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chitecture of Transcendence
우리는 ‘갈등’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싸움을 멈추기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다. 바로 ‘타협(Compromise)’이다.
“너도 반보 물러서고, 나도 반보 물러서자.”
언뜻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요한 갈퉁은 이것을 ‘게으른 평화’라고 불렀다. 타협은 양쪽 모두에게 50%의 불만을 남기는 미봉책일 뿐이다.
진정한 해결은 ‘초월(Transcend)’이다. 대립하는 두 개의 목표를 기계적으로 섞는 것이 아니라, 그 두 가지 욕망을 모두 충족시키는 제3의 차원을 창조하는 것. A와 B가 싸울 때, A-B/2를 하는 것이 아니라, A+B=C라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은 ‘벽(Wall)’을 세우느냐 마느냐를 두고 멱살잡이를 하던 두 사람 사이에서 김경훈 연구원이 어떻게 물리적 벽을 넘어 ‘이해의 벽’을 허물었는지에 대한, 어느 시끄러운 공사 현장의 기록이다.
대구 북구의 한 오래된 적산가옥 리모델링 현장.
이곳은 곧 ‘청년 예술가와 지역 주민을 위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었다. 김경훈은 공간 접근성 자문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현장은 평화로운 문화 공간이 아니라, 전쟁터였다.
“아니, 안 된다니까요! 여기 벽을 안 세우면 건물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사람이 무너져요!”
걸걸한 목소리의 남자가 소리쳤다.
“답답해 미치겠네! 벽을 세우면 우리 춤추는 동선이 다 끊긴다고요! 관객이랑 소통을 어떻게 해요?”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여자가 맞받아쳤다.
공기 중에는 톱밥 먼지와 함께, 두 사람의 분노가 섞인 아드레날린 냄새가 진동했다. 탱고가 불안한 듯 김경훈의 다리 뒤로 숨었다.
김경훈이 보보에게 물었다.
“누구랑 누가 싸우는 거야?”
“음… 한 명은 공사 책임자 같고, 한 명은 입주할 예술가 대표 같네. 지금 ‘가벽’ 하나를 두고 30분째 대치 중이야.”
김경훈은 싸움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잠깐만요. 접근성 자문 왔습니다만, 심리적 접근성부터 해결해야겠군요.”
남자는 장판석(60대) 반장이었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목수이자 현장 소장. 그는 안전과 효율, 그리고 ‘구획’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여자는 이서윤(20대) 안무가였다. 이 공간을 사용할 현대무용 팀의 리더로, 개방감과 자유, ‘흐름’을 중시했다.
장 반장이 씩씩거렸다.
“박사 양반, 들어보소. 이 아가씨가 여기 로비랑 연습실 사이에 벽을 트자고 하는데, 그럼 소음은 어쩔 거요?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민원 넣으면 누가 책임져? 그리고 냉난방비는? 벽이 있어야 관리가 될 거 아니요!”
이서윤이 끼어들었다.
“반장님, 이건 ‘공연장’이에요. 닫힌 방에서 우리끼리 춤추면 그게 무슨 소통이에요? 로비에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연습실을 볼 수 있어야 들어오죠. 벽을 세우면 그냥 ‘감옥’이라고요!”
전형적인 이항 대립이었다.
A(장 반장): 벽 설치 (목적: 소음 차단, 냉난방 효율, 구획 정리)
B(이서윤): 벽 제거 (목적: 개방감, 관객 소통, 공간 확장)
보통의 경우라면 ‘유리벽’이나 ‘절반 높이의 벽’으로 타협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리벽은 소통은 되지만 물리적 확장이 안 되고(이서윤 불만), 절반 벽은 소음을 못 막는다(장 반장 불만).
김경훈은 지팡이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두 분 다 진정하세요. 갈퉁 박사가 보면 혀를 차겠습니다.”
“갈퉁이 누군데?” 장 반장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싸움을 끝내주는 전문가죠. 자, 두 분의 ‘요구(What)’ 말고 ‘이유(Why)’를 봅시다.”
김경훈은 장 반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장님, 벽을 세우고 싶은 진짜 이유가 뭡니까? 벽돌을 사랑해서는 아니실 테고.”
“아 당연히! 시끄러운 소리 막고, 겨울에 춥지 말라고 그러는 거지!”
