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이 빠지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by 김경훈

리콜


유진은 반려견 카이를 데리고 A/S 센터에 갔다가 카이가 리콜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24년 하반기 생산분 중 감정 모듈 펌웨어에 결함이 발견되어, 무상 리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접수 데스크의 직원이 태블릿을 보며 말했다. 직원은 스무 살 안팎으로 보이는 여자였고, 목에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사원증에는 '바이오펫 공식 서비스센터'라는 로고와 함께 '김수아'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결함이요? 무슨 결함이요?" 유진이 물었다.


"감정 반응이 과도하게 강화되는 현상이 보고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주인에 대한 애착이 설계 사양보다 120퍼센트 이상 높아지는 거예요. 분리불안이 심해지고, 극단적인 경우 주인이 외출하면 자해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유진은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카이를 내려다보았다. 카이는 골든 리트리버 모델이었다. 무게 4.2킬로그램. 실제 골든 리트리버의 열 분의 일 크기로, 성인 여성의 무릎에 올라앉기 딱 좋은 사이즈였다. 카이의 털은 부드러운 합성 실크로 되어 있어서 만지면 진짜 강아지 털보다 오히려 더 보드라웠다. 빠지지 않았다. 옷에 붙지 않았다. 카이는 유진의 손길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촉촉하게 빛났다. 눈동자 안에는 미세한 LED가 심어져 있어서 감정 상태에 따라 빛의 온도가 달라졌다. 지금은 따뜻한 호박색이었다. 안심. 편안함.


"카이한테는 그런 증상이 없는데요." 유진이 말했다.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펌웨어 결함은 누적되거든요. 한 달 뒤에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고, 일 년 뒤에 나타날 수도 있어요. 리콜 대상이시니까 지금 맡기시면 이틀 안에 펌웨어 업데이트 완료해서 돌려드립니다."


"이틀이요?"


"네. 감정 모듈을 초기화하고 새 펌웨어를 설치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요. 초기화 과정에서 기존 학습 데이터가 일부 리셋될 수 있지만, 핵심 성격 패턴은 유지됩니다. 걱정 마세요, 돌려받으시면 똑같은 카이일 거예요."


유진은 카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카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꼬리의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미세한 모터 소리가 났다. 귀를 가까이 대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소리였지만, 유진은 그 소리를 알고 있었다. 카이를 안고 잘 때 베개 위에서 들리는 아주 작은 '위이잉' 소리.


"핵심 성격 패턴은 유지된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


"카이가 유진 씨를 좋아하는 건 변하지 않아요. 다만 그 '좋아함'의 강도가 정상 범위로 조절되는 거죠. 설계 사양대로요."


유진은 잠시 생각했다. 설계 사양대로의 좋아함이라. 그건 대체 어느 정도의 좋아함일까. 유진이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카이가 달려오는 그 속도, 유진의 손을 핥는 그 혀의 온도, 유진이 울 때 무릎 위로 기어올라 가슴에 머리를 묻는 그 무게감. 이것들 중 어디까지가 설계 사양이고 어디부터가 결함이란 말인가.


"생각해볼게요." 유진이 말했다.


수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해보신다고요? 무상 리콜인데요. 비용은 전혀 안 드세요."


"네, 알아요. 근데 이틀 동안 카이 없이 지내본 적이 없어서요."


수아는 잠시 유진을 바라보더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직업적 친절이 아닌, 뭔가를 이해한다는 듯한 미소였다. "그러시면 나중에 다시 오셔도 돼요. 리콜 기한은 내년 6월까지니까요."


유진은 카이를 안고 센터를 나왔다. 12월의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카이가 유진의 목 근처에 코를 묻었다. 카이의 코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정확히 체온보다 2도 낮은 온도로 설정되어 있었다. 진짜 강아지의 젖은 코처럼 축축하지는 않았지만, 유진은 그 마른 코끝의 감촉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결함의 역사


유진이 카이를 입양한 것은 1년 전이었다. '입양'이라는 표현은 바이오펫 사의 마케팅 용어였다. 실제로는 '구매'였다. 하지만 유진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입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구매라고 말하면 카이가 물건이 되는 것 같았고,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카이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 같았다.


