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의 아키텍처

The Architecture of Structure

by 김경훈


우리는 눈앞의 ‘현상(Tree)’에 집착하느라, 그 현상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구조(Forest)’를 놓친다. 아이가 울면 ‘시끄럽다’고 생각하지만, 구조주의자들은 그 울음이 ‘배고픔’과 ‘양육자’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 신호임을 읽어낸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말했다. “구조란 요소와 요소 간의 관계로 이루어진 전체다.”


미개해 보이는 원시 부족의 ‘교차 사촌혼’이 사실은 부족의 결속과 생존을 위한 고도의 ‘교환 시스템’이었듯, 우리 일상에서 ‘무질서’해 보이는 행동들 역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전체 구조’를 조망하면 전혀 다른 맥락의 ‘합리성’을 드러낸다.


이것은 도서관이라는 정교한 분류 체계 속에서 ‘테러리스트’로 불리던 한 소년을 만난 김경훈 연구원이 그 소년이 어지럽힌 책들 속에서 새로운 ‘사랑의 구조’를 발견해 낸, 어느 흐린 겨울 오후의 기록이다.



대구 수성구의 한 작은 구립 도서관.

이곳은 김경훈이 가끔 자문을 위해 들르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 도서관의 공기는 평소의 고요함 대신, 팽팽한 긴장감과 사서의 억눌린 분노로 진동하고 있었다.


“세상에, 또 이래 놨어! 벌써 세 번째야.”

사서 최미정 씨의 날카로운 탄식이 들렸다.


“무슨 일입니까, 최 선생님?” 김경훈이 지팡이를 짚고 다가가며 물었다. 곁에 있던 보보가 상황을 파악하고 김경훈의 귓가에 속삭였다.

“자기야, 여기 난장판이야. 책들이… 엉망진창으로 섞여 있어.”


최 사서는 울상을 지으며 하소연했다.

“박사님, 요즘 ‘도서관 테러리스트’ 때문에 미치겠어요. 어떤 녀석이 멀쩡한 서가의 책을 빼다가 엉뚱한 곳에 꽂아둬요. 과학 책을 소설 코너에 박아두질 않나, 요리책을 역사 코너에 숨기질 않나. KDC(한국십진분류법)를 아주 비빔밥으로 만들어놨다니까요!”


보보가 덧붙였다.

“음… ‘무질서(Entropy)’ 그 자체네.”


김경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문헌정보학자로서 분류 체계의 붕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구조주의적’ 직감이 발동했다.

“무작위로 섞여 있나요? 아니면… 어떤 ‘패턴’이 있나요?”



그때, 서가 구석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탱고가 그쪽을 향해 ‘크르릉’ 하고 낮게 경고음을 냈다.

“거기 누구야!” 최 사서가 소리쳤다.


서가 뒤에서 쭈뼛거리며 나온 사람은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후드티를 눌러쓰고, 낡은 운동화를 신은 몹시 위축된 어깨를 가진 아이. 이름은 우진(15세)이었다.


“너였구나! 도대체 왜 그러는 거니?” 최 사서가 다그쳤다. “책 정리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우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에 들고 있던 책 한 권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을 뿐이었다.


김경훈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잠깐만요, 선생님. 혼내기 전에 ‘데이터’부터 확인해 보죠.”

그는 우진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안녕. 나는 눈이 안 보여서 네가 무슨 책을 들고 있는지 몰라. 혹시 제목 좀 알려줄 수 있니?”


우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주의 구조』요.”

“그렇구나. 물리학 책이네. 그럼 그전에는 무슨 책을 옮겨 놨지?”

최 사서가 대신 대답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제철 밥상 요리』, 그리고 『세계의 정원』이었어요. 이걸 몽땅 600번대(예술) 서가 맨 아래 칸에 쑤셔 박아 놨다고요!”


김경훈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빠르게 회전했다.

물리학(자연과학), 신화(종교/문학), 요리(기술과학), 정원(예술).

