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아키텍처

시뮬라시옹을 거부한, 리얼리즘 결혼식에 대하여

by 김경훈


대구의 근대 골목, 그 중심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계산성당이 있다. 100년이 넘는 시간을 견딘 이 고딕 양식의 건축물은 그 자체로 거대한 미장아빔의 구조를 띤다.

뾰족한 아치(Arch) 안에 작은 아치가 있고, 그 안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으며, 그 유리 조각 안에 성인들의 이야기가 쪼개져 들어가 있다.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벽돌 속에 박제되어 있고, 내년 4월이 되면 연구자와 보보의 미래가 이 오래된 시간의 액자 속으로 끼워지게 된다.


보통의 결혼식이 '예식장'이라는 1시간짜리 세트장에서 벌어지는 연극이라면, 성당에서의 혼배미사는 역사라는 거대한 텍스트 안에 우리의 서사를 각주(Footnote)로 달아놓는 엄숙한 작업이다.

연구자는 상상한다. 100년 전 이곳에서 결혼했을 누군가의 기도가 벽돌 틈새에 숨어 있다가 내년 4월의 우리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 안에서 영원히 겹쳐지고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사회가 '시뮬라시옹(Simulacrum)', 즉 원본 없는 복제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민국의 결혼 산업, 일명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야말로 시뮬라시옹의 정점이다. 신부는 그날 하루, 자신이 아닌 '공주님'이라는 가상의 이미지를 연기하고, 신랑은 어색한 턱시도를 입은 조연이 된다. 화려하지만 실체 없는 하이퍼 리얼리티(Hyper-reality).


하지만 칸트 전공자이자 합리적 리얼리스트인 파트너 보보는 이 거대한 허구의 시스템을 거부했다.

"결혼식은 쇼가 아니야. 생활의 연장이지."

그녀는 '스드메' 패키지를 계약하는 대신, 백화점과 아울렛을 돌며 직접 발품을 팔았다. 그녀가 고른 드레스는 한 번 입고 반납하는 무대 의상이 아니다. 결혼식 후에도 격식 있는 자리에 입고 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드레스'다.

이것은 패션의 미장아빔이다. 결혼식이라는 특별한 이벤트가 일상과 단절된 섬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일상의 날들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Embed) 설계한 것이다. 그녀에게 웨딩드레스는 '코스튬'이 아니라, 삶의 전투복이자 예복이다.



스튜디오 촬영 또한 생략되었다. 공장처럼 찍어내는 남들과 똑같은 배경과 포즈의 사진은 연구자의 취향도, 보보의 철학도 아니었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관계의 미장아빔'이다.


연구자가 아끼는 동생 영준이. 대기업의 살인적인 업무 강도 속에서도 그는 카메라를 들고 달려왔다.

"형, 내가 형 결혼식 영상은 무조건 찍어준다고 했잖아."

그가 이 말을 처음 뱉은 건 5년 전이었다. 그때는 흘러가는 말인 줄 알았으나, 영준은 그 약속을 5년이라는 시간의 층위 속에 묻어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꺼내놓았다.

과거의 약속이 현재의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미래의 기록으로 남는 구조.


영준의 카메라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5년 전의 영준이 렌즈를 통해 현재의 연구자를 보고, 현재의 연구자는 렌즈를 통해 미래에 이 영상을 보게 될 자신을 본다.

비싼 스튜디오 작가가 찍어주는 '완벽한 앵글'보다, 땀 흘리는 동생의 앵글 속에 담긴 '흔들리는 진심'이 더 아름다운 피사체임을 연구자는 안다.



메이크업 역시 청담동의 낯선 터치를 거부했다. 대신 성당 근처, 연구자와 보보가 자주 가던 단골 샵 원장님에게 얼굴을 맡기기로 했다.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인간관계를 '자아 연출(Presentation of Self)'의 드라마로 보았다. 보통의 결혼식 화장이 평소와 다른 가면을 쓰는 '분장'이라면, 단골 원장님의 메이크업은 평소의 얼굴을 가장 잘 아는 이가 찾아주는 '본연의 아름다움'이다.


"신랑님은 눈이 안 보이시니까, 눈빛보다는 표정 근육이 돋보이게 해드릴게요. 보보 신부님은 칸트 이야기할 때 나오는 그 지적인 눈썹 라인을 살리고요."

원장님은 우리의 얼굴 위에 낯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온 일상의 표정을 더 선명하게 돋을새김한다. 일상이 예식 속에 들어오고, 예식이 다시 일상으로 번져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얼굴의 아키텍처다.



미장아빔은 정지된 그림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안으로 파고들며 이야기를 증식시키는 생명체다.

내년 4월, 계산성당의 붉은 벽돌 안에서 치러질 결혼식은 겉보기에 소박할지 모른다. 화려한 스튜디오 사진도, 수백만 원짜리 대여 드레스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현기증이 날 만큼 깊고 풍성한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보보의 실용적인 드레스 자락에는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영준이의 카메라 렌즈 속에는 5년을 이어온 묵직한 의리가 단골 샵 원장님의 브러시 끝에는 친근한 이웃의 정이 그리고 성당의 벽돌 틈에는 100년의 기도가 프랙털처럼 박혀 있다.


연구자는 그날, 보보의 손을 잡고 그 깊은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결혼식(Wedding)'이라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생활(Life)'이라는 거대한 미장아빔 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아름답고도 현실적인 입장(Entrance)이 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장아빔의 아키텍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