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음 복원가

by 김경훈

형석은 진공관 앰프의 예열을 기다리며 담배를 물었다. 2055년의 서울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모든 자동차는 전기 모터로 굴러가 소음이 없었고, 드론 배달부는 허공을 미끄러지듯 날아다녔다. 사람들은 노이즈 캔슬링이 기본 내장된 이어 임플란트를 하고 다녔다.


완벽한 정적. 그것이 이 도시의 자랑이었지만, 형석에게는 숨 막히는 감옥이었다.


을지로 3가 재개발 구역 한구석에 자리 잡은 형석의 가게 간판에는 [아날로그 복원소]라는 글자가 깜빡거렸다. 말이 좋아 복원이지, 사실 그가 하는 일은 ‘훼손’에 가까웠다.


“어서 오세요.”


자동문이 열리고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들어왔다. 옷차림은 세련됐지만, 어깨에는 지울 수 없는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여기가… 소리를 망쳐준다는 곳입니까?” 노신사가 물었다.


“‘풍화’시킨다고 표현하죠.” 형석은 정정했다. “디지털의 날선 부분을 깎아내고, 세월의 때를 입혀 드립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노신사는 품에서 손가락만한 메모리 칩을 꺼냈다.


“제 아내의 목소리입니다. 죽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얼마 전 AI 복원 업체에 맡겨서 고해상도로 되살렸습니다. 그런데……”


노신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형석은 칩을 받아 자신의 콘솔에 연결했다. 재생 버튼을 눌렀다.


“여보, 식사했어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완벽했다. 잡음 하나 없이 깨끗했고, 발음은 아나운서처럼 정확했다. 주파수 대역이 꽉 찬, 기술적 결함이 전혀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게 문제였다.


“너무… 차갑죠?” 형석이 물었다.


노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내 아내 목소리가 맞는데, 내 아내가 아닙니다. 마치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 같아요. 밥 먹었냐고 묻는데, 전혀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아요.”


“당연합니다. 숨소리, 머뭇거림, 침 삼키는 소리가 다 제거됐으니까요. 요즘 기술은 그걸 ‘노이즈’라고 부르며 다 깎아버리거든요. 인간다움은 그 잡음 속에 있는데 말이죠.”


형석은 작업용 장갑을 꼈다.


“얼마나 망가뜨려 드릴까요? LP판 튀는 소리? 아니면 낡은 카세트테이프의 늘어지는 느낌?”


“그냥… 진짜처럼만 해주세요. 내 옆에 있는 것처럼.”


형석은 메인 볼륨을 올리고, 이퀄라이저의 고음역을 깎아냈다. 너무 선명해서 귀를 찌르는 디지털의 날카로움을 뭉툭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라이브러리에서 ‘백색 소음’ 폴더를 열었다.


그는 레이어를 쌓기 시작했다.


첫 번째 레이어는 ‘공기 소리’였다. 방 안의 고유한 울림, 미세한 먼지가 떠다니는 듯한 정적의 소리를 깔았다. 목소리가 붕 떠 있지 않고 공간 안에 안착하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 레이어는 ‘생활 소음’이었다. 형석은 냉장고 모터가 돌아가는 낮은 웅웅거림과, 창밖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를 아주 작게 믹싱했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중요한 작업이 남았다. 형석은 마이크를 켰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그는 파형 편집기를 열어, 아내의 목소리 문장 사이에 아주 짧은 공백들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공백에 자신이 직접 녹음한 소리를 채워 넣었다.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 입술이 떨어질 때 나는 젖은 마찰음. 말하기 전에 아주 잠깐 망설이는 듯한 ‘음…’ 하는 낮은 신음.


작업은 한 시간가량 걸렸다. 형석은 렌더링 된 파일을 재생했다.


치직, 하는 미세한 잡음과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후우…) “여보, 식사… 했어요? (달그락, 그릇 놓는 소리)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완벽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약간 먹먹했고, 배경에는 지저분한 소음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때문에, 스피커가 아니라 바로 옆, 낡은 식탁 건너편에서 아내가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노신사의 눈이 커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


노신사는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그 짧은 문장을 듣고 또 들었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 주름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제야 그 목소리는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이 되었다.


“이제야… 집에 온 것 같군요.”


노신사는 칩을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고 계산을 했다. 꽤 비싼 금액이었지만 그는 가격표를 보지도 않았다.


손님이 떠나고, 형석은 다시 가게의 셔터를 반쯤 내렸다. 밖에서는 최신형 홀로그램 광고판이 번쩍이며 “완벽한 화질, 노이즈 없는 세상”을 선전하고 있었다.


형석은 턴테이블에 낡은 LP 판을 올렸다. 바늘이 튀며 ‘탁, 타닥’ 하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 거칠고 따뜻한 잡음 속에 몸을 맡겼다.


세상은 점점 더 깨끗해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었다. 결핍이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돈을 주고 결핍을 샀다. 형석은 그 아이러니가 꽤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희뿌연 연기가 공기청정기에 빨려 들어가기 전, 잠시나마 허공에 머물며 흐릿한 형상을 만들었다.


완벽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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