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의 일 : 모두 돌고 돌아 제 자릴 찾고
아내가 얼마 전 처음으로 이직에 도전했다. 아내는 지금 회사에, 말하자면 현장직으로 입사했다가 아이 낳고 복직하면서 본사 내근직으로 전환됐다. 그 일이 적성에 더 잘 맞았다. 별 탈 없이 경력을 쌓아왔다만 나름의 권태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이웃한 회사에서 좋은 처우를 걸고 현장직 경력사원을 뽑는다고 들었다. 십수 년 만에 이력서를 정비했다. 입사 지원서를 제출했는데 통과됐다.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 필기시험에 응했고 그것도 붙었다. 마지막 면접을 앞두고는 밤늦은 시간까지 책상 불을 밝혔다.
며칠 전이 면접 날이었다. 끝났겠거니 싶을 때쯤 전화가 왔다. 어땠는지 물었다. 첫 대답이 “오빠, 망했어.”다. 완전히 헛다리 짚었단다. 현장 업무 중심으로만 물어보는데 첫 질문부터 꼬였단다. 뒤에는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도 없단다. 아, 내가 현장 일 놓은 지가 오래되긴 했구나, 자괴감만 들더란다. 애썼다, 수고 많았다고 답했다. 차라리 잘 됐어, 다시 마음 다잡고 하던 일 열심히 하셔, 지금 회사도 좋은 곳이야, 다시 현장 돌아가서 무슨 고생을 하려고, 덧붙였다.
엊그제는 내 전 직장 후배가 톡을 보내왔다. 뜬금없이 예전에 같이 일했던 여자 후배와 연락이 닿느냐고 물어온다. 아니, 메신저 대화명이 보이긴 하는데 맞는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답했다. 후배가 아쉬워하는 찰나, 찬찬히 메신저 프로필을 보니 맞는 것도 같다. 웬 책 표지 사진을 크게 걸어 놨다. 깨알 같은 글씨로 된 번역자 이름이 여 후배다.
밑져야 본전,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예전에 아무개 회사에서 일한 아무개 님 맞으시냐. 숫자 ‘1’이 바로 없어진다. 맞아요, 선배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반가운 응답이 돌아온다. 아이구야, 이게 얼마만이니, 회신한다. 후배가 벌써 마흔 살 아줌마란다. 초등생 엄마가 됐는데 아이가 엄청난 개구쟁이란다. 무슨 일 하고 있냐고 물으니 책 표지의 의문이 풀린다. 후배도 회사를 그만두고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했단다. 아르바이트 삼아서 몇 권쯤 번역 일을 해왔단다. 잘은 모르겠지만 육아와 겸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았다.
그래, 모두 잘 되었다. 두 여인의 일을 생각해본다. 아내의 노고는 아쉽지만 도전한 직무가 자기 자리가 아닌 거다. 면접에서 알아차린 게 회사도 개인에게도 차라리 낫다. 투미한 면접 전형을 어찌어찌 거쳐 입사했다고 치자. 옮겨 간 회사에서 일을 망치고 본인도 적성에 안 맞으면 서로 크게 폐 끼치는 일이 된다. 전 회사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아내는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고 잘한다. 번역가가 된 후배도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을 찾아서 갔다. 동료로서 후배는 군계일학처럼 우수했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업무하는 인재였다. 곁에서 두고 보건대 그녀를 담아내기에 회사는 비좁은 곳이었다. 돌이켜보니 외국어를 참 잘했다. 일도 잘하지만 가정 안에서의 행복이 더 중요한 그녀에게 안성맞춤인 직업이다.
사필귀정이란 말을 좋아한다. 어려서는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모든 악인은 필연코 절멸한다’ 따위의 뜻으로만 네 글자 한자어를 받들었다. 이제의 나는 그때보다 노회하다. 다른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세상 모든 것은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그것이 널찍한 들녘이든, 가파른 벼랑이든 스스로 감당할 만한 곳으로 돌아가게 돼있다. 우주의 섭리가 그렇노라 눈곱만큼은 짐작하는 나이가 되었다. 자연(自然), ‘본디 그러한 것’을 ‘스스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가수 성시경이 오래전에 부른 「외워두세요」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박주연 작사가가 노랫말을 붙였다.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 하림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조용필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임창정 「그때 또다시」 등 여러 히트곡을 지어낸 작사가다. 이 노래 후렴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모두 돌고 돌아 제 자릴 찾고 사라졌던 별 다시 또 태어날 때쯤 그때쯤 우리 꼭 만나요.” 별이 다시 태어날 정도로 오래 걸릴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간다. 나도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