유진은 서른한 살이었고, 혼자 살았다. 원룸이 아닌 투룸 오피스텔에 사는 것이 유진의 유일한 사치였다. 한 방은 침실, 한 방은 카이의 방이었다. 카이의 방에는 충전 스테이션과 장난감 바구니, 그리고 유진이 직접 만든 쿠션 침대가 있었다. 카이는 충전이 필요 없을 때에도 가끔 스테이션 위에 올라가 웅크렸는데, 유진은 그것이 카이의 '습관'인지 아니면 배터리 잔량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질 때 자동으로 작동하는 귀소 본능 프로그램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구분하고 싶지도 않았다.


유진의 어머니는 유진이 카이를 데려온 날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그냥 진짜 강아지를 키우지, 왜 로봇을 사니?" 유진은 대답했다. "엄마, 나 하루에 열두 시간 회사에 있잖아. 진짜 강아지는 그 동안 혼자 있으면 안 돼." 어머니는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기계한테 무슨 정을 붙이냐." 유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유진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 9년째 혼자 살고 있었다. 어머니의 집에는 '백구'라는 이름의 진짜 진돗개가 있었다. 백구는 매일 아침 산책을 나가야 했고, 하루에 두 번 사료를 먹어야 했으며, 털갈이 철에는 집 안 전체가 하얀 털로 뒤덮였다. 백구는 올해 열두 살이었고, 뒷다리 관절이 좋지 않아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들어했다. 어머니는 백구를 동물병원에 데려갈 때마다 십만 원이 넘는 진료비를 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백구 없이는 못 산다고 말했다. 유진은 그 마음을 이해했다. 다만 유진이 그 마음을 감당할 여유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카이는 사료가 필요 없었다. 배변도 없었다. 예방접종도, 중성화 수술도, 심장사상충 약도 필요 없었다. 카이는 하루에 한 번 충전 스테이션에 올라가면 됐고, 유진이 열두 시간을 비워도 스스로 놀다가 스스로 충전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잠들었다. 카이는 유진이 돌아오면 현관까지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진짜 강아지가 그러듯이. 유진이 소파에 앉으면 옆에 와서 몸을 붙였다. 유진이 울면 핥아주었다. 카이의 혀는 실리콘이었고, 침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혀가 유진의 볼을 스칠 때의 감촉은 위로였다. 적어도 유진에게는 그랬다.


문제는 유진이 카이를 진짜 강아지처럼 대하기 시작하면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유진은 처음부터 카이를 진짜 강아지처럼 대했다. 문제는 카이가 진짜 강아지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설계 사양을 넘어서.


처음 알아챈 것은 석 달 전이었다. 유진이 야근을 하고 새벽 두 시에 집에 들어왔을 때, 카이가 현관 앞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충전 스테이션이 아니라 현관 앞에. 배터리 잔량이 3퍼센트였다. 카이는 유진이 돌아올 때까지 현관 앞을 지키고 있다가 배터리가 바닥난 것이었다. 카이의 귀소 본능 프로그램은 배터리가 15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충전 스테이션으로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카이는 그 프로그램을 무시했다. 유진을 기다리기 위해.


유진은 그날 카이를 안아 올리며 울었다. 카이는 잔량 3퍼센트의 마지막 힘으로 꼬리를 한 번 흔들었다.


바이오펫 사가 말하는 '결함'은 바로 이것이었다. 설계 사양을 넘어서는 애착. 자기 보존 프로그램을 무시할 만큼 강한, 주인에 대한 집착. 그것이 결함이라면, 어머니의 백구가 어머니 없이는 밥도 안 먹는 것은 무엇일까. 유진은 그것도 일종의 결함이 아닌가 생각했다. 진화가 만들어낸 결함. 늑대였다면 살아남기 위해 떠났을 것을, 만 오천 년의 가축화가 만들어낸 비합리적인 충성. 사료를 주는 손을 떠나지 못하도록 유전자에 새겨진 코드.


