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티노스의 '일자'와 정보 다이어트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축적'의 과정으로 오해하곤 한다. 지식의 양이 곧 지성의 두께라고 믿으며, 마치 무한 리필 뷔페에서 접시를 가득 채우듯 정보를 삼킨다. 하지만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 플로티노스는 정반대의 제안을 한다. 그는 공부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여분을 깎아내는 '조각'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조각가가 돌덩이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쳐내어 그 안에 숨겨진 조각상을 찾아내듯, 우리 역시 군더더기를 걷어낼 때 비로소 이상적인 자아인 '일자(The One)'에 도달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빅데이터의 함정과 데이터 전처리(Data Cleaning)의 미학
현대 정보학의 관점에서 플로티노스의 통찰은 매우 예리하다. 우리는 지금 '빅데이터'라는 거대한 원석 더미에 파묻혀 살고 있다. 사람들은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진실에 가까워질 것이라 믿지만, 실제 데이터 과학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데이터 전처리'이다. 즉, 분석에 방해가 되는 노이즈와 중복 데이터를 깎아내는 일이다.
정보학 연구자로서 마주하는 지식의 층위도 이와 같다. 훌륭한 연구는 수만 편의 논문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질문과 상관없는 여분의 가설들을 조각칼로 냉정하게 쳐내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플로티노스가 말한 '일자'가 우주의 정점이라면, 정보학에서의 '일자'는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추출해 낸 단 하나의 정제된 인사이트이다. 결국 배움이란 내 머릿속의 데이터 용량을 늘리는 작업이 아니라, 본질을 가리는 '정보의 지방'을 제거하는 혹독한 다이어트이다.
큐레이션 알고리즘: 조각가인가 아니면 조각난 시야인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추천 알고리즘은 플로티노스의 조각 도구를 대신 휘두르는 대리인이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관심 없어 할 만한 정보들을 깎아내고 '취향'이라는 조각상을 우리 앞에 내놓는다. 하지만 이 조각은 위험하다. 플로티노스가 말한 조각은 스스로의 사유를 통해 본질을 찾아가는 능동적인 행위인 반면, 알고리즘의 조각은 우리의 시야를 좁은 감옥에 가두는 수동적인 필터링이기 때문이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우리는 스스로 조각가가 되는 대신 알고리즘이라는 자동 조각기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결과물은 매끄럽고 보기 좋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이상적인 자아'가 아니라 '수익성이 높은 소비자'의 형상일 뿐이다. 진정한 배움은 알고리즘이 깎아준 조각상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각 도구를 들고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여분인지를 치열하게 구분해 내는 감각을 기르는 데 있다.
관찰 : 서점의 베스트셀러와 여분의 지식
서점에 가면 "한 권으로 끝내는 OO" 같은 책들이 즐비하다. 사람들은 그런 책을 사며 지식의 지름길을 찾았다고 기뻐하지만, 플로티노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남이 깎다 남은 부스러기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식의 본질은 요약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방대한 텍스트 속에서 스스로 '쓸모없는 것'을 골라내 버리는 그 고통스러운 노동 속에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현대인은 지식의 배낭에 온갖 잡동사니를 집어넣어 어깨가 빠질 지경인 여행자와 같다. 플로티노스는 우리에게 그 배낭을 비우고 가벼운 몸으로 정상을 향해 뛰라고 조언한다. 사랑이 '나에게 없는 것을 찾는 일'이라는 낡은 고정관념을 깎아내고 '완벽함에 대한 이끌림'이라는 본질을 발견할 때의 해방감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여행자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우주를 지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 안의 불필요한 지식, 편견, 그리고 낡은 관념들을 조각칼로 하나씩 걷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깎아내고 남은 마지막 한 조각이 바로 세상의 정점이자 본질이다.
오늘 당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정보들 중, 내일이면 사라질 '여분의 조각'은 무엇인가. 그것들을 과감히 쳐낼 수 있을 때, 당신은 비로소 세상이라는 거대한 대리석 안에서 당신만의 빛나는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04세 과학자 구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맛없는 칵테일'이라는 농담으로 엄숙주의라는 여분의 감정을 깎아냈듯, 우리 역시 매일의 배움을 통해 조금 더 가볍고 단단한 본질에 다가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