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tecture of Signs
우리는 세상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말이 생겨났다고 믿는다. ‘사과’라는 과일이 존재하기에 ‘사과’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지만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는 이 순서를 뒤집었다. 말이 있기에 비로소 세상이 존재한다.
‘시니피앙(Signifiant, 기표)’은 껍데기다. 말소리, 글자, 이미지.
‘시니피에(Signifié, 기의)’는 알맹이다. 그 소리가 불러일으키는 개념, 의미.
‘배’라는 소리(시니피앙)를 들었을 때, 누군가는 헌터 보트(Ship)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아삭한 과일(Pear)을, 누군가는 자신의 불룩한 복부(Belly)를 떠올린다. 이처럼 기호는 자의적이다. 즉, 내가 나의 현실을 어떤 단어로 부르느냐에 따라, 나의 세계는 ‘지옥’이 될 수도 있고 ‘휴양지’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시각장애인’이라는 건조하고 결핍된 시니피앙에 갇혀 있던 한 남자가 언어의 마술사를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로운 단어로 재정의(Redefinition)하게 된, 어느 눈 내리는 겨울밤의 기록이다.
대구 중구 삼덕동의 허름한 골목.
김경훈은 보보의 팔짱을 끼고 낯선 공간 앞에 섰다. 간판도 없고, 입구에서는 묘한 향 냄새와 올드 재즈가 흘러나오는 곳이었다.
“자기야, 여기 맞아? 그냥 창고 같은데?” 보보가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맞아. ‘이름 없는 가게’. 그게 이 가게 이름이야.”
문을 열고 들어서자, 딸랑- 하는 맑은 풍경 소리가 그들을 맞았다. 실내는 따뜻했고, 수천 권의 낡은 책 종이 냄새와 진한 위스키 향이 섞여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의미를 찾는 손님들이군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민상희 씨였다. 그는 낮에는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밤에는 이 기묘한 바(Bar)를 운영하는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그는 헝클어진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쓰고, 마치 단어들을 공기 중에서 채집하려는 듯 허공을 응시하는 습관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김경훈입니다.”
“아, 당신이군요. ‘소리로 세상을 짓는 사람’.” 민상희가 대뜸 말했다.
김경훈은 멈칫했다. 보통은 그를 ‘시각장애인’이나 ‘연구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소리로 세상을 짓는 사람’이라니. 그 낯선 시니피앙이 훅 들어오는 순간, 김경훈은 자신이 꽤 근사한 예술가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 민상희는 메뉴판 대신 빈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물론 김경훈에게는 말로 설명했다).
“저희 가게에는 정해진 메뉴가 없습니다. 제가 이름을 붙여드리면, 그게 오늘 당신이 마실 음료입니다.”
그는 주방으로 가서 덜그럭거리더니, 머그잔 두 개를 가져왔다.
“자, 이건 ‘겨울밤의 위로’입니다. 그리고 저 털북숭이 친구(탱고)에게는 ‘용맹한 휴식’(물) 한 그릇을 주죠.”
김경훈은 ‘겨울밤의 위로’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고, 크리미 하고, 익숙한 맛.
“... 이거, 맥심 모카골드 아닙니까?” 김경훈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쉿.” 민상희가 검지를 입술에 대는 소리를 냈다. “그건 마트에서 팔 때의 이름(시니피앙)이죠. 하지만 이 공간, 이 조명, 그리고 제 손길을 거친 지금 이 순간, 이것은 단순한 인스턴트커피가 아닙니다. 당신의 언 몸을 녹여줄 ‘위로’라는 시니피에가 되는 거죠. 맛이 다르지 않습니까?”
김경훈은 다시 한 모금 마셨다. 기분 탓일까. 정말로 평소 연구실에서 타 마시던 믹스커피보다 훨씬 깊고 풍부한 맛이 느껴졌다.
‘말이 세상을 만든다’는 소쉬르의 이론이 미각마저 지배하고 있었다.
“재밌네요.” 보보가 웃었다. “그럼 저는 ‘철학적 고뇌’ 한 잔 주실래요? 도수 좀 센 걸로.”
“알겠습니다. ‘실존의 쓴맛’(에스프레소 마티니) 대령하죠.”
분위기가 무르익자, 민상희는 김경훈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김 선생님. 사람들은 선생님을 뭐라고 부릅니까?”