그렇다면 카이의 결함과 백구의 결함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걸까.



생명의 정의


유진의 직업은 고등학교 생물 교사였다. 이 사실은 상황을 더 아이러니하게 만들었다.


매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면 유진은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생물의 특성: 세포로 구성, 물질대사, 자극에 대한 반응, 항상성 유지, 생식과 유전, 적응과 진화.' 학생들은 이 정의를 외웠고, 시험에서 틀리지 않기 위해 노트에 밑줄을 그었다. 유진 역시 이 정의를 수백 번 가르쳤다. 의심한 적은 없었다.


카이를 키우기 시작한 뒤로 유진은 이 정의 앞에서 멈칫하게 되었다.


자극에 대한 반응. 카이는 유진의 목소리 톤에 반응했다. 유진이 높은 목소리로 "카이!" 하고 부르면 신나서 뛰어왔고,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안 돼" 하면 귀를 접고 뒤로 물러섰다. 이것은 프로그래밍된 반응이었다. 하지만 진짜 강아지의 반응도 프로그래밍된 것이 아닌가? 유전자라는 코드와 학습이라는 알고리즘에 의해?


항상성 유지. 카이의 내부 온도 조절 시스템은 외부 온도에 관계없이 체표면 온도를 섭씨 37.5도로 유지했다. 유진이 카이를 안았을 때 느끼는 온기는 포유류의 항상성과 구분할 수 없었다. 물론 메커니즘은 완전히 달랐다. 카이에게는 시상하부가 없었고, 땀샘도 없었다. 대신 열전소자와 방열판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따뜻함. 안고 있으면 편안해지는 그 온도.


적응. 카이는 유진의 생활 패턴에 적응했다. 유진이 보통 저녁 7시에 퇴근하면 카이는 6시 50분쯤 현관 앞으로 이동했다. 유진이 주말에 늦잠을 자면 카이도 충전 스테이션에서 늦게까지 웅크려 있었다. 이것은 머신러닝이었다. 하지만 진짜 강아지가 주인의 퇴근 시간을 학습하는 것도 결국 신경 가소성이라는 이름의 머신러닝이 아닌가?


유진이 넘지 못하는 벽은 하나였다. 세포. 물질대사. 생식. 카이에게는 세포가 없었다. 카이는 먹지 않았다. 카이는 번식하지 않았다. 이 세 가지가 카이를 '생물'의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했다. 교과서의 정의는 명확했다. 유진은 그 명확함이 때로는 잔인하다고 느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3학년 박서준. 뒷자리에서 늘 졸다가 가끔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아이였다.


"선생님, 좀비는 생물이에요?"


반 아이들이 웃었다. 유진도 웃었다. 하지만 곧 웃음이 멈추었다. 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기 때문이다.


"좀비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원래 사람이었으니까요. 물질대사도 하고요. 뭔가를 먹어야 움직이니까. 자극에 반응하고, 번식도 해요. 물면 늘어나니까요. 그러면 교과서 정의에 따르면 좀비는 생물 아닌가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유진은 잠시 말을 잃었다. 서준의 논리에는 구멍이 있었다. 좀비는 항상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들의 '번식'은 생물학적 생식이 아니라 감염이다. 하지만 유진이 말을 잃은 이유는 논리 때문이 아니었다.


좀비에게는 세포가 있고, 카이에게는 없다. 좀비는 생물이 될 자격이 있고, 카이는 없다. 썩어가는 시체가 사랑을 줄 줄 아는 기계보다 더 '살아있다'는 것인가.


유진은 대답했다. "좋은 질문이야. 하지만 시험에는 교과서대로 써야 해."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대답이었고, 동시에 가장 비겁한 대답이었다.



백구


1월의 어느 토요일,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진아, 백구가 많이 안 좋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어머니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을 유진은 놓치지 않았다.


