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념일에 나는 동이 틀 무렵 일어났다. 할머니는 나에게 엄마의 전투화 닦는 일을 시켰다.
“엄마가 못 보게 해라.” 할머니는 나에게 주의를 줬다.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낡은 양말과 구두약 통을 챙긴 다음 전투화를 욕실로 가져갔다. 전에 할머니가 전투화 닦는 걸 본 적은 있었지만 이 작업을 나 혼자 하도록 허락받은 건 처음이었다. 솔로 흙을 털어내고, 약을 바른 다음, 융으로 광을 낸다. 나는 할머니가 안방 다리미판 앞에 서서 엄마의 오래된 디지털 무늬 군복에 칼같이 주름을 잡는 모습을 상상했다.
욕실 문이 홱 열렸고, 나는 문 잠그는 걸 잊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엄마는 일하는 날이 아니면 보통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
“그건 누구 거야?” 하품을 하며 엄마가 물었다.
“음……” 뭐라고 해야 할지, 어떤 거짓말을 해야 할지 나는 몰랐다.
엄마 뒤로 나타난 할머니가 그 상황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었다. “수아야, 저건 너희 아버지 거였단다. 내가 수아한테 좀 닦아달라고 했어.”
엄마의 시선이 전투화에 머물렀다. 그게 아버지에게 맞는 사이즈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그 낡은 가죽의 주름을 알아본 걸까?
“나 화장실 써야 돼.” 잠시 후 엄마가 말했다. “수아, 너 다른 데 가서 할래?”
나는 옷에 구두약이 묻지 않도록 부츠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몸에서 최대한 멀리 든 채, 다른 쪽 손으로 구두약 통들을 그러모았다. 엄마는 내가 한쪽으로 지나가기를 기다린 뒤 휠체어 바퀴를 굴려 들어왔다. 엄마의 실내용 전동 휠체어는 폭이 좁았지만 우리 둘 다 이 좁은 아파트 욕실에 들어가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좁지는 않았다.
“죄송해요.” 문이 닫힌 뒤 내가 할머니에게 속삭였다.
“미안할 거 없다.” 할머니가 답했다.
이제 숨길 이유가 없어졌으므로 나는 베란다 구석에서 그 작업을 마무리했다. 어차피 시간이 거의 다 되기도 했다.
우리 구역에서 퍼레이드는 오전 10시쯤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경기도 외곽이나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엄마는 아침을 먹으러 거실로 나왔고, 나는 전투화가 마르게끔 현관 한쪽 구석에 두었다. 할머니가 따뜻한 누룽지와 청양고추를 다져 넣은 계란말이를 해줬지만 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손에 밴 구두약 냄새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침묵 속에 아침을 먹었다. 엄마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할머니와 나는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랬다. 듣고 있었다. 오전 8시에 ‘베일’이 걷힐 것을 알려주는 예의 짧은 사이렌이 아파트 단지에 울렸다. “방금 뭐였어? 아.”
베일을 걷는 것은 엄마에게 항상 같은 충격을 줬다. 선생님은 참전용사마다 모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고 했지만 내 친구들은 자기 부모가 어땠는지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엄마는 언제나 먼저 “아” 하며 입으로 손을 가져갔다. 엄마의 눈은 마치 세상의 빛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활짝 뜨였고, 잠깐 동안 엄마는 나를 모르는 사람처럼 바라보곤 했다. 내가 어렸을 땐 그게 속상했다. 이제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어찌 됐든 익숙해졌다.
“아.” 엄마가 다시 말했다.
엄마는 무릎에 놓인 손을 잠시 유심히 바라보았고, 나는 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욕실로 휠체어를 돌렸다. 나는 엄마가 세면대 물 트는 소리, 욕실 안 보조 의자 위로 몸을 옮기며 내는 삐걱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는 식탁을 빙 돌아와 나를 안아주었다. 할머니가 엄마의 군복을 침대에 놓아두려고 일어났을 때, 나는 내가 광을 낸 전투화를 들고 따라갔다. 우리는 거실 소파에서 기다렸다.
