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의 해안 도로

by 김경훈

도원은 열아홉 살의 어느 취한 밤, 왼쪽 팔뚝에 ‘지은’이라는 이름을 문신으로 새겼다. 전문은 “지은과 도원 영원히 함께”였고 모두 영문 대문자였으며, 가장 친한 친구 미진이 직접 만든 문신 기계로 새긴 것이었다. 미진은 그 기계를 꽤나 자랑스러워했다. 낡은 카세트 플레이어 모터와 기타 줄, 볼펜 대를 엮어 만든 조잡한 물건이었다. 문신은 삐뚤빼뚤 흉측했고, 바늘이 살을 파고들 땐 죽을 만큼 아팠다. 나중에야 드러난 바, 정작 지은은 그 문신을 전혀 고맙게 여기지 않았다. 지은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떠나기 이 주 전 도원을 차버렸다.


사 년 뒤, 그물 걷어 올리는 양망기에 끼어 심하게 훼손된 건 도원의 오른팔이었다. 어깨와 쇄골, 거기 붙어 있던 팔 전체가 롤러에 말려들어 갔다. 부모님은 도원이 의식을 회복하기 전에 결정을 내렸다. 도원은 부산의 한 대학병원 병실에서 로봇 팔과 머리에 이식된 장치를 가진 채로 깨어났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란다.” 어머니는 마치 그게 모든 걸 설명하기라도 하듯 말했다. 다섯 살 난 도원에게 잡아 온 고등어가 어디로 팔려 가는지 설명할 때 썼던 것과 같은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병실 침대 옆에 팔짱을 끼고 서서 자신의 억센 팔뚝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고 있었다. 항구로 돌아가고 싶어 조바심이 난 사람 같았다. 미간의 주름과 굳게 다문 입매로 보아 어머니가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말로는 아무리 아닌 척해도 소용없었다.


“의사들이 네 운동 피질에 전극과 칩을 심었어.”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너는 이제, 뭐랄까, 최첨단 인간이 된 거지.”


“그게 무슨 뜻이죠?” 도원이 물었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만져보려 했지만 손이 반응하지 않았다. 왼손을 사용하자 붕대가 만져졌다.


창가 의자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수협 로고가 박힌 모자의 챙에 눈이 가려진 채 말했다. “네가 시제품 팔을 갖게 됐고, 그 결과에 관심 있는 높으신 분들이 많다는 뜻이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한테도 도움이 될 거라더구나.”


도원은 팔이 있었던 곳을 내려다보았다. 살과 의수가 만나는 지점이 붕대로 가려져 있었다. 붕대 안쪽에서 새 금속과 무광택 검정색 와이어가 번들거렸다. 새 팔은 뼈대와 유압 실린더, 방수 호스로 되어 있어 마치 배 엔진실의 배관이나 튼튼한 닻을 내리는 기계 장치처럼 보였다. 끝부분은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들이 결합된 집게 형태로, 미끄러운 생선을 잡기 좋게 요철 처리가 되어 있었다. 도원은 사라진 오른손의 구체적인 특징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손등의 검버섯, 낚싯줄에 베인 흉터, 손바닥의 굳은살. 그걸 다 어떻게 한 걸까? ‘의료 폐기물’로 표시된 채 어딘가 소각장에서 태워졌을까? 손을 다시 붙일 생각을 하지 않은 걸 보면 꽤나 심하게 으스러진 게 틀림없었다.


도원은 왼팔을 쳐다보았다. 문신의 “영원히 함께” 부분에 링거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어딘가가 아픈 것 같았지만 강한 느낌은 아니었다. 아마도 진통제 때문일 것이다. 다시 오른팔을 들어 올려보려 했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가슴 깊숙한 데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요즘 의수는 진짜 팔처럼 만들 수 있지 않나요? 실리콘 같은 걸로 덮어서요.” 도원이 물었다.


그러자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치는 어머니가 대꾸했다.


