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500 미만 출소 불가
1. 약골 마법사의 잘못된 선택
왕국 마법 아카데미의 수석 졸업생이자, 차기 마탑주 유력 후보인 알라릭.
그는 천재였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종이 인형’이라 불릴 만큼 허약한 체력이었다.
마법 주문을 세 마디만 외워도 숨이 찼고, 지팡이가 무거워 손을 떨 정도였다.
“이대로는 안 돼. 9서클 마법을 쓰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해.”
알라릭은 큰맘 먹고 체력 단련을 결심했다. 그는 수도 뒷골목에 있는 전설의 체육관, ‘아이언 템플(Iron Temple)’을 찾아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알라릭은 후각을 강타하는 냄새에 헛구역질을 했다.
그것은 10년 묵은 땀 냄새, 녹슨 쇠 비린내, 그리고 ‘프로틴(단백질 보충제)’ 특유의 비릿하고 느끼한 초콜릿 향이 뒤섞인 악취였다.
“어서 오십쇼! 멸치… 아니, 회원님!”
카운터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어났다.
키 2.5미터, 녹색 피부, 바위처럼 울퉁불퉁한 근육.
그는 오거(Ogre)였다. 이름은 ‘아놀드’.
“저… 기초 체력을 좀 기르러 왔는데요.”
알라릭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놀드는 알라릭의 팔뚝(나뭇가지 같았다)을 만져보더니 혀를 찼다.
“쯧쯧. 이건 팔이 아니라 젓가락이군요. 이래서야 밥숟가락이나 들겠습니까? 회원님은 ‘기초반’으로는 안 됩니다. ‘지옥의 벌크업 PT 100회’ 코스를 끊으셔야겠네요.”
“아, 아니요. 저는 그냥 가볍게 러닝머신이나…”
“지금 할인 이벤트 중입니다! 오늘 등록하시면 ‘트롤의 피(특수 물약)’ 10개를 무료로 드립니다! 안 하시면 평생 멸치로 살다가 고블린한테 맞고 다니실 겁니까?”
아놀드의 목소리는 위압적이었다. 그는 알라릭의 어깨를 꽉 잡았다. 우득. 뼈가 비명을 질렀다.
“하… 하겠습니다! 할게요!”
알라릭은 공포에 질려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는 몰랐다. 그 계약서 하단에 적힌 깨알 같은 약관을.
[제 1조: 회원은 ‘3대 중량(스쿼트,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합계 500kg을 달성하기 전까지 본 체육관을 나갈 수 없다.]
[제 2조: 중도 포기 시, 회원의 근육을 압류하여 오거들의 간식으로 제공한다.]
2. 지옥의 시작
“자, 회원님! 하나 더! 할 수 있다! 가볍다!”
“끄아아악! 무거워! 죽을 것 같아!”
알라릭은 벤치프레스에 깔려 비명을 질렀다. 바벨의 무게는 고작 40kg(빈 봉)이었지만, 알라릭에게는 산처럼 무거웠다.
아놀드는 옆에서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엄살 부리지 마십시오!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 그게 바로 성장통입니다! 자, 막차 들어갑니다! 5개만 더!”
아놀드의 ‘5개’는 5개가 아니었다. 5개를 하고 나면 “자세가 안 좋았으니 3개 더!”, “마지막으로 진짜 하나 더!”, “보너스로 하나 더!”라며 무한히 늘어났다.
훈련이 끝나면 아놀드는 강제로 물약을 먹였다.
“마시십시오. ‘트롤의 피’입니다. 근성장에 최고죠.”
알라릭은 코를 막고 녹색 액체를 마셨다. 맛은 끔찍했다. 썩은 달걀과 식초, 그리고 건전지를 갈아 넣은 맛이었다.
“우욱… 이거 마시면… 머리가 좀 띵한데요?”
“명현 반응입니다. 근육으로 영양분이 가서 뇌에 피가 좀 덜 도는 것뿐입니다. 정상이니 걱정 마십시오.”
알라릭은 비틀거리며 탈의실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법 공식을 떠올리려는데,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졌다.
‘파이어볼의 영창이 뭐였지? …불… 공…?’
3. 근육의 침식, 지성의 퇴보
한 달이 지났다.
알라릭의 몸은 몰라보게 변했다. 어깨가 넓어지고, 팔뚝에 핏줄이 솟았다. 젓가락 같던 다리는 통나무처럼 단단해졌다.