씻고 옷 입는 데는 언제나처럼 시간이 꽤 걸렸지만 엄마가 다시 문간에 나타났을 땐 군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태극기가 박힌 옷은 완벽하게 잘 맞았다. 할머니가 허리품을 약간 늘려놓았다는 사실을 엄마는 몰랐다. 나는 엄마가 젊은 하사였을 때의 사진을 본 적은 없지만 상상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그저 휠체어와 얼굴의 화상 흉터만 지워버리면 됐다. 바로 오늘이 일 년에 단 하루, 내가 엄마를 군인으로 보는 날이었다. 다른 날 같으면 그것들은 그냥 엄마의 일부였다.
“이거 네가 닦아준 거야?” 엄마가 반짝이는 전투화를 가리켰다.
나는 끄덕였다.
“완벽하구나. 중대장이 봐도 감탄할 거야.” 엄마는 나를 무릎에 끌어 올려 앉혔다. 나는 무릎에 앉기에는 너무 커버렸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나는 잠깐 거기 머물렀다가 다시 일어났다. 엄마가 웃을 때 그 웃음은 한 해의 여느 날들과는 달리, 조금 더 낮고 무게감 있는 웃음이었다. 나는 어떤 게 엄마의 진짜 웃음인지 결코 확신할 수 없었다.
9시쯤 우리는 모두 승합차에 올랐고, 엄마가 광화문을 향해 운전했다.
“엄마, 질문 하나 해도 돼요?”
“응?”
“전쟁 때 엄마는 무슨 일을 했어요?”
나는 룸미러를 통해 엄마가 입술을 앙다무는 것을 보았다. “수아야, 그 질문에는 긴 답이 필요한데 지금은 운전 중이라 바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도 될까?”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았다. ‘나중에’는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엄마의 날이었다. “그래요.”
몇 분 뒤 엄마는 강변북로 진입로에서 갑자기 핸들을 꺾어 차를 세웠다. “올해는 그냥 안 가면 어떨까? 어디 가서 빙수나 먹거나 한강공원에 앉아 있거나 그러면?”
“안 돼요, 엄마! 이건 엄마를 위한 거라고요!” 나는 엄마가 왜 그런 제안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뭐라고 하는지부터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공포심이 부풀어 올랐다.
엄마는 조수석의 할머니를 보았고 할머니는 창밖을 보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수아 네가 맞다.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구나.”
엄마는 한숨을 쉬더니 다시 액셀을 밟았다.
이 기념일에 참전용사들은 서울 도심의 좋은 주차 자리를 모두 차지할 수 있었다. 엄마의 제복 덕분에 우리는 시청 앞 광장 가까운 곳까지 갈 수 있었다. 국가유공자 주차증은 거기서 더 가까이 가게 해주었다. 나는 그 참전용사들이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어떻게 자신들의 연대를 찾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움직였다. 할머니와 나는 집결지 근처에 서서 참전용사들이 서로 끌어안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는 나를 가리키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답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은 다른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세종대로 양옆에 설치된 관람석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몇몇 아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어렸을 때, 그러니까 잘 몰라서 그날을 ‘군인 아저씨 날’이라고 불렀던 그때, 관람석 아래에서 같이 뛰어놀던 아이들이었다. 이제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은 나는 할머니와 얌전히 앉아 있고 싶었다. 플라스틱 의자가 여름 햇살에 달궈져 바지를 뚫고 내 허벅지를 태우는 것 같았다. 빌딩 숲 사이로 빌딩 풍이 불어왔다. 도로 맞은편에 있는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였고, 나는 각 군의 깃발과 부대 마크를 맞혀보려고 애썼다.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전우야 잘 자라」를, 그다음에는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학교에서 ‘퍼레이드가 원래는 애국가를 연주했었지만 전쟁 이후로는 모든 곳에 있는 우리 아군들이 이 두 노래를 부르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배운 바 있었다. 나는 그 두 노래의 가사를 전부 외우고 있다. 군악대는 각각의 관람석 앞에 멈춰 서서 그 두 곡을 반복해 연주했다. 언제나처럼 긴 행진이었다.