“그런 의수는 배 타는 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원한다면 나중에 더 진짜 같은 손으로 교체할 수 있겠지만, 팔을 온전히 쓰려면 뇌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 손에 신호를 보낼 신경이 남아 있지 않아서 아무리 비싼 의수라도 소용이 없다는구나.”


도원은 이해했다. “그럼 이 팔은 어떻게 쓰는 거죠?”


“당분간은 쓰지 않을 거야. 하지만 바로 부착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예전엔 절단면이 아물 때까지 몇 달이고 기다려야 했지만, 이건 바로 끼우는 거라더라.”


“어차피 넌 절단면이 없지 않니.” 아버지가 도원의 어깨를 내리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아직 머리가 붙어 있다는 게 다행이다. 바다에 빠지지 않은 게 어디냐.”


도원은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지, 있었다면 무엇이었을지 궁금했다. 부모님이 이 방법을 택한 건 완전히 이해가 갔다. 부모님의 배 ‘만선호’는 언제나 항구에서 가장 먼저 새로운 어군 탐지기를 다는 배였다. 부모님은 장비를 믿었다. 그들은 자동 릴로 낚시를 하고, GPS와 전자 지도로 어장을 관리했다.


도원은 옛날 사람이었다. 얼굴에 닿는 바닷바람과 소금기를 좋아했다. 그물을 당길 때는 자신의 등 근육과 손아귀 힘을 이용했고, 파도의 리듬에 맞춰 몸을 썼다. 고기잡이철엔 아버지의 낡은 양망기를 사용했는데, 이 점은 도원이 속도와 효율성 측면에서 가장 크게 양보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양망기가 도원의 팔을 앗아 갔다. 도원은 이 사실이 자신의 고집에 대한 벌인지, 아니면 부모님의 최신 장비들을 옹호해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기계는 조작을 잘못하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지만, 정말 멍청하게 굴지 않는다면 선실까지 쫓아오진 않을 것이다. 물론 엉켜버린 그물에 이제는 집게가 된 손을 집어넣은 건 도원 자신의 멍청한 실수였다.


도원의 세계는 병실 크기로 쪼그라들었다. 그는 창가에 서서 날씨를 살피며 선장님, 아니 아버지에게 전화하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부모님은 도원이 없는 동안 다른 선원을 구해 조업하고 있었다. 태풍이 오기 전에 그물을 다 걷었을까? 통발 위치는 제대로 표시해 두었을까? 도원은 부모님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빠르게 진통제 복용량을 줄였다. “당신은 건강한 체질이니까요.” 의사가 말했다. “약에 취해 있는 것보단 통증을 다스리는 게 낫죠.” 도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도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파도가 거칠어 서 있지도 못할 때까지 그물을 당긴 데다, 미끄러운 갑판에서 넘어져 발목을 삐었는데도 바로 다음 날 다시 장화를 신고 배에 올라야 했던 날들의 고된 노동이 주는 통증에 도원은 익숙했다.


이제 도원의 몸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고통을 전달했다. 고통 속의 고통,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부분의 욱신거림. 그는 찌르는 듯한 통증과 타는 듯한 통증, 짓눌리는 압박감과 절단면의 환상통을 구분하는 법을 익혔다. 동해의 겨울 파도 같은 최악의 고통이 휩쓸고 지나갔을 때, 의사는 그에게 이제 팔을 써도 된다고 허락했다.


“적응이 빠르시네요.” 도원이 집게손으로 젓가락 잡는 법을 완전히 익혔을 때 재활치료사 준혁이 말했다. 준혁은 도원보다 몇 살 더 많고 덩치가 좋은 남자였는데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내일은 작업복 지퍼 올리는 걸 연습해볼 수 있을 거예요.”


