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용의 아키텍처

가상의 적을 만들어 승리하는 매혹적이고도 비겁한 전략에 대하여

by 김경훈


과학철학에는 '중국 용(Chinese Dragon) 테크닉'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것은 전설 속의 동물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자신의 불확실한 가설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고도의 논리적 사기(Fraud) 기술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연구자는 자신의 이론이 옳다는 것을 직접 증명하는 대신, 자신의 이론과 정반대 되는 '가상의 멍청한 이론(중국 용)'을 하나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가상의 이론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비논리적인지를 신랄하게 비판하여 박살 낸다.

적(Dragon)이 쓰러진 자리에서 연구자는 외친다.

"보라! 저 이론이 틀렸으니, 남은 대안인 내 이론이 무조건 옳다!"


이것은 흑백논리의 오류이자 허수아비 때리기다. 하지만 이 전략은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우리는 복잡한 진실을 탐구하기보다, 눈앞의 괴물이 처참하게 깨지는 것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 승리자에게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 '중국 용'이 가장 활개 치는 곳은 학계가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의 웨딩 산업이다.

내년 4월, 대구 계산성당에서의 결혼식을 준비하며 연구자는 수많은 용들과 마주쳤다.


웨딩 플래너나 업체들은 예비부부에게 거대한 용 한 마리를 소환한다. 그 용의 이름은 '후회(Regret)'다.

"신랑님, 신부님. 인생에 한 번뿐인 날인데, 남들 다 하는 '스드메' 패키지를 안 하시면 나중에 늙어서 무조건 후회하십니다. 촌스러운 사진을 남기시겠습니까(중국 용), 아니면 저희의 프리미엄 패키지를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들은 '비싼 패키지'와 '촌스럽고 후회막심한 결혼식'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을 제시한다. 중간 지대는 없다. 그들이 만들어낸 '후회'라는 용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오직 카드 결제라는 무기밖에 없다고 강요한다.

많은 커플이 이 용의 불길에 겁을 먹고 지갑을 연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스드메를 안 한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식이 촌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다행히 연구자의 파트너 보보는 노련한 '드래곤 슬레이어'다. 칸트 철학으로 무장한 그녀에게 어설픈 이분법은 통하지 않는다.


"스드메를 안 하면 후회한다고? 천만에. 안 입을 옷에 수백만 원을 쓰는 게 더 큰 후회야."

그녀는 업계가 소환한 중국 용을 가볍게 무시하고, 백화점과 아울렛을 돌며 직접 드레스를 골랐다. 그녀의 기준은 명확했다. '결혼식 날 하루만 입는 코스튬'이 아니라, '예식 후에도 격식 있는 자리에 입고 갈 수 있는 옷'.


그녀는 허상의 적(후회)과 싸우는 대신, '실용(Utility)'이라는 현실의 가치를 선택했다.

그녀가 고른 드레스는 화려한 비즈 장식은 없지만, 그녀의 지적인 분위기와 계산성당의 붉은 벽돌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우아함을 지녔다. 보보의 선택은 증명한다. 중국 용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 용이 존재하지 않음을 간파하고 쿨하게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연구자 자신이 이 중국 용 전략을 즐기기도 한다. 특히 사랑하는 동생 영준이와의 관계에서 그렇다.


대기업에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영준이는 5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결혼식 촬영을 맡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영준이에게서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형, 제가 이번에 소니에서 나온 렌즈를 보고 있거든요? 근데 이게 없으면 계산성당의 그 어두운 조명을 감당 못 해서 형 얼굴이 심령사진처럼 나올지도 몰라요."


영준이는 지금 '심령사진'이라는 중국 용을 만들고 있다.

'새 렌즈를 산다'와 '결혼식 영상이 망한다'는 두 가지 선택지만 제시하며, 자신의 지름신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술적으로 따져보면 기존 장비로도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는 이 귀여운 중국 용을 모른 척 받아들이기로 한다.


"야, 큰일 나면 안 되지. 심령사진이라니. 당장 그 용(렌즈)을 잡아라. 결제해."


영준이가 신나서 렌즈를 사는 것. 그것이 그가 바쁜 시간을 쪼개어 형을 도와주는 것에 대한 작은 보상심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뻔히 보이는 허상의 괴물에게 짐짓 놀라주는 척하는 연기도 필요한 법이다.



다시 대학교 연구실.

책상 아래에서 안내견 탱고가 코를 킁킁거린다. 탱고의 세계에는 중국 용이 없다.

녀석은 "간식을 주지 않으면 내가 널 물어버릴 거야" 같은 가상의 위협을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턱을 연구자의 무릎에 괴고, 축축한 코로 "간식을 주면 내가 행복할 거야"라는 긍정의 신호만을 보낸다.


동물의 세계는 언제나 정직한 인과관계로 움직인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쩌면 인간만이 가진 슬픈 지적 허영심일지도 모른다.



중국 용 테크닉은 달콤하다. 가상의 적을 만들어 때려눕히면 쉽게 승리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결혼식이든, 논문이든, 인생이든, 진짜 승부는 허상의 괴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년 4월, 계산성당에는 화려한 스드메도, 웨딩 플래너가 만든 환상도 없을 것이다.

대신 보보가 직접 고른 단정한 드레스와, 영준이의 열정이(그리고 새 렌즈가) 담긴 카메라, 그리고 동네 샵 원장님의 손길이 닿은 우리의 진짜 얼굴이 있을 것이다.

용이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비로소 '우리'라는 실체가 남는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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