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tecture of Paradox
밀턴 에릭슨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송아지를 외양간에 넣으려 끙끙대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가 앞에서 고삐를 당길수록 송아지는 뒷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에릭슨은 웃으며 송아지 뒤로 가 꼬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송아지는 반작용으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이것은 ‘역설적 간청(Paradoxical Intention)’이다.
인간의 의식은 청개구리와 같다. “하지 마”라고 하면 하고 싶고, “해”라고 하면 하기 싫다. 질서(Cosmos)를 강요하면 혼돈(Chaos)으로 도망치지만, 아예 판을 깔아주고 “마음껏 어지럽혀라”라고 하면, 스스로 지겨워서 정돈을 시작한다. 인류가 두 번의 대전쟁이라는 거대한 혼돈을 겪고 나서야 평화라는 질서를 갈망하게 된 것처럼.
이것은 ‘바이올린 신동’이라 불리지만 활(Bow) 잡기를 거부하고 파업에 들어간 한 소년을 만난 김경훈 연구원이 칭찬 대신 ‘악평’과 ‘소음’을 주문함으로써 그 굳게 닫힌 연주를 다시 시작하게 만든, 어느 시끄러운 문화센터 로비의 기록이다.
대구 수성구의 한 청소년 문화센터 로비.
김경훈은 보보의 퇴근을 기다리며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의 곁에는 탱고가 엎드려 있었지만, 평소와 달리 귀를 쫑긋거리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공기 중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날카로운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시우야! 너 다음 주가 콩쿠르야. 지금 연습 안 하면 어떡할 거야?”
“안 해! 안 한다고! 바이올린 부숴버릴 거야!”
어머니와 아들의 전쟁이었다. 소년의 목소리는 변성기가 갓 지난 쇳소리가 섞여 있었고,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히스테릭한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어우, 시끄러워라.”
김경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소리의 파형만으로 상황을 분석했다. 어머니가 ‘당길수록(강요)’, 아들인 한시우(13세)는 ‘버티는(거부)’ 중이었다. 전형적인 에릭슨의 송아지 딜레마였다.
“어머니,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될까요?”
김경훈이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탱고가 그를 에스코트했다.
어머니는 낯선 시각장애인의 등장에 당황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숨을 쉬며 물러났다. 김경훈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껴안고 씩씩거리는 소년 옆에 앉았다.
“안녕. 네가 시우구나.”
“... 아저씨는 뭔데요? 훈계하러 왔어요?” 시우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훈계? 아니.” 김경훈이 손사래를 쳤다. “나는 ‘소음 연구가’야.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를 수집하러 다니지.”
그는 주머니에서 녹음기(사실은 그냥 아이폰)를 꺼냈다.
“방금 네 목소리 톤이 아주 좋더라고. 유리창 긁는 소리 같았어. 혹시… 그 바이올린으로도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니?”
“네?” 시우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사람들은 바이올린으로 예쁜 소리만 내려고 하잖아. 그건 너무 지루해. 나는 진짜 끔찍한 소리를 원해. 톱으로 쇠를 자르는 소리나, 칠판 긁는 소리 같은 거. 네가 연주를 거부하고 있다길래, 혹시 ‘소음의 마에스트로’가 아닐까 해서 왔지.”
김경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요청했다.
“제발, 나를 위해 연주하지 말고… 그냥 깽깽거려 줄래? 아주 엉망진창으로.”
시우는 이 황당한 아저씨를 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연습해라’는 말 대신 ‘엉망으로 해라’는 말은 난생처음이었다.
“... 진짜 막 해도 돼요?”
“물론이지. 더 시끄럽게, 더 불협화음으로! 내 고막을 테러해 줘.”
시우는 바이올린을 꺼냈다. 그리고 활을 잡고, 현을 거칠게 그었다.
‘끼이익-! 끽! 끄아악!’
끔찍한 소음이 로비에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고, 탱고는 앞발로 귀를 덮으며 ‘낑낑’ 거렸다. (미안하다, 탱고.)
“좋아! 더! 더 세게 긁어!” 김경훈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와, 이건 진짜 소음 공해 수준인데? 훌륭해!”
시우는 신이 났다. 억눌려 있던 스트레스가 활 끝을 타고 폭발했다. 그는 음정, 박자, 자세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미친 듯이 활을 그어댔다. 그것은 연주가 아니라 ‘배설’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깽깽거리고 나자, 시우의 호흡이 차분해졌다. 이마에 땀이 맺히고, 씩씩거리던 분노가 사라졌다.
그리고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끼이익’ 소리가 점차 부드러워지더니, 어느새 선명한 ‘라(A)’ 음으로 바뀌었다. 소년의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스케일을 짚기 시작했다. 소음이 지겨워지자, 소년의 본능(재능)이 ‘질서’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라- 시- 도#- 레-….’
아름다운 선율이 로비를 채웠다. 파가니니였다. 시우는 눈을 감고, 그 누구의 강요도 아닌, 자신의 의지로 활을 켜고 있었다.
“세상에….”
멀리서 지켜보던 시우의 어머니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보보가 도착했다. 그녀는 이 기적 같은 연주를 들으며 김경훈의 곁으로 다가왔다.
“자기야,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아까는 소음 공해더니, 지금은 예술이네.”
김경훈은 빙긋 웃으며 시우의 연주를 감상했다.
“마법 아니야. ‘꼬리 당기기’지.”
“꼬리?”
“에릭슨이라는 심리학자가 그랬어. 송아지를 외양간에 넣으려면 고삐를 당기는 게 아니라 꼬리를 당겨야 한다고. 인간은 ‘하지 마’라고 하면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니까.”
그는 덧붙였다.
“저 아이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활이 무거웠던 거야. 그래서 내가 ‘망쳐라’고 허락해 줬지. 바닥을 치고 나면, 올라오는 건 본능이니까.”
연주가 끝났다. 시우는 개운한 표정으로 활을 내렸다.
“아저씨. 녹음 잘됐어요?”
“아니. 실패했어.” 김경훈이 짐짓 실망한 척했다. “뒤로 갈수록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져서 말이야. 소음 연구 자료로는 못 쓰겠네.”
시우가 피식 웃었다.
“다음에 또 와요. 그때는 진짜 최악으로 연주해 드릴게요.”
“그래. 기대하마.”
‘제목: 역설(逆說)의 아키텍처, 혹은 꼬리를 당기는 기술.
인간의 의지는 정면 승부를 싫어한다.
방을 치우라고 하면 어지럽히고 싶고, 연습하라고 하면 도망치고 싶다.
에릭슨은 그 반동(Reaction)을 이용했다. 역설적인 간청은 억압된 의식을 해방하는 트리거다.
인류가 전쟁을 겪고 평화를, 체르노빌을 겪고 안전을 깨달았듯, 시우는 소음을 마음껏 지르고 나서야 음악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결론: 누군가를 움직이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가 가려는 반대 방향으로 밀어주어라. 억지로 당기지 말고, 스스로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최고의 설득이다.
… 그나저나, 오늘 탱고가 스트레스를 좀 받은 것 같다. 녀석에게 “간식 절대 먹지 마! 쳐다보지도 마!”라고 역설적 간청을 해볼까? 아마 녀석은 역설이고 뭐고 그냥 먹어버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