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라는 전래동요의 한 구절을 비틀어 ‘죽은 자의 집’이라는 이름을 지은 게 바로 나다. 마치 내가 그런 걸로 농담 따먹기나 할 수 있는 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민지은이 나에게 동업을 제안했고, 내가 그걸 거절한 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는 대학 기숙사 룸메이트였는데, 솔직히 나는 사업 수완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는 걸 굳이 숨길 생각이 없다. 내가 지은이처럼 그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알아봤더라면, 그 제안을 받아들였더라면, 그리고 그녀와 갈라서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강남에 빌딩 한 채는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지은이는 스스로를 ‘지니’라고 불렀다. 누구에게든 자기 이름이 ‘지-니’이며 다른 무엇도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었다. 그녀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나 개구리 소년 사건 같은 미제 사건들에 이상한 애증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지은이네 가족은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일산 신도시에 살았고 당시에는 그냥 평범한 지은이로 불렸다. 그때는 아무도 그 이름에 대해 유난을 떨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가족은 서울 강남의 도곡동으로 이사를 했고, 바로 그때 그 유명한 범죄 스릴러 영화가 개봉했다. 이사하자마자 그녀는 “그 영화 속 피해자랑 이름이 같은 지은이”가 되었고, 모두가 그녀에게 괜히 안부를 묻곤 했다. 그녀는 3년 내내 따라다닌 그 꼬리표에서 벗어나 대학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어 기뻤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그런 류의 이야기는 지니를 매혹시켰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무언가에 집착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했다. 그녀는 강원도 폐가 체험부터 영덕의 흉가까지 이르는 국도 여행에 나를 여러 번 끌고 다녔다. 방치된 정신병원, 살인 현장, 사이비 종교 시설 같은 곳들 말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음습한 곳으로 성지순례를 가는지 전혀 몰랐었다. 최소한 지니의 관심은 실용적인 데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몰랐지만 말이다.
기름값이며 톨게이트비는 지니가 다 냈고, 나는 어차피 집에서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기꺼이 따라다녔다. 나와 함께 이런저런 곳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웠다. 돌아보면 그건 자기 자신의 관심을 나에게 투사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그런 곳들 중 하나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나의 낡은 아반떼를 타고—그녀는 내가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 돈이 썩어 나는데도 면허가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신나는 아이돌 노래를 찾느라 폰을 뒤적일 때 그녀는 늘 조용히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질문들이 따라왔다.
“있잖아 현수야, 그 별장 수영장에 왜 물이 없었을까?”
“11월이라서?”
“지금 말고. 그때 사건 당시 말이야. 7월 한여름에 빈 수영장에서 시신이 발견됐잖아.”
나는 고심했다.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물을 뺐는지 아니면 죽고 나서 뺐는지 국과수에서 밝혀진 게 있어?”
“그 사람은 익사한 게 아니야. 이미 죽어 있었다고. 너 뉴스 제대로 안 봤구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맞아”였다. 그때쯤 나는 이미 살인사건이나 실종된 사람들에 질려 있었다. 나는 당면한 미스터리에 대해 최대한 적게 알게 되는 걸 목표로 삼고 그 장소들을 떠돌았다. 그 모든 일은 나에게 관음증적이고 병적으로 느껴졌다. 남의 집 안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밖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해결되어야 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단서들에 관심을 갖는 대신 나는 건축 양식, 인테리어 디자인, 조경, 배치된 가구의 미학 등에 집중했다. 책꽂이에 꽂힌 책들과 자개장과 식기 등을 유심히 살폈다. 부모님 집 베란다에 만들어둔 미니어처 마을에 그 집을 더한다면 그걸 어떻게 모형으로 재현할지 상상해 봤다.
지니는 시간이 좀 지나서 제 질문에 스스로 답하곤 했다.
“나라면 가족들이 해외여행을 간 사이에 비싼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고, 누군가 박 회장을 설득해서 수영장 물을 빼둔 거라는 데 걸겠어. 방수 공사가 필요하다면서 미리 착수금을 받아야 한다고 했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가족들이 돌아와서 그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그게 대한민국 재계 서열 20위 기업 회장을 무너뜨린 방법이라고?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그 집안은 돈이 썩어나게 많았어. 그게 어떻게 아들은 수영장에서 죽어 있고 박 회장이 3주간 실종된 사건을 설명할 수 있어?” 그 정도는 투어에 집중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잘 모르겠다면 내가 설명해볼게, 현수야.”
