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데스크 Ep.39

by 김경훈


'거래'는 등가교환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내어주는 것.

하지만 상대가 '신(God)'이라면? 더구나 그 신이 규칙 따위는 가볍게 씹어 드시는 '제천대성'이라면?

그때의 거래는 '도박'이 된다. 판돈은 내 '목숨'이고, 배당금은 '금지된 지식'이다.

영적 균형 학회 4대 석학, 김경훈.

「조율과 축출에 관한 소고 - 개정판 서문」 (자가 출판, 2025년) 39쪽 (위험한 거래 편).



## 에피소드 39. 여의금고봉의 '심장'과 태평요술의 '뒷페이지'



1.


[황 보 부동산 컨설팅] 사무실.

박PD와 사이비 종교의 소동이 끝난 후, 사무실은 모처럼 평화로웠다. 물론 그 평화는 황 소장이 샤넬 계산기를 두드리며 내는 경쾌한 타건음과, 탱고가 에르메스 하네스를 찬 채 육포를 뜯는 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김 팀장, 이번 달 매출 장난 아니야. GBI 로열티에, 이무기 퇴치 사례비까지... 이대로면 강남 빌딩도 꿈은 아니겠어."


황 소장은 루이 비통 트렁크에 현금 뭉치를 차곡차곡 쌓으며 행복해했다. 그녀의 금발 웨이브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김경훈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마크 레빈슨 헤드폰을 끼고 있었다. 슈어 정전식 이어폰으로 듣던 '정적' 대신, 오늘은 좀 더 풍성하고 따뜻한 포칼(Focal) 유토피아 헤드폰으로 클래식 교향곡을 감상 중이었다.


"황 보. 돈도 좋지만, '파동' 관리에 신경 쓰시죠. 너무 들떠 있으면 'C# 삑사리'가 납니다."


"시끄러워. 돈 세는 소리가 최고의 교향곡이야."


평화로운 오후 2시.

햇살이 사무실 통유리를 통해 따스하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 쾅!


갑자기 천장이 무너질 듯한 굉음과 함께, 사무실 한복판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유리가 깨지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황 소장의 루이 비통 트렁크가 충격으로 엎어지며 돈다발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꺄악! 내 돈!"

황 소장이 비명을 지르며 돈다발을 향해 몸을 날렸다.


먼지 구름 속에서, 황금색 털이 빛나는 존재가 킬킬거리며 걸어 나왔다.

찢어진 청바지에 가죽 재킷, 그리고 머리에는 금속 테(긴고아)를 두른, 펑크 록 스타 같은 모습의 남자. 어깨에는 붉은색 야구 배트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다.


제천대성이었다.



2.


"여어, '장님 전파사'. 잘 지냈냐?"


제천대성이 김경훈의 책상 위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는 마크 레빈슨 앰프의 볼륨 노브를 발가락으로 돌려 음악을 꺼버렸다.


"누... 누구야! 남의 사무실 천장을 뚫고 들어와서!"

황 소장이 돈다발을 주워 담으며 씩씩거렸다. 그녀는 골프채를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아줌마, 시끄러워. 나 지금 기분 별로니까 건드리지 마."

제천대성이 눈을 부라리자, 황 소장의 입이 턱 막혔다.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G# 삑사리' 파동은,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혼돈' 그 자체였다.


[깨갱...]

탱고는 이미 소파 밑으로 기어들어가 꼬리를 말았다. '저승 관리국'조차 감당 못 하는 '특급 요주의 인물'이 눈앞에 있었다.


김경훈이 천천히 헤드폰을 벗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침착하게(혹은 침착한 척하며) 물었다.


"아이고, '혼돈' 환자님. 예약도 없이 '왕진'을 오셨습니까. 천장은 '수리비' 청구하겠습니다."


"수리비? 하! 이 건물을 통째로 사 줄 수도 있어."

제천대성이 코웃음을 쳤다.

"야, 너 지난번에 좀 하더라? 내 바이러스를 가지고 놀던데? '운용'인가 뭔가 하는 거, 제법이었어."


"과찬이십니다. 그저 '디버깅'을 좀 했을 뿐이죠."


"그래서 말인데."

제천대성이 김경훈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에게서 나는 냄새는 화약 냄새와 오래된 과일 향이 뒤섞인, 기묘하고 위험한 향이었다.