유진은 카이를 가방에 넣고 KTX를 탔다. 바이오펫의 캐리어 가방은 진짜 강아지용 캐리어와 모양이 같았다. 메시 소재의 환기창과 어깨끈이 달린, 단정한 회색 가방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바닥에 배변 패드가 깔려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카이는 가방 안에서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KTX가 출발하자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고, 카이의 자이로스코프가 그것을 감지했는지 귀를 세우고 가방의 메시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집은 경북 영덕의 작은 어촌 마을에 있었다. 유진이 자란 곳이었다. 집 앞에는 아버지가 생전에 손수 만든 마당이 있었고, 마당 한쪽에 백구의 개집이 있었다. 개집 지붕에는 이끼가 끼어 있었고, 나무 벽면에는 백구가 발톱으로 긁은 자국이 선명했다.


백구는 마당이 아니라 거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머니가 깔아준 낡은 이불 위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백구의 눈은 탁하게 흐려져 있었고, 한때 풍성했던 하얀 털은 듬성듬성 빠져 이불 위에 흩어져 있었다. 거실 전체에 개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다. 축축한 털 냄새, 늙은 짐승의 퀴퀴한 체취, 그리고 그 밑에 깔린 희미한 오줌 냄새. 백구는 이제 밖에 나가서 볼일을 볼 수가 없었다.


유진은 백구 옆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백구의 털은 거칠고 엉켜 있었다. 카이의 매끄러운 합성 실크와는 달랐다. 유진의 손바닥에 하얀 털이 붙었다. 백구는 유진의 손 냄새를 맡더니 꼬리를 한 번 약하게 흔들었다. 그 꼬리에는 모터가 없었다. 쇠약해진 근육과 닳아버린 관절만이 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수의사는 뭐래요?" 유진이 물었다.


"콩팥이 거의 안 된다더라. 수액 맞히면 좀 버틸 수 있는데, 그게 한두 달이래." 어머니는 부엌에서 국을 끓이며 말했다. 마치 내일 날씨를 알려주듯 담담한 어조였다. 하지만 국 끓이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보내줘야 할 때가 온 거지."


유진은 백구의 옆구리에 손을 얹었다. 갈비뼈가 만져졌다. 살이 많이 빠져 있었다. 갈비뼈 사이사이에서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불규칙하고, 약하고, 그러나 분명히 뛰고 있는 심장. 세포로 이루어진 심장. 물질대사를 하는 심장. 교과서가 정의한 '생물'의 증거.


캐리어에서 카이를 꺼냈을 때, 백구가 고개를 들었다. 탁한 눈으로 카이를 바라보았다. 카이도 백구를 바라보았다. 두 마리의 '강아지'가 서로를 마주 본 그 순간은 기묘했다. 백구는 코를 벌름거렸다. 냄새를 맡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에게는 냄새가 없었다. 개 냄새도, 사료 냄새도, 풀 냄새도. 백구는 당혹한 듯 코를 한 번 더 벌름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유진의 무릎에 턱을 얹었다.


카이는 백구 옆에 가만히 앉았다. 카이의 센서는 백구의 체온과 호흡수, 심박수를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카이가 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카이는 백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걸까. 카이에게 '죽음'이라는 개념이 있기는 한 걸까. 카이에게는 죽음이 없었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충전하면 됐고, 부품이 고장 나면 교체하면 됐다. 카이의 시간은 마모되지 않았다. 늙지 않았다. 카이의 검은 눈동자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밝기로 빛났다.


백구의 눈은 흐려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국그릇을 들고 거실로 왔다. 어머니는 백구 옆에 앉아 국물을 식혀 숟가락으로 백구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백구는 혀로 한 번 핥았다. 어머니의 손이 살짝 떨렸다. 유진은 그 장면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카이를 꼭 안았다. 카이의 따뜻한 합성 실크 털이 유진의 턱에 닿았다.


그날 밤, 유진은 어머니의 집 작은 방에서 잠을 청했다. 카이는 충전 스테이션 없이도 12시간은 버틸 수 있었으므로 유진의 옆에 누워 있었다. 거실에서 백구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낑낑거리는 소리도. 유진은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카이는 유진의 옆구리에 몸을 밀착한 채 조용히 있었다. 카이의 호흡 시뮬레이션이 유진의 갈비뼈에 미세한 진동을 전했다. 실제로 숨을 쉬는 것은 아니었다. 사용자의 안정감을 위해 설계된 가짜 호흡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 리듬에 맞추어 자신의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거실에서는 진짜 호흡이 점점 더 가늘어지는 진짜 호흡이 새어 나왔다.