“빠르다는 건 상대적이죠.” 도원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만 쇠젓가락이 테이블에서 미끄러져 떨어지고 말았다. 쨍그랑,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준혁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떨어진 젓가락을 주워주지 않았다. “이건 훈련이니까요, 그렇죠? 뇌가 새로운 신호를 보내는 법을 배워야 해요. 게다가 이런 동작을 다 익히고 나면 그 기계로 진짜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진짜 대단한 일이라. 실제로 거기까지 갈 수만 있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특별한 기능을 쓰는 일 말이다. 도원은 손목의 센서에서 뇌로 직접 전달되는 수온과 압력 정보를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에겐 방수 기능과 야간 조명, 그리고 악력을 조절하는 미세 장치가 있었다. 도원은 그 기능들을 진짜로 시험해볼 날을 고대했다. 어두운 선창 깊숙한 곳을 들여다본다든지, 그물에 걸린 무거운 닻을 혼자 힘으로 끌어올리는 일. 이런 건 기다려 얻을 만큼 가치 있는 배움이었다. 도원은 몸을 굽히고 젓가락에 맞춰 손을 오므리는 데 집중했다.


퇴원 예정일 직전에 겨드랑이 아래 염증이 생겼다. 의사는 항생제를 투여하고 고름을 빼냈다. 그날 밤 도원은 고열에 시달리며 자신의 팔이 해안 도로가 되는 꿈을 꾸었다. 깨어났을 때에도 그 느낌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도원은 크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지은에게 영원히 사랑받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떠났고, 그걸로 끝이었다. 어렸을 땐 자기만의 작은 낚싯배를 갖고 싶다고 했었는데, 아버지가 은퇴하면 ‘만선호’를 물려받기로 했으니 그걸로 된 셈이었다. 도원은 부모님의 배에서 일하다가 언젠가 선장이 되어 이 바다를 지키는 것 말고는 다른 걸 염두에 둔 적이 없었다. 딱히 달리 더 원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 도원은 도로가 되고 싶었다. 아니, 그의 오른팔이 그랬다. 도원의 팔은 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고, 안팎에서 동시에 밀려드는 이 말 없는 갈망은 도원을 당황스럽게 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도원의 팔은 단순히 도로가 되고 싶어 하는 게 아니었다. 팔은 자신이 도로라는 걸 알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강원도 삼척에서 울진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의 어느 해안 절벽 구간이었다. 한쪽에는 깎아지른 절벽이 다른 한쪽에는 끝없는 수평선이 보이는 구간. 가드레일 너머로 파도 소리가 들리고, 아스팔트 위로 관광객들의 차가 달리는 구간.


도원은 그 구간을 차로 달려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배를 타고 바다에서 그 도로를 올려다본 적은 많았지만, 직접 운전해서 간 기억은 가물가물했다. 하지만 굽이치는 도로의 곡선과 졸음쉼터에 세워진 트럭들의 번호판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그저 상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님을 뒷받침해주었다. 그는 제정신이었고, 동시에 그는 도로였다.


“출항 준비됐어요, 선장님? 기분은 좀 어때요?” 준혁이 농담조로 물었다.


도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준혁에게 도로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병원에 더 오래 있고 싶진 않았다. 부모님이 풋내기 선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조업을 나가야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황은 충분히 나빴다. 그는 퇴원이 지연될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열은 내렸지만 여전히 팔이 수다스럽네요. 아직 적응하는 중인가 봐요.” 도원이 말했다. 사실이었다. 팔은 그에게 아스팔트의 온도와 타이어 마찰음, 그리고 해풍에 실려 오는 짠내를 알려주었다. 그가 러닝머신에서 뛰면 지진이라도 난 듯 진동을 경고했다. 물론 도로 문제도 있었다.


준혁이 제 관자놀이를 톡톡 쳤다. “입력이 너무 많아지면 어떻게 필터링하는지 기억하죠?”


“네, 전 괜찮아요.”


준혁은 미소 지으며 책상 위에 놓인 삶은 달걀 바구니를 가리켰다. “좋아요. 그러면 오늘은 달걀로 훈련을 해보죠.”


