 은색 구체가 박혀 있었다. 직경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그 물체는 우주선이라기보다, 거대한 업소용 튀김 솥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우주선 주변의 땅은 뜨거운 열기로 녹아내려, 흙이 끓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익—


우주선의 해치가 열리자, 엄청난 증기와 함께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지난번 핫바 군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압감.

키는 3미터에 달했고, 온몸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최고급 빵가루 갑옷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머리에는 케첩과 머스타드로 장식된 왕관을 쓰고 있었고, 손에는 거대한 강철 꼬치창을 들고 있었다.


[나는 튀김 성단의 제1왕자, '바사삭'이다!]


왕자가 창을 땅에 꽂자, 지면에서 기름 기둥이 솟구쳤다.


[내 동생(핫바 군)을 납치하고 고문한 야만적인 지구인들아! 동생을 내놓지 않으면 이 행성을 '딥 프라잉(Deep Frying)' 해버리겠다!]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고온의 기름이 튀는 듯한 '타닥타닥'거리는 데이터 파열음이 김경훈의 뇌를 때렸다.


"저런. 오해가 깊군요."

김경훈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벨루티 부츠로 뜨거운 땅을 밟으며, 스승이 준 낡은 메트로놈을 손에 쥐었다.


"팀장님! 데이터 분석 결과... 저 왕자, 내부 온도가 200도예요! 접근하면 타버려요!"

조 실장이 차 안에서 외쳤다.


그때, 숲 속에서 낮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팔공산 군왕'이 나타났다. 낡은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주변에는 서슬 퍼런 '땅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늦었군, 장사치."

산신령이 김경훈을 노려봤다.

"내 신성한 산에 기름을 붓다니. 저 놈을 당장 치우지 않으면, 네놈들 '전세 보증금'은 몰수다."



김경훈은 선글라스 너머로 두 존재를 '청진'했다.

한쪽은 200도의 고열을 뿜어내는 '불(Fire)'의 파동(F#).

다른 한쪽은 수천 년 묵은 바위처럼 단단한 '흙(Earth)'의 파동(B).


이 둘이 충돌하면,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폭발'이 일어날 게 뻔했다. 뜨거운 기름에 물(혹은 흙)을 붓는 꼴이었다.


"황 보. 이건 '협상'으로 안 됩니다. 저 왕자는 지금 이성을 잃었어요."


"그럼 어떡해? 3천억 벌어놓고 통구이 되게 생겼는데!"

황 소장이 모이나 가방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흐름을... 바꿔야 합니다."

김경훈은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파동을 막지 말고, 끊지 말고... 네 몸을 통해 흘려보내라.'


"장군님." 김경훈이 산신령에게 말했다.

"저 튀김 기름, 그냥 막으면 산불 납니다. '그릇'이 필요합니다."


"그릇?"

산신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 아주 크고, 뜨거운 것을 담아도 깨지지 않는... 장군님의 '땅'으로 만든 그릇이요."


김경훈은 외계 왕자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오지 마라! 지구인!]

바사삭 왕자가 창을 휘둘렀다. 뜨거운 기름 파도가 김경훈을 향해 덮쳐왔다.


보통 때라면 로로 피아나 코트로 막거나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경훈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든 메트로놈의 태엽을 감았다.


똑, 딱, 똑, 딱.


그는 다가오는 기름 파동의 리듬을 읽었다.

끓는 기름에도 '빈틈(Air)'은 있다. 기포가 터지고 다음 기포가 올라오는 그 찰나의 순간.


김경훈은 태평요술의 코드를 개방했다. 이번에는 '집게'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파동을 기름의 파동과 동기화시켰다.


[운용(Application): 유체 이탈(Fluid Bypass)]


기름 파도가 김경훈을 덮치는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기름이 그를 태우지 않고, 마치 그가 투명 인간인 것처럼 몸을 휘감고 뒤쪽으로 흘러가 버린 것이다.


"지금입니다! 장군님!"



김경훈의 외침에 산신령이 지팡이(지국)를 땅에 내리찍었다.


"건방진 튀김 쪼가리가... 감히 내 땅을!"


쿠구구구궁!


팔공산의 지형이 변했다. 김경훈의 뒤쪽, 기름이 흘러간 곳의 땅이 솟아오르고, 가운데가 움푹 파이며 거대한 '돌솥'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웅덩이가 아니라, 산신령의 권능으로 단단하게 구워진 천연 암석 그릇이었다.


김경훈이 흘려보낸 수 톤의 뜨거운 기름이 그 돌솥 안으로 콸콸 쏟아져 들어갔다.


치이이이익!!


거대한 돌솥 안에서 기름이 끓어올랐다. 산불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열기가 그릇 안에 갇혔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수작이냐!]

자신의 공격이 무력화되자 바사삭 왕자가 당황했다.


"자, 이제 '재료'를 넣을 시간입니다."

김경훈이 아스텔 앤 컨 플레이어를 조작했다.