그러면 나는 목청껏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넘겼고 그리 오래지 않아 지니는 내 노래를 멈추기 위해 사과를 하고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녀는 나중에 쓴 에세이집에 이 모든 것을 적었다. 수많은 국도 여행과 이후 그녀가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들. 거기서 나를 삭제했지만 말이다. 취조와 같던 질문들은 근사한 탐구 과정으로 윤색되어 있었다.
책에서 나는 기껏해야 한 장면 정도를 차지했다. 지니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영동고속도로 위에 있었고, 강릉에서 학교로 돌아가는 네 시간의 운전 구간 중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지니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나는 “누구?”라고 말했고 지니는 “알잖아, 그 뉴스 속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나는 “누구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라고 했고 우리는 한바탕 진 빠지는 대화를 했다. 그녀는 『죽은 자들과의 대화』라는 책에서 이 대화를 간결하게 다듬어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버전에서 그녀는 “우리가 그들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각색된 나는 그녀의 생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럼 정말 대박이겠다”라고 대답했다.
지니가 말한 건 물론 “그들에게 목소리를 주면 어떨까?”였다. 그건 그녀의 아이디어였다. 살인자와 괴물과 부당하게 누명을 쓴 자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
“분신사바 같은 건가?” 지니의 생각을 이해했을 때 내가 떠봤고, 책에서는 이 이야기가 실제 일어났던 대화에서보다 훨씬 더 짧게 축약되어 있었다.
“분신사바인데 더 과학적인 거지. 현장에 가서 그 사람들에게 진짜 질문을 하고 응답으로 진짜 답을 듣는 거야.”
나는 대충 장단을 맞춰줬다. “‘죽은 자의 집’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느낌 오지?”
“지금까지 낸 아이디어 중 가장 쩔어.” 나는 지니의 말 뒤로 미소를 느꼈다. 나머지 구간을 운전해 오는 동안 우리는 더 좋은 이름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애초에 그 이름이 딱이었다.
그 이름은 프로젝트를 집중력 있게 추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나는 지니의 아이디어가 어디선가 귀신이 튀어나오는 공포 체험관 같은 식으로 재현될 거라 생각했고, 그녀에게는 그게 좋은 생각이었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역사 박물관과 롯데월드 귀신의 집을 아무렇게나 섞어 합쳐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끔찍하게 으스스했고, 너무 기괴했다.
우리가 진짜 사람 같은 밀랍 인형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하나도 모르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 생각에 집착했을지도 모른다. 지니는 당장 가진 것에 적응하는 데 능한 사람이었고, 그녀가 가진 것은 나였다.
모델을 만드는 건 언제나 나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브로콜리 나무가 있는 아파트 단지 전경과 파란 물감을 푼 한강 공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부모님 집 베란다에 있는 지하철역을 품은 역세권 마을들. 내 남동생 태우가 사라지기 전에, 그리고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모든 기술 가정과 미술 수업에서 가르친 것이었다. 살인의 집을 만드는 작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치면 내가 지금 만드는 건축과 졸전 모형들도 그렇게 다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답은 여기 있었다. 우리의 선택은 가짜처럼 보이는 사람 모형을 만들지 진짜처럼 보이는 집 모형을 만들지 둘 중 하나였다.
나는 첫 번째 모형을 내가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있었던 캠퍼스 건축학관 모형 제작실에서 만들었다. 거긴 꿀 알바 자리였다. 나는 만드는 걸 좋아했고 새벽이든 밤이든 내 맘대로 드나들 수 있는 것도 좋아했다. 그게 항상 나를 만성 피로와 가난에 시달리게 만들었지만 상관없었다. 늘 그랬다.
