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넌도일의 아키텍처

by 김경훈


문학사에서 가장 기이하고도 처절한 '부자(父子) 전쟁'을 꼽으라면 단연 아서 코넌 도일과 그의 피조물 셜록 홈즈의 관계일 것이다.

도일은 1886년,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주홍색 연구'라는 단편을 썼고, 그곳에 자신의 은사 조지프 벨 박사를 모델로 한 탐정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일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창조한 이 냉철한 탐정이 훗날 자신의 인생 전체를 삼켜버리고, 자신을 '셜록 홈즈의 비서' 쯤으로 전락시킬 줄은.


본 연구자는 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주체와 대상의 전복' 현상을 탐구하고자 한다. 내가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가 어느 순간 나를 지배하게 되는 현상. 이는 비단 소설 속 이야기뿐만 아니라, 연구자의 일상—특히 안내견 탱고와의 관계—에서도 빈번하게 목격된다.



도일은 홈즈를 싫어했다. 아니, 증오했다. 그는 자신이 진지한 역사 소설가로 기억되길 원했지만, 대중은 오직 홈즈만을 원했다. 홈즈라는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 자신의 문학적 자아가 질식할 지경에 이르자, 도일은 1892년 '마지막 사건'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바로 주인공을 라이헨바흐 폭포 절벽 아래로 던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소설적 장치가 아니라, 작가가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감행한 '문학적 존속 살해'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런던 시민들은 검은 완장을 차고 다니며 가상의 인물을 애도했고, 도일의 어머니조차 "제발 홈즈를 살려내라"고 아들을 압박했다. 독자들의 애원과 협박, 그리고 결정적으로 '건축 자금'이라는 자본주의적 압박에 굴복하여 도일은 결국 홈즈를 부활시킨다.

작가는 신(God)처럼 인물을 창조했으나, 결국 그 인물을 숭배하는 신도(독자)들에 의해 신의 권능을 박탈당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캐릭터. 이것이야말로 '좀비적 영생'이 아닐까.



부활한 홈즈를 향한 도일의 복수는 치졸하고도 인간적이었다. 그는 홈즈를 점점 더 어둡고 망가진 인물로 그려나갔다. 모르핀과 코카인에 중독된 약물 의존자, 여성 혐오자, 성마른 괴짜.

"살려달라고? 그래, 살려는 줄게. 대신 아주 엉망진창으로 살게 해 주지."


이 대목에서 연구자는 지도 교수님의 얼굴을 떠올린다.

박사 과정생인 본 연구자는 교수의 학문적 피조물(Creation)이다. 교수는 제자가 훌륭한 연구자로 성장하길 바라지만, 동시에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거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것을 경계한다.

가끔 교수님이 과도한 업무(과제)를 던져주며 "이것도 다 자네를 위한 거야"라고 말할 때, 그 이면에는 코넌 도일이 홈즈에게 모르핀을 주사할 때 느꼈던 것과 유사한, '통제의 쾌감'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본 연구자는 홈즈처럼 천재가 아니기에 약물 대신 카페인(커피)에 찌들어 간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이다.



코넌 도일이 홈즈에게 끌려다녔듯, 연구자는 안내견 탱고에게 끌려다닌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주인의 눈이 되어 헌신하는 충직한 존재"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하네스를 잡는 순간 권력관계는 미묘하게 역전된다.

경로를 결정하는 것은 연구자(주인)의 몫이지만, 그 경로상의 장애물을 피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실질적인 권한은 탱고에게 있다.


특히 산책 중 탱고가 갑자기 멈춰 서서 꿈쩍도 안 할 때가 있다.

"탱고, 가자." (명령)

"..." (무시)

알고 보니 전방에 매력적인 냄새를 풍기는 전봇대가 있거나, 아는 강아지 친구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때 연구자는 하네스를 잡고 애원하는 처지가 된다.

"야, 제발 가자. 나 바쁘다고."

도일이 독자들에게 "홈즈 좀 그만 찾으세요"라고 애원했던 심정이 이랬을까. 하네스는 주인이 개를 통제하는 도구인 동시에, 개가 주인을 묶어두는 족쇄이기도 하다. 탱고는 짖지 않고도 침묵만으로 연구자를 굴복시킨다. 이 관계에서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코넌 도일은 소설 속에 자신의 분신인 왓슨 박사를 심어두었다. 홈즈의 천재성을 기록하고 관찰하며, 때로는 그 괴팍함을 견뎌내는 인물. 도일은 결국 자신이 홈즈가 될 수 없음을, 홈즈를 이길 수 없음을 인정하고 관찰자의 자리에 머물렀다.


본 연구자 역시 이 거대한 세상에서 주인공(홈즈)이 되려 하기보다, 충실한 관찰자(왓슨)가 되기로 한다.

거대 담론을 이끄는 천재가 되지는 못해도, 탱고의 꼬리짓과 보보의 잔소리, 그리고 지하철의 진동을 기록하는 연구자가 되는 것.

도일이 홈즈 덕분에 불멸의 명성을 얻었듯, 나 역시 내 주변의 이 제멋대로인 존재들 덕분에 '기록하는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비록 도일처럼 심령술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가끔 탱고의 눈을 들여다보며 묻고 싶긴 하다.

"너 혹시... 전생에 내 상사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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