그 뒤를 엄마의 전투화와 같은 검은색에, 온몸이 그 정도로 윤기 나는 말 여섯 마리가 뒤따랐다. 말들이 고개를 휘젓고 마구에 반항하듯 옆으로 춤을 추며 움직일 때마다 입에서 거품이 튀었다. 말들의 재갈과 굴레는 광택이 났지만 그들이 끄는 것은 평범한 리어카였다. 리어카는 고무바퀴로 굴러갔고, 오동나무로 만든 관을 옮기고 있었다. 리어카를 끄는 젊은이는 전쟁 이후에 디자인된, 옅은 회색 바탕에 팔에는 검정 띠를 두른 새 제복을 입고 있었다.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군인에게는 더 이상 예전의 얼룩무늬 제복을 입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참전용사들이 등장했다. 해마다 그 수는 줄어들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엄마가 그래도 최악의 상황을 겪은 건 아니라고 보증했다. 어쨌거나 나는 걱정한다. 언젠가는 열을 맞춰 행진할 만큼의 참전용사도 남지 않을 날이 올 거라는 상상도 해보지만 아직은 그래도 꽤 많은 수가 남아 있다. 우리 엄마처럼 전동 휠체어를 타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얼굴에 엄마보다 더 심한 화상 흉터가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은 의수를 흔들어 인사했다. 너무 쇠약해진 사람들은 요양 보호사의 도움을 받거나, 대로를 따라 이동하는 꽃장식 트럭을 타고 있었다. 나는 우리 담임 선생님이 행진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전에는 선생님을 행진에서 본 적이 없었지만, 올해가 되기 전까지는 우리 담임이 아니었으므로 찾아볼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교실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선 선생님이 참전용사일 거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었다. 물론 베일이 발명된 이후 모든 참전용사가 그런 상태였다. 내가 왜 놀랐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행진해 지나가자 나는 목청을 더 높여서 주변 모두에게 저분이 우리 엄마라고 알렸다. 엄마는 군중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거수경례를 해주었다. 우리는 목이 쉴 때까지 소리치며 응원했다. 그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였다.
그 시각 대전과 부산, 그리고 전국의 도시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어린이들, 노인들이 장마 직전의 흐린 하늘과 정오의 뙤약볕 아래에서 응원을 보내는 광경을 그려보았다. 여기는 서울이었지만 강원도 전방은 더 서늘할 것이므로, 나는 벤치가 내 무릎 뒤에 닿아 땀이 차는 동안 긴팔을 껴입은 아이들이 산바람에 코끝이 빨개진 장면을 상상했다.
마지막 예비역들이 우리 앞을 지나갔고, 우리는 그들에게도 아직 감사를 표할 수 있는 목소리가 충분히 남아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다. 그들 다음에는 안장이 채워져 있지만 기수는 없는 갈기에 흰 국화가 꽂힌 말이 지나갔다. 그 말은 휴전 조약 이후 피폭된 비무장지대 정화 작업반을 상기시키기 위해 행진에 참여한 것이었다. 그 작업반 중 행진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는 행진이 끝난 후 관람석에서 기다렸다. 할머니는 근처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몇몇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가족은 떠났지만 나머지는 우리처럼 남아 있었다. 우리는 한참 걸릴 거라는 걸 알았다. 참전용사들은 정해진 투표소에 모이기 위해 떠난 참이었다. 행진 경로의 다른 쪽 끝에 있는 시민회관, 체육관, 아니면 학교 강당이었다. 제복을 입은 몇 사람은 우리 쪽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보내는 시선을 무시한 채 자기 가족과 훌쩍 떠났다. 우리는 그들이 모두 투표장에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올해는 어떻게 될 것 같아?” 내 또래 남자애가 물었다. 나는 걔를 학원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고, 걔 부모가 둘 다 행진에 참여했다는 것만 생각났다. 아이는 홀로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우리 선생님이 했던 답변을 들려주었다. “그건 그분들이 결정할 일이지, 우리가 찬성하거나 반대할 일은 아니야.”