하지만 잃은 것도 있었다.
“회원님, 오늘 스쿼트 무게는?”
“으… 백… 백… 키로?”
알라릭의 어휘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는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는 게 귀찮아졌다.
고급 어휘 대신 ‘무겁다’, ‘가볍다’, ‘배고프다’, ‘단백질’ 같은 단어들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가 마시던 ‘트롤의 피’는 단순한 스테로이드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능 스탯을 깎아서 힘 스탯으로 치환하는’ 저주받은 연금술 물약이었다.
뇌세포가 죽어가는 대신 근섬유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알라릭은 탈출을 시도했다.
그는 밤중에 몰래 뒷문으로 향했다. 문은 마법으로 잠겨 있었다.
“후후… 이 정도 잠금 마법이야… 7서클 마법사에게는 식은 죽 먹기지.”
알라릭은 주문을 외우려 했다.
“해제하라… 열려라… 어… 그… 알로호모라? 아니, 그건 다른 동네 마법인데…”
주문이 기억나지 않았다.
복잡한 마나 연산 공식이 머릿속에서 다 엉켜버렸다.
“젠장! 왜 생각이 안 나지?”
그때 뒤에서 아놀드가 나타났다.
“회원님? 야밤에 유산소 운동하십니까? 기특하군요.”
“아… 아놀드… 나… 나가고 싶어…”
알라릭은 울먹였다.
“나가고 싶으면 쇠를 드십시오. 약관 기억하시죠? 3대 500.”
아놀드는 알라릭을 질질 끌고 다시 스쿼트 랙으로 데려갔다.
4. 뇌 근육(Muscle Brain)의 각성
세 달이 지났다.
알라릭은 이제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는 ‘근육 덩어리’였다.
그의 로브는 터져나갈 듯한 근육 때문에 찢어져서 반바지와 민소매처럼 변해 있었다.
지능은 처참했다.
“1 더하기 1은?”
“……스쿼트 2회?”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헬스 용어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문이 잠겨 있다? -> 당기면(Row) 열린다.
벽이 막혀 있다? -> 밀면(Press) 뚫린다.
사람이 시비를 건다? -> 들어서(Deadlift) 꽂는다.
어느 날, 아놀드가 테스트를 제안했다.
“회원님.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오늘 3대 500을 측정하겠습니다. 성공하면 출소입니다.”
알라릭의 눈빛이 달라졌다. 멍청해 보였던 눈빛 속에, 짐승 같은 투지가 이글거렸다.
“한다. 든다. 무게.”
알라릭은 바벨 앞에 섰다.
먼저 스쿼트. 180kg.
후우웁!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복압 유지), 앉았다 일어났다. 성공.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지만, 도파민이 뇌를 강타했다.
다음은 벤치프레스. 140kg.
가슴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 하지만 알라릭은 웃었다.
“가볍다! 깃털이다!”
성공.
마지막, 데드리프트. 180kg.
이것만 들면 500kg 달성이다.
알라릭은 바벨을 잡았다. 손바닥의 굳은살이 바벨의 널링(까칠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끄으으으응!”
바벨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정강이를 타고 올라왔다. 허리가 휘어질 듯했지만, 등 근육이 활처럼 팽팽하게 버텼다.
“들어라! 들어!”
아놀드가 소리쳤다.
알라릭은 포효했다.
“라잇 웨이트(Light Weight)! 예아 버디(Yeah Buddy)!”
쾅!
알라릭은 바벨을 들어 올리고 락아웃(Lock-out)에 성공했다.
5. 물리 마법사(Physical Wizard)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아놀드가 박수를 쳤다.
“회원님은 이제 자유입니다. 나가셔도 좋습니다.”
문이 열렸다. 바깥세상의 햇살이 들어왔다.
하지만 알라릭은 나가지 않았다. 그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육… 아름답다… 펌핑… 좋다…”
그는 자신의 몸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놀드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거대한 산처럼 보였던 오거 트레이너가 지금은 왠지… 작아 보였다.
알라릭의 시야(스카우터)가 발동했다. 물론 마법이 아니라, 헬창의 본능적인 눈썰미였다.
[분석: 상완이두근 불균형. 하체 부실. 체지방률 15% 초과. 둥근 어깨(Round Shoulder).]
알라릭의 눈에 아놀드의 몸은 ‘하자 투성이’였다.
“트레이너… 몸… 구리다.”
알라릭이 툭 내뱉었다.
