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와 목적 사이의 줄타기
2026년 새 학기를 맞이한 대학가는 거대한 파도 위에 서 있다.
챗GPT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표절'과 '부정행위'를 우려하며 빗장을 걸어 잠그던 대학들이 이제는 인공지능(AI)을 학생의 필수 역량으로 규정하고 나선다.
가천대는 AI 교양 수강을 의무화하고, 서울대는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서울시립대는 아예 'AIChat'이라는 독자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며 기술을 학내로 끌어들인다.
이제 대학에서 AI는 단순한 과제 대행자가 아니라,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팀원으로 마이그레이션 중이다.
1.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정보 리터러시의 최전선
이러한 변화의 바람은 대구의 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보를 분류하고 아카이빙하던 전통적인 학문의 영역은 이제 생성형 AI라는 거대한 엔진을 어떻게 운전하고 조절할 것인가라는 '고도화된 리터러시'의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과거의 문헌정보학이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정확한 출처를 찾는 데 집중했다면, 2026년의 문헌정보학은 AI가 쏟아내는 수만 개의 텍스트 중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환각(Hallucination)인지를 판별해내는 '비판적 평가 능력'을 핵심 역량으로 삼는다.
대학이 제정하는 가이드라인들은 결국 기술에 압도당하지 않고 정보의 주권을 지키려는 지적인 방어선인 셈이다.
2. 사유의 외주화와 구독 경제의 그늘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다.
대학가에서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사유의 외주화' 현상이다.
AI가 완성된 정답을 단숨에 제시하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논리를 쌓아가는 과정 자체가 생략되고 있다.
도끼날을 가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이미 잘려진 장작을 손에 쥐게 되는 격이다.
기초 학력 저하와 비판적 사고력의 거세는 대학 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시스템 에러다.
또 다른 문제는 '신(新) 디지털 격차'다.
고성능 유료 모델을 구독할 수 있는 경제력이 학점과 연구 성과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뼈아프다.
지적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구독 경제력'의 차이가 성적의 상단과 하단을 결정한다면, 그것을 공정한 평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학들이 오프라인 지필 고사나 구술 면접 비중을 다시 늘리며 평가 방식을 진화시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데이터의 불평등'과 '대필의 불투명성'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3. 도구적 수단을 넘어서는 인간의 리터러시
결국 AI는 어디까지나 도구적 수단일 뿐이다.
방향성은 정해졌지만, 그 방향을 결정하는 키는 여전히 인간의 손에 쥐어져 있다.
학생들이 AI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교육적 지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문헌정보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AI 시대의 리터러시는 단순히 도구를 잘 다루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텍스트 사이에서 '인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술이 미처 채우지 못하는 윤리적 공백을 메우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다.
대학의 가이드라인은 기술을 막기 위한 벽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한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실험실을 탈출한 로봇들이 거실을 점령하고, 230억 개의 시선이 기술적 낙관주의를 향하는 시대다.
대학가의 치열한 가이드라인 제정 소식은 우리가 여전히 사유의 주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강력한 신호다.
도구는 날카로워졌으나 그 도구를 휘두르는 마음은 더욱 겸허하고 신중해져야 한다.
2026년의 대학은 이제 정답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AI와 함께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우는 거대한 리터러시 실험실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