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tecture of Utopia
1516년, 토머스 모어는 그리스어의 ‘없는(ou)’과 ‘장소(topos)’를 합쳐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어디에도 없는 곳’. 사람들은 이 단어를 ‘지상낙원’으로 오독하지만, 모어는 이미 그 이름 속에 서늘한 농담을 숨겨두었다. “이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가 그린 섬나라는 완벽했다. 가난도, 범죄도, 화폐도 없다. 하루 6시간만 일하고, 모든 집은 똑같으며, 문에는 자물쇠가 없다.
그러나 그 완벽함의 대가는 가혹하다. 프라이버시의 실종, 개인의 취향 말살, 그리고 시스템을 이탈하려는 자에게 가해지는 ‘노예화’. 그것은 자유의 천국이 아니라,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행복의 수용소’ 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21세기의 스마트 시티 모델하우스에서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한 건축가를 만난 김경훈 연구원이 ‘어디에도 없는 곳’보다 ‘지금 여기, 불완전한 곳’을 선택하게 된, 어느 멸균된 듯 깨끗한 오후의 기록이다.
대구 수성구 알파시티의 한 신축 주거 단지 홍보관.
김경훈은 덧신을 신은 채,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 위에 서 있었다. 공기 중에는 새집 증후군을 유발할 것 같은 접착제 냄새 대신, 은은한 피톤치드 향과 기계적인 윙윙거림(서버 소음)만이 감돌았다.
“와… 자기야. 여기 진짜 미래 도시 같아. 문고리가 하나도 없어.”
보보가 놀라워했다.
“문고리가 없다고? 그럼 어떻게 열어?”
“그냥 다가가면 열려. 안면 인식, 홍채 인식. 그리고 벽이 전부 유리야. 안이 훤히 다 보여.”
김경훈은 바닥을 두드려 보았다. 소리가 지나치게 맑고 울림이 없었다. 흡사 실험실 바닥 같았다.
“... 너무 매끄러워. 숨을 곳이 없는 소리야.”
그때, 저음의, 그러나 감정이 거세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숨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죄를 짓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프로젝트의 총괄 디렉터이자 도시공학자, 남궁현이었다. 그는 무채색의 개량 한복을 입고, 마치 수도승처럼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남궁현은 그들을 거실로 안내했다.
“반갑습니다. 김경훈 연구원님. 저는 이곳 ‘네오 아일랜드(Neo Island)’를 설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도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현대 기술로 완벽하게 재현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화폐가 없습니다. 모든 노동과 소비는 ‘블록체인 포인트’로 자동 정산되죠. 주민들은 하루 4시간, 커뮤니티를 위한 의무 노동(스마트팜 관리, 청소 등)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예술과 여가로 보낼 수 있습니다.”
그는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집은 모두 똑같은 구조입니다. 평등하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소유’의 집착을 없애기 위해, 5년마다 추첨을 통해 집을 바꿉니다. 한 곳에 정착하면 이기심이 생기거든요.”
김경훈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5년마다 강제 이사라고요? 토머스 모어는 10년이라고 했는데, 더 가혹해졌군요.”
남궁현은 멈칫했다.
“... 모어의 『유토피아』를 읽으셨군요.”
“읽다마다요. 거기엔 ‘시포그란트’라는 감시자들이 있죠. 당신이 바로 그 시포그란트입니까?”
남궁현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저는 감시자가 아니라 ‘설계자’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비교’와 ‘비밀’에서 옵니다. 우리는 담장을 없애고 자물쇠를 없애서 그 불행의 씨앗을 말린 겁니다.”
김경훈은 소파(지나치게 인체공학적이라 오히려 불편한)에 앉아 탱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탱고는 이 미끄러운 바닥이 싫은지 계속 발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설계자님.” 김경훈이 물었다. “모어의 유토피아에는 ‘자폴렛’이라는 용병이 있었죠. 더러운 전쟁을 대신하고 죽어 없어지는 소모품들. 그리고 규칙을 어긴 자들은 ‘노예’가 되어야 했고요. 당신의 이 깨끗한 도시에서 쓰레기는 누가 치우고 하수구는 누가 뚫습니까?”
남궁현은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AI 로봇과… ‘신용 점수’가 낮은 외부 인력들이 합니다. 그들은 이곳의 시민권(자유)을 얻기 위해 기꺼이 노동을 제공하죠.”
“결국 똑같네요.” 김경훈이 지팡이를 꽉 쥐었다. “이름만 바뀐 노예제도. 그리고 쾌락을 위해 ‘감각’을 통제하는 사회.”
그는 보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보. 당신은 여기서 살 수 있어? 5년마다 집을 옮기고, 방문을 잠글 수도 없고, 내가 바람피우면 바로 노예가 돼서 하수구를 뚫어야 하는 곳.”
보보가 질색하며 말했다.
“미쳤어? 난 절대 못 살아. 나는 내 맘대로 집 꾸미는 게 낙이고, 가끔은 당신 몰래 비상금 숨기는 맛으로 사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남궁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문이 안 잠기면, 실컷 울고 싶을 때 어디서 울어요? 내 슬픔을 남한테 들키지 않을 권리, 그게 진짜 자유 아닌가요?”
남궁현의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균열이 갔다.
“슬픔… 이요? 완벽한 시스템 안에서 슬플 일이 왜 있습니까?”
김경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탱고가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녀석의 발톱이 대리석 바닥을 긁으며 ‘끼이익’ 하는 소리를 냈다. 완벽한 바닥에 난 첫 번째 스크래치였다.
“남궁 선생님.” 김경훈이 말했다. “토머스 모어는 결국 참수당했습니다.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하다가요. 그는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현실의 ‘왕(권력)’과 타협하지 않았기에 죽었죠.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죽음으로 지킨 건 시스템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개인성)’이었습니다.”
그는 탱고의 리드 줄을 잡았다.
“당신의 이 도시는 완벽합니다. 너무 완벽해서 숨이 막히네요. 자물쇠가 없다는 건, 열어줄 ‘문’도 없다는 뜻이니까요.”
“가자, 보보. 나는 그냥… 자물쇠 주렁주렁 달린 우리 집 가서 문 꽉 잠그고 라면이나 끓여 먹을래. 그게 내 유토피아니까.”
남궁현은 텅 빈 홍보관에 홀로 서서 탱고가 남긴 바닥의 흠집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완벽한 알고리즘에는 ‘개의 발톱’과 ‘인간의 눈물’이라는 변수가 빠져 있었다.
‘제목: 유토피아(Utopia)의 아키텍처, 혹은 자물쇠의 위로.
토머스 모어는 ‘없는 곳’을 그렸다. 그것은 갈 수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사는 곳은 필연적으로 ‘불완전’ 하기 때문이다.
남궁현의 도시는 1 더하기 1이 정확히 2가 되는 곳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1 더하기 1이 3이 되기도 하고(마요네즈처럼),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자물쇠 없는 문은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감시다. 나는 내 방문을 걸어 잠글 수 있기에, 비로소 세상으로부터 안전하다.
결론: 유토피아는 없다. 대신 우리에겐 ‘마이홈(My Home)’이 있다. 조금 지저분하고, 좁고, 대출 이자가 나가는 곳일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냄새나는 개와 함께 뒹굴 수 있는 이곳. 여기가 바로 ‘오직 나에게만 존재하는(Eutopia)’ 섬이다.
… 그나저나, 오늘 본 그 모델하우스 화장실, 변기 소리가 너무 컸어. 프라이버시 제로. 내 똥 싸는 소리를 온 동네가 공유하는 게 미래 도시라면, 난 그냥 원시인 할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