-> 핵심 니즈: 차단(Blocking)
이번엔 이서윤 쪽을 향했다.
“대표님은 왜 벽을 없애고 싶죠?”
“답답하니까요! 필요할 땐 로비까지 무대로 쓰고 싶단 말이에요.”
-> 핵심 니즈: 연결(Connecting)
김경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평소에는 완벽하게 소리를 막아주고, 공연할 땐 완전히 사라져서 공간을 하나로 합쳐주는 벽이 있으면 됩니까?”
두 사람이 동시에 김경훈을 쳐다봤다.
“그런 게 어딨어요? 마법 벽도 아니고.”
김경훈은 보보에게 귓속말로 무언가를 검색해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보보가 스마트폰 화면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고성능 어쿠스틱 무빙월(Acoustic Moving Wall)’입니다.” 김경훈이 설명했다.
“호텔 연회장에서 쓰는 거죠. 평소에는 천장 레일에 매달려 차곡차곡 접혀 있습니다. 이때는 벽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죠. 이서윤 대표님이 원하는 완벽한 개방감입니다.”
그는 장 반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걸 펼쳐서 잠그면, 내부에 흡음재가 꽉 찬 10cm 두께의 단단한 벽이 됩니다. 차음 성능이 50 데시벨 이상이죠. 장 반장님이 걱정하는 소음, 냉난방 문제? 완벽하게 해결됩니다. 심지어 벽면을 거울로 마감하면 연습할 때도 좋죠.”
현장에 정적이 흘렀다.
타협(유리벽)은 둘 다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초월(무빙월)은 둘의 욕망을 100% 충족시켰다. 아니, ‘거울’이라는 기능까지 더해져 120%가 되었다.
장 반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허… 그 비싼 걸 예산 안에서 할 수 있나?”
보보가 웃으며 거들었다.
“반장님, 조적(벽돌) 쌓고 미장하고 페인트칠하는 인건비랑 공기 따져보면, 이게 오히려 쌀 수도 있어요. 저희가 견적 한번 뽑아볼까요?”
이서윤의 목소리 톤이 한층 밝아졌다.
“접으면 아예 사라지는 거죠? 그럼 공연할 때 로비까지 다 쓸 수 있겠네요! 대박.”
일주일 후, 다시 찾은 현장에는 천장에 레일 공사가 한창이었다.
장 반장과 이서윤은 더 이상 으르렁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를 맞대고 무빙월의 색상을 고르고 있었다.
“반장님, 검은색이 낫지 않아요? 무대 배경으로 쓰게.”
“에이 너무 어두워. 우드 톤으로 가자니까. 그래야 따뜻해 보이지.”
김경훈은 그 소리를 들으며 미소 지었다. 그것은 더 이상 ‘파괴적인 갈등’이 아니라, ‘창조적인 논쟁’이었다.
“어때, 자기야.” 김경훈이 보보에게 물었다. “갈퉁의 제자답지?”
“그러네. 벽을 세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움직이는 벽’이라는 제3의 답을 찾았네. 훌륭해, 김 아키텍트.”
탱고가 ‘멍!’ 하고 짖었다. 공사 소음이 멈추자 녀석도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갈등은 나쁜 것이 아니다. 갈등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초월점’이 존재한다는 신호다. 단지 그 신호를 읽어낼 ‘통역사’가 필요할 뿐이다.
‘제목: 초월(超越)의 아키텍처, 혹은 무빙월의 지혜.
A와 B가 대립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중간’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중간은 미지근한 물과 같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갈퉁의 초월법은 ‘둘 다(Both)’를 선택하는 용기다. 차단을 원하면 완벽하게 차단하고, 연결을 원하면 완벽하게 연결하라. 기술과 상상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장 반장의 ‘안전’과 이서윤의 ‘자유’는 모순이 아니었다. 그저 ‘고정된 벽’이라는 낡은 관념 안에서만 모순이었을 뿐.
결론: 싸움을 멈추지 마라. 대신 싸움의 ‘차원’을 높여라. 벽이 문제라면, 그 벽을 춤추게(Moving) 만들면 된다.
… 그나저나 결혼식장에도 무빙월이 있나? 보보가 도망가려고 하면 즉시 벽을 쳐서 차단해야 하는데.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