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안약을 넣고 심호흡을 했다. 장례식장 입구의 전광판에는 ‘고 김철수 님’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수현은 고인의 얼굴도, 목소리도 몰랐다. 그녀가 아는 것은 의뢰인인 고인의 장남이 보낸 ‘오열 옵션 C’ 주문서뿐이었다.
“들어가겠습니다.”
수현은 검은 상복의 옷매무새를 다듬고 빈소로 들어갔다. 그녀는 영정 사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3초 뒤, 정확한 타이밍에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아버지! 이렇게 가시면 어떡해요!”
그녀의 통곡 소리는 적막했던 빈소를 가득 채웠다. 육개장을 먹던 조문객들이 수군거렸다. “저 집 딸인가 봐.”, “효녀네, 효녀야.” 사실 고인의 딸은 미국 유학 중이라 오지 못했다. 수현은 그 딸의 대역이었다.
그녀가 착용한 ‘햅틱 수트’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의뢰인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감정 강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진동이 강해지자 수현은 바닥을 치며 더 서럽게 울부짖었다. 그녀의 눈물 한 방울, 비명 한 마디는 모두 성과급으로 환산되었다.
30분간의 ‘오열 서비스’가 끝나고, 수현은 화장실 칸에 들어가 땀을 닦았다. 입금 알림이 떴다. 50만 원. 남의 부모를 위해 울어준 대가였다.
수현은 ‘감정 대행사’의 에이스였다. 바쁜 현대인들은 감정 소모를 비효율적인 일로 여겼다. 장례식, 이별 통보, 사과, 프러포즈… 귀찮고 에너지 쓰이는 일들은 모두 수현 같은 전문가에게 외주를 주었다.
사무실로 복귀하자 팀장이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VVIP 건이야. 이별 대행.”
“이별은 좀 피곤한데. 뺨 맞을 수도 있잖아요.” 수현이 건조하게 대꾸했다.
“수당이 세 배야. 그리고 의뢰인이 요구한 컨셉이 ‘애절한 비련의 여주인공’이라서 그냥 울기만 하면 돼. 상대방이 붙잡아도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나오면 끝.”
수현은 봉투를 열어 대상자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강민준. 32세.
장소: 홍대 앞 ‘카페 모노’.
수현의 손이 멈칫했다. 민준. 5년 전, 그녀가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사귀었던 연인의 이름이었다. 사진 속 남자는 조금 늙었지만, 여전히 그 눈매를 하고 있었다. 가난해서 헤어졌던, 수현이 유일하게 ‘진짜’ 눈물을 흘리게 했던 남자.
“할 거야, 말 거야?” 팀장이 재촉했다.
수현은 침을 삼켰다. “할게요.”
약속 장소인 카페는 익숙했다. 민준과 자주 오던 곳이었다. 수현은 의뢰인인 민준의 현재 여자 친구가 보내준 대본을 외웠다. 옷차림과 메이크업은 의뢰인의 스타일대로 화려하게 꾸몄지만, 목소리와 표정은 수현 자신의 것이었다. 어차피 대행사는 ‘철저한 익명성’을 보장하므로, 민준은 그녀가 대행 요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의 진짜 정체는 모를 것이다. 혹은 모른 척해야만 했다.
민준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초조한 듯 물컵을 만지작거렸다.
수현은 맞은편에 앉았다.
“오셨어요?” 민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수현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네. 지은 씨 대신 왔습니다.” 수현은 사무적인 톤으로 말했다.
“지은이는… 끝내 안 오나요?”
“네. 직접 말하기 너무 힘들다고 하셔서요. 제가 대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수현은 대본을 읊기 시작했다.
“민준 씨, 우리 사랑했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어요. 당신 잘못 아니에요. 제가 부족해서 그래요. 부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세요.”
뻔하고 진부한 대사였다. 하지만 수현의 입을 통해 나오는 순간, 그것은 기묘한 진실이 되어 공기를 무겁게 눌렀다. 5년 전, 수현이 민준에게 하지 못하고 도망쳤던 그 말이기도 했으니까.
민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제가… 제가 더 잘하겠다고 전해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하는 사업만 잘 풀리면…”
수현의 수트가 윙윙거렸다. 의뢰인인 지은이 이어폰 너머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단호하게 끊으세요. 질질 짜지 말고.]
수현은 감정을 차단하고 매뉴얼대로 행동했다.
“아니요. 이미 결정은 끝났습니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하셨어요.”
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민준이 수현의 손목을 잡았다.
“잠깐만요.”
수현은 흠칫 놀랐다. 민준의 손은 따뜻했다. 그 온기가 수트를 뚫고 피부에 닿았다.
“저기…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없나요?”
민준이 수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화려한 화장에 가려졌지만, 눈빛은 속일 수 없었나 보다. 수현의 심장이 요동쳤다.
여기서 ‘나야, 수현이야’라고 말한다면? 아니, 그러면 위약금을 물어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민준은 다른 여자의 이별 통보에 매달리고 있는 남자일 뿐이다.
수현은 차갑게 손을 뿌리쳤다.
“착각하셨습니다. 저는 ‘에이전트 402’입니다. 서비스 이용 시간 끝났습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민준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현은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벽에 기대어 섰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입금 알림이 울렸다. 보너스까지 포함된 거액이었다.
그녀는 눈가를 만져보았다. 바싹 말라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너무 많이 운 탓일까. 아니면 이미 감정이라는 자원을 다 팔아버려서 남은 게 없는 걸까. 민준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는데,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편의점에 들어가 인공눈물을 샀다.
눈에 약을 넣자 그제야 투명한 액체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실연당했나 봐.” 누군가 수군거렸다.
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내 눈물이 아니다. 제약회사가 만든 화학 용액일 뿐이다.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업무 일지를 작성했다.
[강민준 건, 처리 완료. 특이사항 없음.]
전송 버튼을 누르자, 오늘치 감정 노동이 끝났다. 그녀는 텅 빈 깡통이 되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내일은 결혼식 하객 대행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내일은 웃어야 했다. 입가에 경련이 일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