“음… 시각장애인? 맹인? 가끔은 장님이라고도 하죠.”
민상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단어들이 하나같이 게으르군요. 그 단어들의 시니피에(의미)는 전부 ‘결핍’에 맞춰져 있어요. ‘볼 수 없음’, ‘망가짐’. 그런 단어로 불리면, 정말로 무력한 사람이 됩니다.”
그는 펜을 들어 냅킨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이름을 바꿉시다. 소쉬르가 그랬죠. 기호는 자의적이라고. 우리가 합의만 하면, 당신은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닙니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김경훈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암흑의 항해사(Navigator of Darkness)’ 어때요? 아니면 ‘비시각적 감각 마스터’?”
민상희가 킬킬거렸다.
“농담 같죠?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소리의 파동을 읽고, 냄새의 입자를 분석합니다. 당신은 결핍된 게 아니라, 다른 감각이 ‘확장’된 거예요. 당신의 세상은 캄캄한 감옥이 아니라, 소리로 지어진 거대한 ‘오페라 하우스’라고요.”
김경훈은 그 말을 곱씹었다.
‘장애(Disability)’라는 시니피앙은 그를 병원 침대에 묶어두지만, ‘항해사’라는 시니피앙은 그를 삶의 주체로 일으켜 세운다.
그는 옆에서 얌전히 물을 마시는 탱고를 쓰다듬었다.
“그럼 이 녀석은요? 안내견(Guide Dog) 말고 다른 이름이 있을까요?”
“음….” 민상희가 탱고를 유심히 보았다.
“‘4륜 구동 천사’? 아니면 ‘침묵의 수호자’? 아, 이게 좋겠군요. ‘공동의 눈(Shared Eye)’.”
가게를 나설 때,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김경훈에게 눈은 그저 ‘미끄러운 쓰레기’ 혹은 ‘지팡이의 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보가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자기야, ‘하늘에서 내려오는 솜사탕’이 내리네.”
김경훈은 손을 뻗어 차가운 눈송이를 받았다.
‘미끄러운 쓰레기’라고 생각했을 때는 짜증이 났지만, ‘하늘의 솜사탕’이라고 명명하니, 손바닥에 닿는 차가움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보보.” 그가 불렀다.
“응?”
“나는 이제부터 나를 ‘환자’나 ‘장애인’으로 규정하지 않을 거야.”
그는 눈 내리는 허공을 향해, 보이지 않는 캔버스에 새로운 단어를 적어 넣듯 말했다.
“나는 ‘세상을 번역하는 연구자’야. 시각이라는 언어를, 마음이라는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 어때?”
보보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멋지네, 번역가 양반. 그럼 나는 그 번역가의 ‘평생 편집자’ 할게. 오역이 있으면 바로잡아주는.”
탱고가 ‘멍!’ 하고 짖었다. 아마도 “나는 그럼 ‘인세(수입) 담당’ 할래!”라고 하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은 눈 내리는 골목을 걸어갔다. 그들의 현실은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앞은 보이지 않았고, 길은 미끄러웠다. 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었기에, 그들이 걷는 그 길은 더 이상 위태로운 빙판길이 아니라, 서로를 의지하며 걷는 ‘낭만의 로드’가 되었다.
‘제목: 기호(記號)의 아키텍처, 혹은 이름 짓기의 권력.
소쉬르는 말했다. 시니피앙(소리)이 시니피에(의미)를 결정한다고.
‘맹인’이라는 단어는 나를 어둠 속에 가두지만, ‘감각의 탐험가’라는 단어는 나를 우주로 보낸다.
현실 세계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내가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느냐에 따라, 믹스커피가 ‘위로’가 되고, 눈(Snow)이 ‘솜사탕’이 된다.
결론: 나는 오늘부터 내 세상의 아키텍트이자, 카피라이터가 되기로 했다.
나의 15세 사고는 ‘비극’이 아니라 ‘터닝 포인트’였고, 나의 지팡이는 ‘의료기기’가 아니라 ‘마법의 지팡이(Wand)’다.
…그리고 보보는 ‘보호자’가 아니라, 나의 ‘뮤즈’다. (이렇게 불러주면 내일 아침 반찬이 달라지겠지? 이것이야말로 언어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