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가.
이 오래된 질문 앞에서 현대 사회는 하이에크와 롤즈라는 두 철학자를 세워두고 있다.
이들은 특히 빈부 격차나 기회 불평등 같은 사회의 부조리 문제를 두고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두 철학자의 사상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모습을 알려주는 서로 다른 방향의 나침반과 같다.
여기 똑같은 재능을 가진 쌍둥이 개발자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한 명은 비장애인이고 다른 한 명은 시각장애인이다.
이들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코딩 대회에 참가하려 한다.
하지만 대회의 자료와 플랫폼이 오직 시각 정보로만 제공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운명은 전혀 다르게 펼쳐진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인 하이에크는 이 상황을 하나의 공정한 게임으로 본다.
대회의 규칙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었으며 특정한 개인을 차별하지 않았다.
비장애인 형제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반면 시각장애인 형제는 처음부터 게임에 제대로 참여조차 하지 못한다.
하이에크의 의무론적 관점에서는 과정이 공정했기 때문에 이 비극적 결과를 불의로 보지 않는다.
그에게 이 상황은 단지 운이 나빴던 결과일 뿐이다.
하지만 롤즈는 우리를 원초적 입장이라는 특별한 사고실험의 무대로 초대한다.
당신이 이 코딩 대회의 주최자라고 상상해 보자.
잠시 기억을 잃어 자신이 비장애인 형제가 될지 시각장애인 형제가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롤즈는 이를 무지의 베일이라고 부른다.
당신은 이 무지의 베일 뒤에서 어떤 규칙을 설계할 것인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면 누구나 자신이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다.
자신이 시각장애인 형제가 되어 대회에서 완전히 배제될 위험을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모두가 접근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인 최소수혜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롤즈의 정의 원칙이다.
정보 접근성을 연구하는 학자의 관점에서 롤즈의 이러한 목적론적 사고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철학적 핵심과도 같다.
정보 격차를 해소하려는 모든 노력은 우리가 언제든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공감과 연대의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기술을 개발하고 제도를 설계할 때 이 무지의 베일을 쓰고 접근성을 고민하는 것이 바로 정의로운 정보 사회를 향한 첫걸음이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하이에크의 관점처럼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발생하는 불평등한 결과를 공정한 규칙 아래의 정당한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롤즈의 제안처럼 우리 모두가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안전망을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
정의로운 사회란 단지 공정한 심판자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사회가 아니다.
모든 구성원이 게임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기꺼이 규칙을 다시 쓸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가진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