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드 런(Void Run)

by 김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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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T 작가님의 '야간 운전'을 SF 스타일로 오마주한 소설입니다.



이스트(East)는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아날로그 계기판의 주황색 불빛을 응시했다. 구형 크루저의 조종석은 좁았고, 진공관 앰프가 예열되면서 나는 미세한 웅웅거림이 졸음을 유발했다. 어머니의 바이오 리젠(Bio-Regen) 치료를 위해 외곽 콜로니를 왕복하는 ‘야간 비행’은 늘 고역이었다.


창밖은 칠흑 같은 우주, 일명 ‘보이드(The Void)’였다. 항법 센서조차 먹통이 되는 이 불안정한 7구역 항로에서 믿을 것이라고는 오직 앞서가는 기체의 플라즈마 추진 후미등뿐이었다. 시야는 극도로 좁았고, 끝없이 반복되는 암흑 속의 붉은 점만 쫓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다.


이스트는 습관처럼 오른쪽 화물 항로를 힐끗 보았다. 거대한 자동화 광물 수송선들이 중력 제어 장치를 낮게 깔고 느릿느릿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고대의 성벽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는 조종간을 당겨 왼쪽 고속 항로로 기체를 밀어 넣었다. 그곳에는 이미 암묵적인 대열이 형성되어 있었다. 칠흑 같은 우주를 항해하는 예닐곱 대의 개인용 소형 크루저들. 그들은 서로 무전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생존 본능으로 뭉친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선두에 선 육중한 구형 ‘센추리온’ 기체가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는 기체들은 선두기가 뿜어내는 푸르스름한 이온 엔진의 궤적에 의지해 항로를 유지했다. 누구 하나 대열을 이탈하지 않았다. 이 항로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은 곧 우주 미아가 된다는 공포를 의미했으니까.


맨 앞에서 어둠을 마주하는 ‘포인트맨(Pointman)’의 부담감은 상당했다. 보이지 않는 소행성 파편을 가장 먼저 감지하고 회피 기동을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룰까, 20분쯤 지나자 선두의 센추리온 기체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엔진 출력이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지친 것이다. 센추리온은 우측 방향 지시등—구식 전구 방식의 투박한 깜빡임—을 켜고는 슬그머니 화물 항로의 수송선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선두의 자리가 비었다.


바로 뒤따르던 날렵한 은색 기체가 잠시 주춤했다. 그는 포인트맨이 될 준비가 안 된 듯했다. 그 찰나의 망설임을 틈타, 세 번째에 있던 개조된 고기동 기체가 부스터를 점화하며 튀어 나갔다.


쿠구궁-


진동이 이스트의 조종석까지 전해졌다. 새로운 리더는 공격적이었다. 대열의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마치 소행성대 레이싱이라도 하듯 아슬아슬한 비행이 이어졌다. 이스트는 아날로그 속도계의 바늘이 위험 수위까지 치솟는 것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피곤했지만, 이 속도감에 뒤처지면 영영 어둠 속에 남겨질 것 같아 필사적으로 스러스트 레버를 밀었다.


그렇게 몇 번의 선두 교체가 이루어졌다. 대열은 뭉쳤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콜로니 중심부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트의 바로 앞 기체가 중간 기착지로 빠져나갔다.


갑자기 이스트의 캐노피 앞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무한한 우주의 심연뿐.


이제 이스트가 포인트맨이었다. 앞서가던 이온 엔진의 불빛은 사라졌다. 그는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을 느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는 후방 센서 모니터를 확인했다. 다섯 개의 에너지 시그니처가 그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그들은 이스트의 판단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졸음은 완전히 달아났다. 이스트는 메인 서치라이트를 최대로 올렸다. 거대한 광선이 앞을 가로막은 어둠을 뚫고 나갔다. 그는 쇄빙선처럼 보이드의 얼어붙은 정적을 깨뜨리며 전진했다.


그가 속도를 높이면 뒤따르는 기체들의 엔진음도 함께 높아졌다. 그가 감속하면 대열 전체가 붉은색 제동 추진 불빛으로 물들었다. 이름 모를 타인들의 길잡이가 되었다는 감각, 그 묘한 연대감이 낡은 가죽 조종간을 쥔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마침내 저 멀리 거대한 인공 구조물, '네오-서울 돔'의 찬란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항로는 넓은 8차선 진입 유도로로 확장되었다.


위험한 구역을 벗어나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대열은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각자의 목적지 도킹 베이를 향해 뿔뿔이 흩어졌다. 이스트의 뒤를 끈질기게 따르던 낡은 화물선 한 대가 그를 추월하며 도킹 유도등을 세 번 깜빡였다.


번쩍, 번쩍, 번쩍.


우주 공간에서의 무언의 인사. '고맙소. 덕분에 무사히 왔소.'


이스트는 돔 내부의 개인 격납고에 기체를 착륙시켰다.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어머니의 동면 포드 상태를 확인한 후, 그는 기체에서 내려 뻐근한 다리를 두드렸다.


그는 습관처럼 기체 뒤편으로 걸어갔다.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주 추진기 노즐과 그 주변을 감싼 붉은색 플라스즈마 방출 렌즈를 손가락으로 쓱 문질렀다. 우주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지만, 강화 유리 커버는 여전히 매끄러웠다.


"잘 보였겠지?"


이스트는 엔진의 열기가 남아있는 금속 외피에 손을 대고 중얼거렸다.


이 광활하고 차가운 우주를 살아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나의 엔진 불빛이 유일한 이정표가 되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렌즈에 묻은 먼지를 소매로 깨끗이 닦아냈다. 다음에 다시 이 어둠 속으로 뛰어들 때, 내 뒤를 따르는 누군가를 위해 이 불빛만큼은 선명하게 빛나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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