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의 아키텍처

쏟아진 커피는 돌아오지 않는다

by 김경훈


물리학에는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우주의 운명을 결정짓는 서늘한 문장이 있다.

"고립계의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쉽게 말해, 자연 상태의 모든 것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정돈된 상태에서 엉망진창인 상태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뜨거운 커피는 식어가고, 향수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 정리된 방은 어지러워진다. 그 반대의 경우—식은 커피가 저절로 뜨거워지거나, 흩어진 향수 분자가 다시 병 속으로 모이는 일—는 결코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 거대한 우주의 법칙은 사회과학대 연구실 책상 위에서 매일 실증된다.

아침에 분명 깔끔하게 정리하고 시작했는데, 오후 4시가 되면 책상은 온갖 논문 더미, 점자 단말기, 벗어둔 이어폰, 그리고 반쯤 마신 커피잔들로 카오스(Chaos) 상태가 된다.

연구자가 게으른 탓이 아니다.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우주의 섭리다. 그러므로 지도교수님이 "자네 책상은 왜 이 모양인가?"라고 묻는다면, 연구자는 당당하게 답해야 한다.

"교수님, 저는 지금 우주의 팽창과 엔트로피 증가 법칙을 실험 중입니다."



엔트로피의 증가를 가장 시각적(그리고 촉각적)으로 보여주는 존재는 바로 안내견 '탱고'다.

래브라도 리트리버인 탱고는 걸어 다니는 '무질서 생성기'다. 녀석이 한번 몸을 털 때마다 수천 가닥의 털이 공기 중으로 비산 된다. 그 털들은 바닥으로, 소파 틈새로, 연구자의 검은색 코트 위로 무작위 하게 확산된다.


이 털들을 다시 탱고의 몸에 붙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번 흩어진 털(정보)은 다시 원상 복구되지 않는다.

대구의 아파트 거실에서 로봇 청소기가 윙윙거리며 털을 모으려 애쓰지만,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로봇 청소기가 털을 모으는 동안(질서 회복), 모터에서 발생하는 열과 소음이 또 다른 엔트로피(무질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결국 탱고와 함께 산다는 것은 '점점 더 어지러워지는 우주'를 껴안고 뒹구는 일이다. 털 좀 날리면 어떤가. 그 무질서 속에 따뜻한 체온이 있는데.



19세기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이 엔트로피 법칙을 거스르는 가상의 존재를 상상했다. 일명 '맥스웰의 도깨비(Maxwell's Demon)'. 이 도깨비는 분자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며 빠른 것과 느린 것을 분류해 무질서를 질서로 되돌리는 능력을 가졌다.


연구자의 집에도 도깨비가 산다. 바로 파트너 보보다.

그녀는 엔트로피와의 전쟁을 선포한 전사다. 퇴근 후 연구자가 아무렇게나 벗어둔 양말(무질서)을 발견하면, 그녀는 즉각적으로 개입한다.

"자기야, 양말은 세탁 바구니에. 옷은 옷걸이에."


칸트 철학을 전공한 그녀에게 '청소'는 단순한 가사 노동이 아니다. 혼돈(Chaos)인 세계에 이성(Logos)을 부여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그녀는 향기(Scent)를 이용해서도 질서를 잡는다. 퀴퀴한 냄새가 퍼지려는 공간(고 엔트로피)에 세련된 우디 계열의 룸 스프레이를 뿌려 공기의 흐름을 통제한다. 보보가 지나간 자리는 흐트러진 사물들이 제자리를 찾고, 공기는 정돈된다. 그녀는 연구자의 인생에 파견된 유능한 맥스웰의 도깨비임이 틀림없다.



연구자의 본업인 문헌정보학(Library and Information Science) 역시 본질적으로는 '반(反) 엔트로피 투쟁'이다.

세상의 모든 정보는 가만히 두면 쓰레기 데이터(Garbage Data)가 된다. 맥락 없이 흩어진 텍스트, 출처를 알 수 없는 자료, 깨진 링크들.

문헌정보학자는 이 무질서한 데이터의 바다에 뛰어들어 분류(Classification)하고, 목록(Cataloging)을 만들고, 색인(Index)을 붙인다.


도서관은 엔트로피가 0에 수렴하도록 설계된 인공적인 우주다. '000 총류'부터 '900 역사'까지, 모든 책은 십진분류법이라는 주소지(Address)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으면 서가는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된다. 연구자가 밤새워 논문을 쓰고 데이터를 정제하는 이유는 단 하나. 정보가 무의미한 소음(Noise)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우리는 데이터의 묘지기가 아니라, 데이터의 건축가여야 하니까.



인간관계에도 열역학 법칙은 적용된다. 사랑도 가만히 두면 식는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뜨거운 열정(고에너지)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지근한 편안함(평형 상태)으로 변하고, 관리를 안 하면 결국 차가운 무관심(최대 엔트로피)으로 향한다.


보보와의 관계가 늘 뜨거울 수는 없다. 하지만 무질서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에너지를 투입한다.

주말마다 공원으로 산책을 가거나(운동 에너지), 뜬금없이 "사랑해"라고 말하거나(소리 에너지), 서로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하는(열에너지) 행위들.

이 인위적인 노력들이 없다면 관계는 자연의 법칙대로 서서히 붕괴할 것이다.



우주는 결국 멸망할 것이다. 모든 별이 식고, 모든 움직임이 멈추는 '열 죽음(Heat Death)'의 상태가 올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렇게 예언한다.

하지만 그 먼 미래의 파국이 오늘 우리가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될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연구자는 오늘도 무거워진 몸을 일으킨다.

탱고가 어지러운 털을 뿜으며 꼬리를 흔들고, 보보는 드레스룸에서 옷들을 각 잡으며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다.

"자기야, 뭐 해? 빨래 안 개고."


보보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 목소리야말로 나의 나태함을 깨우는 외부 에너지다.

어차피 어지러워질 방이지만, 오늘 하루 분량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연구자는 움직인다.

우리는 무질서로 향하는 미끄럼틀 위에서 기어이 거꾸로 기어 올라가는 유쾌한 시지프스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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