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tecture of Emulsification
물과 기름. 세상에는 결코 섞일 수 없는 상극(相剋)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이질적’이라고 부르며, 서로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상태를 ‘분리(Separation)’라고 부른다.
하지만 주방이라는 실험실에서는 기적이 일어난다. 노른자라는 중재자가 개입하고, 거품기라는 도구가 수천 번의 회오리를 일으키면, 물과 기름은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제3의 물질’로 승화한다. 마요네즈. 그것은 액체도 고체도 아닌, 크림처럼 부드럽고 풍만하며 고소한 ‘유화(Emulsification)’의 결정체다.
1 더하기 1이 2가 아니라 3이 되는 마법.
이것은 완벽하게 다른 성질을 가진 두 남녀가 삐걱거리는 ‘분리’의 위기를 넘어, 어떻게 서로를 껴안고 단단한 ‘하나’가 되어가는지에 대한, 어느 고소하고 시큼한 1월의 요리 수업 기록이다.
대구 수성구의 한 프라이빗 쿠킹 스튜디오.
김경훈은 앞치마를 두른 채, 스테인리스 볼을 껴안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톡 쏘는 식초 냄새와 비릿하지만 고소한 달걀 냄새, 그리고 올리브 오일의 풀 내음이 감돌고 있었다.
“자, 여러분. 마요네즈는 ‘과학’입니다. 그리고 ‘타이밍’의 예술이죠.”
강사는 줄리앙(Julian) 셰프였다. 그는 프랑스 유학파 출신으로,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괴짜 요리사였다. 그의 목소리는 하이톤이었고, 억양에는 묘한 리듬감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요네즈를 마트에서 사는 공산품으로 알지만, 진짜 마요네즈는 ‘살아있는 소스’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오직 팔 근육으로 이 기적을 만들 겁니다.”
줄리앙은 김경훈과 보보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미스터 킴. 준비됐나요?”
“네, 셰프. 팔 근육은 준비됐는데, 제 눈은 준비가 안 됐네요. 언제 멈춰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김경훈이 농담을 던졌다.
“걱정 마세요.” 줄리앙이 윙크(아마도)를 하며 말했다. “마요네즈는 눈으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소리’와 ‘저항감’으로 만드는 거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온도’입니다. 달걀과 기름, 이 두 녀석이 서로 껴안으려면 온도가 똑같아야 해요. 섭씨 15도. 너무 차가워도 안 되고, 너무 뜨거워도 안 되죠. 딱 사랑하기 좋은 온도랄까?”
김경훈은 보보가 깨트려준 달걀노른자에 겨자(머스터드)를 넣고 나무 숟가락으로 젓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처음에는 가벼운 액체의 소리가 났다.
“자, 이제 오일을 넣습니다. 아주 조금씩! 실처럼 가늘게!” 줄리앙이 외쳤다.
보보가 옆에서 오일을 조금씩 부어주었다. 김경훈은 오른팔에 온 신경을 집중해 휘저었다.
물(노른자의 수분, 식초)과 기름. 본능적으로 서로를 거부하는 두 물질.
김경훈은 이 과정이 마치 자신과 보보의 관계 같다고 생각했다. 장애와 비장애, 공학적 사고와 철학적 사고, 정착과 방랑.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섞인다는 것. 그것은 가만히 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끊임없이 부딪히고 휘저어지는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더 빨리! 더 세게!” 줄리앙이 박수를 쳤다. “기포를 만들어야 해요. 그 작은 공기 방울들이 기름을 감싸 안아야 비로소 하나가 됩니다!”
김경훈의 팔뚝에 펌핑이 오기 시작했다.
‘철퍽, 철퍽, 꾸덕….’
소리가 변했다. 가볍던 찰랑거림이 사라지고, 무겁고 끈적한 저항감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액체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뭉치기 시작한 것이다.