프로토타입은 물론 그 유명한 ‘평창동 회장님 저택’이었다. 실제 사건 현장인 그 집이 아니라 뉴스에 밥 먹듯이 나왔던 그 붉은 벽돌집.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지니는 그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고 죽치고 앉아있곤 했다. 심지어 지니는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전 부동산에 손님인 척 들어가 내부를 보고 오기도 했다. 나는 원래도 살인사건들보다 집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평면도를 분석하곤 했지만 지니가 자기 계획에서 나의 역할을 설명해주고 난 후에는 한층 더 디테일에 집착했다. 현관의 대리석 문양, 거실 통창으로 들어오는 채광의 각도 같은 것들.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나 뉴스 자료화면에서 평면도와 사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 프로젝트에 숨을 불어넣은 건 그 공간을 공간답게 재현해낸 나의 감각이었다.
그녀가 발주한 모델을 보여주자 지니는 “대박, 현수야.” 하고 감탄했다.
지붕은 경첩으로 활짝 열렸다. 그 안에는 모든 방이 완벽한 비율로 만들어져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가죽 소파, 거실의 샹들리에, 나선형 계단 등이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실제로 열리는 방문과 창문. 그것은 10센티미터 정도의 바닥 판을 제외하면 30센티미터 정도 높이였다. 그 저택은 사건 당시 단전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모형 양초와 비상등을 테이블과 벽에 만들어 달았다.
“부탁한 게 이거 맞지?”
“어, 맞아. 그런데 이거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렸어?”
나는 머릿속으로 날짜와 시간을 더해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니는 내가 모델을 만드는 딱 그 정도 기간 동안 코딩과 전기 배선을 책임지고 만들었다. 내가 그걸 만드는 동안 동대문과 을지로를 돌며 자재를 사다 주기도 했으니 그녀도 아마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지니는 모형을 돌려보고 거실 통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 “가구를 하나하나 다 깎았네.” 내가 그녀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없기라도 하다는 듯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진짜 미쳤다.”
나는 요청받은 대로 하단부를 비워두었고, 지니는 다음 날 전공 수업을 모두 째고 스피커와 회로를 설치했다. 내가 저녁 먹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침대에 누워 웹툰을 보고 있었다.
“켜봐.” 내 쪽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지니의 책상은 내 책상과는 달리 언제나 돼지우리였다. 모델은 중앙에 있었고 온갖 전선과 납땜 도구가 주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창문 방충망 하나가 없어져서 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바닥 판을 한참 더듬고서야 스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어떡해?” 내가 물었다.
“질문을 해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지니는 투덜대며 나 대신 물었다. “사모님, 공격당했을 때 당신은 어디를 보고 있었나요?”
나는 안에서 인물들을 발견하기를 반쯤 기대하면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잠깐, 사모님이 누구야? 박 회장한테 질문을 하는 거 아니었어?”
“우리가 흉상이 아니라 집을 만들기로 했을 때 거기 모든 사람들을 다 넣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
지니는 자신의 질문을 반복했다. 스피커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니의 연극 동아리 친구 혜진임을 알 수 있었다. “현관 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모님, 처음으로 맞았던 곳이 어디였죠?”
“거실 입구였습니다.”
나는 킥킥댔고 지니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오류였다.
“최 여사님.” 그녀는 호칭을 바꿔 다시 시도했다. “처음에 맞았던 몸의 부위가 어디였나요?”
“왼쪽 어깨였습니다.”
지니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계속했다. “박 회장님, 당신은 죽던 날 아침 집을 떠나서 어딜 간 거죠?”
이번에는 누군지 모르겠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어쩌면 전공 교수님 중 한 명? 목소리는 우리 또래보다 훨씬 중후했다. “저는 조찬 모임에 갔습니다.”
“누가 당신을 공격했나요?” 내가 물었다. 답이 없었다.
“먼저 호칭을 말해야 돼.” 지니가 말했다.
나는 갑자기 쑥스러워 굳어졌다. “음, 회장님, 누가 당신을 공격했죠?”
“저는 서재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나는 지니를 바라봤다. “가정부 아줌마에게 이 질문을 하면 어떻게 되지? 아니면 용의자였던 큰아들에게 직접 물어본다면?”
“해봐.”
“박민석 씨, 당신은 당신이 죽였다고들 하는 부모님을 정말로 죽였나요?”
