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니다 여름방학, 상태 S급

by 김경훈

알림음이 울렸다. 경쾌한 ‘당근!’ 소리가 옥탑방의 정적을 깼다. 민재는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주황색 아이콘의 ‘기억 마켓’ 앱에 새 채팅이 떠 있었다.


[구매희망자: 혹시 네고 가능한가요? 쿨거래 하면 5만 원만 깎아주세요.]


민재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올린 매물은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의 환희, 광화문 직관 버전’이었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모르는 사람들과 얼싸안았던 그 뜨거운 여름밤의 기억. 상태는 S급이었다. 색 바램 없음, 음질 깨끗함, 도파민 수치 최상.


“죄송합니다. 희소성 있는 매물이라 네고는 어렵습니다.”


민재는 건조하게 답장을 보냈다. 월세가 밀려 있었다. 지난달에는 ‘첫사랑과의 첫 키스’를 팔아서 가스비를 냈다. 그 기억을 팔고 난 뒤, 길에서 우연히 첫사랑을 마주쳤을 때 민재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아, 내가 쟤랑 사귀었었지’라는 팩트만이 건조한 텍스트처럼 머릿속에 떠올랐을 뿐이다. 심장이 뛰지도, 손이 떨리지도 않았다.


그것은 꽤 편리한 일이기도 했다. 감정 소모 없이 인간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점점 텅 빈 깡통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구매희망자: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메모리 클리닉’ 앞에서 뵐 수 있을까요?]


거래가 성사되었다. 민재는 외투를 챙겨 입었다.


신림동에 위치한 ‘메모리 클리닉’은 허름한 상가 2층에 있었다. 간판에는 ‘기억 추출 및 이식 전문’이라는 문구가 네온사인으로 번쩍였다. 대기실에는 기억을 팔러 온 가난한 청년들과, 기억을 사러 온 부유한 노인들이 섞여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구매자는 4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고급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눈밑이 퀭했다.


“우울증이 심해서요.” 남자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약물치료보다는 ‘타인의 활력’을 이식받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월드컵 때 기억이 그렇게 강렬하다면서요?”


“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흥분감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민재는 쇼호스트처럼 매물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시술 의자에 누웠다. 간호사가 민재의 관자놀이에 차가운 전극을 붙였다.


“추출 시작합니다. 따끔해요.”


윙, 하는 기계음과 함께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마치 필름을 강제로 잡아 뽑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뇌를 훑고 지나갔다. 잠시 후, ‘추출 완료’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민재는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계좌에 입금 알림이 떴다. 150만 원. 한 달 치 월세와 생활비였다.


그는 병원을 나섰다. 거리에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평가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민재는 포스터를 바라보았다. 붉은 유니폼. 함성 지르는 관중들. 머릿속으로는 그게 ‘축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가슴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치 남의 나라 역사책을 읽는 듯한 무미건조함뿐이었다. 그 뜨거웠던 여름밤은 이제 그의 것이 아니었다.


며칠 뒤, 민재는 다시 앱을 켰다. 돈은 금방 사라졌다. 배달 음식과 술값으로 탕진했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더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지만, 맛을 느꼈던 기억들마저 팔아버린 탓에 미각조차 둔해져 있었다.


‘판매 내역’ 탭을 눌렀다. 그동안 판 목록이 쭉 떴다.


[판매 완료]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 100점 받은 성취감 (3만 원)

[판매 완료] 군대 전역하던 날의 해방감 (20만 원)

[판매 완료] 돌아가신 할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 맛 (50만 원)


이제 남은 것은 별로 없었다. 고통스럽거나 지루한 기억들은 팔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행복, 성취, 쾌락만을 원했다. 민재의 뇌 속에 남은 건 ‘취업 실패의 좌절’, ‘이별의 아픔’, ‘가난의 고단함’ 같은 악성 재고들뿐이었다.


그때, ‘삽니다’ 게시판에 새 글이 올라왔다.


[급구] 어머니에 대한 기억 삽니다. 종류 불문. 가격 선제시.


작성자는 아이디가 ‘고아’였다. 아마도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거나, 사고로 기억을 잃은 사람일 것이다.


민재는 잠시 망설였다. 그에게는 딱 하나, 팔지 않고 아껴둔 S급 매물이 있었다.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빗소리를 들으며 부침개를 부쳐주던 기억. 고소한 기름 냄새와 어머니의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 따뜻한 아랫목의 온도. 그것은 민재가 삶을 버티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였다.


하지만 당장 다음 달 카드값이 문제였다.


민재는 채팅창을 열었다.


“어머니가 비 오는 날 부침개 부쳐주던 기억 있어요. 상태 최상입니다.”

[구매자: 300만 원 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능할까요?]


300만 원. 민재의 손가락이 떨렸다. 이 기억을 팔면, 그는 어머니의 얼굴은 기억하겠지만 그 따뜻함은 잊게 된다. 어머니는 그저 ‘나를 낳아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데이터로만 남을 것이다.


“...네, 가능합니다.”


거래는 신속했다. 이번에는 직거래가 아니라 비대면 추출 키트를 이용했다. 헬멧을 쓰고 앱을 연동하면 기억이 데이터로 변환되어 전송되는 방식이었다.


전송 게이지가 차올랐다. 80%, 90%...


민재는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냄새를 맡으려 애썼다. 빗소리, 기름 냄새, 엄마의 냄새...


[전송 완료]


화면이 바뀌고 입금 알림이 떴다.


민재는 헬멧을 벗었다. 창밖에는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이 창문을 때렸다.


그는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비가 오네. 축축하고 꿉꿉하다. 그게 다였다. 코끝을 맴돌던 고소한 기름 냄새도, 가슴 한구석을 데워주던 온기도 사라졌다. 비는 그저 대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되어 떨어지는 기상 현상일 뿐이었다.


그는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300만 원이 생겼으니 이제 맛있는 걸 사 먹을 수 있다. 그는 배달 앱을 켰다. 전집을 검색했다. 모둠전 세트, 2만 5천 원. 주문하기 버튼을 눌렀다.


30분 뒤, 배달 음식이 도착했다.


민재는 포장을 뜯고 따뜻한 부침개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기름기가 입안에 돌았다. 그는 씹었다. 그리고 삼켰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밀가루 반죽과 채소의 식감은 느껴졌지만, 그게 왜 맛있는지, 왜 사람들이 비 오는 날 이걸 찾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뇌의 ‘행복 회로’에서 해당 부분이 도려내진 탓이었다.


그는 먹다 남은 전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리고 다시 ‘기억 마켓’ 앱을 켰다. 통장에는 돈이 가득했지만, 그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허기였다.


스크롤을 내리던 민재의 눈이 한 판매 글에 멈췄다.


[판매] 우울증, 무기력증, 절망감 팝니다. (무료 나눔)


작성자는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헐값에라도 팔고 싶었지만, 조회수는 0이었다. 아무도 남의 불행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세상은 철저하게 행복만을 소비했다.


민재는 휴대폰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빗소리가 소음처럼 고막을 때렸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흐릿한 증명사진 같은 이미지 한 장만이 떠오를 뿐이었다. 표정도, 온기도 없는 정지 화면.


그는 자신이 기억을 판 게 아니라, 영혼을 할부로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환불은 불가능했다. 이 거래에는 ‘단순 변심 반품 불가’ 조항이 걸려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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