"나랑 '거래' 하나 하자."



3.


"거래라니요. 저는 '신'들과는 거래 안 합니다. '부가세' 문제로 피곤하거든요."

김경훈이 로로 피아나 코트의 먼지를 털며 거절했다.


"돈 얘기가 아냐."

제천대성이 어깨에 메고 있던 붉은 몽둥이를 김경훈 앞에 툭 던졌다.

그것은 여의금고봉이었다. 하지만 예전의 그 압도적인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봐. 껍데기만 남았어."

제천대성이 투덜거렸다.

"지난번 '저승 서버'에서 니네 '스승'이랑 한판 붙을 때, 그 영감탱이가 내 여의봉의 '코어(Core)'를 빼갔어. '너무 시끄럽다'나 뭐라나."


김경훈이 여의봉에 손을 댔다.

차가웠다.

원래라면 만지는 순간 손이 타버릴 정도로 뜨거운 '양(陽)'의 기운이 넘쳐야 할 물건이, 지금은 그저 무거운 쇠막대기에 불과했다.


"'스승'님이... '코어'를요?"


"그래. 그 영감이 그걸 어딘가에 숨겨놨어. 내가 찾으려고 온갖 수를 다 써봤는데, '정적'으로 결계를 쳐놔서 냄새조차 못 맡겠어."


제천대성이 김경훈을 빤히 쳐다봤다.

"근데 너한테서 그 영감 냄새가 나. 그리고 네 놈의 그 '버그(태평요술)'... 그게 있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김경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스승이 여의봉의 힘을 빼돌렸다? 왜? 단순히 시끄러워서? 아니면 더 큰 '계획'이 있는 걸까.

그리고 제천대성은 그 힘을 되찾기 위해 자신을 찾아왔다. 이것은 기회일까, 위기일까.


"제가 그걸 찾아드리면, 저에게는 뭐가 남죠?"

김경훈이 물었다.


제천대성이 씨익 웃었다.

그는 품에서 낡고 바스라질 것 같은 고서(古書) 한 권을 꺼냈다.


"이거 줄게."


김경훈의 JH 오디오 인이어가 맹렬하게 반응했다. 고서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동은, 그가 14살 때 다운로드했던 '태평요술'의 파동과 정확히 일치했다. 아니, 그보다 더 깊고 원초적인...


"'태평요술'의... '히든 챕터(Hidden Chapter)'야."

제천대성이 속삭였다.

"네가 가진 건 '데모 버전'이잖아? 이건 '정식판' 중에서도 '관리자 모드' 해제 코드야. 이것만 있으면... 너, 그 'F 마이너' 트라우마 따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어."


김경훈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17살의 절망. 그 지긋지긋한 소음과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힘.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4.


"잠깐만요!"


그때, 조 실장이 에일리언웨어 노트북을 들고 뛰어왔다.

"팀장님! 그 책... 파동이 너무 위험해요! GBI 데이터베이스 조회 결과, 저건 '금서(Forbidden Book)' 목록 최상위에 있는 거예요! 저걸 열면... 팀장님 뇌가 타버릴 수도 있다구요!"


조 실장의 경고에 황 소장도 거들었다.

"김 팀장, 하지 마. 3천억이나 벌었는데 굳이 목숨 걸 필요 있어? 저 원숭이 놈은 사기꾼 냄새가 난다고!"


하지만 김경훈은 고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책이 부르고 있었다.

'이리 와... 네 고통을 끝내줄게... 완벽한 정적을 줄게...'


"재미있지 않냐?"

제천대성이 김경훈의 귓가에 속삭였다.

"겁쟁이로 살래, 아니면 신이 될래?"


김경훈이 손을 뻗었다.

고서에 손가락이 닿으려는 순간.


... 팅.


그의 주머니 속에서, 블레이드(소리굽쇠)가 스스로 진동했다.

A-440Hz.

스승이 가르쳐준, 가장 기본적이고 순수한 기준음.


그 맑은 소리가 김경훈의 혼탁해진 정신을 깨웠다.


'욕망은... 소음이다.'

스승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김경훈이 손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죄송합니다만, 제 '업그레이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뭐?" 제천대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 '책'은 가짜군요."

