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대화 구역

침묵의 견적서

by 김경훈

1. 100원짜리 아침 인사


도시는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비쌌다'.

오전 7시의 지하철 2호선.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전동차 안에서는 옷깃이 스치는 '바스락' 소리와 거친 숨소리, 그리고 발을 끄는 소음만이 가득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주인공 '케(K)'는 목에 차가운 금속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정부가 지급한 '스피치 미터기(Speech Meter)'였다. 이 족쇄는 성대의 진동을 감지해 요금을 매겼다. 기본요금은 음절당 500원. 욕설이나 비속어는 할증이 붙어 2,000원이었다.


'딩동.'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정거장은 강남, 강남입니다. 현재 이 구역은 '골드 토크 존'으로, 음절당 요금이 30% 인상됩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꾹 다물었다. 옆에 서 있던 한 노인이 실수로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러자 노인의 목걸이에서 '지잉-' 하는 진동과 함께 빨간 불빛이 반짝였다.

[차감: 500원. 잔액이 부족합니다.]


노인은 사색이 되어 입을 틀어막았다. 기침 한 번에 컵라면 하나가 날아갔다. 이곳은 침묵이 금(Gold)이 아니라, 생존인 구역이었다.



2. 소음의 특권


케는 고급 레스토랑 '바벨'에 도착했다. 이곳은 달랐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와인잔 부딪치는 '챙-'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한 소음이 고막을 때렸다. 스테이크 굽는 냄새보다 더 진한 것은 '돈 냄새'였다.


"하하하! 그래서 내가 말이야, 어제 골프를 쳤는데!"

"어머, 정말? 세상에, 너무 웃겨!"


테이블마다 앉은 VIP들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들의 목걸이는 쉴 새 없이 파란 불빛을 뿜어내며 요금을 차감하고 있었다.

[차감: 50,000원], [차감: 120,000원]...


저들은 대화의 내용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는 이만큼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여도 파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수다(Chatter)는 가장 비싼 보석이자 권력이었다. 케는 주방 구석에서 묵묵히 접시를 닦았다. 그가 오늘 벌어야 할 일당은 8만 원. 고작 160글자어치였다.



3. 3년 만의 고백


퇴근 후, 케는 허름한 포장마차로 향했다. 그곳엔 그의 연인 '엘(L)'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묵 국물 끓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졌지만, 포장마차 안은 절간처럼 고요했다. 손님들은 수화로 대화하거나,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려 의사표시를 했다.


케는 주머니 속을 만지작거렸다. 지난 3년간, 먹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모은 '대화 선불카드'가 손끝에 닿았다. 잔액은 30만 원.

오늘을 위해 준비한 한 마디를 할 시간이었다.


케는 엘의 눈을 바라보았다. 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목걸이가 목을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사랑해. 우리... 결혼하자."


[결제: 15,000원. 잔액이 285,000원 남았습니다.]


기계적인 결제음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찢고 나왔다. 하지만 케는 상관없었다. 드디어 말했다. 3년을 참아온 진심이었다.

엘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감동한 표정으로 케의 손을 잡았다.



4. Twist


엘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케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래" 혹은 "좋아"라는 짧은 긍정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엘의 목걸이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삐- 삐- 삐-'

[오류: 잔액 부족.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케는 당황했다. 아차, 엘의 형편을 잊고 있었다. 그녀는 지난달 어머니의 병원비를 대느라 대화 요금을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케는 다급하게 자신의 선불카드를 엘의 목걸이에 갖다 댔다. 내 돈으로라도 결제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계음은 냉혹했다.

[시스템 오류: 타인 명의 카드 사용 불가. 본인 인증이 필요합니다.]


엘은 울면서 입을 뻥긋거렸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긍정의 대답을 하고 싶어도, 그녀에겐 '예(Yes)'라고 말할 자본이 없었다.

그때, 포장마차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긴급 속보입니다. 정부는 오늘 자정부터 '사랑', '결혼', '약속' 등 감정 관련 단어를 '사치성 어휘'로 분류하여 특별 소비세를 500% 인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케의 목걸이가 진동했다.

방금 그가 뱉은 "사랑해, 결혼하자"에 대한 추가 과금 알림이었다.


[추가 결제: 285,000원. 잔액이 0원입니다.]


순식간에 3년 치 저축이 증발했다.

케와 엘은 빈털터리가 된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들은 "사랑해"는커녕, "헤어지자"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완벽한 침묵의 연인이 되었다.


포장마차 밖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두둑, 후두둑'.

그 빗소리만이 공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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