"조 실장! 핫바 군의 데이터를 '홀로그램'으로 송출해!"


차 안에 있던 조 실장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허공에 거대한 스크린이 펼쳐졌다.

화면에는 지난번 핫바 군이 탱고에게 꼬리를 떼어주고(사실은 흘린 거지만), 멘토스로 폭발할 뻔한 동료(톡톡이)를 걱정하며 떠나는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편집되어 재생되었다. 배경 음악으로는 엔니오 모리꼬네 풍의 웅장한 OST가 깔렸다.


[아... 아우야...!]

화면 속에서 행복하게(?) 떠나는 동생의 모습을 본 왕자의 눈에서 굵은 기름 방울이 떨어졌다.


"보십시오, 왕자님. 동생분은 저희의 '최고급 테라피'를 받고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저 꼬치는... 그가 남기고 간 '우정의 증표'입니다."


김경훈이 유리 케이스에 담긴 꼬치를 높이 들어 보였다.


왕자의 분노(F#)가 급격히 사그라들고, 안도와 감동의 'D 메이저(D)' 파동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이미 끓어오른 기름은 멈추지 않았다. 돌솥 안의 기름이 넘치려 하고 있었다.


[팀장님! 기름이 넘쳐요! 아까워요!]

탱고가 소리쳤다.


"황 보! 당신 차례입니다!"


"뭐? 나보고 어쩌라고!"


"저 기름... 최고급 '우주 식용유'입니다. 버리면 환경오염이고 '손해'입니다!"


'손해'라는 말에 황 소장의 눈이 번쩍였다.

그녀는 델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그녀가 최근 인수한 식자재 유통 회사의 '대량 납품 계약서'였다.


"야! 거기 튀김 왕자! 너네 기름, 내가 다 사줄게! 대신 지구 떠날 때까지 우리랑 '독점 공급 계약' 맺어!"



상황은 기묘하게 정리되었다.

산신령이 만든 거대한 돌솥에는 왕자가 뿜어낸 최고급 기름이 가득 찼고, 왕자는 동생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순한 양(아니, 눅눅한 튀김)이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잔치나 벌이시죠."

산신령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내 산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는데, 그냥 보낼 순 없지 않으냐."


산신령이 손짓하자, 산속에서 온갖 산나물과 약초들이 날아와 돌솥 안으로 들어갔다.

황 소장은 급하게 연락해 공수해 온 대구 명물 납작만두와 떡볶이 재료를 쏟아부었다.


김경훈은 마크 레빈슨 앰프로 흥겨운 '국악'과 'EDM'을 리믹스한 노동요를 틀었다.


[우와아! 튀김이다!]

탱고가 돌솥 주위를 뛰어다녔다.


바사삭 왕자는 자신의 기름으로 튀겨지는 지구의 음식들을 보며 감탄했다.

[오오... 지구인들의 조리법... 흥미롭다. 내 몸의 기름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다니.]


그는 자신의 갑옷 일부(튀김옷)를 떼어내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어보더니,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날 밤, 팔공산 정상에서는 '인간(헬프 데스크)', '신(산신령)', '외계인(왕자)', '귀신(탱고)'이 어우러진, 전 우주적 규모의 '야식 파티'가 벌어졌다.



다음 날 아침.

바사삭 왕자는 황 소장과 '연간 기름 공급 계약(물물교환)'을 체결하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주선(튀김 솥)을 타고 떠났다.


황 소장은 계약서를 흔들며 환호했다.

"봤지? 이게 바로 '창조 경제'야. 외계인 기름으로 치킨 프랜차이즈 내면 대박이라니까!"


김경훈은 피곤한 몸을 롤스로이스 시트에 기대며 쓴웃음을 지었다.

'운용'. 스승의 말이 맞았다. 막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하는 것. 그것이 파국을 막고 상생을 여는 열쇠였다.


하지만 그의 JH 오디오 이어폰 끝에는 여전히 찝찝한 노이즈가 남아 있었다.

왕자가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말.


[조심해라, 지구인. 내 동생의 신호를 쫓아온 건 나뿐만이 아니다. '검은 별'의 포식자들이... 이 맛있는 냄새를 맡고 오고 있다.]


"검은 별..."


그리고 사무실에 돌아온 김경훈을 맞이한 것은 또 다른 불청객의 흔적이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스승의 메트로놈 위치가... 미세하게 바뀌어 있었다.


누군가 다녀갔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고, 조용하게.


조 실장이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팀장님. GBI 본사 데이터베이스가... 털렸어요. 누군가 '태평요술' 관련 파일만 쏙 빼갔어요."


김경훈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흐름이 거대한 태풍의 눈처럼 회오리치고 있었다.


"시작되었군요."


스승이 말한 '상어'.

그리고 GBI를 해킹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것은 외계인이 아니었다.

이 땅에 숨어있던, 아주 오래된 '토종 악성 코드'였다.


(에피소드 37.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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