“오, 자기야. 되고 있어! 색깔이 뽀얗게 변했어!” 보보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발치에 있던 탱고가 ‘뽀얗게 변한 무언가’에 반응해 꼬리를 치며 일어났다. “앉아, 탱고. 네 거 아니야.”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욕심을 낸 보보가 오일을 콸콸 붓는 순간, 그리고 지친 김경훈의 손놀림이 잠시 느려진 순간.
‘주르륵….’
꾸덕하던 저항감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볼 안의 내용물이 다시 묽은 액체로 풀어져 버렸다. 물과 기름이 다시 등을 돌린 것이다. 분리였다.
“아… 망했다.” 보보가 탄식했다. “순두부처럼 몽글몽글해졌어. 이거 버려야 돼?”
그때 줄리앙이 다가왔다.
“No, No! 버리다니요. 사랑싸움 좀 했다고 헤어질 겁니까?”
그는 빈 볼을 하나 가져왔다.
“마요네즈를 망쳤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새로운 중재자’를 모셔오면 됩니다.”
그는 새 볼에 겨자 한 스푼과 망친 소스를 아주 조금 넣었다.
“천천히. 이번엔 아주 천천히.”
줄리앙의 지도에 따라 김경훈은 다시 저었다. 급하게 하려던 마음을 내려놓고, 아주 천천히,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겨자는 배신한 기름과 물을 다시 달래어 손을 잡게 만들었다.
“보세요.” 줄리앙이 말했다. “실패한 마요네즈가 오히려 더 단단한 베이스가 됩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김경훈은 그 말에 큰 위로를 받았다. 관계가 틀어지고, 마음이 분리될 때가 있다. 그때 필요한 건 ‘폐기’가 아니라, ‘겨자(인내심)’ 한 스푼과 ‘속도를 늦추는 지혜’였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마요네즈는 완벽했다. 숟가락을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크리미 했다.
“훌륭합니다.” 줄리앙이 감탄했다. “이건 단순한 소스가 아니에요. 15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반 에이크 형제 아시죠? 그 양반들이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해서 유화 물감을 만들었습니다. 물과 기름을 섞어 만든 그 불투명한 물감 덕분에, 세상의 색채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죠.”
줄리앙은 갓 구운 바게트에 그들이 만든 마요네즈를 발라주었다.
“드셔보세요. 이건 1+1=3의 맛입니다.”
김경훈은 한입 베어 물었다. 고소함, 상큼함, 부드러움이 입안에서 폭죽처럼 터졌다.
“... 맛있네.” 그가 중얼거렸다.
“그치? 우리가 팔 빠지게 저은 보람이 있어.” 보보도 입가에 마요네즈를 묻히며 웃었다.
김경훈은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은 오랫동안 ‘흑백 드로잉’이었다. 어둡고, 건조했다.
하지만 보보라는 ‘오일’이 들어오고, 탱고라는 ‘겨자’가 섞이고, 세상과 부딪히는 수많은 ‘휘젓기’의 시간을 통해, 이제 그의 인생은 반 에이크의 그림처럼 풍성한 질감과 색채를 가진 ‘유화(Oil Painting)’가 되어가고 있었다.
‘제목: 유화(乳化)의 아키텍처, 혹은 섞임의 미학.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그러나 적절한 온도(15도)와 중재자(노른자), 그리고 끊임없는 마찰(에너지)이 있으면 제3의 물질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의 관계도 마요네즈와 같다. 서로 너무 다르기에 삐걱거리고 분리되기도 한다.
하지만 줄리앙은 말했다. 망쳤을 때는 버리지 말고, 겨자를 넣고 천천히 다시 저으라고.
결론: 분리는 실패가 아니라, 더 단단하게 결합하기 위한 과정이다.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다. 서로의 껍질을 깨고 섞이면, 우리는 3이 되고, 무한대가 된다.
… 그나저나 팔이 너무 아프다. 내일 파스는 내가 붙여야겠군. 15세기 화가들은 그림 그리다 오십견 왔을 게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