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스크롤의 산책자

벤야민의 아케이드와 디지털 미로의 방랑

by 김경훈

19세기 파리의 좁은 골목을 가득 채웠던 화려한 쇼윈도, 즉 '파사주'를 걷던 발터 벤야민은 그곳에서 자본주의의 욕망과 시대의 꿈을 읽어냈다. 목적 없이 거리를 거니는 '산책자(Flâneur)'는 단순한 한량이나 구경꾼이 아니다. 그들은 쏟아지는 시각 정보 속에서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는 관찰자이다. 오늘날 우리는 파리의 돌바닥 대신 스마트폰의 매끄러운 액정 위를 엄지손가락으로 '산책'하고 있다. 벤야민이 되살아나 현대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쇼츠를 본다면, 그는 이를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끝이 없는 '디지털 아케이드'라고 정의했을 것이다.



쇼윈도에서 알고리즘으로: 욕망의 전시 방식


파사주의 핵심은 '전시'이다. 상인들은 행인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가장 화려하고 매혹적인 상품을 전면에 내세운다. 현대의 SNS 역시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다만 19세기의 쇼윈도가 모든 행인에게 똑같은 풍경을 보여주었다면, 현대의 알고리즘은 개개인의 은밀한 욕망을 분석해 맞춤형 쇼윈도를 실시간으로 생성한다.


문헌정보학의 정보 검색(Information Retrieval)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이용자의 과거 행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고도의 필터링 결과이다. 우리는 무작위로 거리를 걷는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알고리즘이라는 정교한 큐레이터가 설계한 생각의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셈이다. 벤야민이 말한 파사주가 시대의 집단적인 꿈을 투영했다면, 현재의 디지털 파사주는 파편화된 개인의 욕망을 증폭시키며 우리를 그 안에 가두고 있다.



세렌디피티의 상실과 정보의 가두리 양식


벤야민이 극찬했던 산책자의 미덕은 '뜻밖의 발견', 즉 세렌디피티(Serendipity)에 있다. 골목을 꺾었을 때 마주치는 낯선 풍경과 예상치 못한 지식과의 조우는 지적 가소성을 확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능형 정보 시스템은 이러한 의외성을 '노이즈'로 간주하여 제거한다.


정보학의 트렌드 중 하나인 '필터 버블(Filter Bubble)'은 현대판 파사주의 가장 큰 부작용이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정보만을 계속해서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안락한 정보의 요새 안에 가둔다. 산책자가 길을 잃으며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던 즐거움은 사라지고, 오직 확인 편향만이 강화되는 구조적 정체가 일어난다. 우리가 매일 빠져나가는 온라인 아케이드가 사실은 막다른 길로 연결된 미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데이터 슬러지 속에서 진주 찾기


현대의 산책자들은 엄청난 양의 '디지털 슬러지' 사이를 헤엄치고 있다. 19세기 파리의 파사주에 먼지와 소음이 가득했듯이 우리의 타임라인은 광고와 자극적인 가짜 정보로 얼룩져 있다. 하지만 벤야민은 그 지저분하고 사소한 것들 속에서 역사의 본질을 찾아냈다.


진정한 디지털 리터러시는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텍스트의 바다 속에서 나만의 관점으로 유의미한 맥락을 낚아채는 행위이다. 104세 과학자 구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주체적인 관찰을 멈추지 않았듯, 우리 역시 스마트폰 화면이라는 좁은 창을 통해 세상을 보되, 그 너머의 거대한 서사를 읽어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지나가는 길은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텍스트와 시선들은 우리의 자아를 빚어내는 중요한 재료가 된다. 벤야민의 파사주론은 우리에게 '스마트하게 걷는 법'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오늘 당신의 엄지손가락이 머물렀던 그 수많은 포스팅과 짧은 영상들 중에서, 진정으로 당신의 영혼을 자극했던 단 하나의 문장은 무엇인가. 알고리즘의 친절한 배려를 잠시 거부하고, 낯선 정보의 골목길로 기꺼이 발을 들이는 용기야말로 이 디지털 아케이드 시대를 우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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