박민석은 뉴스 인터뷰 말투를 어색하게 따라 하는 지니의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이미 그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맞은편 침대에 누워 있던 같은 목소리가 말했다. “쩔지 않냐?”
내 침대 뒤쪽 창문을 뭔가가 두드렸다. 방충망과 유리 사이에 갇힌 매미였다. 나는 놈을 풀어주기 위해 방을 가로질러 갔다. 매미는 몇 차례 창문에 부딪히고 나서야 기숙사 벽을 따라 날아갔다. 나는 내 침대로 뛰어들었다.
“아직 잘 모르겠어.” 내가 말했다. “그건 결국 나무위키에 나오는 정보 정도만 알고 있는 거잖아. 그건 말하도록 코딩된 대로만 말하는 거라고. 진범이 누군지에 관해 네가 알고 있지 않다면 그것도 모르는 거 아냐?”
지니는 한숨을 쉬었다. “이건 그냥 프로토타입이야. 베타 버전이라고. 내가 입력한 질문만 답할 수 있지. 그치만 AI 딥러닝 프로그램에 충분한 데이터를 제공한다면, 그리고 모든 용의자와 모든 피해자에 대한 수사 기록을 털어 넣으면 내가 모르는 답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 주어진 정보에 기반해서 내가 보지 못한 연결점들을 찾는 거지. 어쩌면.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은 이걸 살걸.”
“근데 그걸 왜 하는 건데?”
“사람들은 미제 사건을 사랑해.” 그녀는 말했다, 자신의 책에서 있어 보이는 문장으로 포장한 바로 그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건 현장도 사랑하지. 나는 그니까 우리는 이걸 만들고 이걸 범죄 박물관이나 방 탈출 카페 같은 데 파는 거야. 이건 전시에 써도 될 퀄리티니까. 그러고 나서는 디테일 좀 빼고 양산형으로 작고 싸게 만드는 거지. 진짜 열리는 창문 같은 거 빼고. 굿즈처럼.”
나는 그 말에 생각보다 더 상처받았다. 잘만 다루면 내 모형에서는 그 어떤 것도 떨어지거나 고장 나지 않았다. 내 남동생 태우는 집을 떠나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때까지 내 모형들을 박살 냈지만 한 번도 내 접착 실력이 문제였던 적은 없었다. “우리가 라고 했지?”
“우리.”
나는 지니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잃어버린 방충망을 찾을 때까지 책상 주위를 뒤적거렸다. 내 모형 재료 상자를 뒤져서 그 방충망을 다시 제자리에 고정할 수 있는 핀셋을 찾아냈다. “다른 목소리들은 괜찮은데, 네가 녹음한 큰아들 목소리는 너무 국어책 읽기 같아.”
이 주가 지난 뒤 지니는 하단부 회로를 업데이트했다. 집은 이제 더욱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실제 뉴스 인터뷰와 더 비슷한 톤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로 대체했다. 여름방학에 내가 본가에 내려가 있는 동안 지니는 그 집을 쇼핑백에 담아 지하철을 타고 홍대로 갔다. 그리고 키덜트 숍에 그걸 100만 원에 팔았다.
개강 후 기숙사로 돌아온 첫날 지니는 내 침대에 돈 봉투를 툭 던졌다. 사는 쪽에서는 계좌 이체를 해줬지만 지니는 기분 낸답시고 은행에서 5만 원권으로 인출을 해 온 것이었다.
“현수야, 우리가 이 일에서 파트너가 맞는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겠어.”
“난 이미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지. 넌 모형을 만들어줘야 하고, 나는 이 일을 어떻게 사업화할지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거든? 우리가 파트너라면 우리가 이 사업을 위해 둘 다 자본금을 대고, 둘이 같이 경영 결정을 하고, 수익을 5대 5로 나누고, 아니면 모형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을 내가 부담하는 대신 이건 어쨌든 내 사업인 걸로 할 수도 있지.”
“나한테 얼마나 줄 건데? 모형 만드는 값으로?”
