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신도들의 대성당
제국 수도의 중앙, ‘성녀의 눈물’ 광장에는 거대한 돔형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평소에는 엄숙한 기도 소리가 들려야 할 이곳이 오늘은 지옥의 아수라장보다 더 시끄러웠다.
“꺄아아악! 루시엘 오빠!”
“미카엘! 날 가져요! 엉엉!”
수만 명의 소녀들이 성당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손에 ‘마법 응원봉(야광석)’을 들고 미친 듯이 흔들어대고 있었다. 응원봉이 흔들릴 때마다 오색 찬란한 마나의 잔상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오늘은 제국 최고의 아이돌, [성기사단: 생크투스(Sanctus)]의 팬사인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군중 속에서 미미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녀는 이 자리에 오기 위해 3일 동안 알바를 뛰었고, 암표상에게 금화 50닢을 쥐여주었다.
그녀의 손에는 ‘대포 카메라(장거리 마법 촬영 수정구)’가 들려 있었다.
“하아… 하아… 드디어… 드디어 오빠를 가까이서 본다.”
미미의 주위는 전쟁터였다. 땀 냄새, 싸구려 장미 향수 냄새, 그리고 흥분한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가 뒤섞여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턱턱 막혔다. 옆에 있던 소녀가 탈진해서 쓰러졌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자가 줄었다며 밟고 지나갔다.
드디어 성당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우우우웅-
천상의 나팔 소리와 함께, 눈부신 후광 조명이 켜졌다.
다섯 명의 남자가 걸어 나왔다.
순백의 갑옷(사실은 플라스틱 도금)을 입고, 등 뒤에는 마법으로 만든 가짜 날개를 단 그들.
제국의 아이돌, 생크투스였다.
2. 만들어진 우상, 가브리엘
그중에서도 센터(Center)에 선 남자, 가브리엘.
그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피부, 에메랄드 같은 눈동자, 그리고 햇살을 받으면 황금 가루가 떨어질 것 같은 금발 머리.
그가 손을 한번 흔들자, 광장은 비명 소리로 가득 찼다.
“으아아악! 가브리엘! 눈 마주쳤어!”
“오빠! 숨 쉬는 것도 조각이야!”
하지만 가브리엘의 속마음은 겉모습과 달랐다.
그는 미소를 유지한 채(입꼬리에 경련이 일 것 같았지만), 복화술로 옆에 있는 멤버에게 속삭였다.
(아, 냄새나. 저 돼지들 땀 냄새 좀 안 나게 할 수 없냐? 결계 좀 더 세게 쳐.)
옆에 있던 멤버 라파엘이 대답했다.
(참아. 저 돼지들이 우리 물주잖아. 이번 앨범 판매량 채워야 정산받는다고.)
가브리엘은 사실 고아 출신의 양아치였다. 제국 교황청의 ‘성기사 육성 프로젝트(라고 쓰고 아이돌 연습생 시스템)’에 발탁되어, 10년 동안 전신 성형 마법과 세뇌 교육을 받고 만들어진 ‘기획형 상품’이었다.
그의 아름다움은 자연산이 아니었다. 교황청 연금술사들이 갈아 넣은 수많은 물약과, 어둠의 계약으로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3. 팬사인회의 컨베이어 벨트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만남이라기보다 공장 조립 라인에 가까웠다.
팬들은 무릎을 꿇고 기어가서 사인을 받았다. 멤버들 앞에는 ‘제한 시간 30초’를 알리는 모래시계가 놓여 있었다.
“오빠… 저… 이번 앨범 100장 샀어요…”
한 소녀가 울먹이며 말했다.
가브리엘은 기계적으로 사인하며(사실은 마법 도장이 찍어주는 거였다) 대답했다.
“어머, 우리 공주님 고마워요. 다음엔 200장 사주실 거죠? 사랑해요.”
(빨리 가라, 시간 없다.)
옆에는 거대한 오크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30초가 지나면 오크들이 팬을 짐짝처럼 들어서 밖으로 던져버렸다.
드디어 미미의 차례가 왔다.
미미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오늘을 위해 준비한 ‘주접 멘트’를 되뇌었다. 이걸 하면 오빠가 빵 터져서 나를 기억해주겠지?
미미는 가브리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가까이서 본 그는 정말 눈이 부셨다. 피부에서 광채가 났다.
“가… 가브리엘 오빠.”
“네, 우리 어린 양. 이름이 뭐예요?”
가브리엘이 상업용 미소를 지었다.
미미는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한 대사를 쳤다.