걔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할머니는 아직도 옆자리 아주머니와 이야기 중이었다. 자리가 많이 비었기에 나는 열기를 감수하고 의자 두 개에 걸쳐 벌렁 누웠다. 서울의 하늘은 미세먼지 하나 없이 바라볼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수십 군데의 다른 도시에서 나와 비슷하게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여자애들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한참을 기다렸다. 할머니는 성경책을 꺼냈다. 할머니의 손가락이 여느 때처럼 페이지를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가 진짜로 읽고 있는 게 아닐 거라 짐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거리를 청소하러 나온 환경미화원들의 비질 소리와 몇몇 사람들이 남아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때때로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 때문에 플라스틱 바닥이 덜컹거리기도 했다.
마침내 휠체어 모터 소리가 최고 속도로 윙윙거리며 다가왔다. 손그늘을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엄마였다. 엄마의 눈은 마치 울고 있었던 것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어떤 해에 엄마는 소주 냄새가 났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강변북로를 따라 늘어선 가로등과 깃발을 헤아렸다.
“어떻게 됐어?” 침묵 속에 마포대교를 건넌 뒤 할머니가 물었다.
“안 됐어.”
“투표 결과는 박빙이었어?”
엄마가 한숨을 쉬며 너무 작은 목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듣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여야 했다.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어.” 할머니는 기어봉을 잡은 엄마의 팔에 손을 얹었다. “언젠가는 그럴지도 몰라.” “그래, 어쩌면.”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베란다의 태극기를 내렸다. 엄마는 옷을 갈아입었다. 할머니가 제복을 가져다가 드라이클리닝을 맡기기 위해 챙겨 놓는 동안, 엄마는 손을 무릎에 얹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안방 서랍 깊숙이 있는 아빠 사진을 가지러 갔다.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건너편 침대에 할머니가 앉아 있는 걸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망할 베일.” 할머니는 말했다. “대체 왜 해마다 베일 유지에 찬성표를 던지는지 난 죽어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기억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겠죠.” 내가 우리 선생님이 알려준 말을 반복했다. “전쟁은 너무나 끔찍했잖아요.”
“그렇지만 너희 엄마는 기억하고 싶어 한단다.”
“엄마가 마트에 갔는데 엄마를 기억 못 하는 전우를 마주치거나 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예요. 모두가 기억하거나 아무도 기억하지 않거나 하는 방법뿐이잖아요, 할머니.”
“그렇지만 나쁜 기억과 함께 좋은 기억들도 너무 많이 지워버리잖니.”
“좋은 기억들도 아픈 거 아닐까요.” 나는 엄마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본 적이 있었다.
“아빠에 관해 내가 모르는 걸 알려주세요.” 소파 팔걸이로 기어올라가며 내가 말했다.
엄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서 사진을 가져가서는 아빠의 짧은 머리와 계급장을 손가락으로 훑어 내렸다.
“부대 안에 있는 체력단련실에서 네 아빠를 처음 만났어. 내가 벤치프레스를 하는 걸 보고도 자세가 어떻니 훈수를 두지 않는 유일한 남자였지.”
“그건 알아요, 엄마. 또 다른 건요?” 재촉하려던 건 아니었다. “죄송해요. 보채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이는 우리가 대민 지원을 나갔던 마을 아이들과 놀아주는 걸 좋아했어. 행보관은 정말 싫어했지. 작전 구역 이탈이라며 경고했지만, 그이는 짬이 날 때마다 몰래 나갔어.”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몰랐어요. 아이들과 무슨 놀이를 했나요?”