KDC 분류상으로는 400, 200, 500, 600번대로 완벽하게 분산된 주제들이다. 사서의 눈(부분)에는 ‘혼돈’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경훈은 ‘전체 구조’를 보려 애썼다.

‘왜 하필 맨 아래 칸일까? 그리고 이 이질적인 주제들을 관통하는 맥락(Context)은 무엇일까?’



“우진아.” 김경훈이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소리의 높이를 맞췄다).

“너, 책을 숨긴 게 아니지?”

소년의 숨소리가 멈칫했다.


“너는… ‘새로운 서가’를 만들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김경훈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물리학(별), 신화(이야기), 요리(음식), 정원(꽃). 이건 엉망인 게 아니야. 이건 누군가를 위한 완벽한 ‘종합 선물 세트’야.”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울먹이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할머니가요.”

“응, 할머니가?”

“할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휠체어를 타시는데요… 도서관에 오면 여기저기 다닐 수가 없어요. 서가 사이가 너무 좁아서요. 그리고 눈도 침침해서 높은 곳은 못 보세요.”


소년은 훌쩍거리며 말을 이었다.

“할머니는 별 보는 것도 좋아하고, 옛날이야기도 좋아하고, 꽃도 좋아하시는데… 그 책들이 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래서 제가… 할머니 오시면 한 번에 보시라고… 맨 아래 칸에 다 모아둔 거예요.”


도서관에 정적이 흘렀다.

최 사서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분류 원칙(부분)’에 집착하느라, 소년이 만든 ‘배려의 구조(전체)’를 보지 못했다. 우진의 행동은 테러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도서관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해킹하여 만든, 가장 효율적이고 사랑스러운 ‘큐레이션’이었다.


레비스트로스가 교차 사촌혼에서 ‘부족의 존속’이라는 기능을 발견했듯, 김경훈은 소년의 어지럽힘 속에서 ‘가족애’라는 기능을 발견했다.



“그랬구나.” 김경훈이 우진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지만 우진아, 네 마음은 알겠는데, 방식은 조금 ‘버그’가 있었어. 네가 만든 구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책을 못 찾게 되었으니까. 이건 ‘공생’이 아니야.”


그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최 사서를 향해 돌아섰다.

“선생님.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죠.”

“네? 어떻게요?”


“우진이를 혼내는 대신, 도서관 입구 쪽에 ‘이달의 큐레이션 서가’를 하나 만듭시다. 낮은 높이로요. 주제는 ‘우진이가 할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으로 하죠.”

김경훈은 빙긋 웃었다.

“그럼 우진이는 책을 숨길 필요가 없고, 할머니는 편하게 보시고, 다른 이용자들은 ‘아, 이런 책들도 있구나’ 하고 새로운 발견을 할 테니까요. 이게 바로 구조주의적 해결책 아니겠습니까?”


최 사서의 눈이 커졌다. “아… 그렇네요!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보보가 옆에서 거들었다.

“와, 김경훈 씨. 오늘 좀 멋진데? 레비스트로스가 무덤에서 박수 치겠어. ‘브라보! 야생의 사고(La Pensée sauvage)란 바로 이런 것이네!’ 하면서.”



‘제목: 구조(構造)의 아키텍처, 혹은 숲을 보는 법.

우리는 종종 겉으로 드러난 ‘무질서’를 비난한다. 하지만 그 무질서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필연적인 이유’와 ‘관계의 구조’가 숨어 있다.

우진이의 흩어진 책들은 ‘혼돈’이 아니라, 할머니를 향한 ‘사랑의 질서’였다.

빈곤을 게으름으로만 보면 해결할 수 없듯, 아이의 행동을 말썽으로만 보면 본질을 놓친다.

결론: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미경(부분)을 치우고 망원경(전체)을 들어라.

책을 제자리에 꽂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책이 사람에게 닿게 하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도서관의 분류 기호보다 더 위대한 ‘마음의 기호’를 읽었다.

… 그나저나, 나도 집에 ‘보보 전용 간식 서가’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그녀가 배고픔에 날뛰는 ‘무질서’를 예방하기 위한, 고도의 구조적 조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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