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夢)의 아키텍처

The Architecture of Dreaming

by 김경훈


우리는 잠을 ‘죽음의 예행연습’이라 부르거나, 기껏해야 피로한 육체의 ‘충전 시간’ 정도로 취급한다. 꿈은 그저 뇌세포가 무작위로 발사하는 노이즈(Noise)이며, 아침이 되면 휘발되는 무의미한 환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밀림의 ‘세노이(Senoi) 부족’에게 꿈은 또 하나의, 어쩌면 더 중요한 ‘현실’이었다. 그들은 아침 식탁에서 “잘 잤니?” 대신 “어제 무슨 꿈을 꾸었니?”라고 물었다. 꿈속에서 누군가와 싸웠다면 현실에서 그에게 사과하고 선물을 주어야 했고, 호랑이에게 쫓겼다면 다음 날 밤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 그 호랑이를 사냥해야 했다. 그들에게 꿈은 도피처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치열한 ‘시뮬레이션 룸’이었다.


이것은 ‘현실’이라는 감각의 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꿈’이라는 무한한 영토에서 어떻게 비행(Aeronautics)을 연습하는지, 그리고 그 비행의 기술을 어떻게 다시 현실의 사랑으로 착륙시키는지에 대한, 어느 나른한 일요일 아침의 기록이다.



김경훈의 아파트 주방에는 갓 내린 커피의 고소한 향과 버터에 구운 토스트 냄새가 가득했다. 햇살이 베란다 창을 넘어와 거실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김경훈은 등 뒤로 느껴지는 따스한 열기로 그것을 알았다).


“자기야.”

식탁 맞은편에서 토스트에 잼을 바르던 보보가 물었다.

“어젯밤에 무슨 꿈꿨어?”


김경훈은 커피잔을 입에 가져가려다 멈췄다. 보보가 뜬금없이 세노이 부족의 인사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꿈? 갑자기 웬 꿈 타령이야? 로또라도 사러 가게?”


“아니.” 보보가 나이프로 잼을 펴 바르는 소리(슥, 슥)가 났다. “어제 읽은 책에서 봤는데, 세노이 부족은 아침마다 꿈 이야기를 한대. 꿈에서 싸우면 현실에서 화해하고, 꿈에서 사랑하면 현실에서 선물을 준대. 멋지잖아. 그래서 우리도 해보자고.”


김경훈은 피식 웃었다.

“철학 박사님께서 이제는 민속학까지 섭렵하시나. 좋아. 꿈이라….”


그는 잠시 침묵했다. 시각장애인인 그에게 꿈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현실에서 그의 세계는 소리와 촉각으로 구축되지만, 꿈속에서 그는 여전히 15세 이전의 시각적 기억을 재생한다. 꿈은 그가 유일하게 ‘보는’ 시간이다.


“나… 어제 나는 꿈꿨어.” 그가 말했다.

“오, 비행몽? 세노이 부족이 제일 쳐주는 꿈인데! 어디를 날았어?”


“그랜드 캐니언.” 그가 회상했다. “10년 전, 미시간 유학 시절에 친구들이랑 갔던 곳. 현실에선 지팡이 짚고 조심조심 걸었는데, 어제 꿈에선 그냥 협곡 사이를 슈퍼맨처럼 날아다녔어. 바람 소리가 엄청났고, 붉은 암벽들이… 눈이 시릴 정도로 선명했어.”


그의 목소리에 묘한 들뜸이 묻어났다. 꿈속에서 그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그는 중력을 거스르고, 시야의 한계를 넘어서는 전지전능한 비행사였다.


“와….” 보보가 감탄했다. “축하해, 김 비행사. 세노이 부족 같았으면 마을 잔치 열어줬을 텐데. 내가 대신 선물 줄게.”

그녀는 자신의 접시에 있던 가장 바삭하게 구워진 베이컨 한 조각을 그의 접시로 옮겨주었다.

“자, 비행 수당이야.”



김경훈은 베이컨을 씹으며(그것은 짭조름하고 완벽했다),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보보. 세노이 법칙에 따르면, 당신은 나한테 선물을 더 줘야 해.”

“왜?”


“꿈속 비행하다가 내가 누구를 만났게?”

“누구?”

“당신. 당신이 절벽 끝에 매달려 있더라고.”

“뭐? 내가?”

“응. 그래서 내가 급강하해서 당신을 공주님 안기로 딱! 구출해 줬지. 꿈속의 나는 팔 근육도 빵빵하거든.”


그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꿈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은 현실에서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한다며? 자, 뭘 줄 거야?”


보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야, 김경훈.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며. 내가 절벽에 매달려 있다는 건, 평소에 네가 나를 ‘짐’으로 생각한다는 거 아니야? 오히려 네가 나한테 사과해야지!”


“아니, 무슨 해석이 그래? 그건 ‘구원자 콤플렉스’가 아니라, 순수한 ‘영웅 서사’라고!”


두 사람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실체 없는 꿈의 해석을 두고 유쾌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었다. 그들은 꿈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실의 관계를 다시 조율하고 있었다.