“오빠… 얼굴에 뭐 묻었어요.”
가브리엘은 익숙했다. 하루에도 수백 번 듣는 드립이었다. 그는 능청스럽게 되물었다.
“어? 뭐가 묻었는데요?”
미미는 침을 꿀꺽 삼키고 외쳤다.
“잘생김(Handsome)!”
…이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미미의 눈이 커졌다.
가브리엘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의 왼쪽 뺨에 진짜로 무언가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검고, 축축하고, 미끈거리는…
물미역(Seaweed) 조각이었다.
4. 김(Seaweed) 묻었어요, 진짜로
“어…?”
미미는 당황했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없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가브리엘은 미미가 감동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줄 알고, 미리 준비된 대사를 쳤다.
“하하, ‘잘생김’ 묻었다고요? 아이 참, 우리 공주님도 센스쟁이~”
가브리엘은 윙크를 날렸다.
하지만 미미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미역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기생충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커지고 있었다. 손톱만 했던 미역 조각이 순식간에 동전만 해지더니, 가브리엘의 뺨을 타고 귀 뒤로 넘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냄새.
갑자기 성당 안에 비릿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향긋한 장미 향수를 뚫고 들어오는 아주 짙은 바다의 짠내와 생선 비린내였다.
“아… 아니요, 오빠.”
미미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진짜로… 김 묻었어요. 아니, 미역이요! 저기, 뺨에요!”
“네?”
가브리엘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팬은 왜 드립을 안 받아치고 정색을 하지?
그는 짜증스럽게 손으로 뺨을 문질렀다.
철퍽.
차가운 감촉. 끈적한 점액질.
가브리엘은 손을 떼어보았다. 그의 하얀 장갑에 시커먼 녹색 해초가 묻어나왔다.
“이… 이게 뭐야?”
가브리엘이 당황하는 사이 뺨에 있던 미역은 급속도로 증식했다.
스르륵, 스르르륵.
미역 줄기가 가브리엘의 목을 감았다. 콧구멍으로 들어갔다. 입을 막았다.
5. 인어의 청구서
“읍! 으읍!”
가브리엘이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미역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의 입에서 바닷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오빠! 오빠 왜 그래요!”
“꺄아아악! 가브리엘 님 얼굴이!”
팬들이 비명을 질렀다.
가브리엘의 도자기 같던 피부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새에서는 피 대신 바닷물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
성당 바닥으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발목까지, 무릎까지.
물은 차갑고 짰다. 그리고 물속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며 헤엄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멤버 라파엘이 도망치려 했지만, 그 역시 몸에서 조개껍데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허공에서 서늘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찾았다… 내 목소리 도둑놈.]
광장의 대형 스크린(원래는 뮤직비디오가 나오던 곳)이 지직거라더니, 기괴한 형상이 나타났다.
아름답지만 흉측하게 일그러진, 인어(Mermaid)의 모습이었다.
[가브리엘. 아니, 뱃사람 ‘개똥이’.]
인어의 목소리는 분노에 차 있었다.
[10년 전, 네가 내 목소리와 미모를 빌려가는 대신… 네 심장을 주기로 계약했었지?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이자 한 푼 안 갚아?]
팬들은 웅성거렸다.
“개똥이? 우리 오빠 본명이 개똥이였어?”
“목소리를 빌려? 립싱크 가수였어?”
가브리엘은 사실 10년 전, 난파선에서 죽어가던 뱃사람이었다. 그는 우연히 만난 인어 마녀에게 ‘스타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고, 인어는 자신의 목소리와 마법을 빌려주는 대신 10년 뒤에 그의 심장을 가져가기로 계약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교황청의 성기사가 되면서 신성력으로 계약의 저주를 누르고 있었다.
문제는 오늘, 팬사인회장에서 너무 많은 ‘거짓말(팬 사랑)’을 하는 바람에 신성력이 바닥나버린 것이다.
[계약 만료다. 이제 원금과 이자를 회수하겠다. 압류 딱지는 붙여놨으니 도망갈 생각 마라.]
인어가 말한 ‘압류 딱지’.
그것이 바로 미미가 발견한 ‘얼굴의 김(미역)’이었다.
6. 수족관이 된 팬사인회
“으으으… 웁… 뽀글뽀글.”
가브리엘은 이제 인간의 형체가 아니었다.
그의 다리는 하나로 합쳐져 물고기 꼬리가 되었고, 피부는 비늘로 뒤덮였다. 하지만 인어공주처럼 예쁜 모습이 아니었다.
