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의 아키텍처

The Architecture of Contact

by 김경훈


우리는 ‘책을 읽는다’고 말할 때, 그것을 단순히 지식의 습득 과정으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물리학의 관점에서 독서는 ‘파괴’이자 ‘창조’의 행위다. 그대가 무심코 페이지를 넘길 때, 집게손가락과 종이의 섬유소 사이에서는 거대한 마찰이 일어난다. 그 미세한 가열로 전자가 궤도를 이탈하고, 입자들이 충돌하며, 미시 세계에서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페이지 넘김’이 그 종이 위 먼지의 세계에서는 ‘빅뱅(Big Bang)’일지도 모른다.


우리 우주 역시 마찬가지다. 138억 년 전의 그 대폭발은 어쩌면 거대한 차원의 누군가가 우주라는 책의 페이지를 무심코 넘기며 발생한 정전기였거나, 쏟아진 맥주 거품을 닦아내는 손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각을 잃고 오직 ‘손끝’으로만 세상을 읽어야 하는 한 남자의 경우, 그가 일으키는 ‘마찰’은 얼마나 많은 우주를 탄생시키고 소멸시키고 있는가. 이것은 자신의 손가락이 가진 어마어마한 파괴력과 창조력을 자각하게 된 한 남자가 그 손으로 가장 소중한 우주를 어루만지는 어느 건조한 겨울 오후의 기록이다.



경북대학교 중앙도서관 시각장애인 열람실.

히터가 돌아가는 건조한 공기 속에서 김경훈은 점자도서관의 묵직한 점자책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스으윽, 스으윽.’

그의 검지가 요철(凹凸) 위를 미끄러지는 소리는 일반 책장을 넘기는 소리보다 훨씬 거칠고 리듬감 있었다. 그는 지금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점자본을 읽는 중이었다.


“... 그대가 이 페이지를 넘길 때, 무한소의 어딘가에 새로운 우주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는 손가락을 멈췄다.

그의 뇌가 ‘연구 모드’로 급가동했다. 일반적인 독서(눈으로 훑기)는 비접촉식이다. 하지만 점자 독서는 100% ‘접촉식’이며, 필연적으로 강력한 ‘마찰’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눈으로 읽는 사람들보다 수천 배 더 강력한 에너지를 종이 위에 쏟아붓고 있는 셈이군.’


그는 상상했다. 그의 거친 지문이 점자의 돌기 하나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그 미시 세계의 원주민들에게는 히로시마 원폭의 수천 배에 달하는 열에너지가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미안하군.” 그가 점자책을 향해 짓궂게 중얼거렸다. “내 지적 호기심 때문에 너희 문명이 또 멸망했어.”


그때였다. 그가 이 거창한 망상에 빠져 손을 휘젓다가 책상 위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을 ‘툭’ 하고 건드렸다.

‘와장창!’

플라스틱 컵이 쓰러지며 얼음과 액체가 쏟아지는 소리.



“... 젠장.”

김경훈은 얼어붙었다. 그의 손끝에 차갑고 끈적한 액체가 닿았다.

그의 관점에서 이것은 단순한 ‘실수’였다. 하지만 바닥을 기어 다니던 개미나 먼지 진드기의 입장에서 이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아의 홍수’였다. 거대한 신(God)인 김경훈이 단지 팔을 한 번 휘저음으로써 발생한, 대홍수.


“탱고! 피해! 홍수 났다!”

책상 밑에서 자고 있던 탱고가 화들짝 놀라 튀어 나갔다. 녀석은 주인의 뜬금없는 외침보다, 바닥에 흐르는 커피 냄새에 더 관심을 보이며 킁킁거렸다.


김경훈은 휴지를 찾아 더듬거리며 생각했다.

‘그래, 그 책 말이 맞아. 나의 사소한 움직임이 누군가에게는 세계의 종말이야.’

그는 축축해진 바지를 닦으며, 자신이 방금 멸망시킨 ‘바닥 문명’에 대해 3초간 묵념했다. 이것은 비극이 아니었다. 이것은 필연적인 ‘물리 법칙’이었다.



“... 거기서 뭐 해? 기우제 지내?”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그의 젖은 손을 잡아끌었다. 보보였다. 그녀는 강의가 끝나고 그를 데리러 온 참이었다. 그녀는 혀를 차며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김경훈이 엎지른 ‘대홍수’를 능숙하게 수습하기 시작했다.