“달걀이요?”


“뱃사람들은 손이 거칠잖아요, 맞죠? 달걀 껍데기를 깨뜨리지 않고 집어 들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점심때 라면이라도 끓여 먹죠. 이건 정말 섬세한 작업이에요. 밧줄 당기는 것보다 훨씬 어렵죠. 그 손으로 달걀을 마스터하면 졸업이에요.”


준혁과 의사들은 일주일 뒤 마침내 도원에게 퇴원을 허가했다.


“직접 운전할래?” 아버지가 도원에게 트럭 열쇠를 내밀며 물었다.


도원은 고개를 저으며 조수석으로 걸어갔다. “기어 변속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 트럭, 오토로 바꿔야 할지도 몰라요.”


아버지가 그를 한번 훑어보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니면 부두 공터에서 연습 좀 해볼래?”


“겁먹은 건 아니고요. 그냥 조심하는 거죠.”


“그럼, 그럼.” 아버지가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낡은 포터 트럭이 덜덜거렸다.


도원은 겁먹은 게 아니었지만 단순히 조심하는 것과도 달랐다. 처음에는 집에 돌아왔다는 기쁨이 이 이상한 기분을 가려주었다. 그 도로의 느낌 말이다. 도원은 재활 훈련 때 배운 운동을 꾸준히 했다. 치료사들은 면도하고, 생선을 손질하고, 샤워하는 방법을 다시 가르쳐주었고, 그는 그물을 기어 묶고 낚싯바늘을 매는 방법을 스스로 다시 터득했다. 모든 것이 정상임을 증명하기 위해 부두 앞 횟집에서 옛 친구들을 만났다.


고통의 폭은 점점 더 넓어졌다. 어떻게 항구에 있는 동시에 7번 국도 위일 수가 있을까? 어떤 것도 정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도원은 언제나 회 한 접시는 거뜬히 비웠지만 이젠 입맛이 없었다. 억지로 매운탕 국물을 떠먹어야 했다. 숟가락을 놓기 전에 몇 번이나 더 씹을지 목표를 정하기도 했다.


도원은 병원에 있는 동안 근육이 빠졌고 지금은 더 야위어갔다. 다부졌던 예전의 몸과 달리 새로운 몸엔 쇄골이 도드라졌다. 원래 거울을 잘 안 보는 편이었는데, 일부러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현실 감각을 찾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뇌와 싸우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자신의 갈비뼈를 세어보았다. 살이 빠진 탓에 가슴에서 인공 팔로 이어지는 연결 부위를 감싼 합성 고무 패킹에 약간의 틈이 생겼다. 의사들에게 뭔가를 알려야 한다면 바로 그것이었다. 틈새는 바닷물이 스며들게 하고, 그건 의사들이 말했듯 부식과 염증, 감염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배 밑바닥에 구멍이 난 채로 출항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거울 속에서 그는 자신의 퀭한 눈, 좁아진 어깨, 그리고 그 고무 패킹을 보았다. 서툴고 촌스러운 사랑 고백이 새겨진 왼팔도. 오른팔에는 도로가 보였다. 마음의 속임수. 시스템 오류. 어깨, 도로. 도원은 집게손과 금속 뼈와 와이어 근육이 다 거기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손을 폈다 오므렸다 했다. 기계음이 윙윙거렸다. 손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지만 동시에 사라져 있었다.


도원은 ‘도로 손’으로 미끼를 썰고, 왼손으로 배의 키를 잡았다. 도로 손으로 양망기에 기름을 쳤다. 두 팔을 함께 사용해 생선 상자와 얼음 자루를 날랐다. 와이어와 전극으로 연결된, 어떻게든 그의 뇌에서 심장까지 인공 경로로 이어져 있는 그 동해안의 굽이진 국도를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지나갔다. 그는 비릿한 내음이 나는 부두 방파제에 앉아 팔을 무릎에 올린 채로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고 지나가는 진동을 느꼈다.