심해어(Deep Sea Fish)처럼 눈이 튀어나오고, 이빨이 삐죽삐죽한 괴물 물고기였다.
팡!
가브리엘의 등 뒤에 달려 있던 가짜 천사 날개가 터지며, 등지느러미가 솟아올랐다.
“꺄아아악! 괴물이다!”
“도망쳐!”
성당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물은 이미 허리까지 차올랐다.
팬들은 넘어지고 밟히며 출구로 향했다. 오크 경호원들은 헤엄을 못 쳐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미미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무릎까지 차오른 물속에 서서 괴물로 변해가는 가브리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가… 물고기가 됐어.’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하지만 미미의 뇌는 정상적인 사고를 거부했다. 그녀는 이미 ‘생크투스’에 인생을 걸었다. 앨범을 1,000장 샀고, 적금을 깼고, 친구도 끊었다.
이제 와서 “내 오빠는 괴물이었다”라고 인정하면, 그녀의 인생 자체가 부정당하는 것이었다.
미미의 뇌 속에서 [인지 부조화 해결 회로]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아니야. 이건 콘셉트야.’
‘그래. 이번 앨범 콘셉트가 <심해의 왕자>였어.’
‘저 리얼한 특수 분장 좀 봐. 역시 우리 오빠는 프로야.’
7. 광기의 적응력
미미는 대포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괴물 물고기가 되어 펄떡거리는 가브리엘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찰칵! 찰칵! 찰칵!
“오빠! 너무 멋있어요! 인어 왕자님 같아요!”
미미가 소리쳤다.
그러자 도망치던 다른 팬들도 멈칫했다.
“어? 콘셉트라고?”
“가만 보니… 좀 귀여운 것 같기도?”
“저 비늘, 에메랄드 색이라 우리 팬덤 색깔이랑 똑같아!”
광기의 전염은 빨랐다.
도망치던 소녀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녀들은 물속에 몸을 담근 채, 휴대폰과 수정구를 꺼내 가브리엘을 찍기 시작했다.
“꺄아악! 오빠가 아가미로 숨을 쉬어요! 섹시해!”
“물미역도 패션이야! 나도 붙일래!”
소녀들은 바닥에 떠다니는 미역을 주워 자신의 얼굴에 붙였다.
[실시간 검색어 1위: 가브리엘 물미역 챌린지]
[2위: 생크투스 심해 콘셉트 대박]
인어 마녀는 스크린 속에서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이 미쳤나?]
마녀는 당황했다. 저주를 내리면 공포에 질려야 하는데, 오히려 환호하고 있다니?
가브리엘(현재 심해어)은 물속에서 뻐끔거리며 생각했다.
‘어? 반응이 좋은데?’
그는 뼈속까지 관종이었다. 그는 아가미를 벌렁거리며 팬들을 향해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푸푸풉! (물 뿜는 소리)
“꺄아아악! 오빠가 성수(바닷물)를 뿌려주셨어!”
“나도 맞을래!”
팬들은 입을 벌리고 가브리엘이 뱉는 짠물을 받아먹었다.
8. 에필로그: 주식회사 심해
1년 후.
제국 중앙 광장에는 거대한 대형 수족관이 세워졌다.
그곳은 [생크투스 아쿠아리움 팬사인회] 현장이었다.
수족관 안에는 5마리의 거대한 괴물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들은 가끔 유리벽에 몸을 부딪치며 재롱을 부렸다.
수족관 밖에는 수만 명의 팬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얼굴에 말린 미역을 붙이고, 손에는 생선 가시 모양의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미미는 이제 팬클럽 회장이 되었다. 그녀는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자! 우리 오빠들 사료값 모금합니다! 최고급 크릴새우로 보내드릴 거예요!”
“네!! 언니!!”
매표소에는 교황청 추기경과 인어 마녀가 나란히 앉아 돈을 세고 있었다.
인어 마녀는 인간의 욕망에 감탄하여, 아예 기획사 지분을 받고 이사가 되었다.
“역시, 인간들의 광기는 심해의 수압보다 무겁구나.”
마녀는 혀를 차며 금화(입장료)를 챙겼다.
수족관 안에서 가브리엘(물고기)은 유리창 너머의 미미를 보며 생각했다.
‘뭐, 나쁘지 않아. 노래 안 불러도 되고, 춤 안 춰도 되고. 그냥 헤엄만 치면 밥 주고 돈 주는데.’
그는 입을 뻐끔거려 물방울을 만들었다.
그 물방울은 위로 올라가며 하트 모양이 되었다.
밖에서는 지진이 난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랑해요! 생선 오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