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바벨
지하 23층, '바벨' 사옥의 최심부는 거대한 냉동고 같았다. 중앙 공조 시스템이 쉴 새 없이 뱉어내는 차가운 바람은 연구원 김 박사의 뒷목을 서늘하게 핥았다. 공기 중에는 독한 소독용 에탄올 냄새와, 탕비실 구석에서 말라 비틀어진 에스프레소 찌꺼기의 쿰쿰한 냄새가 뒤섞여 떠다녔다.
김 박사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운 볼펜을 관자놀이에 대고 습관적으로 굴렸다. '사각, 사각'. 머리카락과 플라스틱이 마찰하는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그의 눈앞에는 가로 5미터, 세로 3미터의 거대한 특수 방음 유리가 벽을 대신하고 있었다.
유리 너머는 온통 흰색이었다. 천장도, 바닥도, 벽면도, 심지어 그 안에 갇힌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입은 옷조차 눈이 시릴 만큼 하얀색이었다. 생후 24개월.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장난감을 던지고 울음을 터뜨려야 할 시간이었지만, 이 '실험체'들은 달랐다. 녀석들은 마치 전원이 꺼지기 직전의 로봇 청소기처럼, 방구석에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부터 육중한 구두 굽 소리가 바닥을 찍으며 다가왔다. 쿵. 쿵. 쿵.
그것은 단순한 발소리가 아니었다. 이 지하 세계의 주인, '바벨 에듀테크' 최 회장의 심장 박동과도 같은 리듬이었다.
자동문이 '쉬익' 소리를 내며 열리자, 최고급 시가 냄새와 묵직한 가죽 냄새가 훅 끼쳐 들어왔다. 그 냄새는 실험실의 비루한 커피 냄새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최 회장은 기름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김 박사의 어깨를 툭 쳤다. 뼈와 뼈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D-day군. 730일간의 침묵이 끝나는 날이야."
최 회장은 유리 벽에 코를 박듯이 다가섰다. 그의 거친 콧김이 차가운 유리에 닿아 뿌옇게 성에를 만들었다가, 에어컨 바람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프리드리히 2세는 멍청했어. 13세기의 허술한 실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지. 우리는 완벽했잖아? 완벽한 방음, 완벽한 통제, 그리고 감정이라곤 0.1그램도 없는 AI 유모들."
유리 너머에는 매끄러운 유선형의 흰색 기계 팔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그것들은 소리 없이 움직이며 아이들에게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았다. 어떤 눈맞춤도, 어떤 다정한 속삭임도 없었다. 기계 모터가 돌아가는 미세한 '윙-' 소리만이 유일한 자장가였다.
"녀석들이 입을 떼면 나오는 첫마디, 그게 바로 우리 회사의 주가(株価)를 천장 뚫게 할 거야. 태초의 언어. 신의 언어. 자, 마이크 켜."
김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콘솔 박스의 빨간 스위치를 올렸다. '딸깍'.
스피커의 노란 불빛이 점멸하며 유리 너머의 소리가 실험실로 흘러 들어왔다.
적막했다.
보통의 유아실이라면 들려야 할 옹알이 소리나 칭얼거림은 없었다. 대신 기이한 리듬감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다섯 아이는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들의 무릎 관절이 펴지는 움직임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절도 있었다. 아이들은 유리 벽, 즉 김 박사와 최 회장이 서 있는 쪽을 향해 반원 형태로 섰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깊은 우물처럼 검었고, 초점은 묘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말해! 어서! 히브리어? 라틴어?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고대어?"
최 회장이 주먹으로 유리 벽을 쾅 내리쳤다.
그 충격에 반응하듯, 중앙에 서 있던 아이가 입을 벌렸다. 작은 입술이 떨어지며 끈적한 침이 실처럼 늘어졌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공기가 긁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우우우우우우-."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주 깊고, 무겁고, 세상의 모든 피로와 체념을 담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폐 속에 있는 공기를 전부 짜내는 소리였다. 마치 야근 3일 차 직장인이 막차 놓친 지하철 승강장 벤치에 주저앉으며 내뱉는, 영혼이 빠져나가는 소리 같았다.
최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야? 방금 뭐 한 거야?"
그러자 오른쪽 끝에 있던 아이가 반응했다. 녀석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45도 각도로 까딱거리더니 입술을 부딪쳐 소리를 냈다.
"딸깍, 딸깍, 딸깍."
건조하고 날카로운 파열음. 그것은 영락없는 마우스 클릭 소리였다.
곧이어 왼쪽 아이가 바닥을 열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타닥, 타닥, 타다닥, 탁!'
리듬감 넘치는 키보드 타건음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탁!' 하고 내려치는 소리는 '엔터키'를 강하게 때리는 소리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최 회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목의 핏대가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이게 뭐야! 신의 언어를 하랬더니 잡음이나 내고 있어! 저 멍청한 기계 덩어리들이 애들을 망쳐놓은 거 아냐?"
김 박사는 창백해진 얼굴로 콘솔 박스를 움켜쥐었다. 그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려 셔츠를 적셨다. 그는 무언가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회장님. 기계들은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벽은..."
김 박사는 벽을 두드렸다.
"방음 유리는 완벽했지만, 진동까지는 막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지난 2년 동안, 밤낮없이 일하는 우리 연구원들의 소리를 느낀 겁니다. 벽을 타고 넘어오는 진동, 그 반복되는 리듬을요."
아이들은 소통을 갈구했다. 하지만 AI 유모는 침묵했다. 아이들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연구원들의 '생존 신호'뿐이었다.
한숨 소리, 마우스 클릭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그것이 아이들이 학습한 '인간의 언어'였다.
"웃기지 마! 저건 그냥 소음이야! 실패라고!"
최 회장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회장의 고함 소리에 반응한 다섯 아이가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녀석들은 공포에 질린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익숙한 상황을 맞이한 듯, 지쳐 보이는 눈빛을 교환했다.
가장 앞에 있던 아이가 오른손을 들어 귀 옆에 갖다 댔다. 마치 스마트폰을 쥔 듯한 손 모양이었다. 아이는 허공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네- 넵."
영혼이라곤 1그램도 묻어있지 않은, 건조하고 비굴한 톤이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아이들도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합창했다.
"죄송, 합니다. 시정, 하겠습니다."
아이들의 발음은 어눌했지만, 억양만은 대기업 부장님에게 깨지고 있는 대리님의 그것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최 회장은 뒷목을 잡고 휘청거렸다. 그가 비틀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은 다시금 "타닥, 타닥" 입으로 키보드 소리를 내며 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상사가 사라지자마자 다시 업무에 복귀하는 직장인의 반사신경이었다.
김 박사는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실험은 실패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태초의 언어 대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본원적이고 필수적인 언어, '노비의 언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한 것이다.
지하 23층, 차가운 냉동고 같은 실험실 안에는 아이들이 입으로 만들어내는 처절한 업무 소음만이 비가처럼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