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알고리즘

숫자로 지은 집, 문자로 낸 길

by 김경훈


프랑스어의 '콩트(Conte, 이야기)'와 '콩트(Compte, 계산)'는 발음이 같다. 영어의 'Count(세다)'와 'Recount(이야기하다)', 독일어의 'Zahlen(세다)'과 'Erzählen(이야기하다)' 역시 같은 어원을 공유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숫자를 다루는 능력과 이야기를 짓는 능력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이 언어적 일치는 우연이 아니다. 철학적으로 볼 때, 셈(Calculation)과 서사(Narrative)는 모두 '카오스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다. 숫자는 연속된 양(Quantity)을 끊어서 순서를 매기는 것이고, 이야기는 연속된 시간(Time)을 끊어서 기승전결을 부여하는 것이다. 즉, 둘 다 혼돈스러운 세상에 '순번'을 매겨 이해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로고스(Logos)'의 작용이다.



문헌정보학은 이 '숫자와 문자의 결합'이 가장 극적으로 실현되는 공간이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수만 권의 '이야기(문자)'들이 꽂혀 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찾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하는 것은 '청구 기호(숫자)'다.

멜빌 듀이가 고안한 십진분류법(DDC)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야기)을 000부터 999까지의 숫자(셈)로 치환했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찬란한 비극(822.33)을 찾으려면 우리는 감정이 아닌 숫자의 지도를 따라가야 한다.

도서관에서 숫자는 문자의 주소(Address)이자, 문자가 길을 잃지 않게 붙잡아두는 앵커(Anchor)다. 사서는 숫자로 셈하여 서가를 정리하고, 이용자는 그 숫자를 통해 비로소 이야기의 숲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셈과 이야기는 서로를 배척하는 이과와 문과의 영역이 아니라, 완벽한 상호 보완재다.



시각장애인인 나에게 숫자와 문자의 일치는 더욱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사용하는 '점자(Braille)' 시스템에서 숫자와 문자는 놀라울 정도로 밀접하다. 예를 들어, 점자에서 알파벳 'A'는 1번 점 하나다. 그런데 숫자 '1' 역시 1번 점 하나다. 단지 앞에 '수표(Number sign)'라는 특수 기호가 붙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 손끝에 닿는 점의 패턴은 동일하다.

손끝으로 읽는 세계에서 'A'는 언제든 '1'이 될 수 있고, '1'은 언제든 'A'가 될 수 있다. 나는 점자를 읽을 때마다 느낀다. 문학적 서사(Story)와 수학적 논리(Count)는 본질적으로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나의 손끝에서 감성은 이성이 되고, 이성은 다시 감성이 된다.



현대 사회는 이 고대 언어의 일치를 기술적으로 완성했다. 우리가 컴퓨터 화면으로 읽는 소설, 뉴스, 그리고 이 칼럼조차도 기계어(Machine Language)의 차원에서 보면 모두 0과 1이라는 숫자의 나열일 뿐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모든 '이야기(Story)'는 거대한 '연산(Calculation)'의 결과물이다.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고 시를 짓는 시대가 온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애초에 언어의 알고리즘과 수학의 알고리즘은 같은 부모(Logos)에게서 태어난 형제였으니까.

오늘날의 데이터 과학자(Data Scientist)는 현대판 셰에라자드다. 그들은 숫자를 세어(Count) 데이터의 패턴을 읽어내고, 그것으로 미래를 이야기(Recount) 한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나이를 '세고', 통장 잔고를 '세며' 현실을 파악한다. 동시에 우리는 지난 추억을 '말하고', 꿈을 '이야기하며' 의미를 찾는다.

셈하지 않는 삶은 무질서하고, 이야기하지 않는 삶은 삭막하다.

'이야기(Story)'와 '셈(Count)'이 어원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을 통합하라는 인류의 오래된 지혜일지 모른다.


나는 오늘도 연구실에서 통계 데이터(숫자)를 돌리며 논문(이야기)을 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팡이로 보도블록의 개수를 세며(Count), 오늘 하루의 이야기를(Recount) 복기한다.

숫자와 문자, 그 두 개의 날개로 우리는 진리라는 하늘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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