항구와 국도, 도원의 두 장소 모두에 봄은 늦게 찾아왔다. 봄 도다리잡이의 분주함이 잡념을 없애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더욱 분열되는 느낌을 받을 뿐이었다.


도원은 미진의 타투 가게 겸 옥탑방 평상에서 소주를 마시며 친구에게 그 느낌을 설명해보려 했다. 미진은 도원이 병원에 있는 동안 서울에서 타투 기술을 배우다 내려와 항구 뒷골목에 작은 작업실을 차렸다. 좁은 평상에는 먹다 남은 족발 뼈와 소주병이 굴러다녔고, 아직 쌀쌀한 바닷바람에도 미진은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미진의 팔은 자신의 연습장이자 포트폴리오였다. 용 문신부터 기하학적인 도형까지 빈틈이 없었다. 미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홍대 앞 유명한 타투이스트 밑으로 들어갔었다. 도원은 미진이 왜 다시 이 촌구석으로 돌아왔는지 묻지 않았지만, 그녀는 여기 다시 돌아와 있었다.


도원의 점퍼 소매가 팔을 가리고 있었다. 뭔가 숨기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이제 왼손으로 소주잔을 들었는데, 그건 오른손이 7번 국도 휴게소 자판기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원은 그 꿈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재활용된 칩 아닐까.” 미진이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말했다. “내비게이션이나 자율주행차에 들어갈 칩이었을 수도 있잖아. 요즘은 다 스마트 도로라며.”


도원이 고개를 저었다.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야. 도로 그 자체의 느낌이야. 햇빛에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까지 느껴진다고.”


“그럼 소프트웨어 문제인가? 그 칩을 원래 도로 교통량 제어 시스템에 쓰려고 만든 걸 수도 있지. 혼선이 생긴 거야.”


“그럴 수도.” 도원은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고 빈 잔을 평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자신의 흉터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귀 뒤에서 시작해 쇄골을 지나 금속이 살과 만나는 곳까지.


“다른 사람들한테 말할 거야?” 미진이 물었다.


도원은 파도 소리와 멀리서 들리는 갈매기 소리를 들었다. 미진도 이 소리를 듣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미진이 그의 팔에서 울리는 고속 주행 차량의 소음을 듣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일단 아직은 아니야.”


도원의 팔은 나날이 더 7번 국도 위에 있었다. 도원은 팔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팔은 잘 작동했다. 그저 다른 곳에 있을 뿐이었다. 도로가 되는 것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은 도로가 어디론가 연결해 주는 통로라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도로는 매 순간 자신이 있는 바로 그곳, 그 풍경 속에 박혀 있다.


도원은 북쪽으로 차를 몰아 그 장소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병원에 너무 오래 있었던 터라 또 일을 빠질 명분이 없었다. 그물을 손질하고 통발을 던져야 했다. 배 엔진을 점검하고 기름을 채워야 했다. 그에게는 여행, 혹은 드라이브가 얼마나 낭만적인지와 관계없이 그럴 시간이 없었다.


미진은 도원을 마을 청년회 모임에 끌고 갔다. 도원은 가고 싶지 않았다. 팔을 다친 뒤로 술자리엔 잘 끼지 않았다. 하지만 미진은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나 가게 홍보해야 된단 말이야. 혼자 가서 뻘쭘하게 있기 싫어.” 미진이 말했다. 도원은 미진이 운전하는 동안 로봇 팔을 창밖으로 내밀어 바람을 느꼈다. 시속 60킬로미터의 바람, 팔이 그에게 알려주었다. 섭씨 12도. 한편 다른 곳에서는 지난 두 시간 동안 빗방울이 떨어졌고, 화물 트럭 다섯 대가 지나갔다.