“좋아.” 보보가 항복했다. “영웅님. 선물은 나중에 생각하고. 근데 나는 어제 악몽 꿨어.”

“무슨 꿈?”


“당신이… 갑자기 사라지는 꿈.”

보보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사람들이 많은 광장이었는데, 내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당신 손을 놓쳤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고, 당신 지팡이 소리도 안 들리고….”


김경훈은 웃음기를 거두었다. 그것은 그녀가 평소에 품고 있는 장애인 연인을 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무의식적 불안이었다.

세노이 부족은 악몽 속의 적대자와 마주치면 도망치지 말고 싸워 이기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상실’이라는 적과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그때, 식탁 아래서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탱고였다. 녀석은 옆으로 누워 자면서 허공을 향해 네 다리를 열심히 휘젓고 있었다. 입으로는 작은 소리로 ‘왕! 앙!’ 하고 잠꼬대를 했다.


“이것 봐.” 김경훈이 분위기를 바꾸려 밝게 말했다. “탱고도 꿈꾸나 봐. 엄청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보보가 식탁보를 들쳐보며 웃었다.

“어머, 진짜네. 눈꺼풀이 막 떨려. 렘(REM) 수면 상태인가 봐. 얜 꿈에서 뭘 할까?”


“글쎄. 안내견 은퇴하고 넓은 초원을 달리는 꿈? 아니면… 내가 흘린 소시지를 훔쳐 먹는 꿈?”

김경훈은 잠든 탱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노이 부족 논리라면, 탱고가 깨어나면 내가 선물을 줘야겠네. 꿈속에서 나를 위해 열심히 길을 찾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는 보보의 손을 찾아 잡았다.

“보보. 세노이 사람들은 악몽을 꾸면, 다음 날 다시 그 꿈으로 들어가서 결말을 바꾸라고 했어.”

“어떻게?”


“오늘 밤에 다시 그 광장으로 가.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손을 놓치는 게 아니라, 내가 내비게이션을 켜는 거지. ‘보보, 나 여기 있어! 2시 방향 10미터!’ 하고.”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꿈속의 나는 눈이 보이니까. 내가 당신을 먼저 찾을게. 그러니까 도망가지 말고, 꿈속에서도 나를 믿어.”


보보는 그의 말에, 밤새 그녀를 괴롭혔던 불안감이 안개처럼 걷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그녀만의 단단한 아키텍트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그들은 산책을 나섰다. 1월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상쾌했다.

김경훈은 오늘따라 발걸음이 가벼웠다. 간밤의 ‘비행’ 감각이 아직 몸에 남아있는 듯했다. 세노이 부족이 말한 ‘꿈의 항공학’은 단순히 자각몽을 꾸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꿈에서 얻은 ‘전지전능한 자신감’을 현실의 육체로 가져오는 기술이었다.


그는 탱고의 리드 줄을 잡고, 보보의 팔짱을 끼고, 평소보다 훨씬 당당하게 보도블록을 밟았다.

“자기야, 나 지금 날고 있는 것 같아.”

“그래? 그럼 착륙 잘해. 앞에 턱 있어.”

“라져(Roger).”


그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었다.

꿈속의 시각적 자유는 사라졌지만, 현실에는 보보의 체온과 탱고의 든든한 리드, 그리고 차가운 바람의 촉감이 있었다. 이것은 꿈보다 더 선명하고 다채로운 ‘리얼리티’였다.


“보보.”

“응?”

“아까 꿈값으로 베이컨 줬잖아. 부족해.”

“뭐가 더 필요한데?”

“세노이 부족은 성적인 꿈을 꾸면, 현실의 연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했거든.”

“... 야, 너 아까는 비행 꿈이라며?”

“사실은… 비행하다가 동굴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당신이랑… 읍읍.”


보보가 그의 입을 막으며 등짝을 때렸다. (찰싹)

“시끄러워! 이건 현실의 응징이다!”



‘제목: 꿈의 아키텍처, 혹은 무한의 리허설.

세노이 부족에게 꿈은 ‘도피’가 아니라 ‘삶의 연장’이었다. 그들은 꿈을 통해 현실의 갈등을 풀고, 두려움을 극복했다.

나에게 꿈은 잃어버린 ‘시각’이 복원되는 유일한 시공간이다. 나는 그곳에서 날고, 본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 비행을 마치고 다시 이 어둠 속으로 착륙했을 때다. 꿈속의 자유를 현실의 자신감으로 치환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꿈의 항공학’이다.

결론: 오늘 밤, 나는 다시 ‘루시드 드림(자각몽)’을 시도할 것이다. 이번에는 보보가 꾼 악몽 속 광장으로 찾아가야겠다. 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큰 소리로 외쳐야지. “나 여기 있어. 그리고 꿈 깨도, 계속 옆에 있을 거야.”

… 그나저나, 탱고 녀석. 아까 잠꼬대로 짖던데, 나한테 욕한 건 아니겠지? 내일 특식으로 입막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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