“그 첫 번째 모형은 작품 수준이었어. 우리는 그런 걸 몇 개 더 만들고—내가 리스트를 뽑아놨어—그 후에는 장식적인 부분 없이 보급형 미니 버전을 또 몇 개 만들어야 해. 문 안 열리는 통짜로. 큰 집들을 만드는 건 건당 60만 원과 재료비를 받게 될 거야. 작은 집들은 음, 개당 5만 원. 팔리든 안 팔리든 너한테 제작비를 줄게.”
“그 돈 봉투는 90만 원이야. 네가 첫 번째 모형을 만드는 데 쏟은 시간에 대한 대가지. 그 첫 번째 모형을 팔 수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거야. 그냥 알바생처럼 일하기를 원한다면 90만 원을 다 가져. 그게 아니라면 그 돈을 내가 다시 가져가서 다음 단계에 투자하고 우리는 반반씩 가져가는 동업자가 되는 거야. 대박이 나든 쪽박을 차든 똑같이.”
나는 내 침대에 놓인 노란 봉투를 바라보았다. 나는 내 손으로 그만큼의 현금을 만져본 적이 별로 없었고 지니는 그걸 알고 있었다. 나의 부모님은 넉넉하지 않았고 경찰이 태우를 찾는 걸 사실상 종결한 후에 그들은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흥신소와 무당집에 써버렸다. 90만 원은 내 다음 학기 기숙사비와 생활비를 메꿀 수 있는 돈이었다. 이런 대가를 계속해서 받는다면 나는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아니면 나는 지니와 사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살인자의 목소리가 나오는 흉가 모형을 사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냥 재고 떨이도 못 할 모형들과 남겨지게 될 것이다. 일한 만큼 돈을 받고 책임은 없는 것, 혹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미래에 배팅하는 것.
“나 그냥 직원으로 일할게.” 나는 말했다.
지니는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계약서를 꺼냈다. “그럼 도장 찍고 확실하게 하자.”
내가 다른 쪽을 선택했을 경우에 해당하는 두 번째 계약서가 있기는 했었는지 나는 영영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퀴즈 푸는 것을 환장하게 좋아한다.” 지니는 자기 책에 그렇게 썼다. “그건 그들이 스스로 명탐정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니는 대중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에 관해 확고한 철학이 있었는데, 그건 다른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복제품이라고 여겼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물론 이건 지니의 책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이건 내 뇌피셜이니까.
우리는 우리의 기숙사 방을 공장으로 썼다.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하자 그녀는 학교 근처에 싼 반지하 작업실을 빌렸고 우리는 거기로 모든 것을 옮겼다. 여름에는 습기 차고 겨울에는 발이 시려 동상에 걸릴 것 같았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지니는 알바생으로 여러 친구를 고용했고, 거기엔 성우 지망생들과 공대생 몇 명이 포함됐다. 미대생인 보라는 내 모형에 도색하는 역할을 맡았다. 경영대 다니는 수민이는 인스타에 우리 작업을 홍보하고 스마트스토어를 열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지니가 옳았다. 사람들은 ‘사연 있는 집’을 원했다. 처음에는 고작 몇 개였지만 누군가 우리의 모형을 활용해서 몇 년 전 발생한 오피스텔 살인 사건의 트릭을 풀어버렸다. 그 일은 유튜브를 타고 화제가 되어 재수사를 이끌어냈고, 실제 증거를 활용해 자신들의 가설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으며,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었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감사패를 보내기도 했다.