“네? 뭐라고요?”
아놀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 운동… 잘못했다. 자세… 쓰레기다. 하체… 새다리다.”
“이 멸치 새끼가! 3대 500 좀 쳤다고 눈에 뵈는 게 없어?”
아놀드는 분노하여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오거의 완력은 바위도 부술 수 있었다.
하지만 알라릭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마법을 썼다. 아니, ‘물리 마법’을 썼다.
“캐스팅(Casting)…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알라릭은 주먹을 날렸다.
그것은 마나 화살이 아니었다. 압도적인 삼두근과 광배근의 탄력을 이용한, 음속을 돌파하는 ‘정권 지르기’였다.
퍼억!
“꾸에에엑!”
아놀드는 명치를 맞고 저만치 날아갔다. 벽에 처박힌 오거는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마법… 쉽다. 주먹이… 마법이다.”
알라릭은 깨달았다. 복잡한 주문 영창? 필요 없다.
그냥 근육에 힘을 주고(Casting), 지르면(Release) 그게 파이어볼(핵주먹)이고 메테오(내려찍기)였다.
6. 근손실의 공포
알라릭은 쓰러진 아놀드를 밟고 섰다. 이제 그를 막을 자는 없었다.
그는 열린 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파란 하늘, 날아다니는 새, 걸어 다니는 사람들.
그런데 알라릭의 눈에는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길을 걷는 사람들 -> 근손실 온 멸치들.
계단 -> 런지(Lunge) 코스.
가로수 -> 턱걸이(Pull-up) 바.
그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알라릭은 공포에 질렸다.
“배고프다… 공복 시간… 길어지면… 근손실 온다…”
그는 밖으로 나가려다 멈칫했다.
밖에는 ‘트롤의 피’가 없다. 밖에는 500kg 바벨이 없다. 밖에는 나를 지옥처럼 굴려줄 파트너가 없다.
‘나가면… 작아진다. 나가면… 약해진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 큰 공포였다.
알라릭은 뒷걸음질 쳤다.
그는 다시 체육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문을 안에서 걸어 잠갔다.
“안 나간다. 여기… 천국이다.”
알라릭은 쓰러진 아놀드를 번쩍 들어 올렸다.
“너… 단백질… 많아 보인다.”
알라릭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이제 지능이 오거보다 낮아졌고, 윤리관도 사라졌다. 오직 ‘근성장’만이 유일한 교리였다.
7. 새로운 관장님의 탄생
1년 후.
‘아이언 템플’은 이름이 바뀌었다.
‘머슬 매직 타워(Muscle Magic Tower)’.
이곳의 관장은 전설적인 대마법사(였던) 알라릭이었다.
그는 이제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근육이 너무 비대해져서 목이 사라졌고, 피부는 트롤의 피 부작용으로 녹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누가 봐도 오거보다 더 괴물 같았다.
새로운 회원이 들어왔다.
비쩍 마른 귀족 청년이었다.
“저… 기초 체력을 좀 기르러 왔는데요.”
알라릭은 카운터에서 일어났다. 우드득. 근육들이 춤을 췄다.
그는 과거 아놀드가 그랬던 것처럼, 청년의 팔을 잡았다.
“환영한다. 멸치.”
알라릭은 청년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제 1조: 회원은 ‘3대 1톤’을 달성하기 전까지 나갈 수 없다.]
“저… 3대 1톤이요? 그게 가능한가요?”
알라릭은 씨익 웃었다. 그의 치아 사이에는 단백질(전임 트레이너의 흔적)이 끼어 있었다.
“가능하다. 내가… 마법을 걸어줄 테니.”
알라릭은 청년의 입에 녹색 물약(자신의 피를 섞은 것)을 억지로 들이부었다.
“마셔라. ‘지성’은… 근육이 자라는 데 방해만 될 뿐이다.”
청년의 눈동자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알라릭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소리쳤다.
“자! 스쿼트 들어간다! 라잇 웨이트 베이비!”
그렇게, 왕국 최고의 천재 마법사는 사라졌다.
대신, 세상에서 가장 무식하고 강력한 ‘근육의 신(God of Protein)’이 탄생하여, 왕국의 모든 지식인들을 근육 몬스터로 만드는 포교 활동을 시작했다.
훗날 역사서는 이렇게 기록했다.
“왕국의 마법 문명이 쇠퇴한 이유는 대마법사들이 모두 헬스장에 갇혀 쇠질을 하느라 주문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