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아빔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프랑스의 치즈 브랜드 '래핑 카우'의 붉은 뚜껑 속 소가 귀걸이를 하고, 그 귀걸이 속에 다시 소가 있는 무한 반복의 이미지. 우리는 이것을 '미장아빔(Mise-en-abyme)'이라 부른다.


이 현기증 나는 구조를 마주할 때, 연구자는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거울 단계(Mirror Stage)'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생후 6~18개월의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저게 나구나!"라고 인식하며 환호한다. 하지만 라캉은 지적한다. 거울 속의 나는 '실재(Real)'가 아니라, 완벽하게 조작된 '허상(Image)'일 뿐이라고.

우리는 평생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그 비친 모습을 다시 내면화하며 자아를 형성한다. 결국 인간의 자아 자체가 거울 속에 거울이 비치는 미장아빔의 구조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셈이다.


이 심리학적 현기증은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 건물의 낡은 엘리베이터에서도 물리적으로 체험된다.

양옆에 마주 본 거울이 서로를 비춘다. 그 사이에 선 연구자의 모습은 빛의 반사를 통해 수없이 복제되어 끝없는 심연으로 이어진다. 흰 지팡이를 든 수십 명의 김경훈이 거울 속의 회랑을 따라 걸어가는 풍경. 과연 저 수많은 상(像) 중 '진짜 나'는 누구인가. 아니, 진짜가 있기는 한 것인가.



미장아빔은 심리학이나 광학에만 머물지 않는다. 연구자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 안내견 '탱고'와의 산책은 완벽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피드백 루프'를 보여준다.


우리는 '하네스'라는 인터페이스로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다.

연구자가 걷는다(입력). 손의 미세한 속도 변화가 하네스를 통해 탱고에게 전달된다. 탱고는 그 신호를 읽고 보폭을 조절한다(처리). 그 순간, 탱고의 등 근육 움직임이 다시 하네스를 타고 연구자의 손으로 전해진다(출력). 연구자는 그 피드백을 받아 다시 걷는 속도를 조절한다(재입력).


'원인과 결과가 서로의 꼬리를 무는 순환.'

노버트 위너가 주창한 사이버네틱스 이론이 이토록 따뜻한 체온을 가질 수 있을까. 대구의 가을 낙엽 밟는 소리 속에서 주체와 객체의 경계는 사라진다. 장자(莊子)의 호접몽이 나비와 인간의 미장아빔이라면, 나와 탱고는 '인견몽(人犬夢)'의 구조 속에서 함께 걷는다.



주말이 되어 창녕 처가를 방문하면, 미장아빔은 경제학적 욕망의 구조로 치환된다.


장모님이 차려주신 밥상 앞에서 연구자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무시하고 숟가락을 든다. 장모님은 고봉밥을 꾹꾹 눌러 담으며 말씀하신다.

"경훈이 이거 다 먹어야 힘쓴다. 남기면 안 된다." (공급의 과잉)

그리고 몇 시간 뒤, 대구 신혼집으로 돌아오면 파트너 보보가 똑같은 톤으로 말한다.

"자기야, 저녁 다 먹어. 남기면 음식물 쓰레기야." (수요의 강제)


이것은 단순한 모전여전(母傳女傳)이 아니다. 베노이트 만델브로트가 말한 기하학적 '프랙털(Fractal)'이자, 자본주의적 소비 패턴의 재생산이다.

장모님(거시 경제)의 사랑 방식이 보보(미시 경제)에게로 완벽하게 복제되어 있다. 내년 4월,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연구자는 이 거대한 '사랑의 카르텔'에 종신회원으로 가입하게 될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그 밥이 곧 사랑의 잉여가치니까.



이 모든 혼란을 정리하는 것은 역시 보보다. 그녀와의 대화는 철학적 미장아빔의 절정이다.

칸트 철학을 전공한 그녀는 일상의 갈등조차 '판단력 비판'의 구조로 끌고 간다.


결혼 준비로 예민해진 연구자가 "드레스 투어 꼭 다 가야 해?"라고 투덜거렸다고 가정해 보자.

그녀는 즉시 반격한다. "지금 네가 느끼는 귀찮음은 경험적인 피로인가 아니면 미적 판단의 부재인가?"

그녀는 내 발언을 분석하고(1차 비판), 분석하는 자신의 논리를 다시 검증하며(2차 비판), 마침내 "결혼식이라는 숭고(Sublime)한 의식을 대하는 너의 태도"를 지적한다. 잔소리 속에 철학이 있고, 그 철학 속에 현실적 요구(운전기사 노릇)가 숨겨진 그녀의 화법은 반박 불가능한 논리의 감옥이다.


그녀의 패션 취향 또한 고도의 미장아빔이다.

체크무늬 셔츠 위에 체크 재킷, 그 안에 체크 양말. '패턴 온 패턴'.

시각장애인 파트너에게 그녀는 설명한다. "이건 단순한 체크가 아니야. 큰 질서 속에 작은 무질서가 반복되는 카오스 이론적 패션이라고."

그녀의 궤변조차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걸 보면, 연구자 역시 콩깍지라는 왜곡된 거울 속에 갇힌 것이 분명하다.



미장아빔은 우리를 현기증 나게 한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 반복은 때로 공포스럽다. 하지만 얀 반 에이크가 좁은 캔버스에 거울을 그려 넣어 공간을 무한대로 확장시켰듯, 이 구조는 유한한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든다.


심리학적 자아(거울), 공학적 연결(하네스), 경제적 소비(밥상), 철학적 사유(보보).

이 모든 것이 서로를 비추며 연결되어 있다. 연구자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이 수많은 학문과 관계가 겹쳐진 거대한 텍스트의 일부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통 앞에 선다. 접시를 닦는다. 어제도 닦았고, 오늘도 닦고, 내일도 닦을 것이다.

이 무한한 '설거지 미장아빔' 속에서 연구자는 보보가 세탁기에 붙여준 점자 스티커를 손끝으로 확인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사랑이 있고, 그 사랑 속에 배려가 있으며, 그 배려 속에 다시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담겨 있다.

그 심연이라면, 기꺼이 빠져들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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