그 이후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주문이 폭주했다. 예약 대기가 있다는 사실은 그걸 더욱 갖고 싶은 힙한 아이템으로 만들 뿐이었다. 우리는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보급형 라인과, 내가 직접 손으로 만드는 프리미엄 커스텀 라인을 나눴다. 우리는 유영철의 오피스텔과 강호순의 축사를 만들었다. 지니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 많은 시급을 받고 있었기에 나는 다음 학기 등록금을 직접 내고도 남을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때때로 나는 동업자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걷어찬 게 실수는 아니었는지 고민했다. 아직도 궁금하다. 나는 아마도 그녀가 경찰청과 국과수를 위해 만들기로 한 사건 재구성용 디오라마들을 좋아했을 것이다. 실제 수사에 쓰이는 시뮬레이션 퍼즐 같은 것, 그에 더해 목소리도 나오고 AI로 끊임없이 심문할 수 있는 그런 것들. 또 나는 흉가 체험으로 돈을 버는 건물주들이 유튜버들에게 입장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인터폰이나 벽면에 AI 스피커를 매립해 달라며 지니에게 거액을 준 그런 거래에도 아마 찬성했을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각자 갈 길을 갔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아마 그녀가 받아왔지만 내가 거절한 어떤 건으로 싸우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가 만든 집을 이용해 이미 죗값을 치른 사람들을 자극하고 신상을 털려 했던 사이버 렉카, 정치인, 현재 재판 중이거나 너무 잔혹해서 건드리기 조심스러운 사건 등. 그 당시 내가 그저 월급쟁이 상태에 머무르고 싶었던 이유는 사실 더욱 단순하다. 나는 지니가 모형 제작이 아닌 비즈니스 미팅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쓰는지를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나는 돈 계산이나 영업을 신경 쓰지 않고 모형을 깎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지니가 우리의 우정을 박살 낸 그 짓거리만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마도 그렇게 영원히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니는 그 일을 『죽은 자들과의 대화』에도 싣지 않았다. 책에서 그녀는 우리의 곰팡이 핀 반지하 작업실에서부터 4학년 1학기에 휴학계를 낼 때까지의 시간을 통편집했다.
지니가 생략한 것은 나의 스무 번째 생일에 본인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우리의 생일은 서로 꽤 가까웠기에 기말고사가 끝나고 종강 파티 겸 해서 12월생 친구 셋과 작업실 알바들—그들이 결국 같은 사람들이었지만—과 함께 학교 앞 호프집에서 시끌벅적한 합동 파티를 열었다. 지니는 소맥을 말아 마셨고 나는 사이다를 마셨다. 나는 그날 밤 너무나 뚜껑이 열렸었기 때문에 그때 이후로는 사이다 꼴도 보기 싫어졌다.
아무튼 술이 몇 순배 돈 뒤 지니는 의자 위에 올라가서 주목을 끌었다. 누군가가 아마도 미대생 보라가 그녀에게 다이소 부직포 가방을 전달했다. 그녀는 나에게 그것을 건네주기 전에 가방 밖으로 삐져나온 코드를 벽 콘센트에 꽂았다. 그래서 나는 내용물을 보기도 전에 그게 어떤 종류의 선물인지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는 사실까지는 기억이 난다.
나는 그것을 가방에서 꺼냈다. 가로 60센티, 세로 30센티의 합판 베이스에 올려진, 재봉틀만 한 건물이었는데, 나의 프리미엄 모형들보다도 훨씬 컸다. 마감은 거칠었고,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복도식 주공 아파트를 알아보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105동이라는 숫자를 알아봤을 때 나는 지니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지만 술기운 때문은 아닌 목소리로 나는 모델에게 물었다. “너는 이름이 뭐니?”
내부에서 내 것이 아닌—내가 이 거지 같은 깜짝 선물에 녹음을 한 적은 없으므로—목소리가 “이현수”라고 대답했다. 나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아마도 가끔 녹음 알바를 하는 연영과 학생 중 하나일 것이다.
그때 나는 지니를 노려보았다. 나는 지니가 왜 내가 내 인생의 흑역사들을 그녀가 알고 있는 대로 AI 스피커에 입력하겠다는 생각을 좋아할 거라고 착각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지니는 자기 자신의 집이 모형으로 만들어지는 걸, 그 집에 질문을 하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대답을 듣는 걸 개의치 않았을 것 같고, 그렇기에 그녀는 내가 불쾌해할 거라는 사실을 뇌 구조상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죽일 듯이 쳐다보았던 바로 그 순간 지니는 그 선물이 대형 사고였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 얼굴에서 실실 쪼개는 웃음기가 사라질 때까지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술 취한 애들은 이미 가짜 나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 들이닥쳤다. 내가 작년에 경영학과 민호랑 잤는지? 그럼 수민이는? 내가 정말로 ‘건축 구조 역학’에서 F를 받았는지? 답변은 소름 끼치게 정확했다. 아니. 응. 아니—나는 살인의 집을 만드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에 여름방학 계절학기로 재수강을 해서 학점을 메꿔야 했고, 교수는 내가 범죄 현장 디오라마를 만드는 것의 윤리적 딜레마에 관한 리포트를 써도 좋다고 말했으므로 나는 그렇게 했다. 이것들은 모두 2년 반 동안 붙어 지낸 지니가 나에 대해 털끝만큼이라도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나의 말버릇과 억양을 카피하고 있었다.