방파제 끝 횟집 야외 테이블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회 한 접시를 두고 시끌벅적했다. 영식 형은 도원보다 한 살 많았고, 민수는 아직 대학생이었다. 다들 고향에 남아 있거나 주말이라 내려온 친구들이었다. 도원이 가본 술자리는 대체로 이런 식이었는데, 예전엔 본인이 막내 축에 속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어느 시기까지는 젊은 어부로 대우받지만, 그 뒤에는 그냥 ‘아저씨’가 된다. 도원은 자기가 그 경계선에 서 있다고 느꼈다.


미진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 캔들을 꺼냈다. 그녀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맥주를 꺼내 테이블 위에 쏟아냈다. 본인이 한 캔을 따고, 도원에게 한 캔을 던졌지만 그의 기계 손에 맞고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깡통 소리가 요란했다. 도원은 누군가 그걸 보고 놀랐는지 확인하려고 주위를 살폈다. 그러곤 아무렇지 않은 척 굴러간 캔을 집어 들고 새 맥주를 땄다. 그는 집게손으로 차가운 캔을 들고 왼손으로 뚜껑을 땄다. 맥주도 차갑고 밤바다 공기도 차가웠다. 점퍼를 더 두꺼운 걸 입고 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도원은 금속 손으로 맥주 캔을 들고 있어도 손 시릴 걱정은 없었다. 도원만의 자체 보온병이었다.


서울로 유학 갔던 여자애들은 안쪽 테이블에 모여 있었다. 대부분 소주 대신 맥주나 사이다를 마시고 있었다. 미진이 그들을 보며 콧방귀를 꼈다. “서울 물 좀 먹었다고 아주 얌전한 척들은.”


그들은 안쪽 테이블로 합석했다. 숯불에 굽는 장어 냄새가 진동했지만 연기는 바닷바람에 금세 흩어졌다. 도원은 이곳에 모인 사람들 얼굴을 둘러보았고 대부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영식 형과 그의 여자 친구도 있었다. 영식 형은 늘 여자가 끊이지 않았다. 한때 결혼 얘기도 오갔던 것 같은데 깨진 모양이었다.


도원은 영식 형 옆에 앉아 있는 여자가 지은임을 깨달았다. 잘못된 건 아니었다. 영식 형은 좋은 사람이니까. 배도 두 척이나 있고. 하지만 지은은 늘 서울 이야기를 했었다. 도원은 지은이 비린내 나는 항구보다 더 화려한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하며 제 마음의 상처를 달랬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 하얀 블라우스 차림으로 앉아 있는 지은을 보니 마음이 쿡 쑤셨다. 도원은 자기가 아직도 이 좁은 동네에 묶여 있다는 사실에는 개의치 않았지만, 지은이 여기, 그것도 영식 형 옆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은은 그저 오랜만에 고향 선배를 만나 예의상 앉아 있는 게 아닐까? 어찌 됐든 이제 도원은 자기가 알 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은은 잠시 후 화장실을 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에 지은이 미진과 도원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안녕.” 지은이 인사하며 손을 들었다가 어색함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다시 카디건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쑥스러운 듯, 혹은 미안한 듯 보였다.


“안녕.” 도원이 로봇 손으로 맥주 캔을 든 채 지은에게 고개를 까딱하며 답했다. 도원은 그 동작을 자연스러운 건배 제의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맥주가 아주 조금 흘러 기계 손목을 타고 내렸다.


“팔 얘기 들었어, 도원아. 너무… 놀랐어. 연락 못 해서 미안해, 졸업 준비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지은이 말끝을 흐렸다.


형편없는 변명이었다. 하지만 도원은 진심으로 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괜찮아. 사고였는걸. 아직 서울에 있는 거야?”


“응, 대학원 진학했어.”


“전공은 뭐야?” 미진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도시공학이야. 스마트 시티 설계 쪽으로 공부하고 있어. 교통 시스템 같은 거.”


“재밌네. 도시공학자한테 딱 어울릴 만한 타투 도안이 있는데, 싸게 해줄까?” 미진이 비꼬듯 말했다.


