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는 바이러스와 같다. 숙주가 없으면 전파되지 않는다.
과거의 저주가 '물건'이나 '장소'에 깃들었다면, 현대의 저주는 '네트워크'를 타고 흐른다.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전송되는 악의적인 파동.
그것은 백신 프로그램으로 막을 수 없는, 영혼을 잠식하는 '디지털 역병'이다.
-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38쪽 (사이버 주술 편).
## 에피소드 38. 사이버 무당과 디지털 강령술의 습격
1.
[황 보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
외계인 소동이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핫바 군의 기름 냄새는 빠졌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보이지 않는 '불안'의 냄새였다.
"조 실장, GBI 본사 해킹 건은 어떻게 됐어?"
황 소장이 샤넬 안경을 벗으며 물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다이아몬드 판매 수익금으로 새로 장만한 뱅앤올룹슨 베오사운드 스피커가 놓여 있었지만, 지금은 꺼져 있었다.
"추적 중인데... 이상해요."
조 실장이 에일리언웨어 노트북 모니터에 코를 박을 듯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범인의 흔적이... '코드'가 아니라 '부적' 같아요. 디지털 데이터인데, 그 패턴이 마치... '진언(Mantra)'을 외우는 파동이랑 똑같아요."
"진언?"
소파에 앉아 로로 피아나 가운을 입고 있던 김경훈이 반응했다. 그는 JH 오디오 인이어를 귀에 꽂은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승이 남기고 간 메트로놈의 위치가 바뀐 사건 이후, 그는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네. 그리고 이 신호가... 특정 앱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어요. '너만 봐'라는 라이브 스트리밍 앱인데, 지금 실시간 검색어 1위예요."
"너만 봐? 그거 요즘 애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거잖아."
황 소장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앱스토어를 검색했다.
그 순간, 사무실의 정적을 깨고 탱고가 비명을 질렀다.
[으악! 팀장님! 제 폰이 이상해요!]
탱고가 쥐고 있던 최신형 스마트폰 화면이 시뻘겋게 점멸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의 남자가 춤을 추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 다 죽어... 다 바쳐... 네 영혼을... 바쳐..."
그 목소리는 스피커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듣는 이의 뇌수를 직접 긁어내는 듯한 끔찍한 G샵(G#) 삑사리였다.
"이건..."
김경훈이 탱고의 폰을 낚아챘다. 그의 손끝에 찌릿한 전기 충격과 함께 끈적하고 불쾌한 사념이 전해졌다.
"단순한 해킹이 아닙니다. 이건... '디지털 강령술'입니다."
2.
김경훈은 아스텔 앤 컨 플레이어와 탱고의 스마트폰을 연결했다. 그리고 마크 레빈슨 앰프를 통해 그 신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는 기계음과 주술적인 북소리가 뒤섞인 끔찍한 소음이었다.
[시청자 여러분!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저 거만한 '4대 석학'과 그 일당들을 심판할 날이!]
화면 속의 남자는 용신도령 박PD였다.
하지만 예전의 그 어설픈 관종 무당이 아니었다. 그는 검은색 두루마기에 붉은색 띠를 두르고 있었고, 눈동자는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완전히 잠식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수많은 신도가 붉은 촛불을 켜고 앉아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복잡한 디지털 회로도가 겹쳐진 거대한 '사이버 제단'이 홀로그램처럼 떠 있었다.
"저기... 저거 GBI 로고 아니야?"
조 실장이 화면 한구석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박PD가 들고 있는 제사상 위에, GBI에서 도난당한 서버 모듈과 데이터 저장 장치들이 '신체(神體)'처럼 모셔져 있었다.
"맙소사. 놈들이 GBI의 기술을 훔쳐서 '사이버 신당'을 차렸어."
황 소장이 경악했다.
[자, 쏘세요! 여러분의 '증오'를! '저주'를! 별풍선 대신, 여러분의 '원한'을 쏘세요!]
박PD가 칼춤을 추며 소리쳤다.
그러자 채팅창에 알 수 없는 붉은 글씨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텍스트가 아니었다. 사용자들의 생체 에너지를 갈취하여 변환한 '저주의 데이터 패킷'이었다.
우우웅------.
사무실의 공기가 탁해졌다.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쏟아져 나온 수천 명의 원념이 실체화되어, 검은 안개처럼 사무실 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팀장님... 무서워요... 냄새가... 썩은 생선 냄새가 나요...]