김경훈이 차갑게 웃었다.

"표지는 '태평요술'이지만, 내용은... 당신의 'G# 삑사리'로 가득 찬 '바이러스 덩어리' 아닙니까. 제가 그걸 열면, 제 몸을 숙주 삼아 '강림'하시려는 속셈이시겠죠."


"...... 칫."

제천대성이 혀를 찼다.

"들켰네. 역시 '4대 석학'이라 눈치가 빨라."


그가 고서를 바닥에 던지자, 책은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제천대성의 장난기 어린 표정이 사라지고, 진짜 '마왕'의 살기가 드러났다.


"그럼, 거래는 취소다. 힘으로 뺏는 수밖에."



5.


제천대성이 껍데기만 남은 여의봉을 휘둘렀다. 코어는 없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무시무시한 흉기였다.


"황 보! 피해!"


김경훈이 황 소장을 밀치고 로로 피아나 코트를 펼쳐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물리적인 타격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쾅!

여의봉이 바닥을 내리쳤다. 사무실 바닥이 갈라졌다.


[크르릉!]

탱고가 용기를 내어 뛰쳐나왔다. 그의 몸이 커지며 '저승의 맹수' 형상을 갖춰갔다.

하지만 제천대성은 탱고를 한 손으로 가볍게 쳐냈다.

[깨갱!]


"다들 비켜! 내가 상대한다!"


김경훈이 아스텔 앤 컨 플레이어를 켰다.

이번엔 음악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번 '박PD' 사건 때 추출했던, '산신령'의 'B(시)' 파동을 재생했다.


묵직한 땅의 기운이 사무실을 채웠다.


"이건... 그 영감탱이 냄새잖아?"

제천대성이 멈칫했다.


"땅은 혼돈을 덮습니다."

김경훈이 앰프의 출력을 최대로 높였다.


우우웅------.


산신령의 파동이 제천대성의 발을 묶었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제천대성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이까짓 걸로 날 막겠다고?"

제천대성이 억지로 발을 떼려 했다.


그때, 김경훈이 블레이드를 꺼내 제천대성의 머리를 겨눴다.

정확히는, 그의 머리에 씌워진 '긴고아(금고아)'를.


"조 실장! 주파수 18,000Hz! 쏴!"


조 실장이 노트북 엔터키를 눌렀다.

고주파 신호가 긴고아를 강타했다.


찌이이잉!


"으아아악! 머리야!"

제천대성이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에 뒹굴었다.

과거 삼장법사가 주문을 외우면 조여들던 그 고통이, 디지털 신호로 재현된 것이다.


"이... 비열한 놈들...!"


"비즈니스입니다."

김경훈이 땀을 닦으며 말했다.


"돌아가십시오. 당신의 '코어'는... 제가 찾게 되면 연락드리죠. 그때 다시 '정식 계약'합시다."


제천대성은 고통 속에서도 킬킬거렸다.

"크크크... 재밌어... 아주 재밌어... 좋아. 오늘은 물러가주지. 하지만 기억해라. 그 '코어'를 찾는 순간... 진짜 지옥이 열릴 거다."


제천대성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뚫린 천장으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6.


"하아... 죽다 살았네."

황 소장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천장 수리비... 이번엔 누구한테 청구해? 저 원숭이 놈 주소도 모르는데."


김경훈은 박살 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스승'의 안배가 아니었다면, '산신령'의 파동을 미리 채취해두지 않았다면, 오늘 헬프 데스크는 끝장났을 것이다.


'여의봉의 코어...'

김경훈은 생각에 잠겼다. 스승은 왜 그것을 숨겼을까. 그리고 제천대성은 왜 그렇게 그것에 집착할까.


그때, 조 실장이 다급하게 불렀다.

"팀장님. 이것 좀 보세요."


그녀의 노트북 화면에, 국립중앙도서관의 CCTV 영상이 떠 있었다.

한밤중의 도서관. 아무도 없는 서고에서, 책들이 저절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 파동..."

김경훈이 모니터에 손을 댔다.

그것은 '지식'의 파동이자, 아주 오래된 '기억'의 파동이었다.


"황 보. 견적서 준비하시죠."

김경훈이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다음 '환자'는... '도서관'에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저곳에 '코어'의 단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에피소드 39.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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