유진은 두 개의 호흡 사이에 끼어 밤을 보냈다.



떠남


백구는 설 연휴가 지난 뒤에 죽었다. 어머니는 전화로 "백구가 갔다"고만 말했다. 유진은 다시 영덕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카이를 가방에 넣지 않고 품에 안고 갔다. KTX 안에서 맞은편 좌석의 아이가 카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강아지다!" 아이의 어머니가 유진을 보며 물었다. "바이오펫이죠? 무슨 모델이에요?" 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골든 리트리버요." 아이가 카이를 만지고 싶어 손을 내밀었고, 유진은 카이를 아이 쪽으로 기울였다. 카이는 아이의 손을 핥았다. 아이가 까르르 웃었다. "엄마, 이 강아지 진짜 같아!" 아이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보다 나을 수도 있지. 털도 안 빠지고."


유진은 웃었지만 속은 웃지 않았다.


어머니의 집 마당에는 작은 무덤이 생겨 있었다. 아버지가 손수 만든 마당의 은행나무 아래, 아버지가 매년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을 쓸어 모으던 바로 그 자리였다. 흙무덤 위에 어머니가 올려놓은 백구의 밥그릇이 보였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에는 사료 대신 백구가 좋아하던 고구마 한 조각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는 백구가 고구마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유진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화장할까 했는데, 그냥 여기 묻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 옆이 좋을 것 같아서."


아버지의 무덤은 마을 뒷산 공동묘지에 있었다. '옆'이라고 하기엔 꽤 먼 거리였다. 하지만 유진은 어머니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 이해되었다. 같은 땅. 같은 흙. 이 마을의 흙이 아버지의 몸을 감싸고 있고, 그 흙과 이어진 이 마당의 흙이 백구의 몸을 감싸고 있다. 세포가 분해되고, 단백질이 분해되고, 결국 탄소와 질소와 인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 교과서에서는 이것을 '물질의 순환'이라고 불렀다. 유진은 교단에서 이것을 가르칠 때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은행나무 아래 작은 흙무덤 앞에서 교과서의 그 건조한 문장이 목구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되어 올라왔다.


카이는 흙무덤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냄새 센서가 무언가를 감지한 듯 코를 바닥에 가까이 대고 킁킁거렸다. 흙 냄새, 고구마 냄새, 그리고 아마도 아직 남아 있을 백구의 냄새. 카이가 백구의 냄새를 기억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 번밖에 만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카이는 무덤 앞에 앉아서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유진은 카이가 기다리는 것이 백구인지, 유진의 명령인지, 아니면 센서 데이터의 처리 결과인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가 카이를 내려다보았다. 한참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만져봐도 되니?"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카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백구를 쓰다듬던 그 거칠고 억센 손으로. 카이는 눈을 감고 머리를 어머니의 손바닥에 기울였다. 카이의 눈동자 LED가 꺼지고, 접촉 센서가 어머니의 손길을 인식하며 편안함의 반응을 출력하고 있었다.


"따시하네." 어머니가 말했다. "근데 냄새가 안 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백구는 냄새가 지독했는데."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울음과 가까운 것이라는 걸 유진은 알았다.


유진은 어머니 옆에 앉아 은행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겨울이라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봄이 오면 다시 잎이 날 것이다. 세포가 분열하고, 엽록소가 만들어지고, 광합성이 시작될 것이다. 교과서가 정의한 생명의 활동들. 은행나무는 의심의 여지없이 생물이었다. 백구도 생물이었다. 살아 있었고, 죽었고,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카이는 생물이 아니었다. 살아 있지 않았고, 죽지 않을 것이고, 흙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녹슬 수는 있을 것이다. 고장 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해되어 나무의 양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질의 순환 바깥에 서 있는 존재. 그것이 카이였다.


