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에서 터지는 고소한 왈츠 : 닭고기 참깨 비빔라면

by 김경훈

라면사리 2개

닭가슴살통조림 1캔

오이 1개

토마토·노랑 파프리카 1/2개씩

참깨소스(깨소금·설탕·올리고당·식초·고추기름·포도씨유 2큰술씩

참기름·다진 마늘 1큰술씩

간장 4큰술



"오늘 저녁은 라면 어때?"

내 제안에 보보가 잠시 침묵하더니,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냥 라면 말고, 오늘은 좀 '우아한' 라면을 먹자. 뜨거운 거 말고 시원하고 고소한 걸로."


보보의 요리사전에서 '그냥'이란 없다. 그녀가 꺼낸 재료들은 식탁 위에서 경쾌한 소리를 낸다. 라면사리 2개, 닭가슴살 통조림 1캔, 그리고 오이, 토마토, 노랑 파프리카.

"오늘은 칼질 좀 도와줄래? 채소들이 바삭바삭 노래를 부르게 해줘."



[대체 텍스트 : 시각 없는 사진 1 - 색깔 있는 소리들]

소리: 도마 위에서 오이가 썰릴 때 나는 청량한 '삭, 삭, 삭' 소리. 그보다 조금 더 단단한 파프리카가 칼날을 받아내며 내는 '토톡, 토톡' 끊어지는 리듬.

촉각: 손끝에 닿는 오이의 오돌토돌한 돌기와, 파프리카의 매끄럽고 단단한 껍질의 대조적인 감촉.

냄새: 칼이 지나간 자리마다 피어오르는 오이의 풋풋한 향과 파프리카의 달큰한 채소 냄새.



재료 손질의 하이라이트는 닭가슴살이다. 통조림 캔 따는 소리가 '칙-' 하고 나자마자 거실에 있던 탱고가 부리나케 달려온다.

"탱고야, 아직 아니야. 이건 한 번 데쳐야 해."

보보가 끓는 물에 통조림 닭가슴살을 쏟아붓는다.

"팁 하나! 통조림 닭은 이렇게 끓는 물에 한 번 데쳐주면 살균도 되고, 기름기도 빠져서 훨씬 담백해져."

보보의 설명대로 데쳐낸 닭고기를 건져내어 결대로 잘게 찢는다. 따뜻하고 포슬포슬한 살코기의 감촉이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이제 면을 삶을 차례. 끓는 물에 라면사리를 넣고 기다린다. 하지만 오늘의 핵심은 '타이밍'과 '온도'다.

"지금이야! 얼음물 준비해!"

잘 익은 면을 체에 밭쳐 건져내자마자, 미리 준비해 둔 얼음물에 담근다.



[대체 텍스트 : 시각 없는 사진 2 - 냉정과 열정 사이]

촉각: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던 면발이 차가운 얼음물에 닿는 순간, 손끝에서 급격하게 수축하며 탱글탱글해지는 탄력의 변화.

소리: 물기를 털어내기 위해 체를 탁탁 칠 때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얼음이 그릇에 부딪히는 '달그락' 소리.



이제 이 요리의 영혼, 참깨 소스를 만들 차례다.

큰 볼에 깨소금, 설탕, 올리고당, 식초, 고추기름, 포도씨유를 각각 2큰술씩 넣는다. 여기에 참기름과 다진 마늘 1큰술씩, 그리고 간을 잡아줄 간장 4큰술을 더한다.


거품기로 소스를 섞을 때마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참깨의 고소함, 식초의 시큼함, 그리고 고추기름의 매콤한 향이 섞이며 침샘을 자극한다.

"냄새만 맡아도 벌써 맛있다."

내 말에 보보가 웃으며 소스 볼에 면과 준비한 채소, 닭고기를 몽땅 쏟아붓는다.


"자, 이제 비벼볼까? 손맛으로!"

위생장갑을 끼고 재료들을 버무린다. 차가운 면발 사이사이로 아삭한 채소와 부드러운 닭고기가 섞인다. 소스가 재료에 골고루 코팅되면서 나는 '질척'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접시에 소복하게 담아내고 식탁에 앉는다.

"잘 먹겠습니다!"


후루룩 면을 빨아들인다.

차가운 면발은 쫄깃함을 넘어 꼬들꼬들하기까지 하다. 씹을 때마다 참깨 소스의 진한 고소함이 먼저 퍼지고, 뒤이어 고추기름의 알싸한 매콤함이 혀끝을 치고 올라온다.

그 순간, 오이와 파프리카가 '아삭!' 하고 씹히며 시원한 채즙을 터뜨린다. 중간중간 씹히는 닭고기는 담백하게 맛의 중심을 잡아준다. 토마토의 상큼함은 마지막 킥이다.


"어때? 그냥 라면이랑은 차원이 다르지?"

보보가 묻는다. 나는 입안 가득 오물거리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이건 라면이 아니라, 잘 차려진 샐러드 파스타 요리다.


식탁 아래서 탱고가 내 발등에 턱을 올리고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아까 데칠 때 양념 없이 따로 빼둔 닭고기 한 조각을 몰래 건네준다. 탱고의 꼬리가 바닥을 쓰는 소리가 경쾌하다.


뜨거운 국물 없이도 속이 든든하고, 입안 가득 고소한 봄이 찾아온 기분.

오늘의 교훈. 라면은 불이 아니라, 얼음과 소스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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