탱고가 책상 위로 뛰어 올라가며 떨었다.
"이런. '비대면'으로 저주를 날리다니. 세상 참 좋아졌군요."
김경훈이 오클리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이미 블레이드(소리굽쇠)를 꽉 쥐고 있었다.
3.
"조 실장. 놈들의 송출 좌표는?"
김경훈이 물었다.
"추적 불가예요! IP가 전 세계 수만 개의 좀비 PC를 경유하고 있어요. 게다가 저 데이터... '블록체인'으로 암호화되어 있어서 삭제도 안 돼요!"
조 실장이 울상을 지었다. "이건 기술적으로 완벽한 '불사신'이에요."
"기술이 완벽하다면, 그 기술을 돌리는 '엔진'을 부숴야죠."
김경훈은 JH 오디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집중했다.
수만 개의 노이즈 속에서, 그는 박PD의 목소리 뒤에 숨겨진 '진짜 소리'를 찾아냈다.
그것은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신도들의 기도 소리도 아니었다.
아주 오래되고, 깊고, 축축한... 지하실의 울림이었다.
... 똑...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그 물방울 소리에 맞춰 거친 숨을 몰아쉬는 거대한 존재의 파동.
"찾았습니다."
김경훈이 눈을 떴다.
"어디야?" 황 소장이 델보 가방에서 가스총을 챙기며 물었다.
"대구 지하철 공사장 폐쇄 구역. 지하 30미터 아래, 물이 고인 곳입니다."
김경훈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은 단순한 방송을 하는 게 아닙니다. 훔쳐낸 GBI의 장비로 '증폭기'를 만들고, 그 지하에 잠들어 있던 '토착 악령'을 깨워서 '서버'로 쓰고 있는 겁니다."
"악령을... 서버로 쓴다고?"
"네. 영적인 에너지를 전기로 바꿔서 송출하는 거죠. 저들은 지금... '귀신'을 갈아 넣어 '방송'을 하고 있는 겁니다."
4.
대구 지하철 3호선 공사가 중단된 폐쇄 터널 입구.
롤스로이스 고스트가 멈춰 섰다.
"여기부터는 걸어가야 합니다. '검은 침묵'의 전파가 닿지 않는 곳이니까요."
김경훈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로로 피아나 코트 대신, 활동성이 좋은 벨루티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
황 소장은 샤넬 운동화(한정판) 끈을 조여 매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가자. 내 50억짜리 다이아몬드, 저 놈들 때문에 기스 나면 안 되니까."
일행이 어두운 터널을 따라 내려가자, 점점 썩은 물 냄새와 함께 기괴한 웅웅거림이 강해졌다.
벽면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그려진 부적들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엉킨 전선들이 뱀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하 30미터. 거대한 공동(空洞)이 나타났다.
그곳은 지옥의 서버실 같았다.
수백 개의 모니터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중앙에는 GBI에서 훔쳐 온 메인 프레임이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기계장치들은 바닥에 고인 검은 물속에 잠겨 있는, 거대한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무언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덩어리였지만,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은 명백한 'F 마이너'의 절규였다.
"오셨군. 4대 석학."
메인 프레임 꼭대기에 박PD가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천년왕국'의 교주 마성진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환영하오. 이곳이 바로 우리의 성전, '디지털 용궁'이오."
마성진이 팔을 벌렸다.
"미친놈들. 여기가 용궁이면 나는 인어공주게?"
황 소장이 코웃음을 쳤다.
"조심하십시오. 저 밑에 있는 것..."
김경훈이 바닥의 검은 물을 가리켰다.
"저건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대구 읍성 시절부터 쌓여온 '원한'의 집합체, '이무기'의 사체입니다."
"이무기?"
"네. 승천하지 못하고 썩어버린 용의 실패작. 저들은 저 이무기의 원한을 동력원으로 쓰고 있습니다."
박PD가 낄낄거렸다.
"역시 눈치는 빠르네. 하지만 늦었어! 지금 접속자 수가 10만 명을 돌파했다! 이 원한의 에너지가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 세상은 우리 '천년왕국'의 발아래 무릎 꿇게 될 것이다!"
박PD가 엔터키를 눌렀다.
그러자 검은 물이 끓어오르며, 이무기의 형상이 비명과 함께 솟구쳐 올랐다.
쿠아아아앙!
5.
이무기의 포효와 함께 엄청난 음압이 김경훈 일행을 덮쳤다.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의를 담은 충격파였다.