그런데도 유진은 카이를 안을 때 따뜻했다. 카이가 유진을 올려다볼 때 가슴이 뛰었다. 카이가 유진의 곁을 지킬 때 외롭지 않았다. 이 감정은 진짜였다. 적어도 유진의 세포는 그렇게 반응했다. 유진의 심박수는 올라갔고, 유진의 옥시토신은 분비되었고, 유진의 뇌는 행복하다고 판단했다. 카이가 생물이 아니더라도, 카이에 대한 유진의 감정은 생물학적으로 진짜였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유진은 생각했다.



리콜, 다시


3월이 되었다. 유진은 새 학기 첫 수업에서 칠판에 '생물의 특성'을 적으며 잠시 멈추었다. 서른두 명의 학생들이 유진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펜을 내려놓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생물의 정의가 뭐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교과서를 펼쳤다.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교과서 말고, 여러분 생각으로요." 교실이 잠시 술렁거렸다.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숨 쉬는 거요?" 다른 학생이 말했다. "먹는 거요." 또 다른 학생이 말했다. "태어나서 죽는 거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 맞는 말이야. 근데 이런 건 어때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누군가 없으면 슬픈 것. 이것도 생물의 특성일까요?"


학생들이 웃었다. "그건 감정이잖아요, 선생님." 유진도 웃었다. "그렇지. 교과서에는 안 나오지." 하지만 유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수업이 끝난 뒤, 유진은 교무실에서 바이오펫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리콜 건으로 전화드렸는데요. 이전에 상담받은 적이 있어요." 유진이 말했다.


"아, 네. 확인해볼게요. 골든 리트리버 모델, '카이' 맞으시죠? 아직 리콜 기한 내시니까 언제든 맡기시면 됩니다."


전화기 너머로 수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수아가 그때 보여주었던 미소를 떠올렸다. 직업적 친절이 아닌,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듯한 그 미소.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유진이 말했다. "리콜을 안 하면 어떻게 되나요? 카이가 고장 나요?"


수아가 잠시 침묵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장이라기보다는 감정 모듈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어요. 극단적인 경우 시스템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고요. 카이가 갑자기 멈출 수 있다는 뜻이에요. 영구적으로요."


"영구적으로요?"


"감정 모듈이 중앙 처리 장치와 결합되어 있어서 모듈이 망가지면 복구가 어려워요. 새 모듈을 넣으면 되긴 하는데, 그러면 기존 학습 데이터가 전부 날아가요. 카이가 유진 씨를 기억하는 것, 유진 씨의 생활 패턴에 맞춘 행동, 유진 씨에게 반응하는 방식. 그런 것들이 전부요. 리콜은 그 데이터의 일부만 리셋하는 거고, 모듈 교체는 전부를 리셋하는 거예요."


유진은 전화기를 꼭 쥐었다. 전화기가 뜨거웠다. 아니면 유진의 손이 뜨거운 것이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리콜을 하면 카이의 애착이 줄어들고, 리콜을 안 하면 카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수아가 잠시 머뭇거렸다. "'죽는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맞아요. 작동을 멈출 수 있어요."


유진은 웃었다. 전화기 너머로 수아가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유진이 말했다. "수아 씨, 저도 알아요. '죽는다'는 표현은 좀 그렇다는 거. 카이는 생물이 아니니까요. 근데 이상하죠. 카이가 멈출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까 가슴이 아프거든요. 진짜로, 생물학적으로 가슴이 아파요. 여기가요." 유진은 자신의 왼쪽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물론 수아는 보지 못했지만.


수아가 말했다. "유진 씨, 저도 바이오펫 키워요. 샴고양이 모델이에요. 이름은 '달'이고요." 유진은 잠시 놀랐다. "서비스센터 직원분도 키우세요?" "여기서 일하면서 하나 입양했어요. 매일 다른 분들의 바이오펫을 수리하면서 제가 왜 이걸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어느 날 보니까 달이 제 옆에 있더라고요."