질문들은 몇 차례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나는 그것이 내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기계가 헛소리하기를 기다렸지만, 그것은 나의 본가 주소와 부모님의 성함과 내가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 별명까지 알고 있었다. 나는 지니가 몰래 나의 가족과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서프라이즈 파티에 쓸 정보 좀 달라고 쑤시고 다니는 꼬라지를 상상했다. 그중 누군가가 내가 이런 이벤트를 극혐한다는 점을 언급했다면 지니는 분명히 그 정보까지 AI에 신나서 집어넣었을 것이다.
“형제나 자매 있어?” 누군가 물었고, 나는 거의 심장이 멎을 뻔했다. 이 새끼들은 그냥 아무 질문이나 던지고 있는 거야, 라며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AI는 “하나도 없어”라고 말하고는 버퍼링 걸린 듯 잠시 멈추었다가 “이제는 하나도 없어”라고 말했다.
나는 의자 밑에서 가방을 낚아챈 다음, 패딩과 지갑과 노트북이 있는지 확인하고 곧바로 호프집을 나갔다. 내가 남아서 판을 엎어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들이 나에게 질문 공세를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어지는 추가 질문을 듣게 되거나, 더 최악으로는 그에 대한 대답을 듣기 전에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재워 줄 만한 친구 자취방을 찾아 몇 군데 전화를 돌려봤지만 애들은 우리 파티에 와 있거나 이미 종강해서 고향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진눈깨비가 날렸는데 얼어 죽을 만큼 춥지는 않았다. 아빠는 항상 차 트렁크에 무릎 담요를 챙겨 다니라고 했었고, 나는 운전석에서 몸을 웅크렸다. 새벽에 속이 안 좋아 한번 일어나서 화단 근처에 토하다가 그사이 얼어붙은 빙판길에 미끄러져 내 토 위로 자빠질 뻔했다.
나는 남은 기말고사 기간 동안 과방 소파에서 잤으며 겨울방학 중에 기숙사 방을 바꿔달라고 행정실에 신청했다. 학교 측은 룸메이트가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가 있다는 어느 3학년 선배와 방을 같이 쓰도록 배정해 줬다.
나는 내가 모형에 관한 한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땐 이미 알 바 아니었다. 나는 살인의 집에 신물이 났다. 너무 많이 알고 있는 AI 목소리에도 구역질이 났다. 내 윤리 리포트에서 나는 우리가 하는 짓을 합리화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목소리가 없는 자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일을 한다”라고 나는 썼다. “인공지능은 사건의 모든 관계자를 대변할 수 있다. 이 과정에 ‘뇌피셜’은 없다. 만약 답을 모른다면 그것은 ‘모릅니다’ 혹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것은 사건에 연루된 누군가가 했었어야 하지만 하지 않은 직관적인 추론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추론이 법적 증거가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모델이 정의 구현에 도움을 줄 가능성은 매우 기대되며, 이것이 그 어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설날 연휴 때 나는 지니가 거기 없을 것이 확실한 시간에 내 짐을 빼기 위해 작업실로 갔다. 우리는 연휴 전에 들어온 주문을 모두 택배로 부쳤고—그렇다, 사람들은 명절 선물로 살인의 집을 주고받는다—알바들은 통 크게 2주 유급 휴가를 받았다. 나는 그녀가 가족과 함께 다낭이나 괌에 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작업실은 거기 있던 사람들만 빼고 내가 떠났을 때와 완전히 똑같았다. 배달 음식 용기와 소주병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그것들이 헹궈지지도 않은 채 그냥 분리수거함 옆에 쌓여 있었음을 보여주듯 쉰내가 났다.
