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의 아키텍처

The Architecture of Attitude

by 김경훈


우리는 신발을 ‘이동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발을 보호하고, 목적지까지 효율적으로 걷기 위한 도구라고. 그래서 우리는 운동화의 푹신한 쿠셔닝과 가벼움을 찬양한다. 그것은 ‘편안함’의 아키텍처다.


하지만 ‘구두’는 다르다. 구두는 불편하다. 딱딱한 가죽, 미끄러운 홍창(Leather Sole), 발을 조여 오는 긴장감. 그러나 그 불편함이 역설적으로 우리를 바로 세운다. 구두를 신으면 발을 끌 수 없다. 또각거리는 굽 소리는 나의 보행을 청각적으로 감시한다. 구두는 신체의 가장 낮은 곳에서 척추를 타고 올라와 뇌의 자세까지 교정한다.


‘패션은 태도다.’ 이 낡은 명제가 시각을 잃은 남자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이것은 2년의 기다림 끝에 ‘전설의 구두’를 손에 넣은 한 남자가 가죽 냄새와 구두약 냄새 속에서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광(Shine)’내고 있는지에 대한, 어느 새해 초의 반짝이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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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는 묘한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택배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김경훈은 마치 성유물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상자를 개봉하고 있었다.


“자기야, 그게 뭐야? 무슨 폭탄 해체해?”

거실에서 나오던 보보가 물었다.


“폭탄보다 더 귀한 거야.” 김경훈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알든(Alden) 990’이야.”

“알든? 그게 뭔데?”

“구두계의 유니콘. 코도반(Cordovan, 말 엉덩이 가죽 피하에 있는 섬유질)으로 만든, 남자의 로망이지. 내 사이즈를 구하려면 웨이팅만 2년이 걸린다는 그 물건을… 내가 새해 첫 ‘오픈런’ 성공으로 낚아챈 거야. 이건 운명이야, 보보.”


그는 상자에서 구두를 꺼냈다.

그의 손끝에 닿는 감촉은 일반적인 송아지 가죽(Calf)과는 차원이 달랐다. 매끄럽고, 쫀쫀하며, 기름기를 머금은 듯한 묵직한 질감.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특유의 짙은 가죽 냄새.


“킁킁.”

탱고가 다가왔다. 녀석은 구두에서 나는 냄새를 맡더니, 평소와 다르게 격하게 꼬리를 흔들며 관심을 보였다.

“탱고, 저리 가. 이건 ‘말(Horse)’ 가죽이야. 네 친구가 아니라고. 침 묻히면 안 돼!”


김경훈은 구두 한 짝을 들어 보보에게 내밀었다. (방향은 짐작으로)

“봐봐. 이 영롱한 ‘버건디(Color 8)’ 색깔이 느껴져? 안 보여도 알 것 같아. 이건 예술이야.”

보보는 팔짱을 끼고 그 광경을 지켜보다 피식 웃었다.

“그래, 때깔은 좋네. 근데 연구원님이 이걸 언제 신으시게? 또 누구 결혼식 갈 때까지 신발장에 모셔두려고?”


“아니.” 김경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부터 이게 내 ‘전투화’야. 매일 신을 거야.”



김경훈의 선언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 그의 출근길 풍경이 바뀌었다.

늘 신던 편안한 러닝화 대신, 묵직한 알든 990이 그의 발을 감쌌다.


처음에는 고역이었다. 새 코도반 가죽은 단단했고, 발등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 ‘압박’이 그를 긴장시켰다.

‘또각, 또각, 또각.’

대리석 복도를 걸을 때마다 울리는 가죽 홍창의 명쾌한 소리. 이 소리는 그에게 ‘당신은 지금 걷고 있다. 똑바로 걸어라’라고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다.


“박사님, 오늘따라 키가 커 보이시는데요?”

연구실 후배가 물었다.

“아니야. 굽은 3cm밖에 안 돼.” 김경훈이 셔츠 깃을 매만지며 답했다. “자세가 바뀐 거야.”


구두는 옷차림을 바꿨다. 이 비싼 구두에 헐렁한 후드티를 입는 것은 ‘죄악’처럼 느껴졌다. 그는 묵혀두었던 옥스퍼드 셔츠를 다려 입고, 재킷을 걸쳤다.

