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tecture of Stigma
진실은 연약하다. 그것은 한 방울의 ‘먹물’만으로도 쉽게 오염되고, 영원히 지워질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파울 카메러. 그는 환경에 적응하는 두꺼비의 ‘검은 돌기’를 발견했지만, 누군가 주입한 먹물 때문에 사기꾼으로 몰려 자살했다. 훗날 그 먹물이 조교의 조작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카메러는 이미 숲속의 시신이 되어 있었다.
대중은 진실보다 스캔들을 좋아하고, 학계는 혁신보다 안정을 선호한다. 한 번 찍힌 ‘낙인’은 그 사람의 모든 업적을 불태워버리는 화재와도 같다. 카메러가 입에 권총을 물었을 때, 그가 죽인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자신의 ‘신용’이었다.
이것은 21세기의 대학 캠퍼스 구석에서 또 다른 ‘카메러’를 만난 한 남자의 이야기다. 먹물로 얼룩진 누군가의 명예를, 보이지 않는 눈과 예민한 촉각으로 다시 닦아내려 했던, 어느 흐린 겨울 오후의 기록이다.
대학교 생물관 뒤편, 덩굴식물로 뒤덮인 낡은 유리 온실. 이곳은 학교의 ‘금지된 구역’이나 다름없었다. 예산 문제로 폐쇄된 지 오래였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김경훈에게 이곳은 보물창고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조용했고, 무엇보다 냄새가 다채로웠다. 젖은 흙냄새, 이끼 냄새, 그리고 이름 모를 곤충들의 비릿한 냄새.
“탱고, 이쪽이야. 냄새가 나지? 뭔가 살아있는 냄새.”
탱고는 주인의 호기심이 귀찮다는 듯 하품을 했지만, 꼬리를 흔들며 앞장섰다.
‘끼이익-’
녹슨 문을 열고 들어서자, 후끈한 습기와 함께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누구냐!”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왔다. 노인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힘이 없고, 바싹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목소리.
“아, 죄송합니다. 문이 열려 있어서… 저는 문헌정보학과의 김경훈 연구원입니다.”
그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김경훈? 아, 그 눈 안 보이는 연구원?”
상대는 그를 아는 눈치였다.
“내 이름은 고진석이다. 사람들은 나를 ‘미친 개구리 박사’라고 부르지.”
고진석 박사. 김경훈은 그 이름을 기억해 냈다. 5년 전, ‘도시 소음에 적응해 울음소리가 변한 청개구리’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가 데이터 조작 의혹에 휘말려 불명예 퇴직한 교수였다. 학계는 그가 녹음 데이터를 인위적으로 변조했다고 비난했다. 카메러의 ‘먹물’이 그에게는 ‘오디오 편집’이었던 셈이다.
“여기서 뭐 하십니까?” 김경훈이 물었다.
“보면 모르나? 아, 자네는 못 보지.” 고 박사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청개구리들을 돌보고 있다. 다들 나보고 사기꾼이라며 손가락질할 때, 유일하게 내 말을 들어준 놈들이니까.”
그는 김경훈을 온실 구석의 수조 앞으로 이끌었다.
“들어봐라. 이 녀석들의 울음소리를.”
‘개굴… 개굴….’
소리가 달랐다. 일반적인 청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더 짧고, 더 높은 주파수였다. 마치 도시의 자동차 소음을 뚫고 전달되려는 필사적인 비명처럼 들렸다.
“들리나? 이 짧고 높은 소리가?” 고 박사가 흥분해서 말했다. “이건 조작이 아니야. 놈들이 시끄러운 대구 시내에서 살아남으려고 목청을 진화시킨 거라고! 카메러의 두꺼비가 발가락에 돌기를 만들었듯이 내 개구리들은 목소리를 바꾼 거야.”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믿지 않았어. 내 조교 놈이… 내 컴퓨터에 있는 원본 파일을 지우고, 편집 프로그램 로그를 심어놨거든. 카메러의 조교처럼 말이야. 나는 쫓겨났고, 이 녀석들은 증거 인멸될 뻔한 걸 내가 몰래 데려왔지.”