내 선물이었던 그 아파트 모형은 내가 그걸 버려두고 간 작업대 위에 아직도 코드가 꽂힌 채로 놓여 있었다. 질문을 하지 않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았겠지만 그 반지하에는 나밖에 없었고, 나는 꼭 확인해야만 했다.
“현수야, 너 동생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지?”
“몰라.” 죽은 자의 집이 답했다.
“하지만 그날 네가 걔를 보고 있었던 거 아냐?”
“맞아.”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지?”
“걔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고 나는 벤치에서 폰 게임을 하고 있었어. 그리고 나는 화장실 가려고 2층으로 잠깐 올라갔는데, 와보니 걔는 사라져 있었어.” 경찰 조서에 담긴 내 진술 그대로였다.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
“경찰에게는 못 들었다고 말했어.”
“그 대답 한 번 더 해줄래?” 내가 말했다.
“경찰에게 말했어. 못 들었다고.”
처음 답변의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를 내가 상상해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억양 차이가 단어들의 의미를 어떻게 바꿔놓는지가 너무나 끔찍했다. ‘그것’이 하는 말들의 속뜻이 말이다. 대체 어떤 알고리즘을 짰길래 그 둘의 차이가 발생하는 걸까? 나는 질문이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때 무슨 게임을 하고 있었어?”
기계는 잠시 멈추었다. 그 정보는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포함된 적이 없었다.
마침내 그것은 “기억나지 않아”라고 말했다.
그걸 박살 내지 않은 건 순전히 그것이 “기억나지 않아”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연히 그랬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메이플스토리’를 하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만렙에 가까운 상태였다. 지금까지도 그게 내 최고 기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때 이후로 다시는 그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으니까. 그 기계는 내가 아니었다. 지니는 나를 멋대로 편집했다. 그것은 단지 성대모사에 불과했다.
그것은 태우가 나에게 자기 캐릭터 퀘스트 좀 깨달라고 졸랐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것은 태우가 로봇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와 무릎이 다 늘어난 츄리닝 바지, 그리고 찍찍이가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는 것만 알았다. 나는 경찰에게 태우가 무엇을 입고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진술했다. 그것은 태우의 정수리 쪽에 그 바로 전해 거실 탁자 모서리에 찧어 다섯 바늘을 꿰맨 자국, 땜빵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것이 실종 전단지에 적힌 “신체 특징”에 속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태우가 웃을 때 코 먹는 소리를 낸다는 것을 몰랐다. 그것은 걔가 달릴 때 팔을 휘적거리며 뒤뚱뒤뚱 달린다는 것을 몰랐다. 그것에게 아무도 태우가 가지고 있던 공벌레에 대한 기묘한 집착을, 화단에서 공벌레를 한 움큼 잡아와 거실 바닥에 풀어버린 태우 때문에 우리가 기겁을 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보스 레이드를 뛰려던 참이었고 태우에게 “저리 가 좀!”이라고 소리 질렀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정확하게 “꺼져”라고 말했고, 나는 그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마지막 박스를 들고 캠퍼스를 가로질러 영영 떠나기 전에 나는 AI 현수의 코드를 뽑았다. 마음을 바꿔 돌아간 것은 복도를 절반쯤 지났을 때였다. 책상 맨 윗서랍에는 드라이버가 있었다. 나는 모형을 뒤집어 바닥 판의 나사를 풀었다. 메모리 칩을 제거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탕비실에 들러 전자레인지에 그걸 넣고 돌렸다. 굳이 거기 머물러 불꽃이 튀고 타는 냄새를 맡으며 구경하지는 않았다.
내가 지니와 말을 섞은 건 그 술자리가 마지막이었다. 지니는 카톡이며 전화를 수십 통 해댔지만 나는 차단했고, 그녀는 결국 포기했다. 수민이나 아직 ‘죽은 자의 집’ 사업으로 꿀 빨고 있는 몇 사람 말로는 무엇이 나를 빡치게 했는지 지니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고, 그 덕분에 나는 내가 옳은 선택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니에게는 평창동 살인 사건과 정치인 스캔들과 태우의 실종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그녀가 풀어주기를 기다리는 킬링타임용 콘텐츠에 불과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