“우리가 거기 도착한 첫 주에 그이는 분필을 가져왔어. 학교가 무너져서 칠판도 없는 곳이었거든. 작은 남자애 하나가 있다고 했고 분필 한 조각을 주려고 갔는데, 갑자기 어디서 스무 명 넘는 아이들이 나타나 손을 내밀며 그이에게 매달린 거야. 분필은 잘 부러지니까 조각조각 나눠서 줄 수 있어 다행이었지. 어린애들은 그걸 사탕인 줄 알고 입에 넣으려고 했어. 나중에 그이는 나에게 ‘애들 칼슘 섭취는 좀 시켰네’라고 농담했어. 그 후로 네 아빠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어. 그렇게 많은 조각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이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겠다면서 나에게 땅따먹기를 알려달라고 했어. 상상이 가니? 덩치 큰 군인이 쭈그리고 앉아 땅따먹기 판을 그리는 게? 그다음엔 비석 치기라든지, 흙바닥에 줄을 긋거나 찌그러진 공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어. 그러고는 우리가 전쟁터 한복판에 있다는 걸 완전히 잊어버린 사람처럼 눈을 반짝이며 몰래 막사로 복귀하곤 했지. 그리고 첫 번째 포격이―” 엄마는 무릎에 두었던 두 손을 꽉 쥐었다.
“엄마는 거기에 왜 갔는데요?”
오후 6시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와, 애국가 시보가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마, 더 얘기해주세요, 빨리요!”
나는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엄마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고 엄마는 나를 으스러져라 꼭 안았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너무 늦었음을 알았다. 나는 제복을 입은 그 남자, 나의 아빠를 떠올리며 동네 아이들 대신 나에게 땅따먹기를 가르쳐주는 아빠를 상상하려고 애썼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결코 만날 수 없을 사람을 상상하는 일은 어려웠다. 나는 아빠가 아니라 엄마로 시작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몇 분이 지나 종소리가 멈췄다. 엄마의 얼굴은 철문처럼 굳게 닫혔다. 엄마는 휠체어 옆에 달린 주머니를 더듬었다. 무릎에 있던 아빠 사진이 미끄러져 거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녁 먹기 전에 뭔가 재밌는 걸 보고 싶은 기분이구나.” 엄마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볼래?”
“물론이죠. 금방 다시 올게요.” 나는 떨어진 사진을 주웠다.
“그게 누구니?” 엄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참전해 싸웠던 어떤 군인이에요.”
“학교 숙제야?”
“네.” 내가 말했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단다.” 엄마가 미소 지었다. “그 군인들은 기억되어야 마땅하지.”
할머니는 안방 침대에 잠들어 있었다. 나는 엄마가 실수로 사진을 발견하거나 찾을 수 없도록 서랍 깊숙한 곳에 다시 숨겼다. 내가 왜 아빠에 관해 먼저 물어봤을까? 나는 아빠에 대해 절대로 알 수 없었다. 아빠는 이미 없고, 엄마는 여기 있고, 나는 엄마의 사라진 부분도 아직 더 알지 못하니까 말이다.
거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수아야, 나랑 같이 예능 보기로 한 거 맞지?”
“가요.”
나는 엄마 옆에 식탁 의자를 끌어다 두고 엄마 어깨에 기댔다. 엄마도 내 머리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내가 제일 잘 아는 엄마는 바로 이 엄마였다. 자기 자신이 왜 휠체어를 타게 되었는지 기억 못 하는 사람, 전쟁이란 뉴스에서나 나오는 다른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와 함께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을 보면서 박수 치고 웃는 사람.
언젠가는 나이 든 군인들이 투표를 통해 베일을 거두기로 결정할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어쩌면 다른 엄마에 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아빠를 기억하는 사람. 언젠가 나에게, 아빠와의 기억이 엄마가 잃어버린 전부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 이다음 해에는 엄마에게 그 질문을 먼저 하는 걸 잊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