도원은 안주가 떨어졌다며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을 때 미진은 지은의 손등에 볼펜으로 복잡한 교차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미진과 지은은 원래 친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아는 사이였다. 미진은 지은의 야망을 흥미로워했고, 지은은 ‘동네 노는 언니’를 친구로 둔 모범생이라는 포지션을 은근히 즐겼었다. 만약 두 사람이 같은 웹툰에 나온다면 꽤 인기 있는 조합이었을 것이다. 어촌 마을의 수재와 타투이스트가 서울에서 재회하는 이야기. 도원은 그 사이에 낀 엑스트라 1 정도 될 것이다.


도원은 소주를 두 병째 마신 후, 소매 속 도로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동해안의 공기에선 마치 비가 쏟아질 것처럼 습한 아스팔트 냄새가 났다. 그날 밤 미진이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타투 스티커를 붙여주고, 지은과 형식적인 연락처 교환을 하고, 대리기사를 불러 흐릿한 상태로 집까지 간 뒤, 도원은 7번 국도가 자신을 완전히 덮치는 꿈을 꾸었다. 악몽 속에서 도로는 그의 팔을 넘어 어깨 위로 기어올랐다. 그의 심장에 차선을 긋고, 팔다리를 납작하게 롤러로 밀어버리고, 입과 눈을 시꺼먼 타르로 덮었다. 그는 새벽 배가 출항하는 뱃고동 소리가 들리기 전에 숨이 막혀 깨어났다.


도원은 병원을 다시 찾았다. 담당 교수는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도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가 섣불리 판단할 순 없지만, 이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칩이 뇌의 가소성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환자분은 아직 신체 상실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신 상태에서 너무 빨리 기계와 결합했어요.”


“제가 받아들여야 하나요?”


“어떤 분들은 그래요. 뇌가 기계를 자기 신체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거죠.”


교수의 말은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됐지만, 도원의 경험을 설명해주진 못했다. 환상통이라든지, 기계가 몸을 잠식하는 꿈 같은 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로라니? 교수의 이론 중 어느 것도 ‘나는 7번 국도다’라는 그 확신을 설명하지 못했다. 도원은 해안 도로를 따라, 깎아지른 절벽과 검푸른 바다 사이의 2차선 도로를 따라 트럭을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만선호가 정박해 있는 항구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도원의 낡은 트럭은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덜컹거렸고, 그때마다 의수가 제멋대로 떨렸다.


도원은 여기서 평생을 살았지만, 그의 팔은 다른 곳에 속해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팔은 말없이 그에게 속삭였다. 돌아가. 팔이 말했다. 위로, 북쪽으로. 나는 여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지 않다고 그가 혹은 그것이 생각했다. 나는 내 바다를 사랑해. 도원은 팔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있는 곳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기를, 그러니까 부산의 항구와 강원도의 국도 둘 다에 있기를 갈망했다. 이것은 안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두 곳에 동시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건 모순이었다. 도원은 배를 팔지 않는 한 떠날 수 없었고, 배를 팔려는 계획에 유일하게 동의하는 그의 부분은 실제로 그의 일부가 아닌 기계 덩어리뿐이었다.


그날 밤 도원은 양망기를 돌리며 그물을 끌어올리다 기계가 멈추는 꿈을 꾸었다. 그걸 고치러 다가갔는데 이번에는 기계가 그의 의수를 삼켰다. 양망기 롤러는 금속과 와이어를 우적우적 씹어 삼켰고 도원은 기계가 그의 몸에서 그 가짜 팔을 완전히 뜯어내기를, 아예 뇌까지 깔끔하게 뽑아내 버리기를, 그래서 다시는 도로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기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팔에서 멈추지 않았다. 기계는 찢고 당겼으며, 도원은 머리 뒤쪽 칩이 박힌 자리에서 뭔가 뜯겨 나가는 느낌이 점차 욱신거림으로 변하다가 점점 더 날카로운 고통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뱃멀미 같기도 했지만 땅 위에서 겪는 최악의 멀미였다. 도원은 간신히 화장실까지 기어가 변기를 붙잡고 구역질을 한 다음, 다시 방바닥으로 기어 나와 휴대전화를 찾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준혁이 의수로 바닥을 기어가는 법은 가르쳐준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팔은 혼자서도 꽤 잘해냈다.