구두는 태도를 바꿨다. 발끝이 단정해지니, 말투도 정제되었다. 그는 15년 전 잃어버렸던 ‘신사의 감각’을, 발끝에서부터 다시 조립하고 있었다.


“자기야.” 보보가 퇴근길 차 안에서 그의 허벅지를 툭 쳤다. “요즘 좀… 섹시한데? 구두 하나 바꿨다고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나?”

“훗. 이게 바로 ‘킹스맨’ 효과지. 매너가 사람을, 아니 구두가 사람을 만든다.”



하지만 김경훈이 이 구두와 사랑에 빠진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주말의 ‘슈케어’ 시간이었다.

오후, 햇살이 들어오는 베란다. 그는 신문지를 깔고, 구두와 케어 용품들을 늘어놓았다.


그는 가죽 재킷이나 가방을 닦는 것도 좋아했지만, 구두는 차원이 다른 ‘섬세함’을 요구했다. 그것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Ritual)’이었다.


1. 브러싱: 말털 솔로 먼지를 턴다. ‘삭, 삭, 삭.’ 규칙적인 소리가 잡념을 털어낸다.


2. 크림 도포: 손가락에 천을 감고, 영양 크림을 찍어 바른다. 가죽의 모공 하나하나에 영양을 불어넣듯, 둥글게, 부드럽게. 코도반 특유의 달콤한 왁스 냄새가 마음을 진정시킨다.


3. 폴리싱: 마른 헝겊으로 광을 낸다. 팔이 아플 정도로 문지르면, 손끝에서 가죽의 온도가 올라가고, 마침내 매끄러운 ‘유리’ 같은 감촉이 완성된다.


“... 하아.”

그는 작업을 마치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보이지 않지만, 그는 안다. 지금 이 구두가 얼마나 영롱하게 빛나고 있을지.

지난 한 주 동안 세상의 먼지와, 연구의 스트레스와, 타인의 무례함이 묻어있던 구두가 다시 태어났다.

구두를 닦는 동안, 그의 마음속 엉킨 생각들도 가지런히 정돈되었다.


“탱고, 너도 좀 닦아줄까?”

옆에서 졸고 있던 탱고가 기겁하며 도망갔다.

“농담이야. 넌 털이라서 구두약 바르면 큰일 나.”



다음 날 아침.

김경훈은 완벽하게 케어된 알든 990을 신고 현관을 나섰다.

가죽은 주말 동안의 케어로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고, 발을 감싸는 느낌은 마치 ‘오래된 악수’처럼 편안했다.


“다녀올게.”

그가 보보에게 인사했다.

“조심해. 새 구두라 미끄럽다며.”

“걱정 마. 내 발엔 사륜구동(탱고)이 달려 있잖아.”


그는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휘청.’

현관 앞 대리석 바닥에서 가죽 창이 미끄러지며 중심을 잃을 뻔했다.

“어익후!”


탱고가 놀라서 그를 버티고 섰다. 보보의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아이고, 우리 킹스맨. 폼 잡다가 골로 가시겠네.”


김경훈은 머쓱하게 웃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 이게 바로 ‘긴장감’이지. 인생은 빙판길이야.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이 구두가 나한테 가르쳐 주는 거라고.”


그는 다시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불편하다. 미끄럽다. 신경 쓰인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그를 깨어있게 한다. 2026년의 김경훈은 이 단단하고 반짝이는 구두 위에서 그 어느 때보다 견고하게 서 있었다.



‘제목: 태도(態度)의 아키텍처, 혹은 알든 990 사용기.

구두는 발을 구속한다. 하지만 그 구속이 역설적으로 나의 척추를 세우고, 걸음걸이에 리듬을 부여한다.

알든 990. 이 말 엉덩이 가죽은 까다롭다. 물에 약하고, 긁힘에 약하다. 하지만 내가 정성을 들여 닦아주면, 그 어떤 가죽보다 깊은 광택으로 보답한다.

구두를 닦는 행위는 ‘마음의 샤워’다. 먼지를 털고 광을 내며, 나는 나의 지난주를 복기하고, 다가올 주를 준비한다.

결론: 좋은 구두는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말은 틀렸다. 좋은 구두는 좋은 ‘태도’로 걷게 만든다. 그리고 그 태도가 결국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 것이다.

…단, 비 오는 날은 절대 안 된다. 탱고야, 비 오면 네가 나 업고 가야 한다.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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