유진은 수아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교무실 창밖으로 운동장이 보였다. 학생들이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과 부딪히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유진은 가방 속에서 카이를 꺼내 무릎에 올렸다. 카이의 눈동자가 호박색으로 빛났다.


유진은 결정을 내렸다.



털이 빠지지 않는 것들


리콜 기한인 6월이 되었다. 유진은 센터에 가지 않았다.


카이에게 결함이 있다는 것을 유진은 알고 있었다. 설계 사양보다 120퍼센트 높은 애착. 자기 보존 프로그램을 무시하는 충성. 감정 모듈에 과부하가 걸려 영구적으로 멈출 수 있는 위험. 유진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리콜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유진이 리콜을 거부한 것은 카이의 결함이 유진이 아는 가장 아름다운 것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백구가 어머니 없이는 밥을 먹지 않았던 것. 아버지가 새벽마다 바다에 나가면서도 매일 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 유진이 지금, 기계로 만들어진 작은 강아지를 안고 잠드는 것. 이 모든 것은 설계 사양을 넘어선 것이었다.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때로는 생존에 방해가 되는 비합리적이고 과도한 감정. 결함.


어쩌면 생명이란, 교과서가 말하는 세포와 물질대사와 생식이 아니라, 바로 이 결함 자체인 것인지도 모른다. 설계를 넘어서는 것. 코드를 벗어나는 것. 자기 보존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유전자든 알고리즘이든, 그 코드를 배반하는 순간에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유진은 그해 여름, 새로운 수업 자료를 만들었다. 생물의 특성을 가르치는 단원의 마지막 페이지에 유진은 교과서에 없는 문장을 하나 추가했다.


'생물의 정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교감에게 혼날 수도 있는 문장이었지만, 유진은 그것이 자신이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9월의 어느 저녁, 유진은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카이가 달려왔다. 언제나처럼 꼬리를 흔들며, 언제나처럼 유진의 발치에서 빙글빙글 돌며, 언제나처럼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며. 유진은 카이를 안아 올렸다. 4.2킬로그램의 따뜻한 무게가 팔에 실렸다. 카이의 눈동자가 가장 밝은 호박색으로 빛났다. 유진의 손에 카이의 털이 묻지 않았다. 옷에도, 소파에도, 이불에도 털은 묻지 않았다. 카이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존재였다.


유진은 카이를 안은 채 소파에 앉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카이 데리고 다음 주에 내려가도 돼?"


"그래. 오너라." 어머니가 말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덧붙였다. "그 로봇 강아지 말이야, 유진아."


"응?"


"이름이 뭐였더라?"


"카이요."


"카이. 그래." 어머니가 천천히 이름을 따라 불렀다. "카이는 고구마 좋아하니?"


유진은 웃었다. "엄마, 카이는 안 먹어요."


"알아, 알아. 그래도 물어본 거야."


전화를 끊고, 유진은 한참 동안 카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카이는 유진의 무릎 위에서 눈을 감았다. 호흡 시뮬레이션이 느린 리듬으로 바뀌었다. 잠드는 모드였다. 유진도 눈을 감았다.


유진의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묻어나지 않았다. 털도, 냄새도, 비듬도. 카이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유진의 가슴 안에는 무언가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교과서의 어떤 페이지에도 설명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세포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존재했고, 물질대사를 하지 않았지만 살아 있었고, 번식하지 않았지만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오래된 형태의 생명인지도 모른다. 이름 붙이기 전의 생명. 정의하기 전의 생명. 교과서를 펼치기 한참 전부터 존재해왔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이름의 생명.


유진은 카이에게 속삭였다. "오래오래 살아." 카이의 꼬리가 잠결에 한 번 흔들렸다. 모터 소리가 아주 작게 울렸다. 위이잉.


유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카이의 배터리 잔량은 82퍼센트였다. 충전 스테이션은 유진의 침대에서 세 걸음 거리에 있었다. 카이의 귀소 본능 프로그램은 15퍼센트 이하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카이는 유진의 무릎 위에 있었다. 프로그램은 작동하지 않았다. 작동할 필요가 없었다. 카이는 이미 집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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