도원은 다시 대학병원에서 깨어났다. 가장 먼저 손을 확인했다. 왼손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고, 오른손은 로봇이었다. 익숙한 의수와 고무 패킹 가장자리를 왼손으로 더듬어보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다. 손을 위로 올려 머리에 대보려 하니 두터운 거즈가 만져졌다. 의수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전원이 꺼져 있었다.


간호사가 방에 들어왔다. “일어나셨네요!” 그녀는 부산 사투리가 섞인 억양으로 말했다. “부모님은 잠깐 식사하러 가셨어요. 곧 오실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식 부위에 급성 염증 반응이 있었어요. 칩 주변이 퉁퉁 부어서 일단 제거했습니다. 다행히 뇌 신경에는 손상이 없어요. 붓기 가라앉고 감염 수치 떨어지면 새 칩을 넣어드릴 거예요. 곧 그 멋진 로봇 팔을 다시 쓰실 수 있을 겁니다.”


간호사가 커튼을 걷었다. 병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잿빛 건물들과 그 너머로 언뜻 보이는 바다뿐이었다. 저 바다 위에서 일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다시 금속 팔을 내려다보았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7번 국도가 아닌, 그냥 고철 덩어리 같은 팔을 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여전히 그 해안 도로의 풍경을 마음속으로 떠올릴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는 않았다. 그는 상실감을 느꼈다. 그게 다였다.


붓기가 빠졌을 때 머리에는 새로운 칩이 이식되었다. 도원은 이 칩이 스스로 주장하기를, 저 팔은 잠수함이거나 등대거나 거대한 대게의 다리라고 주장하기를 기다렸지만, 이제 머릿속에는 도원 혼자뿐이었다. 그의 손은 손처럼 그의 지시를 따랐다. 쥐고, 펴고. 파도도, 아스팔트도, 트럭 소음도 없었다.


도원은 미진에게 병원에서 자기를 좀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부모님이 조업 시간을 빼먹고 오시게 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 미진에게 물어볼 것도 있었다.


항구로 돌아가는 길, 미진의 낡은 레이 차 안에서 도원은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거 기억나?” 도원이 물었다.


미진이 룸미러로 힐끗 보더니 쯧쯧 혀를 찼다. “그걸 어떻게 잊냐? 내가 했지만 진짜 망작이다. 미안하다, 도원아. 술 먹고 그런 걸 새기는 게 아니었는데.”


“괜찮아. 나는 그냥, 어, 혹시 이걸 덮을 수 있는지 궁금해서. 커버업이라고 하나?”


“당연하지! 내 실력이 그때랑은 차원이 다르다고. 어떻게 바꾸고 싶은데? 용이라도 한 마리 감아줘?”


있었다. 도원은 삐뚤삐뚤한 글자들을 바라보았다. ‘JI-EUN’이라는 알파벳은 꼴보기 싫게 남아 있었다. 기억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어딘가 병원의 의료 폐기물 수거함 안에 자기 자신이 도로임을 알고 있는 컴퓨터 칩이 버려져 있었다. 팔이었던 칩은 도원이었고, 도원은 동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7번 국도의 한 구간이었다. 한쪽엔 절벽이 한쪽엔 바다가 있어 굳이 어디로 떠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벽했던 구간. 영원히 함께.


“도로를 그려줘.”


“도로? 무슨 도로?”


“7번 국도. 그냥 까만 아스팔트 길 하나가 길게 뻗어 있는 거로 덮어줘. 바다도 보이면 좋고.”


도원은 창밖을 보며 말했다. 그의 오른손은 조용히 무릎 위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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