김경훈은 수조 유리에 손을 댔다. 유리를 통해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것은 거짓말의 진동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파동이었다.
“박사님.” 김경훈이 입을 열었다. “파울 카메러 이야기를 아시죠?”
“알지. 내 롤모델이자, 내 미래지.” 고 박사가 씁쓸하게 말했다. “나도 가끔 생각한다. 카메러처럼 숲으로 가서 이 억울함을 죽음으로 호소해야 하나.”
김경훈은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아니요. 카메러는 틀렸습니다.”
“뭐라고?”
“카메러가 자살했을 때, 다윈주의자들은 샴페인을 터뜨렸을 겁니다. ‘거봐, 찔리는 게 있으니 죽었지’ 하면서요. 죽음은 진실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죽음은 그냥… ‘로그아웃’일 뿐입니다.”
그는 탱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박사님. 카메러에게 없었던 게 뭔지 아십니까?”
“그게 뭔가?”
“‘청각’을 가진 증인입니다.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먹물(시각적 증거)’에 속지만, 소리를 듣는 사람은 본질을 듣습니다. 저는 지금 박사님의 개구리 소리에서 그 어떤 편집의 흔적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건… 진짜입니다.”
고 박사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자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네. 그리고 저에게는 아주 유능하고 독한 파트너가 있습니다. 철학 박사인데, 논리 싸움이라면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죠.”
김경훈이 씨익 웃었다.
“죽지 마세요. 숲으로 가지 마세요. 대신 저랑 같이 그 조작된 로그 파일을 다시 까봅시다. 디지털 포렌식? 요즘 세상에 지워진 기록 복구하는 건 일도 아닙니다.”
그날 저녁, 김경훈은 보보를 데리고 다시 폐온실을 찾았다. 보보는 으스스한 분위기에 질색했지만, 고 박사의 사연을 듣고 나자 눈빛이 변했다.
“와, 진짜 열 받네.” 보보가 팔을 걷어붙였다. “그 조교 놈, 지금 어디 있어요? 교수 자리 꿰찼어요? 이거 완전 사기죄에 명예훼손에 업무방해잖아요.”
그녀는 고 박사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물론 그녀는 변호사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친구들 중에는 유능한 변호사가 많았다.)
“할아버지. 카메러 박사가 왜 불행했는지 아세요? 변호사를 안 쓰고 권총을 썼기 때문이에요. 21세기는 법치 국가입니다. 억울하면 고소를 하셔야죠.”
고 박사는 두 젊은이의 당돌함에 멍하니 서 있다가 허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5년 만에 처음 웃는 웃음이었다.
“허허… 내 참. 눈 먼 청년이랑, 싸움닭 같은 아가씨가 나를 살리러 왔구만.”
김경훈은 수조 속의 청개구리 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 소리는 이제 비명이 아니라, 승리의 합창처럼 들렸다. 환경에 적응한 개구리처럼, 고 박사도 이제 ‘절망’이라는 환경에 적응하여, 새로운 ‘희망’의 돌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제목: 낙인(烙印)의 아키텍처, 혹은 먹물을 닦아내는 법.
파울 카메러는 위대한 생물학자였지만, 최악의 전략가였다. 그는 타인의 기만(먹물)을 자신의 죽음으로 갚으려 했다.
하지만 진실은 죽음 너머에 있지 않다. 진실은 악착같이 살아서 증거를 들이밀고, 소리치고, 싸우는 과정 속에 있다.
고진석 박사의 개구리들은 소음을 이기기 위해 목소리를 바꿨다. 우리도 세상의 비난(Noise)을 이기기 위해, 더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결론: 누군가 당신의 인생에 먹물을 뿌린다면, 권총을 들지 말고 ‘클렌징 오일’을 들어라. 그리고 보보 같은 파트너를 불러라. 아주 깨끗하게, 그리고 무자비하게 닦아줄 테니까.
…내일은 컴퓨터공학과 친구를 섭외해야겠다. 고 박사님 컴퓨터, 내가 한번 탈탈 털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