"으윽!"
조 실장이 나가떨어지고, 황 소장도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팀장님! 귀가... 귀가 아파요!]
탱고가 괴로워하며 뒹굴었다.
오직 김경훈만이 오클리 선글라스를 쓴 채 버티고 있었다.
그의 벨루티 재킷 자락이 거센 바람에 펄럭였지만, 그의 두 발은 땅에 뿌리박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크크크. 어떠냐! 이것이 '신의 목소리'다! 네놈의 그깟 소리굽쇠로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박PD가 광소했다.
김경훈은 천천히 아스텔 앤 컨 플레이어를 꺼냈다.
그리고 스승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파동을 막지 말고, 끊지 말고... 네 몸을 통해 흘려보내라.'
"박PD. 당신은 한 가지 실수를 했습니다."
김경훈이 플레이어를 앰프가 아닌, 바닥에 고인 '물'에 던져 넣었다.
풍덩.
"뭐 하는 짓이야? 비싼 기계를!"
"이무기는... 물에서 났으나 물을 원망하는 존재."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꺼내 들었다.
"당신들은 그 원망을 억지로 쥐어짜서 전기로 바꿨지만... 나는 그 원망을 '해방'시켜 줄 겁니다."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튕겼다.
피이이이이잉—.
A-440Hz.
하지만 이번 파동은 공기를 타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김경훈은 자신의 파동을 물속에 던져진 플레이어와 '동기화(Sync)'시켰다.
물속에서부터 맑고 청아한 울림이 퍼져나갔다.
그것은 이무기의 'F 마이너(원한)' 파동을 상쇄시키는, 따뜻하고 고요한 'C 메이저(치유)'의 파동이었다.
"안 돼! 멈춰!"
마성진 교주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물이 맑게 변하기 시작했다. 썩은 내가 사라지고, 상쾌한 물 냄새가 차올랐다.
고통스러워하던 이무기의 형상이 스르르 풀리며,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하늘로(터널 천장으로) 솟구쳤다.
촤아아아아!
"으아악! 내 서버! 내 데이터!"
박PD가 비명을 질렀다.
정화된 물기둥이 서버 장비들을 덮쳤다. GBI의 최첨단 장비들이 합선을 일으키며 펑펑 터져 나갔다.
[시스템 과부하. 강제 종료합니다.]
방송이 끊겼다.
신도들의 광기도, 박PD의 야망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6.
터널 안은 고요했다.
물은 다시 잔잔해졌고, 장비들은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박PD와 마성진은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덜덜 떨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내 천년왕국이..."
"왕국은 끝났습니다."
황 소장이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언제나처럼 계산기가 들려 있었다.
"불법 점거, 전기 도둑질, 문화재(이무기 터) 훼손, 그리고... 내 옷 버린 값."
그녀가 계산기를 박PD의 이마에 딱 붙였다.
"평생 감옥에서 노역해서 갚아도 모자랄걸?"
경찰특공대가 들이닥쳐 그들을 연행해 갔다.
김경훈은 물가에 서서, 맑아진 수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더 이상 이무기의 원혼은 없었다. 대신,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영혼이 마침내 안식을 찾은 듯한 평온함만이 남아 있었다.
"잘 가십시오. 이번엔... 진짜 바다로 가시길."
김경훈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팀장님! 이거 봐요! 물고기!]
탱고가 물속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어느새 맑아진 물속에는 작은 피라미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래. 생명이 돌아왔구나."
사무실로 돌아가는 차 안.
조 실장이 말했다.
"팀장님. GBI 서버에서 로그를 분석해봤는데... 놈들이 이무기 데이터를 백업해 둔 것 같아요. 어쩌죠?"
김경훈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껍데기만 가져갔으니까요. 진짜 '알맹이(영혼)'는 이미 떠났습니다."
그는 주머니 속 블레이드를 만지작거렸다.
'운용'.
흐름을 바꾸는 힘.
그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세상을 구하는 건 거창한 힘이 아니라, 막힌 곳을 뚫어주고 탁한 것을 맑게 해주는... 아주 작은 '조율'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하지만 그의 JH 오디오 이어폰 끝에는, 여전히 꺼지지 않는 미세한 잡음이 남아 있었다.
이무기가 떠난 자리에 남은, 또 다른 누군가의 흔적.
'검은 별'의 그림자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에피소드 38.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