“아니, 우주의 섭리를 체험 중이었어.” 김경훈이 멋쩍게 웃으며 변명했다. “내 손가락 마찰열이 빅뱅을 일으킬 수 있다길래, 실험해 보다가… 그만 홍수를 일으켰네.”


보보는 바닥을 닦고 나서 그의 끈적이는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리고 물티슈로 꼼꼼하게, 손가락 사이사이를 닦아주었다.

‘스삭, 스삭.’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손바닥을 문지르는 감촉. 따뜻하고, 부드럽고, 조금은 간지러운 그 마찰.


“자기야.” 김경훈이 나직하게 불렀다.

“왜,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으려고.”

“방금… 느꼈어?”

“뭘?”


“당신이 내 손을 닦아줄 때 일어난 마찰열 말이야.”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책에 따르면, 이 접촉으로 인해 전자들이 이동하고, 미시 세계에선 문명이 탄생한대.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내 손을 잡음으로써, 내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우주가 새로 태어났을까?”


보보는 피식 웃으며 그의 이마에 딱밤을 가볍게 놓았다.

“글쎄. 우주는 모르겠고, 당신 심박수가 빨라진 건 알겠네. 얼굴 빨개졌어, 박사님.”



도서관을 나와 캠퍼스를 걷는 길. 바람이 제법 찼다.

김경훈은 보보의 팔짱을 끼고, 탱고의 리드 줄을 잡고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보보. 우리 우주도 누군가의 책장 한 구석일지 모른대.”

“응?”

“우리가 겪은 ‘빅뱅’이 사실은 거대한 거인(Giant)이 맥주 거품을 닦아낸 흔적일 수도 있다는 거야. 어떤 ‘깨어남’의 순간.”


그는 2004년, 15세의 겨울을 떠올렸다. 그 사고.

그 순간은 그에게 ‘세상의 종말’이었다. 암흑과 정적. 차갑고 공허했던 그의 우주.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신(God)이나 운명이라는 거인이 김경훈이라는 책의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해 페이지를 거칠게 넘긴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 그가 말했다. “누군가가 그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다면, 마찰열(사고)은 없었겠지.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았을 거야. 하지만….”

그는 보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랬다면, 지금의 이 우주도 없었겠지. 당신을 만나고, 탱고를 만나고, 이렇게 손을 잡고 걷는 이 ‘세계’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야.”


그는 깨달았다.

마찰은 뜨겁고, 충돌은 아프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은 위기다.

하지만 그 ‘가열’과 ‘격변’이 없으면, 새로운 문명(사랑)은 탄생하지 않는다.

그의 실명은 그의 인생이라는 책에서 가장 격렬했던 ‘마찰’이었지만, 그 덕분에 지금의 따뜻한 우주가 잉태된 것이다.


“나는….” 그가 보보의 손을 더 깊이 주머니 속으로 끌어당겼다. “거인이 페이지를 넘겨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비록 그 과정이 좀 많이… 아팠지만.”


보보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래. 덕분에 내가 당신이라는 우주에 입주할 수 있었으니까. 세입자로서 아주 만족해. 난방(마음)도 잘 되고.”


탱고가 앞에서 ‘멍!’ 하고 짖었다. ‘나도 입주민이야!’라는 듯이.



그날 밤, 김경훈은 아이폰을 들어 오늘의 사유에 대한 주석을 남겼다.



‘제목: 접촉(接觸)의 아키텍처, 혹은 손끝의 빅뱅.

우리는 미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걸어 다니는 거인들이다.

나의 손끝이 점자 위를 스칠 때, 나의 지팡이가 땅을 두드릴 때, 나는 끊임없이 마찰열을 일으키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15세의 사고는 내 인생의 ‘빅뱅’이었다. 거대한 충돌이었고 파괴였지만, 그 폭발의 먼지 속에서 ‘현재’라는 별들이 태어났다.

결론: 그대 알고 있는가? 그대의 힘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를.

우리가 서로의 손을 잡고 문지르는 그 사소한 행위가 사실은 서로의 차가운 우주를 데우고, 생명이 살 수 있는 온도를 만드는 ‘창조’의 행위라는 것을.

… 오늘 쏟은 커피 때문에 바지가 끈적거린다. 내일은 세탁소에 가야겠다. 세탁기 안에서는 또 어떤 문명이 물살에 휩쓸려 사라지려나. 미안하다, 미생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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